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2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95)
“어디 가더라도, 꼭 나에게 말하고!”
“네. 한 상병님.”
이세강 이병이 대답했다.
그렇게 소대원들은 각 종교 활동 줄에 줄을 섰고, 잠시 후 일지를 든 당직사병이 나왔다.
“분류 다 끝났어?”
“네.”
“불교 몇 명이야? 성당은? 교회는?”
당직사병이 일일이 인원 체크를 물어봤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한번 체크를 한 뒤 보내주었다.
“잘 다녀와라. 복귀하면 상황실에 인원 보고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 길로 종교 활동을 하는 인원들이 줄을 맞춰서 떠났다. 이세강 이병은 성당으로 가는 줄에 서서 한태수 상병과 함께 움직였다.
한편 그 시각 오상진은 장석태 중위와 함께 있었다. 장석태 중위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그리 좋습니까?”
“말해 뭐 합니까. 너무 좋습니다.”
“네, 쭉 좋으십시오.”
오상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 피식 웃었다. 오상진이 이렇듯 일요일 아침 장석태 중위와 함께 있는 이유는 전날 장석태 중위가 관사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똑똑똑!
오상진은 오랜만에 토요일을 관사에서 지냈다. 토요일엔 한소희 집안이 제삿날이라 일요일에 데이트를 하기로 해서였다.
“누구십니까?”
“오 중위. 접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장석태 중위였다.
“장 중위님?”
“네, 맞습니다.”
오상진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 앞에 어두운 표정의 장석태 중위가 서 있었다.
“장 중위님!”
“오 중위.”
“아니, 여긴 어쩐 일로…….”
“나 들어가도 돼?”
“아, 네에. 들어오십시오.”
오상진이 자신의 관사로 장석태 중위를 들였다. 장석태 중위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오상진이 그 앞에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석태 중위가 고개를 들었다.
“오 중위. 내일 뭐 합니까?”
“내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가 있죠.”
“우와, 완전 부럽다.”
“네?”
오상진은 뜬금없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장석태 중위는 진심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습니까?”
“사실 은지 씨가 저랑 안 놀아줍니다.”
“네?”
“바쁘다고 이리 빼고 저리 빼고 그럽니다. 그래서 말이데, 오 중위.”
“네.”
“나 좀 도와줄 수 있습니까?”
“뭘 말입니까?”
장석태 중위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박은지와 첫 만남 이후로 거의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오상진에게 SOS를 치는 것이었다.
“좀 도와주십시오. 진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고 싶습니다.”
“그, 그거야 장 중위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알아서 했죠. 당당하게 사귀자고도 했고. 그리고 몇 번이나 얼굴 좀 보자고도 했고. 신문사까지 찾아도 가 보고…….”
장석태 중위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곧바로 우울 모드로 들어갔다.
“하아, 그런데 제대로 얼굴을 본 것은 첫 만남 때뿐이었습니다.”
“그거야 기자 특성상…….”
“아무래 바빠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답니까? 커피 마실 시간도 없답니까? 아무튼 섭섭합니다.”
“그런데 두 분 사귀기로 한 것은 맞습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석태 중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네. 제가 사귀자고 하니까 아직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벌써 말입니까?”
“딱 보고 맘에 들면 사귀자고 하지 않습니까?”
오상진이 살짝 당황했다.
‘뭐지? 그래도 좀 더 만나보고 결정을 하지……. 너무 성급했네.’
오상진의 생각이었다. 물론 박은지도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 이후 몇 번 전화 통화를 했고, 장석태 중위가 사귀자고까지 했다. 그때 박은지가 든 생각은 ‘뭐지? 금사빠인가?’ 그런 생각이었다.
사실 박은지의 성격은 신중한 편이었다. 사람을 오랫동안 진중하게 보고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장석태 중위는 딱 첫눈에 반하면 그냥 들이대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박은지가 살짝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에 장석태 중위가 안달이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어떻게 합니까?”
“그건 장 중위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우와! 너무하시네. 소개를 시켜줬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A/S도 모릅니까.”
“무슨 A/S를 여기서 찾습니까.”
“아무튼 도와줄 겁니까, 말 겁니까?”
장석태 중위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그러자 금세 장석태 중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건 아니고, 내일 여자 친구 만나기로 했죠?”
“네.”
“은지 씨가 나랑 단둘이 데이트를 안 하려고 하니까, 커플 데이트 합시다.”
“네에? 커플 데이트 말입니까?”
오상진은 커플 데이트라고 말을 하자, 불현듯 한대만 커플과 데이트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한소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무튼 커플 데이트는 지긋지긋해요.
그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커플 데이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으음, 소희 씨가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데 저렇듯 도움을 요청하니.’
오상진은 잠깐 고민을 했다. 장석태 중위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하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중위, 응? 부탁해. 오 중위…….”
“네네, 그럼 일단 물어는 보겠습니다.”
“지금 빨리 전화해 보십시오. 어서 말입니다.”
“여기서 말입니까?”
“저 지금 급합니다.”
“만약에 여자 친구가 안 된다고 하면 진짜 안 되는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서, 어서 해보십시오.”
오상진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제사를 지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오상진이 휴대폰을 가져와 전화를 걸었다. 오상진은 통화 연결음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소희 씨는 분명 거절할 텐데…….’
통화 연결음이 한참이 지난 후 한소희가 받았다.
-네, 상진 씨.
“네, 소희 씨. 사실 말이에요. 장 중위님이…….”
오상진은 앞에 눈을 반짝이는 장석태 중위를 보며 얘기를 꺼냈다. 한소희는 모든 얘기를 듣고, 입을 열었다.
-그때 봤던 장 중위님하고, 박 기자님이랑 둘이 잘 안 되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단 말이죠?
“네. 소희 씨. 아무래도 힘들겠죠?”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한소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왜요?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요?”
-네, 같이 해요. 커플 데이트.
“진심으로 하는 말이죠.”
오상진이 재차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한소희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박은지란 그 여. 자. 친. 구 분한테 아직도 마음이 남아 있는 건 아니죠?
“에이, 아닙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그런데 왜 자꾸 물어봐요? 아니면 내 핑계 대고 거절하려고 그래요?
한소희의 눈치기 비상했다.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알았어요. 나 완전 엄청 예쁘게 하고 나가야지.
“네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장석태 중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네, 뭐……. 알았다고 합니다.”
“정말이죠. 그럼 저 은지 씨에게 얘기합니다?”
장석태 중위가 정말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어젯밤 있었던 일이었다.
오상진은 싱글벙글하며 웃는 장석태 중위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아, 이번 주말도 평탄하게 지나가기는 글러 먹은 것 같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세강 이병이 성당에 도착을 했다. 인솔자가 모여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 각자 들어가서 자리에 앉고. 다들 알겠지? 예배 다 끝나고 나면 어디들 가지 말고, 바로 이 자리에 모인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들어가자.”
“네.”
장병들이 우르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 있던 이세강 이병도 들어가며 눈동자를 굴렸다.
‘형은 왔나?’
하지만 성당 내부에는 아직 썰렁했다. 충성대대가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야, 여기 앉자!”
한태수 상병이 자리를 잡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6명이 앉아도 될 긴 나무의자였다.
“세강이 들어가.”
“이병 이세강. 네.”
이세강 이병이 관등성명과 함께 긴 의자 끝으로 갔다. 그다음이 한태수 상병이고, 그다음이 강태산 이병이었다.
강태산 이병도 성당에 처음 와 보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오, 여기가 성당이구나.”
이세강 이병 역시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과 달리 이대강 일병을 찾고 있었다.
‘아직 안 온 모양이네. 그래, 형만 확인하면 돼. 물론 말도 했으면 좋겠지만…….’
이세강 이병이 살짝 굳어진 얼굴로 어제 오상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오상진은 이대강 일병이 성당에 나온다는 말을 전해주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이세강 이병을 불렀다.
“참, 세강아.”
“이병 이세강.”
“내일 성당에 가면 분명 형을 볼 거야.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네, 말씀하십시오.”
오상진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너의 형하고 너는 다른 부대다. 그러니까, 절대 사적으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멀리서 얼굴만 보는 거야. 네가 하도 형을 걱정하니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거야. 소대장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약속한 거다.”
“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고 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이세강 이병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을 시켰다. 그런 이세강 이병이기에 일단 형의 위치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고개를 크게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한태수 상병이 물었다.
“세강아, 왜 그래? 누구 아는 사람있어?”
“아, 아닙니다.”
이세강 이병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태수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자매님 찾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는데 자매님 없다. 그러니 실망하지 마라.”
“진짜 아닙니다.”
이세강 이병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 있던 강태산 이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상병님.”
“왜?”
“진짜 자매님 없습니까?”
강태산 이병도 궁금하긴 궁금한 모양이었다. 한태수 상병이 피식 웃었다.
“자식이……. 너 관심 없다며.”
“그냥 진짜 궁금해서 그럽니다.”
“없어. 됐냐?”
“넵!”
강태산 이병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는 한태수 상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다시 10여 분이 흘렀다. 그때 성당 안으로 어떤 부대가 들어왔다.
우측 긴 의자에 그들이 하나둘 착석하며 앉았다. 이세강 이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앉은 사람 중에 어디서 많이 본 뒤통수가 있었다. 이세강 이병은 본능적으로 저 뒤통수가 형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형이다.’
이세강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잠시 주위에 있던 고참들을 의식하며 그 뒤통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형! 고개 돌려. 형! 형!’
이세강 이병이 강한 눈빛으로 이대강 일병의 뒤통수를 봤다. 혹시나 자신의 눈빛 때문에 고개를 돌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세강 이병의 시선을 느꼈을까? 이대강 일병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