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2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94)
오상진의 말을 듣고 박중근 중사가 슬쩍 얘기를 꺼냈다.
“그럼 제가 몰래 한번 부사관에게 말해서 얼굴 보게 해봅니까?”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만들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오상진은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대강 이병 내무실에 소문이 나면 군 생활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죠?”
박중근 중사도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오상진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이번 주말 종교 행사 가죠?”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박 중사, 그거 하나만 알아봐 주십시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이대강 일병 종교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순간 박중근 중사도 바로 깨달았다.
“아, 종교 행사에서 우연히 만나게 해주자는 말씀이시죠.”
오상진은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박중근 중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바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박중근 중사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며 잠깐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싶더니 이내 휴대폰을 넣고 오상진에게 다시 다가왔다.
“성당이라고 합니다.”
“성당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요일 아침.
1소대 내무실의 몇몇 고참들이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있었다. 이제 병장이 된 이해진 병장이 입을 뗐다.
“자, 종교 행사 갈 사람 손.”
강태산 이병이 활동복 차림으로 말했다.
“종교 행사 꼭 가야 합니까?”
최강철 일병은 어느새 전투복으로 환복한 후 말했다.
“왜? 내무실에만 있을 거야? 난 너 때는 종교 행사 가는 것이 좋던데.”
“저는 별로 종교 행사 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교회 갔는데 지겨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맛난 것 주잖아.”
“에이, 고작 초코파이 하나 말입니까? 전 됐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강철 일병이 피식 웃었다.
“자식이, 그래도 너 때는 잘 못 먹는 거잖아.”
“어차피 휴가 나갈 때는 외박 때 실컷 먹지 않습니까. 전 괜찮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식이 말하는 보소. 그래, 정 가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는 이런 날 부대를 벗어나 콧바람이라도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전 그냥 내무실에서 가만히 쉬는 것이 좋습니다. 정 콧바람을 맡고 싶으면 건물 밖 휴게실로 가면 됩니다.”
“그래. 넌 그렇게 해라.”
최강철 일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구진모 상병이 입을 열었다.
“잘됐다! 태산이 넌 그냥 부대에 있어라. 아니, 아예 앞으로도 종교 행사 갈 생각을 하지 마.”
“네?”
“아니, 절에는 가지 마라.”
“절은 왜입니까?”
강태산 이병이 물었다. 최강철 일병도 궁금증이 생기며 구진모 상병을 봤다. 구진모 상병은 막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냥 누가 생각나서 말했다.”
“누구 말입니까? 갑자기 궁금증이 생기게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고참들은 다 아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최강철 일병도 생각이 났다.
“혹시 대철이 말하는 겁니까? 절에 갔다가 전투모 날아가서 탈영하려고 했던…….”
“훗, 맞아. 그 녀석 잘 있으려나?”
구진모 상병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강태산 이병이 슬쩍 이세강 이병에게 갔다. 이세강 이병도 종교활동을 위해 전투복으로 환복한 상태였다.
“세강아.”
“이병 이세강.”
이세강 이병의 큰 목소리에 강태산 이병이 움찔했다. 내무실 고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모였다.
강태산 이병이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고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각자 볼일을 봤다.
강태산 이병이 조용히 입을 뗐다.
“야, 나랑 얘기할 때는 관등성명 작게 대.”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너도 종교 활동 가게?”
“네. 그렇습니다.”
“어디 가려고?”
“저는 지난주에 절에 갔습니다.”
“아, 너 불교야?”
“아닙니다.”
“그럼?”
“무교입니다.”
“무교? 그런데 절에 가?”
강태산 이병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이세강 이병이 미소를 지었다.
“혹시라도 절에 가면 형이 오지 않았을까 해서 말입니다.”
“아, 맞다. 너희 형. 공병대대에 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종교만 세 개나 되는데 무슨 수로 너희 형을 찾으려고? 어디로 올 줄 알고 말이야. 무슨 찍기도 아니고.”
“그냥 한 곳만 계속 가다 보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도 불교에 가 볼까 합니다.”
이세강 이병이 담담히 말했다. 강태산 이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야, 가지 마. 뭔 재미로 그래. 그냥 나랑 쉬자.”
“네?”
“나랑 쉬어. 내가 재미나게 해줄게.”
강태산 이병은 자신의 후임이 들어 온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같이 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PX에서 맛난 거 사 줄게.”
“어, 그게…….”
이세강 이병은 당황했다. 아무리 강태산 이병이 같은 이등병이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고참이었다.
이세강 이병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자 최강철 일병이 다가왔다.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너 PX는 갈 수 있냐? 고작 이등병이?”
“어, 그게…….”
강태산 이병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강철 일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최 일병님께서 데려다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어라? 인마, 나도 종교 활동 가! 그리고 이제 일병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PX를 가. 그것도 너희들을 데리고? 뒈지게 욕먹을 일 있냐?”
“와, 최 일병님도 PX 못 갑니까?”
“당연하지. 아마 일병 말호봉쯤 되어야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그렇습니까?”
강태산 이병이 잔뜩 실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강철 일병이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괜히 세강이에게 바람 넣지 말고 얌전히 내무실에서 쉬어라.”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그때 내무실 문이 열리며 오상진이 나타났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오상진은 환한 얼굴로 입을 뗐다.
“주말 잘 쉬고 있냐?”
이해진 병장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충성.”
“그래.”
오상진이 마주 경례를 해줬다.
“지금 종교 행사 갈 준비 중이냐?”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쭉 둘러보다가 강태산 이병을 봤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넌 왜 활동복 차림이냐? 종교 활동 안 가?”
“네. 내무실에서 쉬고 싶습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넌, 안 돼! 꼭 종교 활동을 가야 해.”
“네? 왜 그래야 합니까?”
강태산 이병이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차분하게 입을 뗐다.
“태산아, 군 생활 열심히 하려면 종교 활동도 하고 그래야지. 이것도 다 군 생활의 일부고, 추억이야. 그러니까 너 오늘 성당 가!”
“하아…… 왜 강요하십니까.”
강태산 이병이 잔뜩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등병이 왜 이래?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터벅터벅 자신의 관물대로 가서 전투복으로 환복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이세강 이병을 봤다.
“세강아.”
“이병 이세강.”
“너도 성당 가라.”
“저는 불교…….”
“세강아.”
“이병 이세강.”
“성당 가, 알았지?”
“…….”
이세강 이병은 말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성당을 가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진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자신이 말을 다 했다고 하며 내무실을 나갔다. 그 뒤에 이세강 이병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소대장님.”
“왜?”
“저 꼭 성당 가야 합니까?”
“성당 가기 싫어?”
“네. 저 절에 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절에서 형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형도 무교고, 저도 무교인데. 아무래도 절이 가장 무난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강아. 그렇지 않아도 소대장이 알아봤다. 너희 형 어디로 가는지 말이야. 이번 주에 성당 간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세강 이병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까?”
“소대장이 거짓말을 하겠냐!”
“성당…….”
이세강 이병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오상진이 입을 뗐다.
“이 얘기는 함부로 하지 마라. 너 형 만난다고 떠들고 다니면 좀 그렇잖아. 무슨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거기 가서 몰래 만나.”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이병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내무실로 들어왔다. 이해진 병장이 다가왔다.
“갑자기 왜 내무실을 나가?”
“아, 소대장님과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얘기?”
“네. 성당에 가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 너 절에 간다며.”
“그런데 아무래도 성당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성당? 알았다.”
이해진 병장은 그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구진모 상병이 바로 끼어들었다.
“야, 왜 갑자기 바꿨어. 성당 가면 예쁜 자매님이 계신다고 해?”
“아, 아닙니다.”
“아니야? 에이, 예쁜 자매님은 우리 교회에 많아. 우리 교회로 와.”
그러자 강태산 이병이 곧바로 이세강 이병에게 귓속말을 했다.
“가지 마, 가지 마. 한 명도 없어.”
구진모 상병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너 이씨……. 배신 때리고 그러는 거야?”
순간 강태산 이병이 당황했다.
“저 아무런 말도 안 했습니다.”
“이놈 봐라, 바로 태세 전환하네.”
“진짜 아닙니다.”
“알았다, 아무튼 신병. 넌 성당 말고 교회 가자.”
그러곤 곧바로 강태산 이병이 조용히 말했다.
“절대 가지 마. 저런 식으로 전도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줘.”
구진모 상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야, 강태산. 다 들린다.”
“이병 강태산, 전 아무런 말도 안 했습니다.”
“저 자식이…….”
내무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이해진 병장이 피식 웃으며 이세강 이병에게 물었다.
“너 정말 성당으로 갈 거야?”
“네. 꼭 성당 가고 싶습니다.”
“알았다.”
이해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한태수 상병을 봤다.
“태수야.”
“네.”
“신병 잘 챙겨라.”
“알겠습니다.”
“세강이는 한태수 상병 말 잘 듣고 다녀오고.”
“이병 이세강.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종교 행사 갈 사람은 어서 빨리 다녀오고, 내무실에서 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종교 행사에 갈 사람들이 하나둘 내무실을 빠져나갔다.
소대원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다른 중대에서도 종교 행사를 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불교 이쪽으로!”
“성당은 이쪽으로 모이십시오.”
“교회는 이쪽입니다.”
각 종교로 갈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한태수 상병이 이세강 이병을 데리고 성당 쪽 줄로 가서 섰다.
“세강아.”
“이병 이세강.”
“지금부터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라. 함부로 단독행동은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