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3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04)
오상진은 할아버지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이대강 일병을 봤다.
“대강아.”
“네.”
“자식아, 왜 그랬어!”
“…….”
오상진이 약간 질책하듯 물었다. 이대강 일병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탈영이 최선은 아니잖아.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이 방법뿐이었어?”
이대강 일병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그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말이다. 민병욱 상병이 걱정된다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민 상병 괜찮아. 약간의 뇌진탕 증세만 있을 뿐 아무런 문제 없어.”
이대강 일병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내가 왜 그런 거로 거짓말을 하겠나. 너 혹시 그것 때문에 탈영한 것은 아니지?”
“아무리 충동적이라고 하지만……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겁이 많이 났습니다.”
이대강 일병이 조용히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사실 소대장은 네가 꾸준히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대에서 다른 고참들이나, 간부들에게 말하지 않았니?”
“말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소대장님에게도 말하고, 중대장님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없어?”
“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대장님은 소대장님께 뭐라고 하고, 소대장님은 제가 군 생활 적응을 제대로 못 한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게다가 부소대장은 민 상병하고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대강 일병은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차근차근 얘기를 해줬다. 오상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고참들도 마찬가지고?”
“네. 민 상병 말만 듣고, 아무도 제 말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소원 수리를 적었는데…….”
이대강 일병이 머뭇거렸다. 오상진이 계속 말하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대장님께서 오셔서 꾸중만 하셨습니다.”
“꾸중을?”
“네. 왜 자기에게 말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해서 일을 키우냐고 말입니다.”
“그랬어?”
“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소대장을 불러서 괜히 화를 냈습니다.”
“어떻게?”
“네가 애들 관리를 제대로 못 하니까, 이렇듯 소원 수리를 적고 그러는 것이 아니냐면서 소대장을 막 질타했습니다. 그러니 분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지고…….”
“가혹행위는 더 많아졌지?”
오상진이 이대강 일병이 하려던 말을 대신해 줬다. 오상진은 그 말만 들어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보였다. 이대강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강아. 탈영은 아니야. 네가 지금 이 상황에서 헌병대에 잡히면 너의 대한 처벌이 커질 거야. 일단 네가 선임을 폭행하고 탈영을 했기 때문에 처벌의 수위는 좀 높을 거야.”
“하아…….”
이대강 일병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대장님, 도와주십시오.”
“…….”
오상진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입을 꾹 다물고 이대강 일병을 바라봤다. 이대강 일병은 바로 그때 자신의 상황을 얘기했다.
“그때 저는 정신이 없어서 앞만 보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는데 사방이 군인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워서…… 용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네 심정은 이해를 한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 이렇게 부대 복귀하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대강 일병이 오상진에게 매달렸다. 오상진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매달리는 이대강 일병을 보며 짠한 느낌이 들었다.
‘방법이 없을까? 조금이라도 처벌 수위를 낮출 방법이…….’
오상진이 머리를 굴렸다.
‘가만 우리가 잡은 것이 아니라, 자수를 한 것이라면? 조금은 정상참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상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이대강 일병에게 말했다.
“이대강.”
“일병 이대강.”
“지금부터 소대장 말 잘 들어. 넌 우리에게 붙잡힌 것이 아니라. 자수한 거야. 알았어?”
“자수 말입니까?”
“그래. 넌 일단 고참을 폭행한 후 잔뜩 겁이 먹어 탈영은 했지만 이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부대에 복귀를 하려고 내려오던 길에 우리를 만나 거야. 이해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넌 탈영을 했지만 붙잡힌 것이 아니라, 자수한 거야. 알았지?”
“아, 네에…….”
이대강 일병은 일단 오상진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탈영을 했고, 폭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처벌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다만, 오상진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정상참작을 해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감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너부터 챙기자. 참, 지금 밥 먹던 중이었지?”
오상진은 차려진 상을 봤다. 밥 두어 숟갈 퍼서 먹은 것이 다였다.
“밥 다 안 먹었지?”
“……네.”
“그래, 우선 밥부터 먹어라. 속이라도 든든해야, 앞으로 벌어질 일에 힘을 내서 대처하지.”
“알겠습니다.”
이대강 일병은 오상진의 말을 듣고 수저를 들었다. 그러면서 이대강 일병은 생각했다.
‘우리 소대장님이 이런 분이었다면 난 탈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대강 일병은 왠지 모르게 서러움이 치솟았다. 하지만 억지로 누르며 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물었다.
“다친 곳은 없어?”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상진이 본 이대강 일병의 모습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오상진의 시선이 왼쪽 다리로 향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쭉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시선이 갔다.
“어? 다친 거야?”
“괘, 괜찮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소독해 주셨습니다.”
“일단 소대장이 보자.”
“괘, 괜찮은데…….”
이대강 일병이 애써 숨기려고 했지만 오상진이 억지로 확인을 했다.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피딱지가 앉아 있지만 일단 소독을 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바늘로 꿰매야 할 것 같네.”
“…….”
이대강 일병은 그저 묵묵히 밥을 먹기만 했다. 오상진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의무대부터 먼저 가자고 해야겠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너 이대로 두면 파상풍 걸릴지도 몰라. 상처를 괜히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잖아. 만약에 이대로 뒀다고 썩어버리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몰라.”
“네? 저, 절단 말입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최악의 경우 말이야. 아참, 너 파상풍 주사는 맞았지?”
오상진은 지난번 강태산 이병의 파상풍 사건 때문에 한 번 데인 적이 있어서 신중했다.
“네. 신교대에서 맞았습니다.”
“신교대? 맞았어도 안심할 수 없어. 밥 다 먹고 나가면 치료부터 하자.”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래, 어서 밥 먹어.”
“네.”
이대강 일병이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오상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어, 그래. 1소대장.
“네, 중대장님. 이대강 일병 자수했습니다.”
-뭐? 자수?
김철환 1중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한편 그 시각, 공솔진 공병대대장은 자신의 대대장실에서 잔뜩 인상을 썼다.
“대체 소대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공병대 이대은 1중대장이 2소대장을 노려봤다. 2소대장 최진만 소위가 곧바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모두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데…….”
공솔진 공병대대장은 머리가 지끈 아팠다. 아무리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건 자신의 진급에 크나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었다. 하물며 지원요청까지 하면서 사단에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진짜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중대나 소대 관리 잘하라고 말이야. 가뜩이나 내가 진짜 대령 진급 때문에 골머리 앓고 있는 알아 몰라. 이제 이 일 때문에 나 완전히 진급에 마이너스가 생겼어.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1중대장!”
“대위 이대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공솔진 대대장이 강하게 소리쳤다. 이대은 1중대장은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공솔진 공병대대장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자네 때문에 고맙네. 고마워, 옷 벗게 생겨서 말이야. 그래, 오래 했지. 자네의 깊은 뜻이라 생각하겠네. 연금 받으면서 편히 집에서 쉬라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이대은 1중대장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대장님! 절대 그런 뜻으로…….”
“아이고 아니야? 아니었어? 그런데 왜 그랬어?”
“그, 그게…….”
이대은 1중대장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공솔진 공병대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됐고! 그 녀석 왜 탈영을 했어? 대체 이유가 뭐야?”
“그것이…….”
이대은 1중대장이 최진만 2소대장에게 시선이 갔다. 공솔진 공병대대장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최진만 2소대장은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고 받기로는 종교 행사를 하고 부대 복귀를 하던 중 선임 병사를 구타하고 도망을 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임을 구타해? 종교 행사 중에?”
“네.”
“그 새끼, 사이코 아냐? 그리고 그 선임 놈도 그래. 얻어맞은 것은 둘째 치고, 그 녀석이 탈영하는 것을 지켜봐?”
“그게 돌로 뒤통수를 까였다고 합니다.”
“뭐? 돌로? 그 자식 진짜 독한 놈이었네. 그래서 다친 놈은 괜찮고?”
“네. 보고받기로는 약간의 뇌진탕 증세만 있고 괜찮다고 합니다.”
공솔진 공병대대장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네. 아, 아니지! 어이구, 그것도 문제네. 단순히 탈영의 문제가 아니잖아. 부대 내 폭행도 있는 거잖아.”
이대은 1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대장님 종교 행사 중 복귀하는 길이었습니다. 부대 내는 아닙니다.”
순간 공솔진 공병대대장의 눈이 커졌다.
“이봐, 1중대장! 그게 지금 말이라고……. 어쨌거나 우리 병사가 탈영하고, 다치고, 폭행을 저질렀다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어이구 답답하기는……. 그보다 그 이유는 뭐야?”
공솔진 공병대대장이 물었다. 이대은 1중대장이 힐끔 부소대장인 김 하사에게 시선이 갔다.
“그게…….”
이대은 1중대장의 시선을 받은 김상엽 하사가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공솔진 공병대대장은 그런 이대은 1중대장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중대장이 되어서는……. 자넨 도대체 중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나?”
“죄, 죄송합니다.”
이대은 1중대장이 표정을 굳혔다. 공솔진 공병대대장이 김상엽 하사에게 물었다.
“김 하사.”
“하사 김상엽.”
“자네가 설명해 보게. 그 녀석이 왜 그런 행동을 했지?”
“네. 그것이 말입니다.”
김상엽 하사는 차근차근 공솔진 공병대대장에게 설명을 했다.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공솔진 공병대대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대강 그 친구가 관심병사였단 말이지. 일병을 달았는데도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고, 부대에 적응을 잘 못 하였습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아프다, 힘들다고 하며 꾀병을 많이 부렸습니다. 그와 관련해 선임병들이 신경을 많이 써준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지난 친 괴롭힘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소원 수리까지 넣어서 중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