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21화
45장 까라면 까야죠(90)
“충성.”
“오오, 그래. 지금 들어오냐.”
“네. 그렇습니다.”
다들 내무실에서 장구류를 벗어서 잘 챙겨 놨다. 오상진이 이해진 상병을 봤다.
“해진아.”
“상병 이해진.”
“오늘 신병 왔다.”
“와아아. 신병 왔습니까?”
“대박! 이번에는 의외로 빨리 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오상진에게 소대원들이 질문을 와르르 쏟아냈다.
“이것들아, 한 명씩 물어봐. 어쨌든 지금 신고식 끝나고 중대장님과 면담 중이니까, 면담 끝나고 자대배치 받을 거야. 이번 신병은 아주 똘똘한 놈이 온 것 같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입니까?”
“요새 계속 신병들이 이상한 놈들만 와서…….”
구진모 상병이 힐끔 강태산 이병을 봤다. 강태산 이병이 움찔했지만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이은호 이병은 말없이 자기 일만 묵묵히 했다.
“괜찮아. 이번에는 소대장도 맘에 들더라.”
“와, 그러면 됐습니다.”
“아무튼 해진이가 신병 관리 잘 해주고.”
“네.”
오상진이 강태산 이병을 봤다.
“후임 왔다고 너무 쪼우지 말고.”
“이병 강태산. 아닙니다. 엄청 잘해줄 겁니다.”
“그래, 제발 좀 그래라.”
오상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언제나 저랬다.
언제나 신병이 들어오면 잘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런 말을 했던 게 무색하게 갈구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오상진도 그런 것이 없다면 이등병들은 스스로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래, 고생했고. 신병 오면 잘 좀 신경 써라.”
“네, 알겠습니다. 충성.”
오상진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행정병 이승훈 상병이 데리고 온 신병을 받았다.
“신병 왔습니다.”
“오오, 신병 왔냐?”
“어디 보자!”
이세강 이병은 고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이해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왔다. 1중대 1소대에.”
이해진 상병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였다. 이세강 이병은 잠깐 고민했다. 악수를 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해. 고참 손 민망하게 할 거야.”
“이병 이세강. 아닙니다.”
그러면서 냉큼 악수를 했다. 이해진 상병이 다시 말했다.
“어쨌든 환영한다. 아, 은호야.”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돌려 은호를 봤다.
“이병 이은호.”
“막내 더플백 챙겨라.”
“네. 알겠습니다.”
이은호 이병이 이세강 이병에게 갔다. 이제 이은호 이병도 다음 주부터 일병을 달 터였다.
“더플백 줘.”
“이병 이세강.”
이세강 이병은 곧바로 더플백을 내렸다. 그것을 받아 든 이은호 이병이 더플백을 한곳에 뒀다. 이해진 상병이 이세강 이병을 데리고 차우식 병장에게 갔다.
“자, 이분이 바로 우리 내무실 왕고! 보름 후면 전역하시는 분이다.”
차우식 병장이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야, 됐어. 나는 곧 휴가 가는데 뭘. 난 그냥 모르는 사람 취급해.”
차우식 병장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구진모 상병이 박수를 치며 슬쩍 말했다.
“와, 차 뱀. 김우진 병장님의 빈자리를 확실히 채워주고 계십니다.”
“뭐야? 칭찬이야, 흉이냐?”
“에이, 물론 칭찬이지 말입니다.”
구진모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우식 병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믿어도 돼?”
“믿으십시오.”
“그런데 왜 난 영 믿음이 안가지.”
“에잇! 차 뱀. 그건 저에 대한 실례입니다. 믿으십시오.”
구진모 상병이 단호하게 말했다. 차우식 병장은 별다른 얘기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모르겠다. 난 그냥 쉬련다.”
“10분 후에 점심 먹으러 가야 합니다.”
“그럼 그때 깨워.”
차우식 병장은 아예 뒤로 벌러덩 누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뭐. 왕고만 알면 되니까. 나머지 소대원들은 차차 알아가면 돼. 그리고…….”
이해진 상병이 소대원들을 쭉 훑었다. 그러다가 이은호 이병에게 시선이 갔다.
“은호가 신병 이것저것 신경 좀 써라.”
“이병 이은호. 내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이세강 이병에게 말했다.
“은호에게 가 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은호에게 물어보고.”
“이병 이세강.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이병이 후다닥 이은호 이병에게 뛰어갔다. 이해진 상병이 시계를 확인했다.
“자, 십 분 후면 점심시간이니까. 대충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갈 준비하자. 그리고 은호야, 신병 수저 챙겨줘라.”
“네, 알겠습니다.”
이은호 이병은 재빨리 숨겨둔 수저를 하나 빼네 이세강 이병에게 줬다.
“자, 이거 챙겨! 이제 앞으로 넌 이거 하나로 제대할 때까지 쓰는 거야. 절대 수저 잊어버리지 마라.”
“이병 이세강. 네, 알겠습니다.”
이세강 이병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은호 이병이 움찔하며 작게 말했다.
“야, 나랑 있을 때는 목소리 낮춰.”
이은호 이병은 괜히 주위에 있는 고참들의 눈치를 살폈다.
구진모 상병은 수저를 챙겨서는 실실 웃으며 신병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괜히 친한 척을 하며 어깨동무를 했다.
“이, 이병 이세강.”
이세강 이병이 바짝 긴장한 채로 관등성명을 댔다. 구진모 상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혼자냐?”
“네?”
이세강 이병은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봤다.
이세강 이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야, 인마 잘 못 듣기는, 들었잖아. 너희 집에 너 혼자냐고.”
“호, 혼자는 아닙니다.”
“그래?”
구진모 상병이 얼굴이 환해졌다.
“누나 있어?”
“누나는 없습니다.”
“누나가 없어? 어떡하지?”
구진모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동생도 없어?”
“……네, 없습니다.”
“아놔, 젠장…….”
구진모 상병은 어깨에 두르고 있던 손을 바로 뗐다.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세강 이병은 영문도 모른 채 그런 구진모 상병을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정말 너 어떡하면 좋냐.”
“…….”
구진모 상병이 이세강 이병 앞에 섰다. 손으로 턱을 괴며 유심히 바라봤다. 이세강 이병 역시 진지한 얼굴로 구진모 상병을 봤다.
“하아, 신병.”
“이, 이병 이세강.”
“이제 너 군 생활이 좀 고달파질 거다.”
“네?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누나나, 여동생이라도 있어야지. 그래야 너의 군 생활이 참 편안할 텐데…….”
구진모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세강 이병의 얼굴이 더욱 잿빛으로 변했다.
“어, 어떻게 합니까?”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네. 너 스스로 살아날 길을 찾아야지.”
구진모 상병이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럴수록 이세강 이병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 둘의 대화를 듣던 주변 소대원들은 고개를 돌린 채 어깨가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크크크크…….”
“킥킥킥, 미치겠다.”
“구 상병님 완전 대박입니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크크,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때 이세강 이병의 눈이 반짝였다.
“저, 저 여자 친구는 있습니다.”
순간 구진모 상병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소대원들의 시선 역시 모두 이세강 이병에게 향했다.
“야, 그런 건 진즉 말해야지.”
구진모 상병이 다시 이세강 이병 옆에 앉았다. 이내 부드러운 얼굴로 변하며 이세강 이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식, 넌 위기의 순간에 다시 살아난 거야. 좋았어, 다시 한번 너의 앞길 창창한 군 생활에 대해서 토의해 볼까?”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질문! 여자 친구 예쁘냐?”
“어…….”
이세강 이병이 말을 잇지 못했다. 구진모 상병이 기대감 어린 눈동자로 물었다.
“사진은 가지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인마. 퍼뜩 내놔야지. 어서 꺼내 봐.”
구진모 상병이 이세강 이병을 닦달했다. 이세강 이병이 주춤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 사진 한 장을 꺼내 구진모 상병에게 줬다.
“여, 여기 있습니다.”
“…….”
사진을 확인한 구진모 상병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사진과 이세강 이병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라. 진짜 네 여자 친구 맞냐?”
“네. 맞습니다.”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구진모 상병이 괴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오, 시발 존나 예뻐!”
“네? 진짜입니까? 거짓말하는 거 아닙니까?”
“진짜야!”
“저도 좀 보겠습니다.”
“저도 보여주십시오.”
소대원들이 일제히 다가가 사진을 확인했다.
“와, 진짜네.”
“헐…….”
“시발…….”
소대원들은 부러움 반 질투 반이 섞인 목소리로 이세강 이병을 바라봤다. 구진모 상병이 다시 털썩 자리에 앉아 아주 친근한 말투로 이세강 이병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신병.”
“이병 이세강.”
구진모 상병이 사진을 건네며 말했다.
“너, 앞으로 군 생활 완전히 풀렸다!”
“네?”
“너 새꺄! 이제부터 군 생활 풀렸다고. 축하한다! 하하하!”
구진모 상병은 자신에게도 드디어 해 뜰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세강 이병을 잘 꼬드겨 여자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으면, 여자 친구가 생길지도 모를 거란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하핫! 내가 뒤를 봐줄게. 걱정 마라.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알겠냐!”
“이병 이세강. 네, 알겠습니다.”
“하하하하.”
구진모 상병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던 이해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진모야.”
“상병 구진모.”
“신병 그만 괴롭히고 밥 먹으러 가자.”
“에이, 이 상병님은 제가 언제 신병 괴롭혔다고 그러십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신병 챙겨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알겠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투덜거리며 수저를 챙겼다. 그리고 곧바로 이세강 신병을 챙기며 말했다.
“신병.”
“이병 이세강.”
“밥 먹으러 가자. 어서 일어나.”
“네, 알겠습니다.”
“내가 말이야, 친절히 널 부대 식당까지 안내해 주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구진모 상병이 이세강 이병을 데리고 내무실을 나섰다. 그 뒤를 소대원이 따랐다. 하지만 소대원들 눈빛은 구진모 상병 등에 꽂혀 있었다. 모두들 그의 검은 속내를 알고 있었다.
“쯧쯧, 불쌍하네 신병. 오자마자…….”
“그러게 말입니다. 저렇게 구 상병님에게 시달리다가 사고 치는 거 아닙니까?”
“아니야. 우리가 잘 챙겨줘야지.”
이제 갓 상병을 단 조영일이 조용히 말했다. 그 뒤에 있는 손주영 일병 역시 안타까운 얼굴로 신병을 바라봤다.
하나 최강철 일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표정이었다.
‘예쁘기는 내 여친이 더 예쁘지. 아, 보고 싶다. 면회 온다고 했는데 언제 오려나.’
최강철 일병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모든 일과가 끝이 난 오상진은 1소대 내무실로 갔다.
“오늘 고생많았다.”
오상진의 목소리에 이해진 상병이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1소대 휴식 중.”
“그래.”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이세강 이병에게 시선이 갔다. 이세강 이병은 오상진의 시선을 받고, 움찔하며 관등성명을 댔다.
“이병 이세강.”
“자식, 오늘 별일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