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3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03)
“고맙구려.”
“별걱정을 다 하슈.”
할머니가 안방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멀뚱히 서 있는 이대강 일병을 보며 말했다.
“뭘 그렇게 서 있어. 천장 안 무너져. 어여, 이리 와서 앉아.”
이대강 일병은 뭔가 모르게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사이 약통에서 소독약과 솜을 꺼냈다.
“그래도 자식 놈들이 우리 부부가 걱정이 되는지 이렇듯 약통을 사다 놔서 다행이야.”
할아버지는 다른 말은 묻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이대강 일병의 상처에 소독약을 묻힌 솜을 갖다 댔다. 이대강 일병이 움찔했다.
“조금만 참아. 금방 되니까.”
“……네. 할아버지.”
이대강 일병의 대답을 들은 할아버지의 입가로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오랜만에 따뜻한 말을 들은 이대강 일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상진은 소식을 듣고 재빨리 그곳으로 갔다. 민가 출입문 입구를 이해진 병장과 최강철 일병이 지키고 있었다. 그곳으로 오상진이 나타났다.
“소대장님.”
“그래, 이 안에 있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해?”
“일단 들어가는 것까지는 봤습니다.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오상진은 곧장 뒤따라온 박중근 중사를 봤다.
“박 중사는 애들 데리고 집 뒤쪽으로 가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박중근 중사가 모인 1소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진모 조랑 태수 조는 날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
박중근 중사가 재빨리 집 뒤쪽으로 병력을 데리고 이동했다. 이해진 병장이 말했다.
“소대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보고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확인이 먼저다. 소대장이 확인한 후에 보고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잠깐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첫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때 방안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오상진은 망설임 없이 마당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오상진을 발견하고 말했다.
“어이구, 어이구. 왜 이제야 왔어!”
할머니의 뜻밖의 말에 오상진은 순간 당황했다.
“네? 무슨 말씀이시진지…….”
“애 하나 잃어버려서 데리러 온 거 아니야?”
“아, 네에. 맞습니다.”
오상진은 뜻밖의 전개에 말을 더듬거렸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방 안에서 상처 치료하고, 밥 먹고 있어. 밥 다 먹으면 잘 얘기해서 데리고 가.”
“그렇습니까?”
“그려, 애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야.”
“아, 네에. 그럼 제가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려그려. 지금 밥 먹는 중이니까.”
“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이해진 병장에게 말했다.
“너희는 입구를 지키고 있어. 소대장이 확인 후에 보고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진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 밥 먹다가 할아버지를 위협할 수도 있고……. 아니지, 그전에 말을 잘해서 일단 흥분하지 않게. 하,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오상진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탈영병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오상진도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만나보자.”
오상진은 이대강 일병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의 최우선은 할아버지의 안전이었다. 오상진은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할아버지, 오상진이라고 합니다. 저 일단 들어가겠습니다.”
오상진은 방 안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물론 이대강 일병에게도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대강 일병이 놀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할머니가 그런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자네도 밥 줘?”
“남은 밥 있습니까?”
“있지. 기다려.”
“아닙니다. 할머니. 그냥 물 한 잔만 주십시오.”
“물? 왜 밥 먹지?”
“괜찮습니다.”
“알았어.”
오상진은 전투화 끈을 풀었다. 어쨌거나 방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 끈을 풀어야 했다. 오상진이 천천히 일어나 안방 문 앞에 섰다.
“할아버지, 저 들어갑니다.”
오상진이 말을 한 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 안에는 하얗게 질린 이대강 일병이 오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 할아버지가 팔을 뻗어, 마치 이대강 이병을 지키려는 듯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오상진은 잠깐 움찔했지만 애써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할아버지. 혹시 저기 있는 사단에 충성대대라고 아십니까.”
“충성대대? 내가 어떻게 알아.”
“하하, 모르십니까? 아무튼 사단 내부에 충성대대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대장을 맡고 있는 오상진 중위라고 합니다.”
오상진은 우선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충성대대? 이 녀석은 공병대대라고 하던데.”
“네, 알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훈련 중에 문제가 있어서 부대를 이탈했습니다. 현재 이 친구를 찾느라 전 병력이 동원되어 있습니다.”
오상진은 최대한 좋은 말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물론 할아버지는 이대강 일병이 탈영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간부는 탈영병이라고 하지 않고, 훈련 중에 이탈한 병사로 소개를 했다.
이대강 일병을 안심시키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안심시켜려고 그러는 것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오상진이라는 간부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험, 그, 그래? 일단 들어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오상진이 들어와 앉았다. 이대강 일병이 움찔했지만 그 이상 움직임은 없었다. 오상진은 이대강 일병을 보지 않고, 할아버지에게만 시선이 뒀다. 할아버지가 오상진을 봤다.
“그래서 이 녀석을 잡으러 온 건가?”
“잡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훈련 중 이탈한 병사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거나 이거나.”
“찾는 거와 잡으러 오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허허, 거참. 말은 참 예쁘게 잘하네.”
“네, 제가 좀 합니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오상진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할아버지, 이제 이대강 일병 부대 복귀를 시켜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할아버지도 군대를 다녀오셨다면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나도 월남전에 참전할 뻔했는데…….”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월남전에 참전할 뻔하셨구나. 할아버지 대단하신 분이셨습니다.”
“어험, 당연하지.”
“아무튼 일이 더 커지지 않게 제가 잘 수습하러 왔습니다.”
오상진은 할아버지를 보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대강 일병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에 할아버지는 슬쩍 이대강 일병의 눈치를 살폈다. 오상진은 그제야 이대강 일병을 불렀다.
“이대강.”
“네?”
“내 목소리 기억나지 않아?”
오상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대강 일병을 바라봤다. 이대강 일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 잘 기억해 봐. 우리 얼마 전에 통화했는데.”
“통화…… 말입니까?”
이대강 일병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눈을 번쩍하고 떴다.
“통화! 아……. 그럼 혹시…….”
“그래, 세강이 소대장이야.”
오상진이 밝은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세강이는 또 누구야?”
이대강 일병이 바로 말했다.
“아, 제 동생입니다.”
“동생? 그럼 동생도 군대에 있단 말이야?”
“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보충설명을 해줬다.
“동생인 세강이가 형을 엄청 좋아하고 따릅니다. 세강이는 형과 함께 군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아이고, 기특한 놈일세.”
“그런데 동생이 형을 엄청 따르는데,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충격을 많이 받을 겁니다.”
이대강 일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생 얘기에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저는 물론 여기 있는 이대강 일병도 걱정이 됩니다만, 아무래도 동생인 이세강 이병이 더 걱정입니다. 그 녀석이 군 생활 잘할 수 있게 이대강 일병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오상진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이게 과연 잘한 것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이대강 일병을 좋은 말로 잘 구슬려서 데려가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이렇게 동생을 미끼로 얘기한다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아, 원래라면 나만 믿어, 잘 해결해 줄게. 그러니 복귀하자. 이런 식으로 말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오상진은 자신의 소대원이 이세강 이병이 솔직히 더 걱정이 되었다.
“이대강 일병. 솔직히 말할게. 난 너보다 동생인 이세강 이병이 더 걱정이다. 형의 탈영 소식을 듣는다면 너의 동생은 어떨까? 과연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오상진의 되물음에 이대강 일병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오상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난 소대원의 안위가 중요해. 내가 책임지는 아이고, 무사히 전역을 시켜야 할 의무가 있어. 그래서 네가 조금 서운하게 받아들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오상진이 담담히 얘기를 했다. 이대강 일병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오히려 솔직하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해주니 이대강 일병으로서는 더 믿음이 갔다. 자신의 부대 소대장보다는 말이다.
‘우리 소대장님이 저렇게 해줬다면 난…….’
이대강 일병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사실 이대강 일병은 중대장에게 말했었다. 그 당시 중대장은 자기만 믿으라고, 자기가 다 해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또 한 번 그런 일이 생기자, 오히려 소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이대강 일병이 보는 앞에서 소대장을 질책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중대장의 행동은 오히려 이대강 일병과 소대장의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었다. 소대장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이대강 일병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부대에서 믿었던 중대장에게 그 믿음이 사라져 버렸으니 이대강 일병은 그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이 없었다.
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귀찮아하고, 남에게 떠넘기고……. 그런 볼품없는 모습들만 보여줬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오상진은 지금 자신보다 그의 소대원인 동생의 안위를 더 걱정해 주었다. 그것이 웬지 모르게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말인데 할아버지. 잠깐 이대강 일병과 얘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어쨌든 오상진은 할아버지가 이대강 일병을 보호하고 있는 입장이라 정중히 의견을 물어봤다.
“얘기하게.”
“자리를 좀…… 아니, 저희가 밖에서 얘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아니, 내가 있으면 못할 얘기인가?”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대강 일병도 저에게 따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할아버지는 고민을 하더니 슬쩍 이대강 일병을 바라봤다. 이대강 일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소대장님과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려, 네가 그렇다면 그리해야지. 그럼 할애비는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라.”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상진과 이대강 일병을 힐끔 봤다. 오상진은 할아버지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험!”
할아버지는 헛기침과 함께 뒷짐을 지며 안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