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22화
45장 까라면 까야죠(91)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물대를 확인했다. 이해진 상병이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더플백에서 빨래할 것과 A급은 미리 분류를 해서 관물대에 정리를 해뒀습니다.”
“빨래는?”
“오후에 다 끝내놨습니다.”
“그래, 잘했다.”
오상진이 환하게 미소를 짓고는 이해진 상병을 바라봤다.
“지금 신병과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그래, 다들 쉬고 있고. 이세강.”
“이병 이세강.”
“넌 소대장 따라오고.”
이세강 이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활동복 차림에 활동화를 신고 오상진 뒤를 따라갔다. 오상진은 이대로 PX로 가도 되었지만 시끄러울 것 같아 상담실로 들어갔다.
“여기 앉아.”
“알겠습니다.”
이세강 이병이 의자에 착석했다. 오상진은 콜라 캔을 꺼내 내밀었다.
“자, 마셔라.”
이세강 이병의 눈이 커졌다. 신교대에 있을 때 콜라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대 배치를 받고, 콜라를 봤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러냐. PX 가면 널린 것이 콜라인데.”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이세강 이병은 친구들이나, 군대 다녀온 형들에게 많이 들었다. 이등병 때와 일병 때는 PX는 꿈도 꾸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이다.
“PX 가고 싶을 때 고참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데리고 가줄 거야.”
오상진도 그것을 눈치채고 바로 알려주었다. 이세강 이병의 얼굴이 펴졌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자, 어서 마셔.”
“네, 감사합니다.”
이세강 이병이 뚜껑을 땄다.
치익, 치이이익.
탄산이 빠지는 소리가 그렇게 맑고 경쾌한 소리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이세강 이병은 살짝 떨리는 두 손으로 콜라 캔을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목을 따끔하게 쏘는 탄산과, 달달한 맛, 무엇보다 대뇌를 관통하는 짜릿한 느낌은 여태껏 먹어본 콜라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와…….”
이세강 이병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맛있냐?”
이세강 이병이 움찔하며 바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병 이세강. 완전 맛있습니다.”
“상담실이야. 목소리 크게 하지 않아도 돼.”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이병이 방금 전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자, 그럼 면담을 해볼까?”
오상진의 말에 이세강 이병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오상진은 일단 자신의 다이어리를 펼쳤다. 미리 이세강 이병의 신상명세서 확인은 끝난 상태였다.
“어디 보자, 너희 형도 군인이네.”
“네.”
“공병대대? 어라? 우리 사단 공병대대네.”
“그렇습니다.”
“으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세강 이병은 조부모 밑에서 컸다. 어머니는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머니 밑에서 여태껏 살아온 것이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구나.”
“…….”
이세강 이병은 말없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할머니 밑에서 아주 잘 자랐네. 밝은 표정 보기 좋다.”
“네. 할머니도 잘해주시고, 무엇보다 한 살 형이 저에게 잘해줬습니다. 어디 밖에 나가서 기죽지 말라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그래, 형이 잘 가르쳤네. 그런데 형 이름이…….”
“이대강입니다.”
“이대강, 현재 공병대대 일병으로 있네.”
“네, 그렇습니다.”
이세강 이병은 형의 얘기를 하며 기분 좋아했다.
“그런데 형이 군대를 늦게 갔나 봐.”
“네. 1년 연기하고 갔습니다.”
“왜?”
오상진의 물음에 이세강 이병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사실 할머니 혼자 저희 두 형제를 키우셨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고, 살길이 막막해서 형이 일찍 돈을 벌었습니다. 군대를 연기한 것도, 자신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할머니께서 쓰실 생활비를 마련해 놔야 한다고…….”
이세강 이병은 그 뒷말을 잇지 못했다. 오상진은 거기까지 들어도 이해가 되었다.
“그럼 너는 왜 바로 입대를 했어? 형이 제대하고 입대를 하지?”
“사실 저도 빨리 군대를 가서 형이랑 같이 제대를 하고 돈을 버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 입이라도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형이 1년 동안 벌어놓은 것과 할머니가 조금씩 일하는 걸 합치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세강 이병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기특한 생각을 다 했네.”
“아닙니다.”
“그럼 형도 너 군대 온 거 알고 있어?”
“지금은 아는데,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형 몰래 지원했습니다.”
“그럼 형한테 엄청 혼났겠네.”
“네. 지원했다고 욕 바가지로 얻어 먹었습니다.”
이세강 이병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부대는 둘러보니까, 어때?”
“아직 부대는 다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거야 차차 하면 되고, 오늘 첫날인데 벌써부터 너 괴롭히는 고참은 없지?”
“네, 다들 잘해줍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소대장에게 말하고. 부담 갖지 말고 말이야.”
“넵!”
“그래, 앞으로 소대장이랑 잘해보자.”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다이어리를 덮었다.
“오늘 면담 끝! 내무실로 가자.”
“네.”
이세강 이병은 서둘러 남은 콜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빈 캔을 들고 어찌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쓰레기통이…….”
“이리 줘. 소대장이 정리할 테니까.”
“아, 아닙니다.”
“괜찮다니까.”
오상진이 콜라 캔을 뺏은 후 상담실 문을 열었다.
“내무실로 가자.”
“넵!”
오상진은 상담실 문을 잠그고 이세강 이병을 내무실에 데려다줬다.
그 후 퇴근하려고 나가는 길에 박중근 중사를 만났다.
“면담은 잘 끝나셨습니까?”
“네. 그런데 저 친구가 조손가정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조손가정이었구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조심해야겠습니다.”
박중근 중사도 혹시라도 부모님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정보는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 박 중사님.”
“네. 소대장님.”
“이세강 이병 형이 저기 위에 공병대대에 있다고 합니다.”
“네? 형이 말입니까?”
“네, 또 어떻게 같은 사단으로 왔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으음, 나중에 한번 만나게 해줘야 할 듯합니다.”
“안 그래도 공병대대에 제가 아는 부사관이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잘되었습니다.”
오상진이 밝게 웃었다. 박중근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만간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네. 그리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보다 지금 퇴근하시는 길입니까?”
“네.”
“그럼 같이 가시죠.”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옆을 박중근 중사가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주차장으로 갔다.
금요일 오후, 오상진은 언제나 그랬듯 한소희와의 데이트에 살짝 들떠 있었다.
“오늘은 뭐 하고 놀지.”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며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오늘은 뭐할까요?
잠시 후 답장이 날아왔다.
-상진 씨, 오늘은 우리끼리 말고 소은이랑 같이 놀면 안 될까요?“
-소은이요?
-네. 소은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괜찮아요?
-물론이죠. 예쁘고 귀여운 소은이를 보는데.
-알겠어요. 제가 중대장님께 말씀드려볼게요.
오상진은 문자를 다 보내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로 갔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철환 1중대장이 노트북으로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 왔어?”
“네, 중대장님. 혹시 오늘 소은이 누가 데리러 갑니까?”
“아, 맞다. 너 얘기 잘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환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했다.
“안 그래도 오늘 내가 데리러 가야 하거든.”
“오늘도 중대장님이십니까?”
“그리 됐다. 장모님 몸이 안 좋아서, 네 형수 금요일마다 장모님 데리고 병원 가거든. 한동안은 그래야 할 것 같다.”
“아, 그렇습니까? 많이 안 좋으십니까?”
“그냥 발목을 조금 다쳤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쉽게 치료가 되시지 않네. 뭐, 좋아지시겠지.”
“그러시구나. 아무튼 오늘은 저희가 소은이 데리러 가면 안 됩니까?”
“소희 씨랑?”
“네.”
“가도 좋긴 한데……. 으음, 너희들 이번에도 사고 치는 거 아니지?”
“에이, 아닙니다.”
“농담이야, 농담! 자식이 정색하기는. 그럼 네가 오늘 소은이 밥도 챙겨 줄래? 아니다, 같이 갈래?”
“중대장님이랑 말입니까?”
“왜 싫어?”
“그, 그건 아니지만…….”
“에이, 싫은 눈치네. 됐어, 그럼.”
김철환 1중대장이 살짝 삐진 척을 했다. 오상진이 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그제야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김철환 1중대장이 씨익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어쭈, 딱 퇴근 시간이네. 준비하고 가자.”
“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주자창에서는 오상진 차 한 대만 부대를 빠져나갔다.
오상진은 한소희와 만날 장소에 도착을 했다. 저쪽에서 한소희가 오상진의 차량을 확인하고 뛰어왔다.
“상진 씨!”
오상진이 문을 열어주자, 한소희 냉큼 조수석에 올라탔다.
“상진 씨, 보고 싶었어요.”
한소희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애교를 부렸다. 그런데 오상진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네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요? 정말요?”
“네. 물론이죠.”
“아잉, 좋아라.”
한소희가 오상진이 팔에 안기며 좋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뽀뽀를 하려는데 오상진이 뒤로 얼굴 뺐다. 순간 한소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뭐예요?”
“아, 아니, 그게…….”
오상진이 당황한 얼굴로 뒷좌석으로 눈짓을 했다. 한소희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네? 왜 그래요?”
“아니, 소희 씨 뒤에…….”
“뒤에 뭐요?”
한소희가 고개를 돌리자 뒷좌석에 김철환 1중대장이 앉아 있었다. 많이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제수씨. 하핫, 하하하…….”
한소희가 살짝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환하게 하며 인사했다.
“어머나, 우리 중대장님께서 계셨네. 민망해라. 호호호. 그런데 중대장님.”
“네?”
“고개 살짝만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아직 마무리를 못 지은 것이 있거든요.”
“아, 그, 그러시죠.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한소희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상진 씨 이리와요.”
“저저, 소희 씨…….”
“아잉…….”
이런 소리가 김철환 1중대장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좋을 때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그런데 자꾸만 오상진이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은 채 김철환 1중대장이 말했다.
“상진아, 빨리 끝내라. 중대장도 생각해 줘야 할 것 아니냐.”
“죄, 죄송합니…….”
쪽!
그사이 한소희가 기습적으로 오상진의 입에 뽀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