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33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02)
오상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던 김도진 중사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른 소대 쪽도 가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제가 뭐 하는 일이 있습니까. 소대장님이 고생이죠.”
“저는 괜찮습니다.”
“네.”
오상진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김도진 중사가 경례를 하고는 막 떠나려는데 오상진을 불렀다.
“참, 소대장님.”
“네.”
“그 친구 있지 않습니다. 뒤통수 깨진 공병대대 장병 말입니다.”
“네. 어떻다고 합니까?”
“괜찮답니다.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현재 뇌진탕 증세가 조금 있어서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오상진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장병이 잘못되었다면 이대강 일병은…….
‘그리고 세강이도…….’
그 생각에 미치자 오상진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제가 뭘 한 것이 있습니까. 아무튼 고생하십시오.”
김도진 중사가 다시 경례를 한 후 운전병에게 말했다.
“충성, 고생하십시오. 가자!”
오상진은 멀어지는 차량을 보고는 소대원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1소대원들이 모여 앉아 전투식량으로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원수에 맞춰서 가져갔냐?”
“네.”
“안 받은 인원 없지?”
“없습니다.”
“비록 전투식량이지만 든든하게 먹고.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뭐, 그전에 찾으면 더 좋고!”
오상진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때 최강철 일병이 전투식량 하나를 들고 왔다.
“소대장님, 여기 저녁입니다.”
“고맙다.”
오상진이 웃으며 전투식량을 받았다. 소대원들은 전투식량을 맛나게 먹었다.
산속이라 어둠은 일찍 찾아왔다. 1소대원들은 이미 지정된 자리에 2인 1조로 잠복을 섰다. 오상진과 박중근 중사도 한 지점에 있었다. 박중근 중사가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녀석이 산으로 올라갔다면 밤에 내려오겠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오상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박중근 중사가 힐끔 주위를 살폈다.
“저 같으면 저 능선 방향으로 도주를 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쪽도 다른 중대가 이미 포지션 잡았을 겁니다.”
“아, 그렇죠.”
박중근 중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왜 갑자기 탈영을 했는지…… 조금만 참지.”
박중근 중사는 안타까움에 말을 했다. 오상진도 조금은 공감을 했다.
“아마 작심하고 탈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잔뜩 겁을 먹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박중근 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 역시도 안타까운 마음이 그 무엇보다 컸다. 이세강 이병의 형인 이대강 일병이라서 더욱 그랬다.
그때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타났다.
“누구냐?”
“한태수 상병입니다.”
“태수? 네가 왜?”
“사실 소대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태수 상병도 눈치는 어느 정도 있었다. 사실 탈영병이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 낮에 있었던 그 일 때문에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박중근 중사가 살짝 버럭했다.
“야, 인마. 왜 하필 지금 말하는데. 가서 잠복이나 해.”
“낮에는 정신이 없어서 말씀을 드릴 타이밍이 없었습니다.”
“그럼 내일 하자. 지금은…….”
박중근 중사가 말하려는데 오상진이 말렸다.
“박 중사,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태수가 지금 이렇게 온 것을 보면 정말 중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태수야.”
“조금 맘에 걸려서 말입니다.”
“그래, 말해봐.”
“그전에 말입니다. 탈영병이 공병대대에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혹시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오상진이 움찔했다. 한태수 상병이 공병대대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뿐이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한태수 상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습니까…….”
“어쨌든 그 일은 일단 나중에 말하는 것으로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뭐였지?”
오상진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한태수 상병이 입을 뗐다.
“사실 오전 종교 행사를 마치고…….”
한태수 상병은 성당에서 있었던 일을 오상진에게 설명을 했다. 이대강 일병이 고참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들은 박중근 중사가 발끈했다.
“뭐, 그런 녀석들이 다 있지. 안 그래도 요즘 부대 폭력 때문에 난리인데……. 그놈의 자식들 우리 소대로 왔으면 내가 버릇을 완벽하게 고쳐놨을 텐데…….”
박중근 중사가 분개해 하고 있을 때 오상진은 한태수 상병을 보며 입을 뗐다.
“그래서 세강이는 어때?”
“많이 서운해하고 속상해했습니다. 저희가 잘 다독였습니다. 제가 다음 주에 성당가면 형이랑 잠깐 얘기라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한태수 상병도 그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상진의 무전기가 ‘치익’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무전기로 향했다.
밤 10시 넘은 시각. 이대강 일병은 배도 고프고, 상처 부위가 아팠다. 이대로 계속해서 산에 숨어 있을 수도 없었다.
“밤에는 수색을 안 하겠지?”
이대강 일병은 일단 산에서 내려가 상처를 소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상처가 더 덧날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경계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산을 내려와 민가가 적은 곳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을 확인했다. 혹여 자신을 잡으러 온 장병들이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다음은 불이 꺼진 민가를 찾았다. 자신이 있는 곳과 가까운 민가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어두움 밤이지만 달빛에 의해 인형은 구분이 되었다.
이해진 병장과 최강철 일병이 잠복을 하고 있는 곳으로 뭔가가 움직였다.
“이 병장님.”
“응?”
“저, 저기 보십시오.”
최강철 일병이 가리킨 곳에 뭔가 수상쩍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저 사람 아닙니까? 탈영병?”
어둠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민가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탈영병일 확률이 높았다.
“그럴지도, 아니면 도둑일 수도 있고.”
“어쨌든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넌 보고를 해. 난 누군지 알아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일병이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그사이 이해진 병장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민가로 들어간 수상한 인물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취익.
“여기는 A-1, A 나오십시오.”
-취익, 여기는 A 말하라.
“A-1 지역에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거수자 발견!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A-1 지역에 수상한 거수자 발견.”
-취익, 확인했고, 일단 A가 갈 때까지 그쪽 포위할 수 있도록. 아니, 모두 병아리들 A-1 지역으로 모여서 주변 포위하도록. 그리고 A가 갈 때까지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한다.
“A-1 입감 완료!”
그 뒤로도 다른 소대원들도 확인을 했다는 무전을 날렸다. 최강철 일병은 무전을 날린 후 곧바로 이해진 병장의 뒤를 따라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편, 이대강 일병은 매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민가로 들어갔다. 방 안에 불이 켜져 있지만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이대강 일병은 매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마당 한쪽에 수도꼭지를 발견했다. 곧바로 그곳으로 가서 조용히 수도꼭지를 틀었다.
끼이익.
짧은 소리가 들렸지만 큰 소리는 아니었다. 세게 틀지도 않고, 약하게 틀었다. 물이 쫄쫄쫄 흘러나왔다. 이대강 일병은 곧바로 입을 가져가 목을 축였다.
꿀꺽! 꿀꺽!
많이 나오지 않는 물이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은 풀기에는 적당했다.
“하아, 그나마 좀 낫네.”
입가에 묻은 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을 입에 넣으니 목마름은 가셨지만 배고픔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을 수도 없었다.
‘참자, 한 끼 정도는…….’
이미 이대강 일병은 두 끼를 놓친 상태였다. 아침도 빵으로 때운 것이 다였다.
“일단 상처부터 씻자.”
이대강 일병은 상처부터 씻은 후 밖에 나가서 밭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당근이나, 고구마, 먹을 것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쫄쫄쫄 흐르는 물에 상처 부위를 가져갔다.
“으윽…….”
이대강 일병이 인상을 썼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자 통증이 살짝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대강 일병은 피하지 않고, 피딱지를 물로 씻어냈다.
어느 정도 씻어내고 수도꼭지를 잠그려는데 뒤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이대강 일병이 움찔했다. 곧바로 수도꼭지를 잠그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누구냐니까.”
“…….”
이대강 일병은 말을 하지 못했다. 도망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으음, 옷은…….”
한쪽 바지가 찢어져 있고, 짧은 머리를 보니 군인인 것 같았다.
“저쪽 부대에서 나왔나?”
“…….”
이대강 일병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상처 난 허벅지를 봤다.
“다쳤어?”
“……네.”
이대강 일병이 작게 대답했다.
“다쳤구먼. 이리와.”
“네?”
“상처는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이리 들어와 소독부터 하게. 그대로 두면 상처가 덧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대강 일병이 몸을 돌려 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대뜸 말했다.
“나가면 자네 잡혀! 지금 밖에 군인들이 쫙 깔려 있어.”
“…….”
이대강 일병이 그 자리에 멈췄다. 할아버지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 상태로 얼마 못 버텨. 들어와, 상처부터 치료하고 몸부터 녹여. 신고 안 할 테니까.”
이대강 일병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알아. 네 몰골을 보면 딱 눈치를 채지. 게다가 낮에 군인들이 엄청 돌아다니더만.”
“네에…….”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야. 어여, 들어와.”
할아버지는 말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대강 일병은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그냥 도망을 칠 것인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따라 방에 들어갈 것인지.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대강 일병의 발걸음은 할아버지를 따라 움직였다.
“뭐 하고 있어. 들어오라니까.”
“……네.”
이대강 일병이 힘없이 들어갔다. 방 안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 뭐예요?”
“으응, 병아리 한 마리가 다쳐 있었네.”
“병아리? 어디 병아리 말이우?”
“으응, 임자도 보면 알아.”
이대강 일병이 나타나자, 할머니의 표정이 살짝 놀랐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귀여운 병아리네. 이리 들어와요.”
이대강 일병이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할머니에게 말했다.
“임자, 거기 약통 좀 가져다주구려.”
“약통요?”
할머니는 그제야 이대강 일병의 허벅지를 봤다. 그곳에 피가 흐르고, 다친 것이 보였다.
“아이고, 많이 다쳤네. 가만히 있어 봐요.”
할머니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꾸부정한 자세로 약통을 가지고 왔다.
“여기 있수.”
“그리고 임자 밥 남은 거 있어?”
“걱정 마시구려. 아마 한 그릇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