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3)
최강철 상병이 한 잔 더 따라줬다. 그러다가 노현래 상병이 슬쩍 말했다.
“강철아.”
“네.”
“태산이 그 한 잔만 줘라. 아무래도 저 녀석 고삐 풀릴 것 같다.”
“네. 걱정 마십시오. 이번이 두 번째 잔입니다. 더 이상 안 줄 겁니다.”
“그래, 그래.”
강태산 일병은 그런 말이 오고 간 줄도 모르고 막걸리 맛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소대원들은 기분 좋은 상태로 벼 베기 작업을 끝마쳤다.
“어디 보자.”
오상진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어르신 시간이 좀 남는데 다른 일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안 그래도 우리 집 뒤에 있는 고추밭에 고추를 따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고마워. 고마워.”
“아닙니다.”
오상진과 1소대원들은 그 어르신 밭에 있는 고추까지 다 수확을 해 줬다. 그때 시각이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제는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자자, 다 탔냐?”
“네, 그렇습니다.”
“좋아, 부대 복귀하자.”
오상진이 차에 올라타려는데 한태수 상병이 소리쳤다.
“소대장님.”
“왜?”
“저기 어르신께서 오십니다.”
“어르신?”
오상진이 확인해 보니 아까 고추밭 주인 할아버지가 오고 있었다.
“어르신.”
“아니, 내가 줄 것은 없고 갈 때 이거라도 먹으면서 가라고.”
할아버지 손에는 고구마랑 감자가 가득 삶아져 있었다.
“괜찮은데…….”
“아니, 아니야. 내가 미안해서……. 고맙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은 고구마와 감자를 받아서 차량 뒤에 타고 있는 소대원들에게 줬다.
“이거 가면서 먹어라. 부대에 가져가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한태수 상병이 그것을 받아 가져갔다. 오상진은 다시 어르신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어르신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잘 가요.”
어르신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상진은 인사를 하고 차량에 올라탔다.
“자, 가자.”
“네.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1소대원들은 뜻깊은 대민지원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를 했다.
* * *
오상진은 무더운 9월을 보내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의 10월이 찾아왔다.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는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오상진이 아침인사를 했지만 다들 뭔가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답이 없었다.
“응?”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9월달 월급 명세서가 있었다.
“어? 명세서다.”
오상진은 대충 확인을 하고는 그대로 서랍에 넣어버렸다. 그때 앞에 있던 김정태 2소대장이 말했다.
“1소대장 월급 나왔습니다.”
“네, 방금 확인했습니다.”
오상진도 환한 얼굴로 답을 했다. 조금 전 확인했을 때 백칠십에서 이것저것 공제하고 백오십 조금 넘게 들어와 있었다. 중위 1호봉 월급치고는 좀 적었다.
‘어디보자, 내가 마지막 대대장 때 월급이 한 육백 정도 넘었었나? 그때 그 정도 받아도 어떻게 생활하나 싶었는데…….’
오상진은 명세포에 찍혀 있었던 월급을 보고 피식 웃었다.
‘진짜 로또에 당첨되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허리띠를 졸라 맬 뻔 했네. 하긴 그 당시 소대장 때 왜 내가 로또에 환장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네.’
오상진은 고개를 흔들며 업무를 볼 준비를 했다. 그런데 김정태 2소대장이 말했다.
“1소대장.”
“왜?”
오상진은 바로 반말을 했다. 어쨌든 동기 놈이었다.
“네가 봐도 웃기지?”
“뭐가?”
오상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김정태 2소대장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뭐야? 그 표정은?”
“왜?”
“너 월급 명세서 봤을 거 아냐.”
“봤지?”
“뭐가 다른 거 못 느꼈어?”
“왜? 이상해?”
“야, 딱 보면 교통비랑 훈련비, 보조비, 영외급식비까지 다 조금씩 까였잖아.”
“아, 그래?”
오상진의 말에 김정태 2소대장이 자신의 명세표를 들고 나타났다.
“자, 봐봐. 분명 저번 달 내 기억에 이거! 10만 원 좀 넘게 나왔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6만 원이야. 시간 외 수당도 절반 가까이 까였잖아. 그 외 다른 것도 조금씩 까였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별다른 말도 없이? 아니, 쥐꼬리만 한 월급 주면서 이런 것까지 까면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김정태 2소대장이 투덜거렸다. 오상진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아, 그래?”
오상진이 확인을 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오상진은 여태껏 월급이 얼마나 들어오던 신경을 한 썼다. 오상진에게 있어서 월급은 그냥 부가적인 수입에 지나지 않았다.
‘나야 돈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별 신경을 안 썼더니.’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3소대장과 4소대장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그들 손에도 월급 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오상진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3소대장, 4소대장도 월급에 문제 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바로 4소대장이 답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거 진짜 말도 안 됩니다. 무려 저번 월급보다 10만 원 넘게 까였습니다. 이건 진짜……. 아니 시간 외 수당까지 받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소대장도 다소 실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진짜 이번 달은 여친에게 뭐라도 선물하나 해주고 싶은데……. 완전히 허리띠 졸라 매야 합니다.”
오상진도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께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행정반을 나갔다. 곧바로 중대장실로 가서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도 매우 어두워 있었다. 역시나 그의 손에 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중대장님 혹시 월급 명세서 보고 계십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이거 좀 황당하다. 저번 ATT 훈련비가 안 들어왔어.”
“ATT 훈련비 말입니까?”
“그래! 지금 완전히 누락되었는데. 이번 달은 이것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김철환 1중대장은 그 훈련비를 용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훈련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도 훈련비가 안 나왔습니다.”
“그래? 뭐야, 이거! 뭐가 문제인 거지?”
“중대장님도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지. 그냥 지난 번 월례 회의 때 대대장님께서 불필요한 인건비 지출이 많다면서 뭐라고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이런 것이었는 줄은 몰랐지.”
“그럼 한번 알아보시는 것이…….”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씨, 이런 일로 나서서 괜히 총대 메는 것이 좀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잠깐 기다려 봐.”
김철환 1중대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인사장교. 나 1중대장인데.”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월급 말인데…….”
-아, 그거 말입니까?
김철환 1중대장은 인사장교랑 한 참이나 얘기를 나눴다. 통화를 하는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은 굳어진 체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와, 시발…….”
김철환 1중대장이 전화를 끊고는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냈다.
“도대체 뭔 소리야.”
“왜 그러십니까?”
“아니, 전산적으로 착오가 있어서 지급이 안 되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이 물었다.
“그럼 나중에 나온답니까?”
“그렇다네, 일단은 기다려 보라고 했으니까.”
“아니, 잘못된 거라면 지급하면 될 문제 아닙니까.”
“그게 또 위에 보고하고, 승인받고 하려면 시간 좀 걸리고,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 부분이 드러난다고 좀 봐달라고 하네.”
“인사장교가 직접 그리 말했습니까?”
“어. 그 양반 새로 왔다고 하더니 일을 완전히 개판으로 하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인사장교가 좀 봐 달라는데.”
“어쨌든 일은 수습한다고 합니까?”
“그렇다는데 좀 기다려 달래.”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대장실을 나가려고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불렀다.
“상진아.”
“네?”
“그런 의미에서 나 돈 좀 빌려 주라.”
“네?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집니까?”
“야, 나 훈련비가 내 용돈인데, 그게 안 나왔잖아. 월급도 까이고……. 나 뭐 먹고 사냐.”
“하긴 중대장님은 좀 그러시겠습니다.”
오상진도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더도 말고 딱 삼십, 아니, 이십만 원만 빌려줘. 훈련비 나오면 갚을게.”
김철환 1중대장의 부탁에 오상진은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맙다.”
“네, 이따가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오상진이 인사를 한 후 중대장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은 다시 월급 명세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주일이 흐른 후 오상진은 오랜만에 집에 갔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오상희가 오상진을 맞이했다.
“오라버니 오셨습니까.”
“응?”
오상진이 당황했다.
“뭐? 오라버니? 갑자기 왜 이래?”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상희는 매우 공손하게 오상진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 앞에 살포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야, 상희야. 뭐야? 왜 그러는데?”
“오라버니, 소녀 간곡한 청이 있사옵니다.”
“왜 그래 너? 아니, 혹시 너 사고 쳤냐?”
“그것이 아니오라…….”
“뭐야, 뭐? 뭔데? 잘렸냐?”
“아니, 그것이 아닙니다. 오라버니 제발 제 말 좀…….”
“아, 진짜 불안하게 왜 그래? 너 나이가 있어서 안 된대? 아니면 기획사 차리라고 하는 거야?”
오상진이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그럴수록 오상희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며 버럭 소리쳤다.
“아이씨!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뭔데?”
오상희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다시 조신하게 말했다.
“소녀, 아무래도 성형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데뷔도 해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곤란합니다.”
오상진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내 옆에 붙어서 조잘거렸던 기억이 있었다.
-오빠, 코만 하면 예쁠까?
-나 쌍꺼풀 없는데 하면 더 예뻐지겠지?
-아래턱이 완전히 주걱턱 같지 않아? 좀 깎아야 할 것 같아.
-광대뼈가 두드러지네. 이거 살짝만 깎으면 엄청 예뻐질 거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성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그럴 때마다 오상진은 듣지도 않았다. 오상진은 이번에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말했지, 안 된다고.”
“오빠아아아! 제발 좀!”
“야, 너 이제 고1이야. 아직 한창 자랄 나이에 무슨 성형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