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5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23)
“당신하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당신이 전화를 안 받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남의 집이라니……. 왜 그래? 나 아직 당신 와이프야. 우리 이혼 안 했잖아.”
“이혼 소송 중이잖아.”
“어쨌든 아직은 부부잖아.”
“그렇다고 경비실에 내 와이프라고 말해?”
“그럼 어떻게 해. 내가 당신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해?”
아내는 뻔뻔하게도 당당하게 말했다. 5중대장은 정말 기가 찼다.
“아아, 됐고! 당신과 싸우기도 귀찮아. 그러니까, 나가 줄래?”
5중대장은 얘기하기도 귀찮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바뀌었다. 5중대장이 털썩 소파에 앉았다. 아내는 식탁 의자에 앉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나도 본론만 말할게. 당신 요즘 여자 만나더라?”
“여자? 여자라니 무슨 말이야.”
“이미선이던가? 1중대 2소대장 말이야.”
5중대장이 움찔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당신은 참 그게 문제야. 내가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당신 집에 여자가 들락거리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내의 당당한 말에 5중대장의 패닉에 빠졌다. 사실 별거한 지는 2년 가까이 되었다. 아내가 아직 이혼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소송을 하면 편하지만 그에 따른 변호사비가 많이 들어가서 둘 다 별거 상태로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 별거 기간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심지어 와이프도 예전에 바람피웠던 그 사내랑 현재 동거 중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에게는 신경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5중대장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차분하게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우리 이혼해!”
“어이구야,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내가 진즉에 이혼하자고 했잖아.”
“그때는…….”
와이프가 막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5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딴 놈이 있었으니까.”
“아이고 사돈 남 말 하시네. 당신도 여자 있잖아.”
“그건 최근이고.”
“어머! 인정을 하시네.”
“……그래서!”
“그래서는 뭐? 이혼하자고, 그리고 재산 5 대 5로 나눠!”
“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왜 이래. 얼마 전까지는……. 그래 내가 나쁜 년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잖아.”
“야, 우리 별거 중일 때 만났거든.”
“별거 중이더라도. 우린 법적으로 부부야! 법정으로 가면 난 꿀릴 것이 하나도 없어.”
5중대장은 저 뻔뻔한 와이프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하아, 됐고. 당신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 그런 사이 아니거든.”
“그런 사이 아니라고? 내가 증거가 없어서 이러는 거 같아?”
아내의 말에 5중대장이 속으로 당황했다.
‘증거? 증거가 있다고? 아니야, 거짓말이야. 그래, 무슨 증거가 있어. 증거가 있으면 나 X 되는데…….’
5중대장이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 웃는 모습. 진짜 증거가 있는 거야? 아니야, 와이프 성격상 증거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협박을 하지 않아.’
5중대장은 결정을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나가! 나 북한산에서 백숙 먹은 것이 다니까. 그걸 굳이 따지려면 따져봐. 난 하나도 거리낄 것이 없으니까.”
“허, 웃겨!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아, 헛소리하지 말고 나가라고. 아니면 그 증거라는 것을 내밀던가.”
5중대장이 강하게 나갔다. 그러자 와이프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후회하지 마라, 당신!”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어서 나가라고!”
5중대장은 억지로 와이프를 쫓아냈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나가는 와이프를 보며 5중대장이 가슴을 쓸어내렷다.
“아무래도 증거는 없는 것 같은데……. 이미선 소위랑 만난다는 소문을 듣고 저러나? 아, 진짜 일이 복잡하게 되었네.”
5중대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소파로 돌아온 5중대장이 혼자 생각에 잠겼다.
“저 여자가 나 몰래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서 있는 거라고는 이 오피스텔밖에 없는데……. 만약에 이 집도 뜯기면 난 완전 빈털터리야. 이 집만은 꼭 지켜야 해. 아무튼 이 소위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참에 정리를 해야겠어.”
5중대장이 독하게 이를 깨물었다.
* * *
여름이 시작됐다. 여기저기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아침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덥다. 더워.”
한종태 대대장이 빠진 자리에는 곽부용 작전과장을 비롯해 각 중대장들이 앉아 있었다.
대대 회의장의 창문은 다 열려 있었다. 모두들 잔뜩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너무 덥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6중대장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5중대장이 헛기침을 했다.
“어험, 네. 그렇습니다.”
“그보다 5중대장님은 요즘 정신없으시죠?”
6중대장 역시 그 소문을 들었다. 5중대장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곤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정신없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편안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소문…….”
그때 곽부용 작전과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잡담 그만하게.”
“아, 죄송합니다.”
6중대장이 바로 사과를 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회의를 주도했다.
“자자, 어차피 날씨도 덥고. 회의도 오래 할 수 없으니까.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지. 2주 후에 유격훈련이 잡혀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
“네.”
“빠짐없이 준비하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다음은 이번 여름에 대해 안전수칙이 전해졌는데, 군수과장.”
“네.”
“행정보급관하고 잘 토의를 해서 식중독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급에 관한 것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특별히 먹는 것에 좀 더 신경 쓰라고 사단에서 전갈이 내려왔으니까, 그리 알고.”
“네, 꼭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의 주도하에 회의는 30분 안에 끝이 났다. 대대 회의실을 나오는 각 중대장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 또 유격훈련이구나.”
“이번 유격훈련은 행군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못 봤어?”
“네?”
“아까 과장님 책상 위에 보니까, 행군 확인을 하기 위해 지도 체크해 놓으셨던데.”
“네? 그럼 이번에도 행군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유격의 꽃은 행군이잖아.”
“하아, 매년 겪는 거지만 솔직히 행군은 힘듭니다.”
“이제 익숙해지지 않았나?”
“아닙니다. 그보다 이번에는 몇 키로인 줄 아십니까?”
“모르지. 21㎞는 되지 않을까?”
“헐, 작년에 15㎞만 한다고 했는데 걷다 보니, 20㎞를 넘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올해도 20㎞겠네.”
“하아, 망했네.”
중대장들의 얘기를 들으며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하긴 자신도 행군은 솔직히 싫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중대 회의를 소집했다.
중대장실로 소대장들이 모였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이어리를 펼쳤다.
김철환 1중대장은 유격훈련에 대해서 당부의 말을 했다. 각 소대장들은 다이어리에 받아적었다. 그 외 몇 가지 더 얘기를 한 김철환 1중대장이 소대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여기까지 하고 특이사항은 있나?”
“특이사항 말입니까?”
4소대장이 슬쩍 입을 열며 이미선 2소대장을 봤다. 하지만 이미선 2소대장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4소대장을 봤다.
“4소대장.”
“네.”
“할 말 있나?”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없어?”
“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오상진을 봤다.
“1소대장.”
“네.”
“별거 없지?”
“네, 없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지.”
“수고하셨습니다.”
소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철환 1중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갔다. 소대장들이 중대실을 나왔다. 4소대장이 중대장실을 나오며 3소대장을 슬쩍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3소대장이 슬쩍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가 오상진과 이미선 2소대장이 앞서서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4소대장이 입을 뗐다.
“와, 2소대장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이미 다 뽀록이 났는데 저기 태연한 것 보십시오.”
“…….”
3소대장은 말없이 이미선 2소대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4소대장의 말은 계속이어졌다.
“그런데 우리 중대장님은 모르시나?”
“아까 보니까, 모르시는 눈치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거 확실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3소대장이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4소대장을 봤다. 4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에헤이, 우리 3소대장 순진하십니다. 이미 목격자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미 들킨 마당에 무슨…….”
“에이, 그래도 백숙만 먹었을 수도 있죠.”
“말도 안 됩니다. 청춘남녀가 북한산까지 가서 백숙을 먹었습니다. 그 다음은 뭐겠습니까?”
“4소대장 너무 그쪽으로 몰아가는 거 아닙니까?”
“막말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슬쩍 알아봤는데 나이 많은 장교랑 신입 여장교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은근히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에 나온 소문이 가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3소대장이 다급하게 4소대장에게 말했다.
“말조심하십시오. 듣겠습니다.”
“들으라고 하십시오.”
4소대장의 행동을 본 3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그럼 2소대장에 대한 맘은 접었습니까?”
“무슨 맘 말입니까? 전 2소대장 같은 스타일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3소대장은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4소대장은 뻔뻔한 표정을 짓고 모른 체했다.
오상진이 앞서 걸어가는 이미선 2소대장 곁으로 다가갔다. 뒤를 힐끔 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미선 2소대장이 더 뻔뻔하게 대답했다.
“뭘 말입니까?”
“아, 아닙니다. 가시죠.”
오상진은 괜히 민망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행정반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미선 2소대장이 물었다.
“저…… 1소대장님.”
“네?”
“중대장 정도 되면 월급이 얼마 정도 나오죠?”
“아시지 않습니까. 호봉에 따라 다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그렇죠.”
이미선 2소대장이 움찔했다. 그러다가 조용히 물었다.
“예를 들어 5중대장님 경우에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 24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뭐, 훈련 뛰고 하면 더 나오겠죠.”
“으음, 그것밖에 안 됩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다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행정반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그거 가지고 어떻게 살지? 좀 빠듯하겠다.”
이미선 2소대장은 이미 5중대장하고 같이 살 것처럼 말했다. 이미 그런 단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오상진은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지 알고 있지만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다.
“그런데 2소대장, 그건 왜 물어보는 겁니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상진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면서 힐끔 이미선 2소대장을 봤다.
‘뭐지? 진짜 살림이라도 차릴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