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4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15)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석태 중위가 슬쩍 들어왔다.
“어? 커피 마십니까?”
“장 중위님.”
“네네, 반갑습니다. 저도 커피 좀 마시려고 왔습니다.”
장석태 중위는 200원을 넣고 밀크커피를 눌렀다. 자판기에서 ‘지잉’ 소리가 나며 커피가 나왔다. 그것을 한 모금 마신 장석태 중위가 감탄을 했다.
“크으, 역시 우리 부대 자판기 커피가 제일 맛있다니까.”
오상진인 장석태 중위를 바라봤다. 장석태 중위가 피식 웃었다.
“뭘 확인하고 싶습니까? 저랑 은지 씨가 사귀는지 알고 싶은 겁니까?”
장석태 중위는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올렸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 알고 있었습니까?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죠.”
장석태 중위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은 그런 장석태 중위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무튼 장 중위님은…….”
“내가 뭐요?”
“아닙니다. 좋아 보입니다.”
“어험, 그렇습니까? 하긴 최근에 저도 주위가 온통 핑크빛으로 보여서 죽겠습니다.”
“으으, 제가 말을 말아야지. 그건 나중에 따로 말하고, 그보다 공병대대는 어떻습니까?”
장석태 중위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공병대대 완전 뒤집혔습니다. 아무래도 공병대대장님 진급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지, 목이 안 잘린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오상진은 그것보다 이대강 일병이 걱정이었다.
“이대강 일병은 어떻습니까?”
“이대강 일병은 영창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장석태 중위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슬쩍 오상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대강이 말입니다. 영창 다 끝나고 나면 부대 복귀를 해야 할 텐데 잘 지낼지 걱정입니다.”
“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상진도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 되었다.
“저희 부대였다면 제가 어떻게든 챙겼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오상진이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순간 장석태 중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니까, 1소대원이라면 챙길 수 있다는 이 말씀이죠?”
장석태 중위가 오상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1소대원들은 창고에서 장비들을 꺼내 손질했다. 그런데 이세강 이병이 유독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야, 이세강 뭐 해?”
“이병 이세강. 아닙니다.”
이세강 이병이 후다닥 장비 손질을 했다. 조영일 상병이 입을 열었다.
“또 형 걱정 하냐?”
“아닙니다.”
“인마, 너무 걱정 말라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 영창생활 해봤는데 그리 힘들지 않대.”
그 말을 듣던 구진모 상병이 버럭 했다.
“영일아 말 같은 소리를 해. 아무리 그래도 영창은 영창이야. 그곳이 편안하겠냐.”
“구 상병님.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한태수 상병의 핀잔에 구진모 상병이 움찔했다.
“아, 맞다. 그렇지…….”
구진모 상병이 살짝 멋쩍어했다. 이세강 이병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래, 물론 많이 걱정이 되겠지만 괜찮을 거야. 네가 여기서 걱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그러던 중 강태산 이병이 슬쩍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창 끝나면 도로 원 부대에 복귀를 하는 겁니까? 아니면 부대가 바뀌는 겁니까?”
“영창을 갔다고 해서 부대가 바뀌지는 않겠지. 내가 알기론 원 부대 복귀일걸.”
“그렇습니까?”
이세강 이병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원래 있던 부대원들과 함께 지내는 겁니까?”
한태수 상병이 입을 뗐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쪽 선임들이 문제였던 것 아니야. 선임들을 딴 부대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한태수 상병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이해진 병장도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이세강 이병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그때 김도진 중사가 작업하는 곳에 나타났다.
“뭘 그리 얘기를 주고받냐?”
이해진 병장이 바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수고가 많다. 그런데 뭔 얘기를 하고 있었지?”
김도진 중사의 물음에 이해진 병장이 말했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랬냐? 그보다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
김도진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구진모 상병이 손을 들었다.
“행보관님.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 뭐?”
“이대강 일병 말입니다.”
“이대강 일병?”
김도진 중사가 슬쩍 이세강 이병을 봤다. 이세강 이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대강 일병이 왜?”
“혹시 영창 끝나고 돌아오면 어떻게 됩니까?”
“원 부대 복귀지. 보통 그렇지 않나?”
“그럼 그놈들 말입니다. 이대강 일병 괴롭힌 고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다. 헌병대에서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가혹행위가 확인되면 그 녀석들이 다른 부대로 옮기지 않을까? 원래 그러는데.”
그 말을 들은 이세강 이병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해진 병장이 물었다.
“그런데 행보관님.”
“왜?”
“가혹행위에 가담자가 많으면 전부다 딴 부대로 옮기는 겁니까?”
“많으면? 이 녀석들아, 어떻게 다 옮기냐. 아마도 주동자만 가지 않나?”
그 말에 소대원들이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사단장실에서도 같은 문제로 논의 중이었다. 신종열 헌병과장이 상황을 설명하고,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강이를 괴롭히는데 주모자가 그 둘이고, 1회 이상 가담했던 자가 11명 이상이라고?”
“네.”
“듣기론 소대원이 14명이라며.”
“맞습니다.”
“그럼 전 소대원이 다 가담을 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 소대에서 이대강이 편은 누구야?”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예 되놓고 왕따를 시켰다는 거네.”
“네.”
나종덕 비서실장도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저도 걱정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11명을 전부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내야 하는 건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자 김우종 소령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전부 다 전출을 보냅니까. 그건 어렵습니다.”
김우종 소령이 신종열 헌병 과장을 봤다.
“가담자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는 거죠?”
“네. 주동자만큼 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대강 일병은 가담자도 주동자만큼 별 차이 없이 느껴질 것입니다.”
“헌병과장 말대로 해서 전부 다 전출 보내면 부대를 다시 재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말고 주동자 2명만 전출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거기에 이대강 일병을 보내고? 트라우마를 가진 채로?”
나종덕 비서실장이 말했다. 신종열 헌병과장도 공감을 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하지만 김우종 소령도 자신의 주장을 굳힐 뜻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대강 일병 하나 때문에 공병대대 전체 부대 개편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장기준 사단장이 턱을 손으로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대강 일병을 옮기는 것이 빠르겠는데.”
김우종 소령이 슬쩍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대강 일병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데 말입니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종덕 비서실장이 말했다.
“저는 사단장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대강 일병 하나 때문에 부대를 개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차라리 이대강 일병 하나를 다른 부대로 전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좀 더 생각을 해보자고. 어떤 것이 더 현명한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사단장실을 나갔다. 장기준 사단장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하아…….”
장기준 병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장석태 중위가 고개를 내밀었다.
“접니다, 사단장님. 회의 잘 끝났습니까?”
“끝났어. 왜?”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기준 사단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너 이리 와봐.”
“네?”
“이리 와보라고.”
“네.”
장석태 중위가 장기준 사단장 곁으로 갔다. 그러자 장기준 사단장은 손으로 장석태 중위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아아아악!”
“야, 이 자식아, 아빠가 사단장이라고 너도 사단장인 줄 알아? 뭘 다 알려고 그래!”
“아아악, 왜 그러십니까. 아픕니다.”
“왜 그러십니까? 아픕니다? 인마, 그럼 아프라고 이러지, 아프지 않다고 이러냐! 그리고 뭘 그리 꼬치꼬치 알려고 그래.”
“그래도 알려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야, 인마. 아직 정하지 않았어.”
그러면서 장기준 사단장이 귀를 놨다. 장석태 중위는 자신의 귀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귀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고것 가지고 안 떨어져!”
장기준 사단장이 의자에 깊게 몸을 누이며 입을 열었다.
“하아, 이래저래 고민은 된다.”
“뭐가 말입니까?”
장기준 사단장이 푸념하듯 조금 전 있었던 회의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를 해줬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 일단 좀 더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구나. 가담자가 많아서 고민이시다 이거죠.”
“그렇지.”
“그럼 이대강 일병만 옮기시죠.”
“그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야. 그런데 피해자인 이대강을 옮기면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
“그렇다면 명분이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명분?”
“네. 이대강 일병 동생이 충성대대에 있지 않습니까.”
“거기로?”
“형제가 같은 부대에서 복무를 하면 보기도 좋지 않습니까.”
순간 장기준 사단장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날 저녁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불렀다. 오상진은 퇴근을 하려다가 중대장실로 불려갔다.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퇴근 하려던 참이었냐?”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니, 조금 전에 사단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네.”
“사단장님에게서 말입니까?”
“그래. 사단장님께서 이대강을 우리 부대 1소대로 보내고 싶다고 하네. 괜찮냐?”
“그게 가능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알아보긴 했는데 장석태 중위 말로는 그곳에 이대강이 있을 장소가 없단다.”
“아, 전부 다 괴롭힌 것입니까?”
“주동자 일부가 좀 심하긴 했지만, 이대강이가 탈영할 정도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
“그렇긴 하죠. 한두 명 정도 비빌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탈영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죠.”
“그래. 그래서 사단장님이 이대강이만 우리 1소대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넌지시 말하네. 물론 사단장님께서 지시를 내리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우리 사단장님께서 또 너를 끔찍이 생각을 하시잖아. 그래서 의견을 묻는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상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이 받아들이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김철환 1중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특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들어온 녀석이 다른 애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