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1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85)
-가능해. 말해.
“혹시 말이에요. 소은이 다니는 유치원에 철수 아빠, 박 중령님이라고 알아요?”
-박 중령님? 충효대대에 새로 오신 대대장님이시잖아. 그런데 왜?
“그분 사모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잠깐 만나자고 하시네.”
-아니, 왜? 무슨 일로?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는 다소 놀란 상태였다. 김선아가 천천히 설명을 했다.
“으응, 유치원에 대한 기사가 났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학부모들끼리 대책 회의를 하자고 하시네.”
-아, 그런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은 그제야 목소리가 풀어졌다.
“혹시 그 기사 무슨 기사인지 알아요?”
-기사라면 나도 봤어. 은지 씨가 기사를 냈더라고.
“아, 은지가요? 무슨 기사인데요?”
-소은이 담임 선생이 해고를 당한 것 같아. 그래서 그 기사를 쓴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소은이가 선생님이 일 그만둔 것 같다고 그러던데요.”
-자기도 기사를 한번 읽어봐. 아무튼 뭐, 그런 유치원이 다 있는지……. 소은이를 다른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아니, 다른 데 보내자. 그런 원장이 있는 유치원에 우리 착한 소은이를 보낼 수는 없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번 연도는 그 유치원에 다녀야 해요. 다른 유치원을 알아보려고 해도 인원이 다 찼을 거예요.”
-그래? 나야 뭐 그런 쪽으로는 모르니까.
“아무튼 은지가 기사를 썼다는 거죠?”
-그래. 그리고 당신이 가서 잘 한번 얘기를 해봐. 듣기로 박 중령님 사모님이 워낙에 좋으신 분이라고 하니까. 사리분별 확실하시고 말이야.
“네, 알겠어요.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저녁에 얘기해.
“네.”
김선아는 김철환 1중대장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당신한테만 좋은 사람이죠. 괜히 책잡히지는 말아야지.”
전화를 끊으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어? 문자 왔네.”
김선아는 서둘러 그 문자를 확인했다. 김철환 1중대장과 통화하는 사이 철수 엄마로부터 문자가 도착한 것이었다. 문자를 확인한 김선아는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이런, 빨리 움직여야겠다.”
약 2시간 후 김선아는 약속된 장소에 도착을 했다. 김선아가 들어가자 그곳에는 6명 정도 되는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김선아는 그 중 영수 엄마와 알았다. 그 옆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소은이 엄마예요. 제가 좀 늦었어요.”
하지만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왔다.
“아, 소은이 엄마. 왔어요?”
“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네.”
김선아는 환한 얼굴로 다른 어머니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소개를 받았다.
“이쪽은 이 소령님 사모님. 저쪽은 김 대위님 사모님. 최 중사…….”
영수 엄마는 한 중사의 아내였다. 그녀의 소개로 김선아는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그중 유독 눈빛에 날이 서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바로 이 소령의 아내였다.
‘예쁘장하게 생겨서는……. 기분 나쁘네. 늦게 온 주제에 어디서 웃음을 흘리고 다녀.’
이 소령의 아내는 속으로 기분 나쁜 티를 감췄다. 그때 진동 벨이 울렸다.
“어? 우리가 주문한 거 나왔나 보다.”
영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 소령 아내가 제지했다.
“영수 엄마가 가지 말고, 소은이 엄마가 가요. 어차피 소은이 엄마도 주문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주문하는 김에 우리 것 좀 가져다줘요.”
이 소령 아내가 진동 벨을 건넸다. 김선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
김선아가 커피를 받으러 가는 사이 문이 딸랑 하고 열리며 약간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들어왔다. 긴 머리는 뒤로 동여매고, 가냘픈 얼굴에 기품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영수 엄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나, 사모님 오셨어요.”
그 소리에 모든 어머니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소령 아내도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호들갑스럽게 박 중령 사모에게 인사를 했다.
사실 박 중령 사모가 이 소령 아내보다 네 살 어렸다. 그럼에도 계급 때문에 이 소령 아내는 박 중령 사모를 깍듯하게 대했다.
“사모님, 오셨어요.”
박 중령 아내도 환한 얼굴로 말했다.
“준호 엄마도 왔네요.”
준호 엄마가 바로 자신이 앉은 상석의 자리로 철수 엄마를 안내했다. 그런데 철수 엄마는 자리에 앉지 않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그런데 소은이 엄마는 아직 안 왔어요?”
“소은이 엄마 왔어요.”
“어디요?”
“저기요. 지금 주문한 차 가지러 갔어요.”
“커피?”
철수 엄마가 고개를 돌리는데 큼직막한 쟁반에 찻잔을 가득 들고 가지고 오는 김선아를 봤다.
“아니, 저 많은 걸 혼자 들게 하면 어떻게 해요.”
철수 엄마가 한마디를 한 후 김선아에게 갔다.
“소은이 엄마. 그거 이리 줘요.”
“아니에요. 제가 들 수 있어요.”
“나, 철수 엄마. 괜찮으니까, 이리 줘요.”
“사, 사모님. 그럼 더욱 안 되죠.”
“아니야, 잠깐만 기다려 봐요.”
철수 엄마는 곧장 카운터로 가서 쟁반 하나를 더 가지고 왔다.
“나눠서 들어요. 그거 무거워요.”
“괜찮은데…….”
철수 엄마는 막무가내로 김선아가 든 쟁반을 내렸다. 그리고 찻잔을 하나하나씩 옮겨 반으로 나눴다.
“이제 괜찮죠?”
철수 엄마가 방긋 웃으며 쟁반을 들고 갔다. 김선아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요.”
두 사람이 가고, 나머지 사람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특히 준호 엄마의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철수 엄마가 다가오자 바로 표정을 바꿨다.
“어머나, 어떻게 해. 사모님 오시는 거 보느라, 깜빡했네요.”
준호 엄마가 멋쩍게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준호 엄마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
‘또 준호 엄마가 그랬네. 예전에 나한테도 그러더니, 어리고 예쁜 여자에게는……. 아무튼 무슨 시샘이 저리도 많은지.’
철수 엄마는 준호 엄마에게 눈총을 한번 줬다. 그리고 가져온 차를 각자 나눴다. 철수 엄마는 김선아를 보며 입을 뗐다.
“소은이 엄마. 우리 처음 보죠?”
“네. 사모님.”
“에이, 사모님이라고 하지 마요. 그냥 철수 엄마라고 해줘요.”
“그, 그래도…….”
김선아가 살짝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끝까지 밀고 나갔다.
“철수 엄마! 그리고 우리 철수가 소은이를 엄청 좋아하는 거 알고 있죠?”
“그, 그랬나요?”
“그럼요. 철수 그 녀석! 집에 오면 만날 소은이 얘기만 해요. 그래서 살짝 질투가 난 적도 있어요.”
“죄, 죄송해요.”
“죄송할 것이 뭔가 있어요. 그보다 소은이를 봤는데 누굴 닮았는가 했더니, 엄마를 쏙 빼닮았군요. 어떻게 이리도 예뻐요? 연예인해도 되겠어요.”
“과, 과찬이세요.”
김선아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니에요, 진짜에요.”
“그보다 제가 보기에는 사모님께서도 더 예쁘신데요.”
“철수 엄마!”
철수 엄마가 정색하며 말했다. 김선아가 움찔하며 다시 입을 뗐다.
“네, 철수 엄마.”
그러자 철수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에이,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요.”
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사이 준호 엄마의 표정은 더욱더 안 좋아졌다.
‘뭐야, 저 두 사람? 진짜 어이가 없네. 그보다 둘이 너무 친한 거 아냐? 알고 지냈나?’
준호 엄마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보니까, 소은이 엄마는 약간 맹해 보이던데, 그동안 저 두 사람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런 준호 엄마의 생각과 달리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물론 아이들을 통해서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김선아도 갑자기 자기에게 잘해주는 철수 엄마의 행동에 약간 의아해하고 있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지?’
사실 철수 엄마는 그전까지 김선아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남편인 박 중령이 퇴근하면서 얘기를 했다.
“김철환 대위 아내랑 친해?”
“김철환 대위 아내? 그 사람이 누군데?”
“아, 옆 충성대대 1중대장이야.”
“당신 옆 대대 중대장도 알아?”
“안다기보다는 몇 번 얼굴도 봤고, 게다가 김철환 1중대장이면 나름 유명하거든.”
“아아, 그래요?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사람 아내는 왜? 가만 중대장이라면 아내도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겠네.”
“아마 그럴 거야. 당신보다 어릴걸?”
“음, 가끔 모임에 나갔을 때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없었는데.”
“하긴 그렇겠다. 게다가 옆 대대 중대장인데 모임에서 만날 수도 없었겠네.”
박 중령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런데 왜요?”
“아니, 사단에서 재미난 소리를 들어서.”
“무슨 소리요?”
“새로 오신 사단장님께서 김철환 대위를 엄청 챙기시더란 말이지.”
“아, 그래요? 왜요?”
“그건 나도 모르지. 사단장님뿐만이 아니라, 지난번에 보니까, 최익현 국회의원 말이야.”
“아, 최익현 의원님? 나 그분 알죠.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의원님인데요. 차, 차기 대권후보로 불리고 있지 않나요?”
“그래. 그 양반도 김철환 대위와 잘 아는 관계인 것 같더라고.”
“네? 뭐지? 학교가 같은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나중에 혹시라도 김철환 대위 와이프 보게 되면 잘해줘.”
“알았어요.”
철수 엄마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신문을 보게 되었고, 유치원에 확인 전화를 해본 결과 진상을 알게 되었다.
‘소은이 때문에 난리가 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소은이 엄마가 김철환 대위 아내였구나.’
철수 엄마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김선아의 손을 잡았다.
“그동안 맘고생 심했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이 일 때문에 맘고생이 많아요.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지수 엄마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지금까지 원장 선생 체면도 있고, 그래도 우리 애 맡기는 유치원인데 소란 피워 봐야,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동안 쉬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치원이 이럴 줄을 몰랐어요.”
철수 엄마의 말에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맞아요. 저희 애도 당했어요.”
“저희 애도요. 진짜 그때는…….”
그때 일을 떠올리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어머니들도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 철수 엄마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알아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요. 아시다시피 담임 선생이신 안희영 선생께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사모님.”
“이대로 있으면 안 돼요.”
“이제는 우리 엄마들이 똘똘 뭉쳐야 해요.”
철수 엄마도 그것에 동의를 했다.
“네. 정말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나서서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다 같이 유치원에 가서 원장 선생에게 따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