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2부 시작>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01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
1.
오상진이 사단에 출퇴근한 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어후, 춥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상진이 다시 사단으로 복귀하기 위해 눈 덮인 길을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2월이 다 지나가는데도 아직까지 춥네. 이제 슬슬 날이 풀릴 때가 됐는데.”
오상진은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저만치서 간부 한 명이 다가왔다.
“오 중위님! 벌써 식사 끝내셨습니까?”
“아, 네에. 김 중위님은 이제 식사하러 가십니까?”
“어쩌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오늘 식단은 어떻습니까?”
“먹을 만합니다.”
“하하. 오 중위님은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럼 식사 맛나게 하십시오.”
“네.”
한편, 사단으로 올라가는 길 한편에는 비닐하우스로 된 휴게실이 있었다. 그곳에 장교 몇 명이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저만치 지나가는 오상진을 발견하고 말했다.
“야야야, 저기 오 중위 지나간다.”
“어? 그러네.”
“그런데 오 중위는 볼 때마다 밥 혼자 먹더라.”
“야, 누가 쟤랑 밥을 같이 먹겠냐. 다들 재수 없어 하는데.”
“하긴 인간미가 없지.”
그때 잠자코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야, 까놓고 말은 바로 하자. 오 중위가 무슨 인간미가 없어? 다들 자격지심 있는 거야? 솔직히 오 중위 열심히 했잖아. 잘나기도 했고. 그러면 동기들끼리 밀어주고 그래야지. 언제까지 따돌릴 거야?”
충성대대에 있다가 사단장의 부름으로 사단에 올라와서일까. 사단 내에서 오상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뭘 우리가 따돌렸다고 그래? 막말로 오 중위가 우리보고 술을 마시자고 그래, 아니면 밥을 같이 먹자고 그래?”
“맞아. 만날 장석태 대위하고만 어울리더만.”
이곳저곳에서 변명의 목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담배를 피우는 이들 대부분은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도 사단에 있으면서 잘나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더 잘난 사람이 있으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오 중위. 이번에 사단장님 안 따라가고 대대로 내려가는 것 같던데.”
“대대로? 왜? 드디어 사단장님 라인에서 찍힌 건가?”
“그건 잘 모르겠네.”
“와, 다들 생각이 없냐? 딱 봐도 지금 더 빨리 올라가려고 머리 쓰는 거잖아.”
“지금도 빠른데 더 올라간다고? 막말로 오 중위가 뭘 했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오 중위가 잘하긴 했지. 독수리 훈련 때도 작전 잘 짜서 대통령 표창 받았잖아.”
“아이고 독수리 훈련 때 꽤 괜찮은 작전 몇 개 펼친 거 가지고 대통령 표창 받는 것이 말이 돼? 그리고 그건 우리 사단이 잘해서 받았는데 왜 오 중위가 잘했다고 그래.”
“서해안 기름유출은?”
“그것도 우리 사단 대표해서 언론 좀 상대한 걸 가지고 사단장님께서 무슨 난리를 쳐서는 국방부 장관 표창까지 준 거잖아. 솔직히 정말 어이없지 않냐?”
평소에도 다들 오상진을 안주 삼아 투덜대곤 했지만 그중에서도 강성호 중위는 오상진의 말만 나오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깎아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누군가가 다시 한마디 했다.
“강 중위. 적당히 하자. 지금 엄청 추해.”
“뭐?”
강 중위가 눈을 부릅떴다.
“야, 솔직히 여기서 오 중위 맘에 들어 하는 사람 하나도 없긴 해. 그런데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비참해지는 건 우리라고. 뭘 그렇게까지 깎아내리고 그래. 막말로 오 중위가 3사 출신이야, ROTC 출신이야? 우리 육사 출신이잖아. 심지어 동기고. 그럼 동기로서 챙겨주고 그래야지. 질투를 하다못해 악담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그러자 강성호 중위가 어이없어했다.
“아이고, 그래. 니들 잘 났어. 그런데 오 중위가 우리 제치고 이제 곧 대위 달고 소령 달고 저 앞에 가면, 그때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강성호 중위가 기억하기로 오상진은 동기 중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오상진은 자신들보다 가장 먼저 대위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도 한 계급 차이가 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가 얼마나 벌어질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니 다른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모두가 강성호 중위처럼 심사가 배배 꼬인 건 아니었다.
“그것도 나쁘지도 않네.”
“뭐?”
“야, 막말로 우리 동기 중에 누군가가 육군참모총장이 돼. 그럼 넌 싫어?”
“뭔 개소리야.”
“아니, 맞잖아. 우리 동기 중에서 진짜 별 4개 대장이라도 나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만약에 오 중위가 그런 상태가 되면 난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고 싶은데.”
“나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와, 지금이라도 우리 줄을 잘 서야 하는 거 아니야?”
몇 명이 담뱃불을 끄며 오상진 편으로 돌아섰다. 그런 동기들을 보는 강성호 중위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저 녀석들······. 배알도 없는 새끼들.”
그 뒤에 다른 동기가 강성호 중위의 어깨를 툭 쳤다.
“됐어. 가자! 오 중위는 이제 대대로 내려간다잖아.”
“아, 제기랄! 내가 이상해? 나만 이상한 거야?”
“아아, 그만해. 그냥 가.”
동기는 강성호 중위를 억지로 이끌고 들어갔다.
2.
오상진이 근무하는 사단 작전처에 들어가자 부사관 몇 명이 말을 건넸다.
“오 중위님 식사하고 오셨습니까?”
“네. 식사하셨습니까?”
“네, 저희도 했습니다.”
오상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 들어온 여자 소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최 소위.”
“네.”
“식사 안 해?”
“아, 지금 가려고 했습니다.”
보름달처럼 동글동글한 최진아 소위는 이제 작전처에 온 지 2달 정도 된 장교였다.
최진아 소위가 전투모를 챙겨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식사하고 오겠습니다.”
최진아 소위가 막 작전처를 나가려는데 입구에서 장석태 대위와 마주쳤다.
“어이쿠야. 최 소위, 지금 어디가?”
“점심 먹으러 갑니다.”
“이제? 뭐 했어. 지금 가고.”
“마무리 지을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 그보다 오늘 화장이 잘 먹은 거 같은데?”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최진아 소위는 부끄러운지 바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갔다. 그 모습을 히죽 웃으며 바라보던 장석태 대위가 오상진에게 갔다.
“최 소위 좀 그만 놀리세요.”
“원래 후배들 놀리는 맛에 사는 거지.”
“그러다 후배들 다 도망갑니다.”
“오오, 우리 오상진 대위진! 오늘도 아주 활기차구만?”
오상진이 못말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장석태 대위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 반응은? 이제 곧 대위 단다고 날 무시하는 거야?”
“뭘 무시합니까. 그보다 장 대위님은 근무처가 여기입니까? 정보처는 여기가 아닌 걸로 압니다만.”
“아, 오 대위진 왜 그래.”
“그만 하십시오.”
“뭘 그만해. 오 대위진.”
오상진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장석태 대위의 입을 막았다.
“아, 진짜. 정말 매일같이 왜 그러십니까.”
“뭘, 어때.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또 어쩐 일로 여긴 행차하셨습니까?”
“그냥 밥 먹고 커피 한 잔이 생각나서 왔지.”
“여기가 무슨 커피 타 먹는 커피숍인 줄 아십니까.”
“어? 오 대위진. 왜 그래? 오늘 그날이야? 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로워?”
장석태 대위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난기가 많았다. 오히려 사단에서 함께 근무한 이후로 말장난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못 말립니다.”
“그냥 받아들여.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래?”
“네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매번 겪으니 정말 짜증이 납니다.”
“거참 같은 참모부인데 대화도 나누고 그러면 좀 좋아?”
“장 대위님이 자꾸 여길 들락날락거리니까 저도 친구가 없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한마디에 장석태 대위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몰랐어? 오 중위 원래 친구 없잖아. 사단에서 오 중위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는데?”
“누구 때문에 없겠습니까!”
“오호, 그게 나 때문이었어? 난 몰랐네?”
오상진이 언성을 높이자 장석태 대위가 바로 실없이 웃어댔다.
“근데 무슨 용무로 오신 겁니까?”
“우리가 꼭 용무가 있어야 보는 사이인가?”
“아, 됐습니다. 용무 없으면 가십시오. 저 이제 업무 봐야 합니다.”
“업무는 커피 한 잔 마시고 해도 되잖아. 누가 보면 자네 혼자 다 일하는 줄 알겠어.”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며 장석태 대위를 바라봤다. 장석태 대위의 반응으로 보아 커피를 마셔줄 때까지 계속 저럴 것 같았다.
“좋습니다. 커피 한잔하러 가시죠.”
“당연히 그래야지.”
장석태 대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건물 밖 커피 자판기로 장석태 대위를 데려간 오상진은 커피 한 잔을 뽑아 장석태 대위에게 건넸다.
“난 여기 커피 자판기에서 나오는 밀크커피가 그리 맛있더라.”
“다 똑같지 말입니다.”
“절대 아니야. 다 안 똑같아. 여기만 특별해.”
장석태 대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장석태 대위가 귀찮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단에 올라와서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하는 자신을 신경 써주는 건 장석태 대위뿐이었다.
“참, 요새 오 대위 얘기 많이 나오는 거 알아?”
“아, 쫌! 그만 하십시오. 아직 진급 신고도 안 했는데 무슨 대위입니다.”
“어차피 진급 확정 났잖아. 왜 그래?”
“아직은 아니란 말입니다.”
“알았어, 오 대위. 암튼 왜 굳이 대대에 내려가겠다는 거야?”
오상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말을 말겠습니다.”
“삐치지 말고, 왜 다시 대대로 내려가려고 하냔 말이야.”
“어차피 중대장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걸 몰라? 오 중위는 중대장 안 해도 알아서 쭉쭉 올라갈 텐데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고 하냔 말이야.”
장석태 대위가 답답한지 살짝 언성을 높였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게 다,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전 중대장은 꼭 한 번 하고 싶습니다.”
“무슨 전생에 중대장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그래. 오 중위가 하겠다는데 내가 무슨······.”
장석태 대위가 고개를 흔들고는 다 마신 종이컵을 힘껏 움켜쥐었다.
“혹시 삐졌습니까?”
“안 삐졌거든.”
“에이, 삐지셨네.”
“지금 장난하냐? 뭐? 귀신? 됐어, 신경 꺼!”
장석태 대위는 귀신 얘기는 본인이 먼저 꺼냈으면서 괜히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오상진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얘기 끝났으면 저 갑니다.”
“가긴 어딜 가?”
“할 얘기 남았습니까?”
“사실 우리 아버지······ 아니, 사단장님께서 널 계속 꼬셔보라고 하잖아. 아주 아침 저녁으로 전화해서 갈구시는데 내가 다 죽겠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