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61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30)
손주영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래, 백숙도 나온다.”
“아싸!”
“왜? 백숙 좋아하냐?”
“엄청 좋아하지 말입니다.”
“그래, 그때 되면 백숙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거다.”
손주영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행군은 시작되었고, 오후 2시에 시작된 행군은 그다음 날 아침 7시쯤 위병소를 통과했다. 이렇듯 오상진의 1소대와 2소대는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유격훈련을 끝낼 수 있었다.
유격이 끝나고 주말에 소대원들은 개인 정비를 했다. 부대도 청소하고, 밀린 빨래와 유격으로 인한 피로와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1중대 2소대에 새로운 신임 소대장이 오는 날이었다. 이미 한종태 대대장과 김철환 1중대장에게 신고식을 하고 행정반에 와 있는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부임한 2소대장 김정태 중위입니다.”
3소대장이 환한 얼굴로 악수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4소대장도 다가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에이, 좀 더 일찍 오시지 그랬습니다. 그럼 함께 유격을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을 텐데 말입니다.”
“아,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김정태 2소대장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물론 4소대장은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 어쨌든 인사를 나누고 오상진과 마주 봤다. 김정태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다. 오상진 중위!”
“오오, 김정태! 오랜만이다.”
오상진도 반갑게 김정태 2소대장을 맞이했다. 사실 김정태 2소대장은 오상진과 육사 동기였다. 게다가 같은 반이었다. 물론 육사를 졸업하고 흩어졌지만 말이다.
“그래, 반갑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 아는 사이입니까?”
오상진이 답을 해줬다.
“네, 제 육사 동기입니다.”
“아…… 육사 동기…….”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사이 오상진은 김정태 2소대장과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야, 날 기억하고 있구나. 난 또 기억 못 하는 줄 알았지.”
“무슨 소리야.”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오상진은 육군사관학교에서 거의 혼자 있었다.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때는 혼자가 편했고, 공부밖에 몰랐었다.
“아무튼 날 기억해 줘서 고맙네.”
“그러지 마라. 내가 민망하다.”
오상진은 살짝 민망했다. 그러다가 3소대장이 물었다.
“오오, 육사 동기셨다면 우리 1소대장님 어땠습니까?”
“으음…….”
김정태 중위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오상진은 괜히 긴장이 되었다.
“지금도 잘하지 않습니까?”
“네. 잘하…… 죠.”
“그때도 잘했습니다. 물론 약간은 재수 없었던 적이 있지만 뛰어난 것은 어쩔 수 없죠.”
“아…….”
3소대장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도 살짝 민망했다. 4소대장이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냥 그게 다입니까?”
“네.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아, 저는 뭔가 다른 것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의 표정이 더 밝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김정태 2소대장의 말에 오상진은 다시 멋쩍게 웃었다. 오상진은 말을 바꾸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그 얘기는 차차 하고, 아무튼 잘 왔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김정태 2소대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래, 잘 부탁한다. 1소대장.”
그렇게 2소대의 빈자리가 채워졌다.
* * *
국방부의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더운 여름이 지나 어느덧 단풍이 지는 가을 초입에 들어섰다. 이병이던 병사는 일병이 되고, 일병이던 병사는 상병을 달았다. 그리고 1소대원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이야, 이제 우리 소대에 남은 이등병은 세강이뿐이네.”
“이병 이세강.”
“하아, 우리 세강이. 불쌍한 우리 세강이. 꼬여도, 어찌 저리 꼬였을까?”
구진모 병장이 한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덧 이해진 병장도 말년이 되었다.
“야, 진모야. 그만 놀려라.”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저 녀석도 다음 달이면 일병을 다는데 아직 신병이 들어올 기미도 안 보이고 말이죠. 아직까지 막내지 않습니까. 완전 꼬였어. 꼬였어.”
“후후후, 어쩌겠냐. 내가 나가야지 신병이 들어올 텐데. 어쨌든 저것도 자기 복이지 뭐.”
“그러게 말입니다.”
이해진 병장과 구진모 병장이 대화를 했다. 이세강 이병은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워낙에 목소리가 커서 귀에 다 들렸다. 그러자 이대강 일병이 오히려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안하다.”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이대강 일병은 자신 때문에 동생인 이세강 이병의 군번이 꼬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실이 맞지만 이세강 이병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중대 행정반에 김정태 2소대장이 손 부채를 하며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지도 들려 있었다.
“으으, 덥다, 더워. 이제는 더위가 한풀 꺾어야 하는데 아직도 기승을 부리니…….”
“다들 요새 날씨가 미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3소대장이 말했다.
“맞습니다.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그런데 그 검은 봉지는 뭡니까? 뭔가 시원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이 느낌이 듭니다.”
“하하하, 4소대장. 예리합니다.”
김정태 2소대장이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꺼내 던졌다.
“자, 다들 쭈쭈바 하나씩 먹고들 합시다.”
“오오오, 2소대장님의 센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3소대장도 쭈쭈바 하나를 받고, 입으로 가져갔다. 김정태 2소대장이 마지막으로 오상진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쭈쭈바 먹고 해.”
“고맙다.”
김정태 2소대장은 자신의 자리로 가지 않고, 오상진 옆자리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야, 뭐야?”
“뭐가?”
“네 자리로 가. 더워죽겠는데 왜 여기로 와.”
“에이씨, 저기까지 가기 귀찮아서 그런다. 그냥 동기끼리 옆에서 먹으면 어때서.”
“훗, 그러던가.”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쭈쭈바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오…….”
시원한 맛에 오상진이 눈을 번쩍 떴다. 김정태 2소대장이 물었다.
“그거 맛있냐?”
“맛있네.”
“그래? 한 입만 줘봐.”
“야! 나 입 댔어.”
“그게 뭔 상관이야.”
“싫어, 남자끼리 뭔 짓이야.”
“야, 정말 까다롭게 군다. 너 이거가지고 여자 친구가 뭐라고 안 그래?”
“우리 여자 친구? 왜?”
“원래 여자들은 다 까탈스럽지 않아?”
“내 여자 친구?”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인마, 내 여자 친구에게는 안 그래. 그럴 필요가 없지 않아?”
“으구, 좋겠다. 그건 그렇고 내 전임 소대장이 이미선 소위라고 그랬지?”
“어, 맞아. 무슨 일 있어?”
오상진의 물음에 김정태 2소대장이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야, 이 소위 장난 아니더라. 지난번에 우리 야외 훈련 나간 적 있지?”
“그랬지.”
“그때 이 소위가 장 하사가 잠깐 실수를 했는데, 그걸 가지고 엄청 성질을 내는 거야. 아후, 살벌하더라.”
“그래? 의외네.”
“의외야?”
“응.”
“그것 보다는 장 하사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완전 개 쪽을 줬다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간부인데 병사들 앞에서 그러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
“정말 그랬어?”
“내가 두 눈으로 봤다니까.”
오상진은 쭈쭈바를 먹다가 입을 멈췄다. 그러면서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소위, 그럴 사람이 아닌데.”
“에이, 처음부터 그랬겠어? 아무튼 장 하사 얼굴이 장난 아니더라.”
오상진도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했네.’
오상진도 이미선 소위의 행동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태 2소대장의 말은 계속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이미선 소위가 우리 부대 최고 미녀 맞아?”
“그건 또 왜? 누가 그러디?”
김정태 2소대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4소대장……. 외모로는 이미선 소위가 최고라고 말이야.”
“아…….”
“솔직히 나도 예쁘다고 하니까, 호기심이 생기잖아. 그래서 슬쩍 얼굴 보러 갔지. 그런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던데.”
“야이씨, 군대에서 무슨 예쁜 여자를 찾고 그래.”
오상진의 핀잔에 김정태 2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상진아. 우리 군대도 개혁이 필요해. 언제까지 구닥다리 식의 사고방식을 고집해야 해. 그 뭐냐, 예쁜 여군도 오고, 남성들만 가득한 이 공간의 환경미화원 역할도 해줘야지.”
“야, 군인이 성 차별적인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
“무슨 또 그런 쪽으로 몰고 가냐. 그냥 나의 군 생활 중에 활력소를 찾을 뿐이야.”
“어이구…….”
오상진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김정태 2소대장이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그나저나, 이제 대민지원을 나가는 달인가?”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대민지원이 있을까?”
“이제 추수철이잖아. 나 여기 오기 전 부대에서 모내기 대민지원을 엄청 나갔거든.”
“모내기?”
“그래. 이제 시골에 농사짓는 사람들은 노인들뿐이야. 그나마 농기계가 있어서 일손을 많이 덜어냈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거든.”
오상진이 눈을 크게 하며 물었다.
“그래서 너 대민지원을 엄청 나갔나 보네.”
“엄청 많이 갔지. 무슨 대민지원 공문이 오면 만날 우리 부대만 걸려서는……. 어후, 뭐 대민지원만 하다가 1년이 다 지나간 것 같다. 올해는 제발 훈련 좀 했으면 좋겠네.”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행정반 문이 열리려 김철환 1중대장이 들어왔다. 오상진이 곧바로 자세를 잡으며 경례를 했다.
“충성.”
“어? 쭈쭈바 먹고 있었어?”
“중대장님도 하나 드시죠.”
김정태 2소대장이 바로 쭈쭈바를 건넸다.
“됐어, 너희들 먹어.”
“아, 네에…….”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철환 1중대장이 공문 한 장을 건넸다.
“아, 올해도 대민지원 요청이 왔네.”
“올해도 말입니까?”
“그러네, 아무튼 누가 가야 할 것 같은데.”
김철환 1중대장은 말을 하고는 슬쩍 김정태 2소대장을 봤다. 김철환 1중대장의 눈빛은 ‘2소대장으로 새롭게 왔으니 이번에는 자네가 나가는 것이 어떨까?’라는 뜻을 담은 눈빛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김정태 2소대장은 당황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김정태 2소대장은 대민지원으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오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중대장님. 1소대가 딱히 훈련도 없고 하니까, 저희가 다녀오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시선이 갔다.
“그래? 1소대가 갔다 올래?”
“네.”
“그래. 1소대가 다녀와라.”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공문을 건넸다. 그리고 오상진이 뒤에 선 김정태 2소대장을 바라봤다. 김정태 2소대장이 환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오상진은 대민지원을 나간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1소대를 찾았다. 1소대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계급들도 하나둘 진급을 해서 이제는 1소대에서 이등병은 찾을 수가 없었다.
“헤헤헤.”
이세강 일병이 작대기 두 개를 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