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8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7)
-네, 소대장님. 최강희입니다.
바로 최강철 누나였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강철이 병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어머나, 그래요? 벌써 병장이구나.
“그렇죠.”
-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휴가 때 뭐라고 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빨리 병장이 될 줄은 몰랐어요.
“후후, 빨리는 아니죠. 남들과 똑같이 달았습니다.”
-그래도 군대 있는 동안 참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은 느껴요. 그래서 말인데요, 소대장님.
“네.”
-일 년만 더 하면 안 될까요?
“네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강철이가 이 얘기 들으면 서운해하겠습니다.”
-서운해하라죠, 뭐. 그런데 솔직히 군대 가서 진짜 많이 사람 되었어요. 이게 다 소대장님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강철이가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강철이는 언제쯤 제대인가요?
“이제 한 4개월 정도 남았죠.”
-으음, 그럼 5월쯤이겠네요.
“그렇죠.”
-5월이라……. 대학교에 복학시키기에는 좀 애매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강철이가 그 얘기를 하긴 하던데요. 본인 말로는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 하던 것 같던데요.”
-어학연수요? 어학연수는 무슨…….
최강희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해외 나가서 사고 칠까 봐 걱정이에요.
“그래도 누님께서 계시니까, 큰 걱정은 없습니다. 이르지만 제대해도 잘 잡아주십시오.”
-네. 아무튼 소식 알려줘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잠시만요, 소대장님.
“네?”
-외람된 질문이지만 혹시 계속 군에 남아 있을 생각이세요?
“네, 지금은 군에 계속 있을 생각입니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은 하십니까?”
-아니, 저희 아버지께서 종종 물어보세요.
“아, 의원님께서요?”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냥 소대장님을 많이 궁금해하세요. 전역해서 다른 일을 하시더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 하셔서요.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신경 써주셔서 저야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려요.
“네. 그럼 끊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한 주가 지난 월요일 아침.
김철환 1중대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1층 복도에 딱 들어서자마자 구시렁거렸다.
“아, 젠장!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잔뜩 인상을 쓴 채 콧김을 뿜어대고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을 발견했다. 그 상태로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소대장들은 그 모습을 보며 감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저, 아무래도 중대장님께서…….”
“그래도 회의 내용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그러면서 모두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네?”
“1소대장이 다녀와야죠.”
“당연합니다. 어서 갔다 오십시오.”
“부탁합니다.”
오상진은 모두의 시선을 받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오상진이 중대장실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회의 끝나셨습니까?”
“어, 왔냐?”
“네, 그런데 회의하면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버럭했다.
“야, 인사장교 이 자식 완전 개 또라이 새끼네.”
“네?”
“이 자식이 해 먹은 돈이 4천이 넘어!”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녀석이 그동안 돈을 뒤로 빼먹었다고. 그 돈이 4천이 넘는단 말이야.”
“헉! 정말입니까?”
“그래, 그런데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말을 안 한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이 뭔 줄 아냐?”
“뭡니까?”
“대대장님이 이번 일은 덮고, 인사장교 징계만 내리시겠다고 하네.”
“네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돈에 손댄 겁니다. 빼갔던 돈을 도로 원상복구 시켜야죠. 그 뒤에 징계를 하고 말입니다. 아니면 헌병대에 신고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원래 대대장 성격이 그렇지 않잖아.”
“그렇죠.”
“그런데 언제 자비로웠다고, 그냥 징계로 끝내겠다고 한다. 앞서 모든 것의 잘못을 말이야. 암만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냐?”
“네.”
“그걸 또 이해해 달라고 한다. 말이 그렇지 가당키나 하냐? 지난 3개월 동안 못 받은 돈은 어디서 받아야 하냐?”
김철환 1중대장이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그동안 훈련비며, 교통비까지 3개월 동안의 돈이 밀려 있었다.
오상진도 못 받은 돈이 대략 100만 원 정도 되었다. 가뜩이나 김철환 1중대장은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실정이었다. 담배도 맘 편히 못 피우고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떼간 돈은 못 받는 상황이네요.”
“말도 마라. 3중대장이 그 얘기를 꺼냈다가 대대장이 얼마나 난리를 피웠는지…….”
김철환 1중대장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대장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대장님이 ‘그깟 돈 몇 푼에 사단에 이 일을 보고해야겠어? 그렇게 내 옷 벗기고 싶어? 그래, 맘대로 해!’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김철환 1중대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만 들어도 오상진은 상상이 되었다.
“으음, 그럼 소대장들께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뭐라고 해.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 뭐 한다고 네가 뒤집어써!”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은 거칠게 전투모를 책상에 내려쳤다.
팟!
“에이씨, 진짜 내가 이 일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어떻게 됐습니까?”
“다 들어오는 거 맞죠?”
소대장들의 물음에 오상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그게 말이죠…….”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과 나눴던 얘기를 소대장들에게 얘기했다. 소대장들은 다들 어이없어했다.
“와, 진짜 이러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저 군인이라는 것이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해서 좋아라 했는데……. 살다 살다 군인 월급을 삥땅 칩니까?”
“맞습니다. 저도 이번 달에 여자 친구 생일이라서 선물도 준비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3소대장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김정태 2소대장의 표정이 더욱 어두웠다. 사실 김정태 2소대장은 짠돌이였다. 물론 짠돌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적금을 엄청 많이 들었다.
월급의 80%를 나눠서 적금을 들었다. 그중 몇 개에 적금을 들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이것 참 큰일이네.”
오상진이 김정태 2소대장을 바라봤다.
“2소대장 괜찮아?”
“아후, 젠장! 이번 달도 빵꾸야 빵꾸!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적금 하나 깨야겠네.”
“일 년 넘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해. 오래 둔 것은 못 깨겠고. 1년 전에 든 것 중에 하나 깨야겠네.”
김정태 2소대장의 표정이 막막해졌다. 아쉬움도 있고, 속상한 것도 있었다.
“아깝네. 그거 3년짜리 아니야?”
“그렇지. 2년 남았지. 그래도 어떻게 해. 적금 들다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김정태 2소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깨지 말고 둬. 내가 빌려줄게.”
“아, 지난번에도 빌려줬잖아.”
“괜찮아, 나 여윳돈 있어. 나중에 적금 타면 갚아. 그래도 우리 동기 아니야.”
“고맙다, 상진아.”
“고맙긴 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슬쩍 행정반에서 나왔다.
그때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발신자 번호가 장석태 중위였다.
“네, 장 중위님.”
-오 중위, 혹시 얘기 들었습니까?
“인사장교 얘기 말입니까?”
-맞습니다.
“네, 얘기 들었습니다. 지금 분위기 난리가 아닙니다.”
-그렇죠? 그런데 말입니다. 오 중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아니, 대대장님 말입니다. 대대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상진은 장석태 중위까지 저런 식으로 말을 하자 뭔가 의심이 가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제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대대장님이 연루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확실한 겁니까?”
-사실 저도 이리저리 몇 군데 알아봤습니다. 대대장님이 이미선 소위랑 그렇고 그런 관계인 것은 알고 있죠?
“아, 네에.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오상진이 원치 않게 어느 오피스텔을 지나는데 그곳에서 한종태 대대장과 이미선 소위의 팔짱을 낀 채 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막말로 대대장이 짠돌이 아닙니까. 이미선 소위 만나면서 돈 좀 썼을 것 아닙니까. 왠지 저는 그 돈이 이미선 소위에게 흘러 들어갔을 것 같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장석태 중위가 하는 말을 일단 듣기만 했다. 사실 장석태 중위가 이런 식의 의심스러운 상황을 전화로 몇 번 얘기를 했었다. 오상진은 지금도 그러려니 생각을 해서 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장석태 중위가 갑자기 제안을 했다.
-오 중위. 나랑 같이 인사장교 만나보지 않겠습니까?
“네? 인사장교를 말입니까?”
-딱 보니 이 양반도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 아니지 않겠습니까.
“만나주겠습니까?”
-내 생각인데 아마 만나줄 겁니다. 딱 보니 대대장에게 엮인 분위기인데……. 아마 말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일 겁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후에 시간 내보겠습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끊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인사장교가 만나 줄까?’
그런데 그날 저녁 부대에서 좀 떨어진 호프집. 오상진은 장석태 중위와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인사장교가 헐레벌떡 그곳으로 뛰어나왔다.
“아, 여깁니다.”
장석태 중위가 손을 들었다. 오상진은 새로 온 인사장교와 이렇듯 따로 밖에서 만난 적은 없었다. 물론 부대에서 몇 번 인사하는 정도였다.
“어, 오 중위도 나와 계셨습니까?”
“아, 네에. 장 중위님이 같이 얘기 좀 나눠보자고 해서 말이죠. 정 불편하시면 빠지겠습니다.”
오상진이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인사장교가 황급히 말렸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 중위님께서 계시니까, 더 든든합니다.”
“네?”
장석태 중위가 끼어들었다.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오 중위는 우리 장교들 중에서 스타라니까.”
“에이, 무슨 스타입니까.”
인사장교가 바로 말했다.
“아니, 장 중위님 말씀, 진짜입니다. 솔직히 저도 오 중위님 말씀 듣고,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하하, 저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오다 가다 인사만 하다가 이렇듯 술자리는 처음입니다.”
“네.”
오상진이 본 인사장교의 첫인상은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딱 보니, 겁도 많아 보이고, 아무리 봐도 횡령을 할 만한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오상진이 장석태 중위를 쓰윽 바라봤다. 장석태 중위가 ‘내 말이 맞죠?’라고 말하는 듯 씨익 웃더니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