<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02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
2.
“아무리 그러셔도 저 안 갑니다. 사단장님 큰일 하시는데 제가 가면 방해만 됩니다.”
오상진이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장석태 대위가 펄쩍 뛰었다.
“어이구 무슨 방해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아버지 누구 때문에 빨리 진급하셨는데? 이게 다 오 중위 덕분 아니야.”
“제가 또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또 겸손 떤다. 또! 암튼 그놈의 겸손은······.”
장석태 대위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들며 하나씩 꼽아 나갔다.
“그리고 오 중위가 한 것이 없다고? 하나씩 따져 볼까? 오 중위가 지금껏 받은 표창장이 몇 개야? 독수리 훈련은 그렇다고 치고 서해 기름유출 되었을 때 오 대위가 나서서 우리 사단 통솔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누구나 다 하는 걸 못해서 오 중위가 했잖아.”
“······.”
오상진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기름유출 사건 때 오상진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물론 기름유출 사고를 막았다면 더 좋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 해도 어떤 경위로 어떻게 사고가 터졌는지 모든 걸 정확하게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귀한 입장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사단장에게 충언해 가장 넓은 지역을 맡아서 복구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별다른 사고 없이 복구 작업을 무사히 끝을 낼 수 있었다.
그때 몇 차례 매스컴을 타면서 사단장도 이번에 육본에 올라가게 됐다.
“진짜 육본에 안 갈 거야?”
“네. 장 대위님이나 가십시오.”
“야, 미쳤어? 아빠 밑에서 또 하라고? 안 그래도 지난 2년 동안 힘들었는데 또 하라고?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육본 가면 밟히는 것이 스타잖아. 우리 아버지도 눈치 봐야 하는데 나까지 보태기 싫다.”
장석태 대위도 단호했다. 그런 장석태 대위를 오상진이 어이없다는 투로 바라봤다.
“그런데 왜 저에게는 가라고 하십니까?”
“오 중위가 가야 내가 안 가잖아.”
“네? 지금 장난 하십니까?”
“에헤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암튼 오 중위가 좀 가주면 안 될까? 우리 사단장님 육본 보내고 고생할까 봐 불안해서 그래.”
“사단장님께서 잘 알아서 하실 겁니다. 주변에 사람 없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막말로 제 이름 오르내리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사단장님이 들으시면 많이 서운하시겠다.”
“어쩔 수 없죠. 아무튼 몸 건강하시라고 전해주십시오.”
오상진이 딱 잘라 말했다. 사실 사단장 덕분에 이곳 작전처에 올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름 열심히 했고,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결과도 나왔다.
그 첫 번째가 독수리 훈련이었다.
아무래도 회귀를 했기 때문에 현재의 작전보다는 먼 미래에 나왔던 작전을 꺼냈는데 그것이 기가 막히며 먹혀들었다. 그 결과 사단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것을 높게 평가해 사단장이 ‘오상진 같은 엘리트는 빨리빨리 진급을 시켜야 한다’며 2년 만에 대위(진)으로 진급을 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주변에서 경계하는 시선들이 더 많아졌다. 급기야 이 상태로 소령, 중령까지 초스피드로 진급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그래서 오상진은 일부러 6개월 간 고군반(OAC)교육을 받았다. 과거처럼 일선에서 착실하게 군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을 잘 수습하면서 사단장도 육군본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단장은 오상진과 함께하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자기 라인을 전부 다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귀하기 훨씬 전부터 사단장과 함께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대신 자신이 끼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아무튼 말씀을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저도 이제 좀 병사들과 어울리고 싶습니다. 이것 때문에 고군반까지 교육 이수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대대 내려가서 중대를 한번 맡아보고 싶습니다.”
“어이구 이놈의 똥고집! 나중에 후회하지 마.”
“후회는 안 합니다.”
“네네. 어련하겠습니까. 아참! 은지 씨가 소희 씨랑 밥 한 끼 하자고 하는데.”
“저야 당연히 좋죠. 소희 씨 많이 좋아하겠다.”
“그럼 약속은······.”
“그런 거야. 여자들이 알아서 잡겠죠. 저희야 약속 잡히면 그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맞지. 암! 그런 거지.”
장석태 대위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긍정을 나타냈다.
“알았어. 점심 시간도 다 끝났는데 이만 갈게.”
“네. 수고하십시오. 충성.”
장석태 대위가 손을 흔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그러다가 말이 나온 김에 휴대폰을 꺼내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 씨 뭐해요?”
-저 지금 공부 중인데요.
“공부요? 무슨 공부요?”
-말했잖아요. 저 대학원 간다고요. 상진 씨는 이제 내 말 기억도 못 하나 봐요.
얼마 전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라는 한소희의 말이 떠오른 오상진이 냉큼 목소리를 바꿨다.
“아니, 나는 소희 씨가 그냥 지나가듯 말한 줄 알았죠.”
-나 진짜 대학원 갈 건데요?
“미안해요. 그럼 앞으로 열심히 응원할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저 대학원에 가야 할 이유도 있어요.
“그 이유가 뭔데요?”
-그냥요. 좀 더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으음······.”
오상진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알아서 다 얘기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한소희가 바로 화제를 돌리듯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방금 장 대위님 다녀갔어요. 은지 씨가 밥 먹자고 그러던 것 같은데요.”
-그래요? 내가 은지 언니랑 통화해서 날짜 잡을게요.
“그래 주시면 고맙고요.”
-알겠어요.
“그래요. 공부 열심히 해요.”
-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진짜 궁금하긴 하네. 왜 공부가 하고 싶다고 하지? 대학교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자더니······.”
오상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누구지?”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최강철이었다.
“어? 이 녀석 오랜만이네.”
오상진이 반가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어이, 최강철!”
-소대장님. 충성입니다.
최강철은 전역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소대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야 인마. 너는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충성 타령이냐.”
-한 번 소대장님은 영원한 소대장님 아닙니까.
“아이고, 말은 잘해.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난번에 한번 보자고 하셨잖아요. 이번 주말 어떠십니까?
“이번 주말 괜찮긴 한데······. 진짜 다 모이냐? 혹시 너만 오는 거 아니냐?”
-진짜 많이 옵니다. 그때 오시고 깜짝 놀라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네. 그럼 문자로 약속 시간이랑 장소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강철아. 그때 보자.”
-넵! 그때 뵙겠습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끊고 피식 웃었다.
소대장으로서 1소대원들이 전부 전역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1소대원들은 전역하고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전화하며 군대에서의 인연을 이어가주었다.
그러다 1소대 전역자들끼리 충성대대의 이름을 따서 ‘충성회’란 모임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1년에 3~4번 정도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안 본 지도 4달이 넘어가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작전처에 들어갔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작전참모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앉아 있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참모님 식사하셨습니까?”
“오 중위는 밥 먹었나?”
“네.”
“그래, 어서 일 봐.”
오상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확인했다.
그렇게 오상진의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3.
장기준 소장이 볼일을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뒤를 곧바로 따라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일 년 전 새로운 보좌관으로 들어온 심도윤 소령이었다.
“아, 이거 정신이 없구만. 육본에 올라가기 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장기준 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기쁜 마음으로 했네. 그보다 내가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되었나?”
“오상진 중위 말씀입니까?”
“그래. 여전히 안 간다고 하나?”
심도윤 소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네. 변함이 없습니다. 장 대위가 열심히 설득을 해봤지만 여전히 대대에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 뜻을 꺾을 생각은 없는 듯 보입니다.”
“아이고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는지······.”
장기준 소장이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밑에서 꾸준히 일하다 보면 빠르게 진급하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일 텐데······.
물론 장기준 소장도 오상진 스스로의 성취욕이 강하다는 걸 알았다. 다만 오상진 같은 인재를 곁에 두고 싶은 욕심도 떨치기 어려웠다.
심도윤 소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단장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오 중위에게는 적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도 사단장님께서 오 중위 챙기는 거 가지고 말들이 많은데 여기서 육본까지 같이 올라가면 뒤에서 더 수군거릴까 봐 그러는 것 같습니다.”
“아니, 막말로 그런 게 뭐가 중요해? 그리고 내가 오 중위를 괜히 예뻐하나? 오상진 중위가 지금까지 한 것이 얼마나 많아? 심 소령. 자네가 말해봐. 자네가 내 입장이라면 오 중위를 놓고 가겠어?”
“솔직히 말해서 저도 오 중위 같은 후배라면 욕을 먹더라도 끌어주고 싶을 겁니다.”
심도윤 소령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다 나라를 위해서지. 안 그런가.”
“그런데 오 중위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사단장님께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셔도 오 중위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도 따로 알아본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오 중위 사단에서도 딱히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고 합니다.”
“뭐? 정말이야? 이것들이 오 중위를 단체로 왕따를 시키는 거야!”
“왕따라기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히 잘못했다가 사단 내 파벌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오 중위가 육본으로 간다고 해도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계급도 계급이고······ 아직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정치에 휘둘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으음······ 하긴. 다들 내가 오 중위를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육본에 올리면 주변에서 가만 내버려 두지 않겠지. 그보다 이제 어쩐다. 다시 충성대대로 보내야 하나.”
장기준 소장이 길게 신음했다. 그러자 심도윤 소령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 이건 제 생각인데 말입니다. 충성대대보다는 경기도 평택 육군 17보병연대 쪽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17보병연대? 17보병연대라면 우리 쪽이 아니잖아? 거기 연대장은 저쪽 라인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