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4)
오상진은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오상희는 황급히 오상진의 다리를 붙잡았다.
“오빠, 오빠. 우리 내년에 데뷔하기로 했단 말이야.”
“내년에? 그런데 내가 듣기론 데뷔해서 일이 년 활동하다가 그때…….”
“아아아, 안 돼! 그거 흑역사로 남는다고!”
오상진이 일단 좀 더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어디 어디 하고 싶은 건데?”
오상희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나? 으음, 눈하고, 코하고, 광대뼈 여기랑 턱도 좀 깎고…….”
오상희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오상진은 듣다 듣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상희야.”
“응, 오빠?”
“그냥 차라리 뒤통수에 얼굴을 하나 더 파지 그러냐.”
“오빠!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하고 그래.”
“그럼 아예 다시 태어나라. 아주 예쁜 부모 만나서.”
“오빠!”
오상희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오상진이 두 손을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상희야, 오빠가 성형을 시켜줄 수는 있어. 그런데 너 성형하고 나서 엔젤스 데뷔는 가능한 거냐?”
“당연하지. 나 엔젤스 센터라니까.”
순간 오상진은 ‘풉’ 하고 웃음을 흘렸다. 오상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뭐야? 그 비웃음은?”
“아, 아니야. 미안.”
오상진이 바로 사과를 하며 정색했다. 그리고 과거 기억의 한편을 끄집어냈다.
원래 동생은 엔젤스하고 거리가 멀었다. 김세나하고 엮이더니 엔젤스의 멤버로 합류를 했다.
솔직히 오상진도 오빠로서 욕심이 났다. 오상진 기억 속 엔젤스는 진짜 예뻤다.
물론 지금 앞에 있는 오상희도 많이 예뻐지긴 했다. 하지만 김세나하고 비교해서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알았어. 시켜줄게. 대신 올겨울 방학 때. 학교 빼 먹을 수는 없으니까.”
“아니, 그러면 너무 늦지 않아? 부기도 빠져야 하고…….”
“하기 싫어?”
“아, 아니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해서 안 된다고 하는 부위가 있으면 그건 수술 안 해.”
“아, 왜!”
“야, 의사 선생님이 왜 안 된다고 하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아무튼 안 돼!”
“아, 진짜! 오빠는 해주려면 화끈하게 해주지. 만날 이런 식이야.”
오상희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왜? 하기 싫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오상희가 투덜거렸다가 바로 부드럽게 말했다.
“알았어. 그건 이번 겨울방학 때 다시 얘기하자.”
“응, 고마워 오빠.”
오상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오상진도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려고 움직이려는데 올라갔던 오상희가 다시 계단을 내려와 말했다.
“오빠.”
“왜?”
“있잖아. 가슴도 조금 키우는 것이…….”
오상희가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오상진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진짜…….”
오상진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소리쳤다. 오상희가 화들짝 놀라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가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어이구, 저거 언제 철이 들려는지…….”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러면서 오상진은 자신의 작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어느덧 짧은 가을이 지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초겨울이 다가왔다. 1소대원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해진 병장도 제대를 코앞에 두고 있었고, 그 외 소대원들도 다들 진급을 해서 더욱 탄탄한 내무실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서 이세강 일병도 어느새 일병을 달았다.
“야, 막내야.”
“일병 이세강.”
일병을 달았음에도 이세강은 내무실에서 여전히 막내였다.
김도진 중사의 손에는 사발면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행정반에 턱 내려놓았다.
“컵라면 부식 남은 것이 있어서 이거 나눠 드십시오.”
“오오, 감사합니다.”
김도진 중사가 환하게 웃으며 행정반을 나갔다. 박스 안에 사발면은 24개 들어 있었다. 12명씩 각 2개 소대에 줄 수 있는 양이었다.
“으음, 어떻게 하죠?”
“어차피 인생은 복불복입니다. 가위바위보 해서 이기는 두 소대가 가져가는 거로 하죠.”
김정태 2소대장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다. 다른 소대장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했다.
“그거 좋습니다. 애들에게 주면 좋아할 겁니다.”
그렇게 라면 쟁탈전인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
“안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으아악!”
“젠장…… 역시 난 가위바위보가 안 돼.”
3소대장과 김정태 2소대장이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결국 라면은 오상진과 4소대장이 가져갔다.
“아, 주먹 내려고 했는데…….”
3소대장이 많이 아쉬워했다. 김정태 2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전 원래 가위바위보가 안 됩니다.”
그러자 오상진이 물었다.
“그런데 왜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어?”
“그래도 이길 줄 알았지. 그건 그렇고 1소대장!”
“안 됩니다.”
오상진은 바로 말을 막았다. 김정태 2소대장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래?”
“당연히 라면 달라고 그러는 거겠지. 그래서 안 돼!”
“아무튼 눈치는……. 1소대장, 그러지 말고 좀 줘. 1소대장은 애들에게 많이 사 주잖아. 우리 애들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오상진이 행정병에게 말했다.
“1소대 가서 애 한 명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세강 일병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충성, 일병 이세강 행정반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오상진은 이미 4소대장과 사발면을 12개 나눈 상태였다.
“어, 세강이 왔냐.”
“네. 소대장님.”
“자, 부식 가져가서 애들이랑 먹어라.”
“어? 이거 사발면이지 않습니까.”
이세강 일병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왜? 좋냐?”
“당연히 좋지 말입니다.”
“알았다. 가서 맛있게 먹어라.”
“네, 소대장님.”
이세강 일병이 부식을 막 챙기려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저, 소대장님.”
“왜?”
“저 후임 언제 들어옵니까?”
어느새 행정반에 들어온 박중근 중사가 답했다.
“야, 너희 왕고 이해진이 아직 말년 휴가 복귀도 안 했다. 뭐, 벌써부터 신병 타령이냐. 왜? 빨리 신병 받고 싶냐?”
“네. 다른 소대는 신병이 다 들어왔는데 저희 소대만 아직 안 들어온 것 같아서 말입니다.”
솔직히 이세강 일병은 억울했다. 일병 2호봉인데 아직 소대 막내였다. 아무리 군번이 꼬였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형인 이대강 상병 때문에 꼬인 거였지만 말이다.
박중근 중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마, 복에 겨운 소리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해진이 제대하는 대로 신병 들어오기로 했으니까. 그리 알아.”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일병은 여전히 시무룩했다. 오상진이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세강이 신병 들어오면 잘 가르칠 자신 있어?”
“네, 자신 있습니다.”
“알았다. 가서 라면이나 맛있게 먹어라.”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일병이 행정반을 나갔다. 박중근 중사가 슬쩍 입을 열었다.
“하긴 세강이도 많이 답답할 겁니다. 일병인데 밑에 후임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보다 해진이도 이제 제대를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간 참 빨리 지나갑니다.”
“네.”
오상진은 이해진 병장에 대해서 조금은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함께했고, 오상진이 새로운 군 생활을 하면서 옆에서 많은 힘이 되어줬던 병사였다.
‘해진이도 휴가 복귀하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 줘야겠다.’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이해진 병장이 복귀를 했다.
“충성, 병장 이해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오오, 왔냐? 휴가 때 뭐 했어?”
“그냥 여자 친구도 만나고 잘 보냈습니다.”
“오오, 여자 친구도 있었어?”
오상진의 물음에 이해진 병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 잘됐네.”
“네.”
이해진 병장이 말을 하면서 실실 웃었다.
“뭐야? 그리 좋냐?”
“네, 내일 여자 친구가 오기로 했습니다.”
이해진 병장의 여자 친구는 최강철 상병의 여자 친구인 최지현의 후배였다.
최강철 상병이 정말 존경하는 선임이라고 최지현에게 자랑을 했다. 그래서 최지현 역시 괜찮은 후배가 있다며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 결과 둘이 잘 되었고, 은근히 잘 어울렸다.
“좋겠다. 제대하고서도 아름다운 사랑 하고.”
“네. 당연합니다.”
이해진 병장은 얘기를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애들이랑 얘기 끝내고 다시 행정반으로 와.”
“아, 저도 맛있는 거 사 주시는 겁니까?”
“그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애들하고 얘기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이해진 병장이 곧장 1소대로 갔다. 오상진은 흐뭇한 미소로 퇴근 준비를 했다.
그날 저녁, 단골 삼겹살집에는 오상진, 이해진 병장, 박중근 중사, 이렇게 셋이 모여서 소주를 나눠 마셨다.
그다음 날 이해진 병장이 전역 신고를 했다. 이해진 병장이 제대를 하는데 최강철 상병이 많이 슬퍼했다.
“이해진 병장님…….”
“인마, 왜 울어. 꼭 내가 네 애인인 줄 알겠다.”
“제가 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인을 소개시켜 줬지 않습니까.”
“그래, 제가 효선이 소개시켜 준 건 고마운데…….”
“그냥 소개시켜 준 거 아닙니다. 이해진 병장님의 이상형에 완벽히 충족시켜 주는, 아니, 120% 충족시켜 주는 동안에다가 가슴 큰…….”
이해진 병장이 황급히 최강철 상병의 입을 막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제발 그만 좀 울어.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흑, 그래도 너무 슬픕니다.”
최강철 상병은 흐르는 눈물이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다.
“아무튼 나 간다. 남은 군 생활 잘하고!”
“꼭 연락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이해진 병장이 밖으로 나갔다. 건물 옆 위병소로 향하는 큰 대로변 양옆으로 1소대원들이 있었다. 오상진, 박중근 중사도 서 있었다.
그들은 위병소로 향하는 이해진 병장에게 큰 박수를 쳐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해진 병장은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유유히 걸어 내려갔다. 오상진이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자, 떠날 사람은 갔고, 우리는 다시 열심히 훈련에 임해야겠지?”
“네. 그렇습니다.”
“자, 들어가자.”
“네.”
1소대원들이 하나둘 복귀할 때까지 최강철 상병은 쉽사리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멀어지는 이해진 병장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옆으로 강태산 일병이 다가왔다.
“최 상병님.”
“왜?”
“진짜 왜 우십니까? 진짜 두 분 뭐 있습니까?”
강태산 일병은 진짜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본 것이었다. 최강철 상병이 눈을 부라렸다.
“야, 인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 내가 존경하는 이해진 병장님이 제대하니까, 그런 거지.”
“그러면 최 상병님 제대할 때 저도 웁니까?”
“너?”
최강철 상병이 한참이나 강태산 일병을 바라봤다.
“아마도 엄청 울지 않을까?”
“에이, 안 그럽니다.”
“그때 가서 보자고.”
사실 최강철 상병이 강태산 일병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만약에 최강철 상병이 없다면 많이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때가 되면 상병이 꺾이고, 자기 밥그릇 정도는 챙길 줄 아는 녀석으로 변모해 있을 것이었다.
“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들어가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