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11화
45장 까라면 까야죠(80)
“바로 돌려!”
“네!”
비서관이 나간 후 얼마 있지 않아 전화기가 울렸다. 김태령 1군단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김태령 1군단장의 목소리가 쫙 가라앉아 있었다. 수화기 너머 최기혁 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군단장님. 저 최기혁입니다.
“알고 있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
“야, 이 개XX야! 너 뭐 하는 새끼야!”
-네?
“그때 그렇게 예편을 했으면 조용히 지낼 것이지. 이딴 기사가 나오게 만들어!”
-저저, 군단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최기혁 장군의 목소리가 많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너 왜 전화했어! 왜 전화했냐고!”
-아, 그게 그냥 안부 전화…….
“지랄! 안부 전화란다. 네 딸 사고 친 거 수습해 달라고 한 거 아니야!”
-구, 군단장님. 그, 그걸 어떻게…….
“이 자식아. 그걸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아? 지금쯤 전 국민이 알게 되었을 것이야.”
-네?
“너 기사 봤어, 안 봤어? 하긴 안 봤으니까, 나에게 전화를 했겠지. 이봐, 최기혁!”
-네, 군단장님.
“지금 이 시간부터 난 널 모른다. 만약에 지금 이 일로 나까지 피해가 오게 되면, 넌 진짜 내 손에 죽는 거야. 앞으로 다시는 나에게 전화하지 마! 안부 전화도 하지 마!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이번 일 나에게까지 오게 만들어 봐. 지난번 일 다시 터뜨려서 아예 연금도 받지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니까. 알았어!”
김태령 1군단장이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 새끼가 진짜, 그때 그 일이 불거지면 다 같이 죽자는 건데…….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생각이 없어. 생각이!”
김태령 군단장이 혀를 ‘쯧쯧’ 찼다.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군단장님.”
“또 뭐?”
“여기 사단장에게도 한마디 전화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거기 사단장? 사단장은 왜?”
“저기 최 장군이…….”
“거기도 질렀어?”
“네. 아마 수습하지 않는다면 그 사단장이 위로 보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아, 빌어먹을 최기혁 이 자식 때문에……. 거기 사단장이 누구야?”
“장기준 소장입니다.”
“장기준?”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돌려!”
비서실장이 곧장 수화기를 들어 장기준 사단장에게 직통 라인 전화를 걸었다.
장기준 사단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네, 군단장님. 물론이죠. 당연히 그리할 것입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충성!”
장기준 사단장은 잠깐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태령 중장님께서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장기준 사단장이 피식 웃었다.
“최기혁 장군 때문에.”
“최기혁 장군말입니까? 설마 군단장님께 청탁을 한 겁니까?”
“아니, 청탁을 한 것이 아니라. 청탁을 하려던 걸 뒤지게 혼냈다는 거야.”
“네?”
“이 양반이 원래 최기혁 장군 자를 때 직속상관이었잖아. 오전에 기사 보니까, 여차했다가는 옛일 다시 끄집어내게 생겼는데, 이 양반은 진급 물러간 거지. 지금 호시탐탐 대장을 노리고 있는 양반인데.”
“어후, 김태령 중장님 대장 되기에는 좀 무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장기준 사단장이 바로 말했다.
“어허, 이 사람 비서실장 오래 했다고 말을 막 함부로 하네. 누군 되고, 안 되고 벌써부터 저울질을 하면 어떻게 하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장기준 사단장이 바로 웃었다.
“하하핫. 이 사람이……. 농담이야, 농담! 각하 없는 곳에서 욕도 한다는데…….”
나종덕 비서실장이 살짝 민망해 했다. 장기준 사단장이 자세를 바로 잡으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보기에 김태령 중장은 아닌 것 같아?”
“솔직히 들리는 평판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양반이 그 자리에서 몇 년 버티다가 조용히 옷 벗는 게 수순이지. 대장까지는 힘들어. 여차하면 똥물 뒤집어쓰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맞습니다. 저 같아도 싫긴 하겠습니다.”
“어후, 그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자네 나 몰래 사고 친 거 없지?”
“에이, 제가 무슨 사고를 칩니까. 없습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강하게 손 사레를 쳤다.
“뭐야. 없기는 자네 지난번에 나에게 청탁 잘만 하더만!”
나종덕 비서실장이 당황했다.
“아, 강태산 이병 그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 건은…….”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아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오나. 아무튼 주변 사람 말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네가 중심을 딱 잡고 있어야 해. 이 상황에 휘말리면 주변 사람이 골치 아파진다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사단장님!”
“그건 그렇고, 오 중위하고 김철환 중대장하고 두 사람에게도 연락해 줘. 얘기 잘 풀렸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에효, 내심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윗선까지 막혔으면 더는 못할 거야. 게다가 이렇듯 신문과 뉴스까지 났으니 말이야.”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웃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환한 표정으로 오상진을 불렀다.
“상진아, 상진아!”
행정실 문을 벌컥하고 열었다. 그러자 각 소대장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상진 역시도 깜짝 놀랐다.
“네, 중대장님.”
김철환 1중대장이 환한 표정으로 오상진에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상진아, 됐어. 됐다고!”
오상진은 당황한 얼굴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말했다.
“주, 중대장님. 지금 다른 소대장들이…….”
그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소대장들을 보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미안. 다들 일들 봐. 그리고 1소대장은 잠깐 나 좀 보고.”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어험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행정실을 나섰다. 오상진도 소대장들의 눈치를 살피며 행정반을 나갔다.
“야, 중대장실로.”
김철환 1중대장이 곧장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상진 역시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환한 표정의 김철환 1중대장을 봤다.
“중대장님 뭔가 좋은 일이 있습니까?”
“있지, 암, 있고말고.”
“무슨 일입니까?”
“야야, 말도 마라. 너 군단장님 아시지? 김태령 중장님 말이야.”
“저야, 얘기만 들었죠.”
“아무튼 그분이 말이야. 최기혁 장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네.”
“네? 갑자기 말입니까?”
“아니, 조금 전에 사단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군단장님이 최기혁 장군 일 다 처리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하시네.”
“어? 정말입니까?”
“그래! 그분이 지금 포스타가 될 사람이란 말이지. 대장 말이야. 아무튼 그분께서 얘기를 했으니, 이건 끝난 거야.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하아, 이제야 맘이 편해졌네. 그동안 얼마나 맘을 골았는지…….”
“중대장님 맘고생 많았습니다.”
오상진의 위로에 김철환 1중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에헤이, 맘고생은 난 그런 것 생각한 적 없어. 네가 걱정이 많았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 김철환 1중대장의 허풍스러움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오상진은 기분이 좋았다.
“네. 중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맘고생 진짜 많았습니다.”
“아무튼 고맙다. 잘 버텨줘서 고맙고……. 하아, 진짜……. 그런데 이래놓고, 나중에 딴소리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윗선에서 직접 연락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말 바꾸기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지 않습니까.”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걱정이 되어 물었다.
“참! 그 기사는 내려야 하나?”
“으음, 그건 윗선에서 알아서 하겠죠. 내려야 한다면 말입니다.”
“하긴 그것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아무튼 잘됐다. 끝나고 술 한잔하자!”
“네. 중대장님.”
오상진 역시도 환한 얼굴로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러면서 휴대폰을 들어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상진 씨.
“소희 씨 뭐해요?”
-저 그냥 과제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상진 씨 목소리가 밝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한소희는 매일 오상진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조금의 변화도 바로 눈치를 챘다.
“후후후, 바로 알아보시네요. 맞습니다. 조금 좋은 일이 있어요.”
-어머, 그래요? 뭔데요?
“사실 유치원 사건 있지 않아요. 그 사건이 잘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은 조금 전 김철환 1중대장에게 들었던 김태령 중장이 나서서 해결해 줬다는 얘기를 했다.
-어머! 진짜요? 그럼 해결된 거에요?
“네.”
-진짜 다행이다. 사실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거든요.
“어후, 소희 씨가 뭔 잘못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오히려 소희 씨 맘고생 시켜서 제가 더 미안해요. 괜히 못난 남친 만나서 우리 소희 씨만 고생을 하네요.”
-상진 씨,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런 말 말아요. 그리고 저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어요. 항상 말을 할 때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대처해야겠어요. 아무튼 이번 일 반성하고 있어요.
한소희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했던 자신을 되돌아본 계기가 되었다. 그런 한소희의 성장을 보며 오상진의 흐뭇해했다.
“그래도 우리 소희 씨는 그런 모습이 매력인데.”
오상진은 한소희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한소희가 바로 태도가 바뀌었다.
-하긴 그렇죠? 제가 너무 고분고분하면 재미가 없죠.
“그럼요. 전 소희 씨가 지금의 소희 씨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칫! 그럼 오늘 중대장님이랑 한잔하시겠네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다 알죠. 대신 조금만 마셔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사 들어가서 연락해요.
“네, 알겠습니다.”
-참! 상진 씨는 언제 관사 나와요? 밖에 오피스텔이라도 구해요.
“아, 그렇지 않아도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이번 주에 만날 때 상진 씨 집 알아보러 가요.
“이번 주말에요?”
-네, 싫어요?
“아, 아뇨. 싫기는요. 당연히 좋습니다.”
-그럼 약속 한 거예요.
“네.”
-그럼 쉬어요. 저 과제 마무리해야겠어요.
“알았어요. 소희 씨도 수고해요.”
오상진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갑자기 독립하게 생겼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행정반으로 향했다.
한편, 한소희 역시도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훗, 잘됐다!”
그때 한중만이 불쑥 얼굴을 내비쳤다.
“어머나, 놀래라!”
“뭘 놀라고 그래.”
“오빠, 얼굴! 갑자기 그렇게 불쑥 내밀면 놀라잖아.”
한소희가 소리쳤다. 그러자 한중만이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자식이 너까지…….”
“아, 아니야. 오빠 미안해. 갑자기 오빠가 그러니까…….”
“됐다고 본다.”
한중만은 삐진 척하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