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2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1)
어느새 다가온 강태산 일병이 물었다. 이세강 일병이 환하게 웃었다.
“네, 너무 좋습니다. 저 이제 작대기 하나가 아니라, 두 개입니다.”
병사들은 이등병에서 일병 진급할 때랑 상병에서 병장 진급할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하긴 나도 좋았으니까. 암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강태산 일병이 이번에는 최강철 상병을 바라봤다. 최강철도 어느새 상병을 달고 있었다.
“최 상병님.”
최강철 상병이 고개를 돌렸다.
“왜?”
“이야 좀 어색합니다.”
“뭐가 어색해.”
“최 일병님, 이렇게 부르다가 최 상병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합니다.”
“그래? 나도 그렇긴 한데.”
“최 상병님도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익숙해져야겠지?”
“네.”
그때 오상진이 들어왔다.
“충성.”
이해진 병장이 경례를 했다. 오상진이 경례를 받은 후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 소대가 대민지원을 나가기로 했다.”
“대민지원 말입니까? 아싸, 이번에는 어디로 갑니까?”
“이제 서서히 추수의 계절이 아니냐. 김포 쪽으로 벼 베러 간다.”
“앗, 그렇습니까?”
“그러니 미리들 준비하자.”
“복장은 어떻게 됩니까?”
“복장은 상의만 활동복에 전투복 차림으로 간다. 내일 육공트럭이 올라온다고 하니까. 미리들 나와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 요즘 시대에 농기계들이 많이 발전되어 있는데 아직도 사람 손으로 합니까?”
“물론 그렇긴 한데 농기계를 보유하지 않은 곳이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너희도 알다시피 젊은 사람들이 없다. 가서 농사도 도와드리고, 농작물 수확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오자.”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강태산 일병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최강철 상병 옆으로 가서 조용히 물었다.
“최 상병님?”
최강철 상병이 못 들은 척을 했다. 강태산 이병이 다시 한번 불렀다.
“최 상병님.”
그제야 최강철 상병이 고개를 돌려 강태산 일병을 봤다.
“어? 나 부른 거냐?”
“그럼 여기 최 상병님 말고 누가 있습니까.”
“아아, 맞다. 나 상병이지.”
“제가 조금 전에 최 상병님, 하지 않았습니까. 그새 잊어버렸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하도 최 일병, 최 일병님, 이렇게 불렸다가 작대기 하나 더 붙었다고 하니까.”
“아까도 그랬습니다.”
“그러냐? 어험. 뭐 어찌 되었든 익숙해지려고 노력해 볼게. 그러니 다시 한번 불러봐.”
“네?”
“아니, 다시 불러 보라고.”
“최 상병님. 됐습니까?”
“느낌이 안 사는데……. 다시 불러봐.”
“최 상병님.”
“이제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네. 후후후. 그보다 날 왜 불렀어?”
“대민지원 꼭 참여해야 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인마, 당연하지. 예외는 없어. 그런데 넌 가끔 보면 군대에 있으면서 아닌 척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
“제가 군 생활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말입니다.”
“하긴 최근에 좀 달라지긴 했지.”
“거 보십시오. 아무튼 저는 대민지원 안 가면 안 됩니까?”
강태산 일병의 물음에 듣고 있던 구진모 상병이 버럭 했다.
“야, 강태산.”
“일병 강태산.”
“너, 지금 뭘 말이냐? 대민지원을 안 가?”
“……네.”
“미친 녀석, 네가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야. 소대장님이 가신다고 하면 우리는 그냥 무조건 가야 하는 거야.”
“왜 그래야 합니까?”
“여긴 군대니까. 가끔 보면 강태산이 너, 은근히 사람 속을 살살 건드리더라.”
“제가 말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다만 저, 아시지 않습니까. 낫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거 말입니다.”
“아이고, 웃기고 자빠졌네. 빠지고 싶어서 별 시답잖은 것을 다 꺼내고 있어.”
구진모 상병의 핀잔에 강태산 일병이 시무룩해졌다.
“그게 아닌데…….”
“아닌데는 반말이고 새끼야. 그보다 강태산!”
“일병 강태산.”
“너 일병 달았다고 자꾸 뺀질거릴래? 그리고 일병이 왜 일병인 줄 몰라?”
“일등병사여서 일병 아닙니까?”
“아냐, 인마. 일병은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해서 일병인 거야.”
“그, 그런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잔말 말고 열심히 일해.”
강태산 일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진 병장이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구진모 병장이 자리에 앉았다. 이해진 병장은 강태산 일병을 보다가 입을 뗐다.
“대민지원을 하려면 밖을 나가야 하잖아. 바깥바람도 쐬고 하면 좋지 않냐. 그리고 새참이라는 것도 먹을 수 있다.”
“오오, 새참 말입니까?”
후임병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강태산 일병은 새참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강철 상병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 상병님, 새참이 무슨 뜻입니까?”
“새참은 점심 먹기 전에 먹는 간식 같은 거야.”
“아…….”
강태산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뭐가 나옵니까?”
“글쎄다. 국수가 나올 때도 있고, 감자나 아니면 고구마 아닐까?”
“네? 고작 그것만 나옵니까?”
“야, 인마. 그것이 나오는 것도 감지덕지하지. 넌 아직도 그러냐?”
최강철 상병의 핀잔에 강태산 일병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이해진 병장이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 알다시피 대민지원은 말 그대로 힘든 농민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일을 하러 가는 거다. 그런데 자칫 잘못했다가 농민분들께서 민원이라도 넣어봐. 무슨 망신이겠냐.”
“와, 민원도 넣습니까?”
“당연하지! 우리가 일하러 가는 거지. 놀러 가는 거냐?”
“와, 진짜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강태산 일병의 투덜거림에 이해진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어째 가면 갈수록 뺀질거리는 건지 모르겠다.”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향하는데 2층 계단에서 장석태 중위가 나타났다. 오상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후다닥 내려와 불렀다.
“오 중위.”
오상진이 고개를 돌렸다. 장석태 중위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아, 네에. 장 중위님.”
“날도 더운데 이번 주에 놀러 가는 거 어때?”
“또 함께 놀러 가자는 겁니까?”
“에이, 왜 그래. 함께 놀면 좋지.”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딜 가자는 겁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장석태 중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워터 파크!”
“네? 워터 파크 말입니까?”
“그래! 크크크, 이번 기회를 놓치기가 그렇잖아.”
“무슨 기회 말입니까? 그리고 9월입니다.”
“알아, 9월! 그런데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리잖아. 무엇보다 말이야. 으흐흐흐, 우리 은지 씨의 비키니…….”
장석태 중위가 말을 하면서 므흣한 얼굴이 되었다. 오상진은 곧바로 피식 웃었다.
“아아, 그러니까. 워터파크 가자는 것이 무슨 흑심이 있어서 가자는 것이구나.”
“어허, 오 중위! 흑심이라니, 순수한 호기심이지.”
“네, 좋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넷이 가자는 것입니까?”
“당연하죠. 우리 넷!”
“은지 씨도 오케이했습니까?”
“오 중위네 커플이 간다고 하면 좋다고 했습니다.”
장석태 중위가 바로 답했다. 오상진은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정말입니까?”
“와, 진짜……. 좀 봐주십시오. 우리 사귄 지도 꽤 되었는데 진도도 못 빼고 있습니다.”
“그걸 왜 저에게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옆에서 좀 도와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지난번에도 그리 말씀을 하셔서 도와드렸지 않습니까.”
“내 말이! 이왕 도와주는거 좀 더 확실하게 도와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장석태 중위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상진은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왜 워터 파크입니까.”
“에이, 아시면서…….”
“제가 뭘 압니까?”
오상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장석태 중위가 잠시 주위를 확인하며 말했다.
“워터 파크 가면 그 뭐냐. 수영을 한다는 식으로 서로 몸에 바짝 붙고, 그러다 보면 좀 더 친밀감도 느낄 수 있고…….”
장석태 중위가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며 말을 했다. 그런데 오상진은 그런 부탁을 들어주기가 좀 그랬다.
“일단 소희 씨랑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오 중위. 이번에는 내가 전부 부담할 테니까. 몸만 오십시오. 그러니 꼭 좀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진짜로 저 좀 도와주십시오.”
“네네.”
오상진이 장석태 중위를 뒤로하고 행정반으로 향하던 걸음을 휴게실로 바꿨다. 휴대폰을 꺼내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상진 씨.
한소희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바로 받네요. 뭐 하고 계셨어요?”
-강의실에 있어요.
“어? 그럼 전화 끊을 게요.”
-아뇨, 강의 시간 아직 멀었어요. 괜찮아요.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아, 다름이 아니라. 장 중위가…….”
오상진은 조금 전 장석태 중위랑 나눴던 얘기를 했다. 한소희가 가만히 듣더니 입을 열었다.
-칫! 은지 씨 비키니 입은 모습 보고 싶어서 저런 거구나.
“어? 어떻게 알았어요?”
-척하면 척이죠. 남자들 하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아, 뭐 그렇죠. 그보다 같이 가요?”
-저는 상관없는데 상진 씨 괜찮겠어요?
“뭐가요?”
-은지 씨 비키니 입고 오면, 저도 질 수 없잖아요. 좀 더 야하고, 몸매가 확 드러나는 걸로 입을 텐데…….
“어…….”
오상진은 차마 그러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한소희가 예전에 입었던 비키니를 떠올려봤다.
‘가만…… 그때 입었던 비키니보다 더 야하게 입는다고?’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홱홱 저었다.
‘아니지,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면 안 되는 거지. 특히 장 중위에게는.’
오상진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제가 잠시 실언을 했습니다. 가면 안 되겠습니다.”
-왜요? 저 상진 씨에게 비키니 입은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요.
“어이구, 그 모습은 평생 나만 봐야죠. 다른 남자들 눈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네요.”
-상진 씨, 이럴 때면 은근히 보수적인 거 알아요?
“그래서 싫습니까?”
솔직히 한소희는 자신을 구속하거나 간섭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려고 야한 옷도 입고 다니고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이 많이 없어졌다. 물론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때는 또 달랐지만.
무엇보다 오상진에게만은 저런 간섭이 싫지가 않았다.
-싫긴요. 그래서 요새 저 학교 다니면서 조신하게 입고 다니잖아요.
“오, 그렇습니까? 혹시 나에게만 보여주려고?”
-당연하죠.
“역시 내 여친! 저 완전 보고 싶습니다.”
-어멋! 그럼 빨리 이쪽으로 와요.
“크으, 가고 싶다.”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물었다.
-상진 씨는 뭐해요?
“뭐 하긴요. 아리따운 여성이랑 통화 중이죠.”
-에이, 그런 거 말고요.
“후후후, 농담입니다. 내일 대민지원 나갑니다.”
-대만지원요? 어디로요?
“아마, 김포 쪽 같은데 벼 베러 갈 것 같습니다.”
-그래요? 요즘은 다 기계로 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못하는 곳도 아직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일 나가면 밖에 있어야 하는데 살타겠다. 제가 준 선크림 꼭 바르고 나가요.
“아, 저는 얼굴이 좀 타서 선크림 발라도 티가 안 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