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1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83)
안희영 선생은 박 선생이 구연동화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수를 한 번 보고, 소은이를 한 번 보고 이렇듯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둘이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소은이는 여느 때처럼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소은이는 반 친구들이 무척 좋아해서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역시 우리 소은이는 참 잘 놀아. 나도 저런 예쁜 딸 낳고 싶다.’
안희영 선생이 흐뭇하게 소은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지수가 안희영 선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희영 선생이 움찔 놀랐다.
‘어멋, 지수 눈빛이 왜 저렇게 무서워.’
안희영 선생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곧바로 흔들었다.
‘내가 지금 애 눈빛에 무서워한 거야? 웬일이니.’
안희영 선생은 곧바로 안정을 찾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수야, 왜 그러니?”
“선생님 왜 조금 전에 나 그렇게 봐요?”
“응?”
“왜 자꾸 날 감시해요.”
“감시라니, 잘 놀고 있는지 보는 거지.”
“아무튼 기분 나빠요.”
“알았어. 선생님이 주의할게.”
“흥!”
지수가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안희영 선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쩜 저렇게 엄마랑 똑같은지.’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부원장이 들어왔다.
“안 선생.”
“네. 부원장님.”
“잠깐 나 좀 봐.”
안희영 선생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부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으응, 원장님께서 찾으셔.”
“원장님께서요?”
“응, 사무실로 가 봐.”
“알겠어요.”
안희영 선생이 몸을 돌려 원장실로 가려는데 부원장이 다시 불렀다.
“안 선생.”
“네?”
“원장님 너무 원망하지 마.”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야. 어서 가 봐.”
“네.”
안희영 선생은 뭔가 잔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희영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상에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원장선생이 앉아 있었다.
“원장님 저 부르셨어요?”
안희영 선생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원장선생은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권했다.
“이곳에 앉아요.”
“네.”
안희영 선생이 앉자, 원장선생이 물었다.
“애들은요?”
“잠깐 박 선생님께서 봐 주시고 계세요. 지금 구연동화를 하고 있거든요.”
“아, 잘되었네요.”
“네.”
“차는?”
“아뇨, 괜찮아요.”
안희영 선생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원장선생이 입을 뗐다.
“안 선생, 우리 유치원에서 얼마 동안 있었지?”
“네? 아마 10개월 정도 있었어요.”
“아, 10개월. 안 선생이 유아교육학과 나왔다고 그랬나?”
“네네.”
“그렇구나. 유아교육과 나왔으면 더 좋은 곳에 갔어도 되었는데 왜 여기에 왔어?”
“애들도 좋아하고, 그리고 이 유치원이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기 지원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아, 그랬나? 내가 나이가 많아서 깜빡깜빡하네. 그보다 그때 다른 유치원에서도 오라고 그랬지 않았나?”
“네. 그랬죠.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안희영 선생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원장선생은 더 이상 말을 질질 끌지 않았다.
“음, 진짜 어렵게 말을 꺼내는 건데. 안 선생, 미안해. 우리 유치원 그만 나왔으면 하는데…….”
“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안희영 선생은 황당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우리 유치원이 안 선생을 받아들이기에는 여건이 안 될 것 같네.”
“원장님 혹시 그때 소은이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안 선생……. 무슨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냥 우리 유치원 사정이 그런가 보다 생각해 줘.”
“원장님. 진짜 왜 그러세요. 저 앞으로 잘할게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정말 열심히 하겠어요. 그리고 또다시 그런 일 생기면 절대 나서지 않을게요.”
원장선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안 선생! 그러니까, 그때 왜 그랬어. 안 선생이 그때 가만히 있었으면 좀 좋아. 우리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안 선생,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줘. 오늘 중으로 짐을 뺐으면 좋겠어.”
“아무리 그러셔도 오늘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안 선생, 일 년 안 되었잖아. 대신에 퇴직금 챙겨줄게. 안 선생, 우리 그렇게 하자.”
안희영 선생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안희영 선생이 차분하게 자신의 얘기를 끝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소희가 발끈했다.
“아니, 무슨 그런 원장이 다 있데!”
오상진이 그런 한소희를 말렸다.
“소희 씨, 진정해요.”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부당해고라고요. 아니, 안 선생님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소희가 잔뜩 흥분을 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희영 선생의 시선이 한소희에게 향했다.
여태까지 그냥 철없이 예쁘기만 한 아가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정의로운 모습을 보니 좀 더 예뻐 보이고, 호감이 갔다. 여태껏 자길 위해서 화를 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집에 있던 엄마도 일 그만뒀다고 하니, ‘좀 더 잘하지. 뭔 잘못을 했어’라며 타박을 하는 마당에, 생전 모르는 한소희가 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줬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소희 씨 진정해요.”
“너무 화가 나요. 이건 진짜 부당해고예요.”
“네네, 알아요. 그러니 진정부터 해요.”
“네, 상진 씨.”
오상진의 시선이 안희영 선생에게 향했다.
“그보다 안 선생님.”
“네.”
“퇴직금은 받으셨어요?”
“퇴직금이요? 그게 아직…….”
안희영 선생이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한소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 퇴직금이 문제예요? 이번에 진짜 노동청에 신고를 해서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고요.”
“피해보상요?”
안희영 선생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연하죠, 선생님. 혹시 주변에 아는 변호사 있으세요?”
“변호사요? 아니요.”
“그러면은 제가 도울게요.”
“네?”
안희영 선생의 눈이 커졌다.
“제가 아는 변호사가 있거든요. 유명한 변호사도 많고요.”
“아…… 네에.”
“비용은 걱정 마요. 제가 댈게요. 무조건 저에게 맡겨주세요. 진짜, 전 그런 사람 너무 싫어요. 이참에 그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요.”
한소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안희영 선생은 멍하니 있었다. 솔직히 푸념이나 하러 나온 거였는데 한소희가 설마하니 소송을 하자고 할 줄은 몰랐다.
오상진이 그런 안희영 선생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만약에 안 선생님이 일을 법적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부당해고니까, 만약에 법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소희 씨 아는 변호사분이 예전 제 일도 도와주셨거든요. 그래서 실력은 확실하신 분입니다.”
안희영 선생은 살짝 헷갈렸다. 정확하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을 정확하게 믿지 못하다가, 이렇듯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니 고맙다고 덥썩 손을 잡기도 민망했다. 그런데 한소희가 옆에서 부추겼다.
“안 선생님. 그냥 깔끔하게 소송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예? 그게…….”
안희영 선생은 한소희가 적극적으로 나올수록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죠.”
그러자 한소희가 바로 끼어들었다.
“생각은 무슨 생각이에요. 이런 건 바로 소송으로 가야 해요.”
“소희 씨, 안 선생님 입장도 생각해야죠. 안 선생님 지금까지 살면서 소송을 한 번도 안 해봤을 텐데. 우리가 소송하자고 하면 안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오상진은 차분하게 한소희를 진정시켰다.
“음, 그런가요?”
“네, 제가 생각할 시간 이틀만 주시겠어요? 이틀 동안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답을 드리겠어요.”
안희영 선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소희가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선생님. 대신에 꼭 연락 주셔야 해요.”
“네.”
안희영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숍을 나서는 안희영 선생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게 과연 소송을 해야 할 일인지도 잘 몰랐다.
‘그렇다고 저렇듯 날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고…….’
안희영 선생은 버스정류장에 서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원장님께서 잘해주셨는데……. 그래도 나오면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볼까?”
안희영 선생이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버튼을 누른 후 한 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안 선생!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네, 원장님. 아직 안 주무셨죠?”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자. 그런데 왜?
“어, 그게…….”
-설마 퇴직금 때문에 그래?
“네?”
-내가 퇴직금 준다고 그랬잖아. 자기 뭐가 그렇게 급해? 내가 돈 떼어먹는 사람이야.
“그게 아니라…….”
안희영 선생은 휴대폰을 붙잡고 당황했다.
-자기 그렇게 안 봤는데, 좀 그렇다. 나갈 때는 인사도 없이 확 가버리더니. 이제는 퇴직금 때문에 전화를 해?
“원장님. 그렇지 않아도 그때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리고 같아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알긴 아네. 그때 나 진짜 서운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해요! 아무튼 퇴직금은 내가 알아서 줄 테니까. 줄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주변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괜히 우리 유치원 안 좋은 소문 나면 알지? 안 선생이 책임져야 할 거야.
원장은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안희영 선생은 휴대폰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뭐야? 내가 지금 누구랑 통화를 한 거지?”
전화 목록을 다시 보니 원장선생이랑 통화를 한 것이 맞았다. 안희영 선생은 순간 배신감이 들었다.
“원장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지?”
안희영 선생은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올 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나온 것은 죄송했다. 그런데 이렇듯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에 환상이 깨져버렸다.
“가만 매달 50만 원씩 돌려받아 놓고…….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았나 보지?”
안희영 선생은 갑자기 기분이 확 상했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시 커피숍을 향해 올라가는데 때마침 오상진과 한소희가 내려왔다.
“어? 선생님 안 가셨어요?”
“네.”
“혹시 뭐 놓고 가셨어요?”
“아뇨, 진짜 저 확실히 도와주시는 거죠?”
안희영 선생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당연히 도와드릴 겁니다.”
“그럼 아까 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더 괜찮으세요?”
“네. 그럼 다시 커피숍으로 가시죠.”
오상진과 한소희, 안희영 선생은 도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