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58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27)
장석태 중위가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몸을 돌려 부대로 걸어갔다. 김희진 소위는 약간 억울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행정반에서 자신의 책상을 마구 뒤졌다. 서랍이든 캐비닛이든 한참을 뭔가 찾고 있었다.
“뭐 찾으십니까?”
3소대장의 물음에 이미선 2소대장이 움찔했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반을 나갔다. 그녀는 곧장 여자 부사관들을 찾아다녔다.
“김 하사…….”
“네?”
“혹시 말이야.”
이미선 2소대장이 김 하사의 귀에 대고 뭔가를 말했다. 김 하사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어떡합니까? 저도 다 쓰고 없는데…….”
“아, 그렇습니까? 혹시 이 하사에게도 없습니까?”
“이 하사도 없을 것입니다. 저번 주에 저에게 다 썼다고 빌려 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김 하사가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이 하사도 없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알겠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건물을 나와 PX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몇 번 밟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아, 안 돼…….”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황급히 가로저었다. 그럴수록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은 더욱 난감해졌다.
‘아, 이거 진짜 어떻게 하지? 큰일이네…….’
그때 이미선 2소대장의 머릿속에 중대 행보관 김도진 중사가 떠올랐다.
‘맞다. 행보관에게 물어보자.’
이미선 2소대장은 곧장 김도진 중사가 있는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희진 소위도 이미선 2소대장을 찾기 위해 부대를 돌아다녔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선이 이 기집애…….”
김희진 소위는 점심때 자신에게 망신을 줬던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만나서 따지려고 했다.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가. 어떻게 날 망신을 줘.”
김희진 소위가 눈을 부라렸다. 그때 김희진 소위의 눈가로 이미선 2소대장이 들어왔다.
“어? 찾았다.”
김희진 소위가 막 김희진 소위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가만 저쪽은 창고 쪽인데……. 왜 저리로 가지?”
김희진 소위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그쪽으로 움직였다.
“어디든 들어가기만 해봐. 내가 머리채를 죄다 뜯어버릴 테니까.”
김희진 소위가 이를 악물고 뒤쫓아 갔다.
이미선 2소대장은 중대 행보관인 김도진 중사를 발견했다.
“저, 행보관님.”
“어? 2소대장님 여긴 어쩐 일입니까?”
“저…….”
이미선 2소대장은 손가락까지 꼼지락 거리며 머뭇거렸다. 김도진 중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씀하십시오.”
“저, 그러니까. 잠시만 귀 좀…….”
이미선 2소대장은 조용히 귓말로 말했다. 김도진 중사가 얘기를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게 무슨 특별한 거라고 말입니다.”
“그, 그래도 좀 그렇습니다.”
“네네, 이해합니다. 어디보자, 재고가…….”
김도진 중사가 잠깐 확인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2창고에 있습니다. 사이즈도 대, 중, 소 다 있고 말입니다.”
“아, 있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그래도 사제를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저도 압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터져서 말이죠.”
“네네, 이해합니다. 그보다 제가 찾는 것보다는 소대장님께서 직접 찾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네. 2창고로 가십시오. 번호는 3766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환한 얼굴로 2번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 번호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행보관이 3766번이라고 했지?”
이미선 2소대장은 번호키의 번호를 눌러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어디 있더라.”
이미선 2소대장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으로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지다가 드디어 이미선 2소대장이 원하던 것을 찾았다.
“찾았다.”
이미선 2소대장이 사이즈를 확인했다. 그런데 죄다 대(大)짜리밖에 없었다.
“진짜 대밖에 없나? 중(中)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미선 2소대장은 다시 확인을 해 봤지만 대짜리밖에 없었다.
“하아, 기저귀도 아니고 뭐야. 하필 오늘 터져서는……. 어쩔 수 없지. 오늘만 이걸로 하고…….”
이미선 2소대장은 살짝 푸념을 한 후 그것을 챙겼다. 그런데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바로 김희진 소위였다.
‘흥! 이미선 요 기집애. 어디 한번 된통 당해봐라.’
김희진 소위는 눈빛을 살벌하게 바꾼 후 그대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어머나!”
철컥!
자물쇠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선 2소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창고 문 쪽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 왜 안 열리지?”
힘을 줘서 열어보아도 이미 자물쇠가 잠긴 상태였다.
“안에 사람 있습니다! 사람 있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에이, 장난치지 말고! 빨리 문 여십시오.”
이미선 2소대장은 계속해서 문을 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씨! 짜증 나! 누구야, 누구냐고!”
발로 문을 쾅쾅 차보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분을 문과 씨름을 했다.
“아아, 짜증 나! 짜증 나아아아아!”
이미선 2소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한편 그 시각 오상진은 중대 행보관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창고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지?”
솔직히 군 부대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가려는데 다시 한번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 진짜인가?”
오상진은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갔다. 바로 2번 창고였다. 혹시 여기 안에서 여자 장교나 아니면 여자 부사관이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상진은 혹시나 싶어서 문에다가 귀를 가져갔다. 무슨 상황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쾅’ 하는 소리에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어후씨! 깜짝이야.”
“밖에 누구 없습니까?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어? 누굽니까?”
오상진이 묻자 곧바로 이미선 2소대장이 답했다.
“저, 1중대 2소대장입니다. 누구십니까?”
“오상진 1소대장입니다.”
“1소대장님! 저 갇혔습니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아, 네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상진이 곧바로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어? 자물쇠가 잠겨 있습니다. 저 번호 모르는데…….”
“제가 압니다. 3677입니다.”
“아, 3677.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상진은 자물쇠를 연 후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이미선 2소대장은 오상진을 발견하고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살았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잠그고 사라졌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설명을 해줬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오상진이 의아해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혹시 1소대장님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네. 저는 김 중사를 만나러 오던 길이었습니다.”
“아무튼 1소대장님이라도 와 줘서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전 이곳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물품은 찾으셨습니까?”
“아, 네에.”
이미선 2소대장이 손에 든 것을 등 뒤로 숨겼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럼 이제 나가시죠.”
오상진이 몸을 돌리는데 이미선 2소대장이 불렀다.
“저기 1소대장님.”
“네?”
“저에 대한 소문 말이에요.”
“아, 중대장님에 대한…….”
“아뇨, 그거 말고 말입니다.”
“…….”
오상진은 눈을 크게 떴다. 이미선 2소대장이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제가 5중대장님을 스토커 한다는 소문 말입니다.”
“네? 무슨 그런 소문이 납니까?”
“그럼 그 얘기는 못 들었습니까?”
“아, 네. 제가 딱히 그런 소문은 잘 안 듣는 편이라서 말이죠.”
“네. 그러시구나. 역시 1소대장님께서는 좋으신 분이시구나.”
“네?”
“아니, 영화관에서 봤을 때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사실 저와 5중대장님은 1소대장님께서 이곳저곳에 말하고 다닐까 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소대장님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얘기를 듣던 오상진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그렇게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인가?’
막말로 두 사람의 비밀을 지켜준 것은 맞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솔직히 정당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것을 떠벌리고 다닐 오상진은 아니었다.
“1소대장님, 저 어떻게 하면 좋죠? 1소대장님께서 절 좀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에게 부탁했다. 사실 이미선 2소대장은 이곳에 오고, 제일 먼저 들었던 것이 바로 오상진의 활약이었다.
예전 김소희 중위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었다. 그때 오상진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김소희 중위가 군 생활을 편안하게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미선 2소대장은 혹시나 이번에도 오상진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 1소대장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이미선 2소대장이 불쌍한 눈으로 오상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상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2소대장.”
“네.”
“지금의 저로서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네? 그, 그래도…….”
이미선 2소대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오상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오상진이 냉정하게 몸을 돌려 창고를 나갔다. 그러자 이미선 2소대장은 불쌍했던 표정을 단번에 지웠다.
“에이씨, 진짜 안 넘어오네. 목석도 아니고 말이야. 여자가 이 정도로 굽히고 들어갔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주면 좀 좋아.”
이미선 2소대장이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인상을 구기며 창고를 나가려다가 멈췄다.
“가만, 같은 소대장? 잠깐만, 5중대장이 나에게 이랬으면…… 그보다 더 위의 사람에게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
이미선 2소대장이 다시 눈을 반짝였다.
한종태 대대장은 곽부용 작전과장을 불러서 부대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물었다.
“부대가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 소문은 또 뭐야?”
“아, 5중대장과 이미선 소위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사실이야?”
한종태 대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네. 아무래도 남녀 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 둘이 진짜 사귄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 남녀가 만나서 사귈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이렇듯 소문을 내고 그래!”
한종태 대대장은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