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3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2)
-그래도 거기서 더 타면 보기 싫단 말이에요. 그리고 사진 찍을 때 저랑 너무 비교되잖아요. 저는 하얗고, 상진 씨는 새카맣고.
“와, 전에는 구릿빛 피부가 좋다면서 막 그래놓고.”
-구릿빛이 좋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구릿빛이 아니잖아요.
“어? 그런가?”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팔뚝을 바라봤다. 올여름에 들어서 밖에서 훈련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지난번 유격 때 살을 좀 많이 태웠다.
“알았어요. 선크림 바른다고 얼마나 도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르고 나갈게요.”
-꼭이에요, 꼭!
“네, 알겠습니다.”
다음 날 오상진과 1소대원들은 육공트럭을 타고, 대민지원하는 곳으로 갔다.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김포의 어느 시골이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마을 이장님께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상진은 이장님과 인사를 하고 곧바로 일을 할 곳을 찾아갔다.
“자, 이곳입니다. 오늘 벼를 벨 곳입니다. 2마지기밖에 안 됩니다.”
“아, 네에.”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빨리 수확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서둘러 일하자.”
각자 장갑을 착용하고, 낫을 들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아이고, 우리 애기들 왔네. 잘 좀 부탁혀.”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한 후 벼를 베기 시작했다.
벼를 한 포기씩 잡아서 낫으로 벴다. 낫질에 익숙한 사람들은 두 포기씩 잡고 베어갔다. 그러자 서서히 벼가 한 단 한 단씩 쌓여갔다. 오상진도 한 팔 걷어붙이고 벼를 베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으음, 지금쯤 올 때가 되었을 텐데…….”
오상진이 허리를 펴고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박중근 중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점심을 받아오라고 차량을 보냈는데 지금쯤 올 때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전화해 보겠습니다.”
“네. 김 중사님께 한번 연락해 보십시오.”
“네.”
박중근 중사가 전화를 하기 위해 논을 잠시 벗어났다. 그사이 오상진은 다시 허리를 굽혀 벼를 벴다. 그러기를 잠깐 박중근 중사가 난감한 얼굴로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저기 소대장님.”
“네.”
“방금 김 중사와 통화를 했는데 말입니다. 조금 일이 곤란해졌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점심 지원이 안 된다고 합니까?”
“그, 그것이 아니라 약간의 착오가 있었다고 합니다.”
“착오 말입니까?”
“네. 그게 점심으로 전투식량을 보냈다고 합니다.”
“네? 전투식량 말입니까?”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대민지원을 나왔는데 애들 점심을 전투식량으로 어떻게 줍니까?”
“…….”
박중근 중사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오상진은 일단 논에서 나왔다.
“전투식량은 안 됩니다. 일단 중국집 전화번호 좀 알아봐 주십시오.”
“중국집 말입니까?”
“애들 자장면이랑 탕수육이라도 시켜 줘야죠. 아무리 그래도 전투식량을 어떻게 줍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그보다 왜? 무슨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까?”
“김도진 중사가 취사장에 얘기를 했는데 취사반장이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들 식사를 준비 못 했다고 합니다.”
“하아……. 거참! 일단 알겠습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니까. 어서 빨리 중국집 전화번호 좀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중근 중사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저 멀리서 전투식량을 싣고 온 육공트럭이 보였다. 오상진이 그곳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이해진 병장에게 말했다.
“해진아.”
“병장 이해진.”
오상진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10분 후에 애들 데리고 나와. 점심 먹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나가서 확인을 해보니, 진짜 전투식량을 가지고 왔다.
“하아…… 미치겠네.”
오상진은 전투식량을 보며 난감해했다. 진짜 대민지원까지 와서 전투식량을 먹이기에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박중근 중사가 서둘러 중국집 전화번호를 가지고 왔다.
“소대장님 여기.”
“이곳까지 배달되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안되면 저희가 직접 가지러 가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오상진과 박중근 중사가 대화를 하는 사이 이해진 병장이 1소대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자자, 고생들 많았다. 모두 그늘로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오상진의 말에 1소대원들이 그늘로 가서 앉았다.
“와, 덥다! 진짜 더워.”
구진모 병장이 전투모를 벗으며 말했다. 다른 소대원들도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배고픕니다.”
강태산 일병이 말했다.
“나도 배가 고프다. 식사 추진한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 아니지, 육공트럭 왔으니까. 점심 왔겠네.”
그러다가 조영일 상병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그런데 대민지원 나오면 주민분들께서 막 밥 해주고 그러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 들었는데 말입니다.”
“해주는 곳도 있고, 우리가 직접 밥을 추진해서 먹는 경우도 있어.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짬밥을 먹어야 할 분위기인가 보다.”
“에이, 그래도 우리 소대장님이 바로 오상진 중위님입니다. 절대 그냥은 안 주시겠지 말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소대원들은 괜히 오상진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오상진이 이해진 병장을 불렀다.
“해진아.”
“병장 이해진.”
“애들 데리고 트럭에 있는 점심 내려라.”
“네. 알겠습니다.”
한태수 상병을 비롯해 손주영 상병, 노현래 상병, 이은호 일병이 움직였다. 그리고 육공트럭 뒤에 올라갔는데, 그곳에 있는 전투식량을 보고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어라? 이게 뭡니까?”
조영일 상병이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태수 상병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식량인데.”
“와, 대박! 진짜입니까? 우리 대민지원 나와서 전투식량을 먹는 겁니까? 진짜,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조영일 상병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한태수 상병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가지고 내리자.”
“알겠습니다.”
잔뜩 실망한 얼굴로 전투식량을 내렸다. 그것을 들고 1소대원들 중앙에 내려놨다. 구진모 상병의 눈이 커졌다.
“야, 이게 뭐냐?”
“점심 식사이지 말입니다.”
“내 눈이 이상하지 않은 이상. 전투식량으로 적혀 있는데 맞지?”
“네, 맞습니다.”
“이게 말이 되냐? 전투식량이라니?”
구진모 상병의 얼굴에 살짝 노기가 어렸다. 그때 오상진이 타이밍 좋게 나타났다.
“얘들아, 미안하다. 아무래도 취사장에서 혼선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우리 점심을 만들지 않은 모양이다.”
“네? 에이,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전투식량 먹고 어떻게 일하라고 말입니까?”
“미안하다. 소대장의 실수다. 그래서, 소대장이 중국집에서 식사를 주문할 생각이다. 각자 생각나는 메뉴를 말해보도록!”
“오오오, 중국집!”
오상진의 말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1소대원들의 표정이 확 풀렸다.
“전 자장면 곱빼기!”
“전 볶음밥 곱빼기, 당연히 탕수육도 시켜주시지 말입니다?”
“당연하다!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메뉴 상관하지 말고 마음껏 시켜라.”
“와! 역시 우리 소대장님! 짱입니다.”
1소대원들은 언제 실망을 했냐는 듯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어떤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을 주민들이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고무 대야를 이고 오고 있었다. 박중근 중사가 그것을 발견하고 오상진을 불렀다.
“소대장님.”
“네?”
“이장님께서 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장님께서 말입니까?”
오상진이 몸을 돌리자 어느새 이장이 와 있었다. 그 뒤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말했다.
“이봐요, 이것 좀 받아줘요.”
“아, 네에.”
최강철 상병이 바로 일어나 머리에 이고 있던 대야를 내렸다. 그런데 냄새가 너무 좋았다. 딱 봐도 식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최강철 상병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놀랐다. 바로 먹음직스러운 보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보, 보쌈이다.”
최강철 상병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으응? 보쌈? 진짜 보쌈이야?”
오상진도 그 목소리를 듣고 이장을 봤다. 이장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야죠. 그리고 막걸리도 준비를 했으니까. 한 잔씩들 하고.”
“이장님…….”
오상진이 나직이 불렀다. 애들에게 전투식량을 먹여야 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듯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장님.”
“에이. 감사는 무슨. 우리 농민들을 위해 고생하는 장병들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자자, 잡설이 많습니다. 어서 식사들 하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이해진 병장을 봤다. 이해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자자, 자리 펴자!”
“넵!”
1소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각자 앞에 잘 익은 보쌈 한 접시가 푸짐하게 놓였다. 게다가 갓 지은 쌀밥도 완전 고봉밥으로 담겨 왔다.
“자자,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해요. 밥은 많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1소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많이들 먹어요.”
1소대원들은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와, 이게 보쌈이구나. 진짜 맛있습니다.”
“꿀맛입니다.”
“역시 일하고 밖에서 먹는 밥은 진리입니다. 진리!”
오상진도 뿌듯한 얼굴로 1소대원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옆에 이장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역시 다들 잘 먹습니다.”
“네. 한창 먹을 때라 많이들 먹습니다.”
“아이고, 제 눈에는 예쁘기만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심을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헤이, 소대장 양반.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이것이 우리 시골의 인심 아니오.”
“네.”
“자자, 우선 막걸리 한 잔 받으시오.”
“아, 저는…….”
“에헤이. 또 이런다. 내 손 민망하게 할 겁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한 잔만 받겠습니다.”
“그러시구려.”
오상진이 빈 잔에 막걸리를 받았다. 이장과 술잔을 부딪치며 막걸리를 목으로 넘겼다.
“크으……. 좋습니다.”
“하하핫. 술 좀 먹을 줄 아는가 봅니다.”
“네, 조금?”
“좋습니다. 한 잔 더 받으십시오.”
“아, 네에.”
그리고 오상진은 안주로 김치에 보쌈을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 맛이 진짜 일품이었다.
“와, 정말 맛있습니다.”
오상진은 진심이었다. 흰 쌀밥에 다시 고기 한 점을 올려 김치를 싸서 먹었다. 그냥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사이 장병들도 막걸리 한 잔씩 받아서 마시고 있었다. 박중근 중사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 딱 두 잔까지만 먹어라.”
“네, 알겠습니다.”
“취하는 놈 있으면 가만 안 둔다.”
“넵!”
1소대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의 달달한 맛과 톡 쏘는 느낌까지, 그 청량함이 입에 들어가자 피로가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와, 대박! 막걸리가 이렇게 맛있었습니까?”
강태산 일병의 눈이 커지며 막걸리를 바라봤다.
“왜? 처음 먹어보냐?”
“넵!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습니다. 와인만 먹어봐서 말입니다.”
“그래, 그래. 이참에 막걸리의 진수를 한번 느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