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42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11)
김승현 병장의 등장에 민병욱 상병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병 교육 중이었습니다.”
“교육? 뭔 교육?”
“이것저것 있지 않습니까.”
민병욱 상병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김승현 병장이 인상을 썼다.
“교육은 개뿔…… 신병 괴롭히고 있더만.”
“아닙니다.”
“너도 인마, ‘아닙니다’밖에 할 줄 모르냐?”
“아닙……. 왜 그러십니까. 김 병장님.”
민병욱 상병이 말을 하려다가 눈치를 채고, 인상을 썼다.
“됐고, 어이 신병!”
“이병 이대강!”
“너 나 따라와.”
“아, 알겠습니다.”
이대강 이병이 주위 고참들을 바라보다가 김승현 병장을 따랐다.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살짝 당황했다. 김승현 병장이 이대강 이병을 데리고 나가고, 소대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뭐지?”
“왜 김 뱀이 신병을 데리고 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 진짜. 이제 말년이면서 신경 좀 끄지. 왜 저래?”
장우진 상병이 고개를 흔들었다. 곧바로 민병욱 상병이 옆으로 다가왔다.
“장 상병님 진짜 저래도 됩니까? 김 병장 이제 말년이지 않습니까. 그냥 낙엽 떨어지는 것도 피하면서 조용히 지내시지.”
“네 말이 그렇다.”
그렇게 소대원들이 구시렁거렸다. 김승현 병장은 이대강 이병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휴게실 데리고 나간 김승현 병장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야, 한 대 피워.”
“이병 이대강, 저어…… 저 담배 안 피웁니다.”
“안 피워? 너 흡연 안 해?”
“네.”
“안 피우는 거야? 끊은 거야?”
“저 끊었습니다.”
“왜?”
“제가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담배는 냄새가 강해서 말입니다.”
“오오, 요리? 그럼 취사병으로 지원을 하지.”
“아직 자격증도 없고, 무엇보다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뭐야. 그럼 정식 요리사도 아니네.”
“네, 그렇습니다.”
이대강 이병이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김승현 병장은 홀로 담배를 피우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너 밖에서 뭐 하다가 왔냐?”
“아는 형 푸드 트럭에서 잠깐 일했었습니다.”
“그래?”
김승현 병장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말이 없다가 다시 김승현 병장이 물었다.
“밖에서 뭐 했다고 했지? 아, 요리했다고 했지.”
이런 식으로 툭툭 물어보는 것이 다였다.
“참, 내가 너 할배인 건 아냐?”
“네?”
“너가 내 손자라고. 알겠냐? 할배라고 불러봐.”
“그, 그건 좀…….”
“괜찮아, 인마. 할배라고 해봐.”
“하, 할배…….”
“그래, 손자야. 하하핫.”
김승현 병장이 크게 웃었다. 이대강 이병은 그런 김승현 병장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것저것 물었다.
“참, 부모님은 뭐하시고?”
순간 김승현 병장이 당황했다. 왜냐하면 소대장에게 이미 가족관계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네.’
그런데 이대강 이병은 별로 티 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서는 교통사고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냐? 미안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별생각도 없습니다.”
“그래? 동생하고는 몇 살 차이야?”
“동생이 2살 어립니다.”
“2살 어려?”
“네, 동생이 22살입니다.”
“어후씨! 그럼 동생이랑 나랑 나이가 같네. 왜 군대를 늦게 왔어?”
“사정 있었습니다.”
“대학 다니다가 왔냐?”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돈 좀 번다고 그랬습니다.”
“돈?”
“네. 제가 군대 있을 동안 할머니와 동생이 생활할 생활비를 좀 마련하느라 말입니다.”
이대강 이병은 원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김승현 병장의 투박하지만 정이 있는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얘기가 나왔다. 김승현 병장이 움찔했다.
“어? 그래?”
“네.”
“그래서 벌어놓고 왔어?”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보태는 정도는 됩니다.”
“다행이네. 그래서 2년 늦게 왔구나. 자식, 원래대로 왔다면 나랑 동기였을 수도 있었겠네.”
“…….”
이대강 이병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김승현 병장이 불쑥 말했다.
“그렇다고 말 놓고 그러면 안 돼. 어쨌든 여긴 군대고, 계급으로 정해지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보다 10살 많은 후임이 들어와도, 후임은 후임이야. 여기서는 절대 나이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 아니면 따 당한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제대 2달 남았다. 내가 신병 신경 쓰고 할 짬은 아닌데, 아까 장우진 봤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TV 근처에 말없이 앉아 있던 녀석 말이야.”
김승현 병장의 설명에 이대강 이병이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얼핏 본 것 같았다.
“아, 네에.”
“그 자식이 내 다음 분대장이 될 녀석인데……. 그런데 그 녀석 아무것도 몰라! 풀린 군번이라 나 제대하면 그 녀석이 내무실 왕고야. 아주 살 판 난 거지. 뭐, 어쨌든 참고하라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런 관계로 인해서 내가 제대할 때까지 널 책임지기로 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인마. 이 짬밥에 내가 신병 관리하게 생겼다. 영광으로 알아.”
“알겠습니다.”
“고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꼭 물어보겠습니다.”
이대강 이병의 눈이 반짝였다. 김승현 병장은 살짝 ‘뜨악’한 시선으로 봤다.
“뭐야? 왜 그걸 나에게 물어봐! 눈치껏 주변을 보고 하라고.”
“아, 예에.”
이대강 이병이 바로 대답했다. 김승현 병장이 씨익 웃으며 입을 뗐다.
“너 오해할까 봐서 얘기를 하는데. 내가 널 절대 가르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병이 말년 병장에게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보면 어떻게 될 것 같냐?”
“네?”
“너 X 되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눈치껏 알아서 행동하겠습니다.”
이대강 이병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김승현 병장이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사실 이대강 이병이 본 김승현 병장의 첫인상은 썩 좋지는 않았다. 뭔가 귀차니즘이 많은 것 같았고, 빨리 제대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첫 PX에 데리고 간 사람도 김승현 병장이었고, 처음 전화를 하게 해준 사람도 김승현 병장이었다.
어느 날은 전투화를 닦으러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이대강 이병 말고도 다른 고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투화를 보며 말했다.
“이거 네가 다 닦을 수 있지?”
“네.”
그렇게 고참들이 이대강 이병에게 전투화를 다 떠맡기고 PX를 갔다. 잠시 후 김승현 병장이 나오더니 혼자 열심히 전투화를 닦고 있는 모습이대강 이병의 옆에 앉았다.
“아이고, 이리 줘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리 줘.”
김승현 병장은 그렇게 살뜰히 이대강 이병을 챙겨줬다. 이런 일이 많을수록 다른 고참들의 눈에는 이대강 이병의 행동이 불만이었다.
“저 신병 새끼. 지금 김 병장님에게 알랑방귀 뀐 거 아닙니까?”
“모르지.”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김 병장님이 저렇게 챙겨주십니까?”
“손자라 그래. 손자라서!”
“아무리 손자라지만…… 괜히 우리만 욕먹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습니다.”
“됐어, 어차피 2달 후면 제대할 사람이야. 신경 꺼!”
“크응…….”
원래 김승현 병장은 말년이라 모든 것에서 빠졌다. 당직병이든지, 불침번, 경계근무까지 하지만 딱 한 번만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그것도 김승현 병장이 원해서 이대강 이병과 함께 선 적이 있었다.
“너 영광인 줄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이대강 이병은 김승현 병장이 저렇게 말은 했지만 자기를 챙겨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았다. 그래서 점점 더 김승현 병장이 좋아졌다. 그리고 근무를 다 선 후, 김승현 병장이 라면을 꺼냈다.
“너 뽀글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근무서고 나서 먹는 뽀글이 맛이 얼마나 죽이는 줄 아냐? 내가 그 맛을 보여주지.”
“가, 감사합니다.”
이대강 이병의 눈이 커졌다. 사실 뽀글이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수차례 들었다. 경계근무 끝나고 먹는 뽀글이는 잊혀지지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생각에 집에서 해 먹으면 그렇게 군대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내가 직접 해주고 싶지만, 너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네.”
“그러니 네가 뽀글이를 아주 맛나게 해서 와봐.”
김승현 병장이 봉지라면을 줬다. 그것을 받아 든 이대강 이병은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이걸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아, 뽀글이는 말이야. 라면을 잘게 뽀개. 아주 잘게. 거기에 라면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끝이야.”
“그게 끝입니까? 뭐,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없습니까?”
이대강 이병의 눈빛은 어느새 요리사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진지한 눈빛에 김승현 병장이 피식 웃었다.
“야, 인마. 뽀글이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진지한 눈빛이야. 그냥 뜨거운 물 붓고, 입구만 잘 봉하면 끝이야.”
“정말 그게 다입니까?”
“그래, 아! 하나 있다.”
“뭡니까?”
“뽀글이의 맛의 핵심은 물 조절이야. 오케이? 어디 너의 감각을 한번 믿어보겠어.”
“네, 믿어보십시오.”
이대강 이병은 정말 진지한 눈빛으로 라면을 잘게 뽀갰다. 그리고 입구를 열어 스프를 넣은 후 봉하려는데 이대강 이병의 눈에 스팸이 보였다. 스팸은 라면과 함께 먹기 위해 사 놓은 것이었다.
“김 병장님 잠시 스팸을 이용해도 되겠습니까?”
“야, 그거 내가 따로 먹으려고……. 그래 가져가서 해봐. 뽀글이 맛만 있으면 되니까.”
“네, 감사합니다.”
이대강 이병은 스팸을 따서 수저로 스팸을 잘게 잘라서 뽀글이 라면 안에다가 넣었다. 그리고 정수기로 가서 뜨거운 물을 받았다.
“물이 중요하다고 했지?”
이대강 이병은 뜨거운 물을 봤는데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진지했다.
‘지금이야!’
이대강 이병이 뜨거운 물을 끊고, 재빨리 입구를 막고 둘둘 말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 뒀던 노란색 고무줄로 입구를 단단히 봉인했다.
‘절대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돼.’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런 이대강 이병의 모습을 보며 김승현 병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 자식 뽀글이 가지고 뭘 저렇게 진지해.’
잠시 후 두 개의 뽀글이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있습니다. 김 병장님.”
“그, 그래…….”
뽀글이를 받은 김승현 병장이 매우 진지한 눈빛의 이대강 이병을 봤다.
“어디 한번 먹어 볼까?”
김승현 병장이 막 고무줄을 벗기려고 하는데 이대강 이병이 막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왜 인마?”
“10초만, 10초만 더 있다가 열어 주십시오.”
“야, 10초나 지금이나…….”
“아닙니다. 그 10초 차이로 뽀글이의 맛이 달라질 겁니다.”
“그, 그래. 알았다.”
김승현 병장은 뭔 차이가 나나 했지만 일단 기다려 줬다. 이대강 이병이 초로 확인을 한 후 입을 뗐다.
“됐습니다. 이제 드셔도 됩니다.”
이대강 이병의 허락이 떨어지고, 김승현 병장이 노란색 고무줄을 제거했다. 그리고 라면을 수저로 떠서 한입 가져갔다.
후루루룩!
“으잉?”
김승현 병장의 눈이 커졌다. 이대강 이병은 진지한 얼굴로 김승현 병장을 바라봤다.
“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