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09화
45장 까라면 까야죠(78)
최익현 의원은 그렇게 밀고 나갔던 기억이 났다. 결과적으로 최기혁 준장을 예편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사위라는 자가 최익현 의원 앞에 와서 잘 보이려고 하는 모습이 솔직히 우스웠다.
“그럼 장인어른이신 최기혁 예비역 준장님은 잘 계십니까?”
“네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어후, 평소에 의원님 말씀을 얼마나 하시는지.”
“그래요? 장인어른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차기 국정을 운영하실 분이라고 하시죠.”
최익현 의원이 피식 웃었다. 사실 박민철 시의원은 자신의 아부가 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익현 의원은 그것이 아니었다.
‘으음, 이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최익현 의원이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래서 박 의원은 국가를 생각하는 충심으로 얘기를 한 것이란 말이죠?”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안건은 제가 국방위원회에 상정하고, 군 기강을 다시 확립하는 차원에서 각 부대에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정리를 할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최익현 의원이 물었다. 순간 박민철 시의원이 당황했다.
“어, 그게…….”
박민철 시의원은 평소 얘기하듯이, 요새 ‘군 기강이 말이 아니다. 다시 잡아야 한다.’ 이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오상진의 사과를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맘에 들지 않습니까?”
“그, 그건 아닙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최익현 의원의 물음에 박민철 시의원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게 말입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실은 말입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유치원에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가 현역 군인에게 모욕을 받은 것으로 각색을 해서 말이다.
한 마디로, 자신의 딸이 폭행을 당했는데 상대측에서는 현역 중위가 아내에게 폭언을 하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사과를 요구했는데 아직까지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허허, 이 사람 보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나?’
최익현 의원 속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박민철 시의원의 말만 들어보면 오상진이 크게 잘못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조사를 싹 다 해 봤다. 오히려 반대로 박민철 시의원 아내의 잘못이 더 컸다.
‘가만 최기혁 장군 딸이라면……. 그 공관병 사건의 주인공이잖아. 하긴 그 딸이 박민철 시의원 와이프라면 말 다 했군.’
최익현 의원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박 의원.”
“네?”
“박민철 의원!”
“아, 예예!”
“자네는 내가 우습나?”
최익현 의원이 존대를 하다가 처음으로 말을 놨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박민철 시의원도 최익현 의원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많이 당황했다.
“내가 설마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자네를 이곳에 불렀겠나?”
“네, 그게…….”
박민철 시의원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최익현 의원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주 가관이던데. 자네 와이프 말이야.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선생도 폭행하고 말이야. 최기혁 예비역 준장을 등에 업고, 아주 그냥 유치원에서 왕처럼 지냈더만.”
“어, 그것은…….”
최익현 의원이 곧바로 손을 들어 박민철 시의원의 말을 막았다.
“변명은 말게. 자네 변명 듣자고 부른 것이 아니라니까.”
“…….”
박민철 의원이 입을 다물었다. 최익현 의원이 다시 입을 뗐다.
“박민철 자네 말이야. 앞으로 의정활동하고 싶다면 집안 단속을 잘해야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집안이 분란이 많아 봐야, 자네 의정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자네 시의원만 할 건가? 여의도에 입성해야지.”
“아, 네에. 그렇죠.”
“이런 식의 구설수가 사람들 입에 입방아처럼 오르내리면 자네에게만 손해야. 위에서 모를 것 같나? 자네가 이렇듯 날 찾아온 것과 거기 있는 것으로 청탁하려는 것까지 말이야. 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세상에 절대 비밀이란 없는 거야. 다 알려지게 되어 있어.”
“아, 예에…….”
박민철 시의원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네, 이건 선배로서 충고야. 이 보고서는 못 본 것으로 할 테니까,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오상진 중위 말이야.”
“네.”
“건들지 마!”
“예?”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알고 이 난리를 친 것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 사람아, 모르면 인터넷이라도 찾아봐. 그 친구에 대해서 국방부부터 시작해서 당 중진들이 지켜보고 있는 친구야. 그런 사람을 자네가 건드렸어.”
그 말을 들은 박민철 시의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단순히 최익현 의원과 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신경 쓰고 있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박민철 시의원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 의원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은 지금 당장 허리를 굽혀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 사과는 내가 받을 것이 아니고! 아무튼 자네 말이야.”
“네, 의원님.”
“당분간 조용히 지내게. 다시는 이런 일에 끼어들지 말고.”
“물론입니다.”
“알았네. 그만 나가보게.”
“네, 알겠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막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최익현 의원이 불렀다.
“박 의원.”
“네.”
“책 가져가야지.”
“이, 이게…… 그러니까…….”
박민철 시의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최익현 의원이 속 시원하게 말했다.
“왜? 저 책 안에 뭔가를 넣어 뒀나?”
“으음…… 책은…….”
“뭐, 놓고 가려면 그렇게 해. 대신에 이 뒤에 일은 자네가 책임지는 거야.”
“…….”
“어떻게 이대로 놓고 갈 건가?”
박민철 시의원이 곧바로 책을 챙겼다.
“아닙니다, 가져가겠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깊게 인사를 한 후 돈 봉투가 든 책을 가슴에 숨긴 후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최익현 의원이 혀를 찼다.
“쯧쯧쯧, 뇌물을 바칠 패기도 없으면서…….”
조지태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최익현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박 의원은 갔습니까?”
“네, 의원님. 아주 허둥지둥 도망가던데요.”
“어후, 저런 사람이 시의원이라니……. 한탄스럽습니다.”
“어떻게 얘기를 잘하셨습니까?”
“적당히 겁을 줬으니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처신하겠죠.”
“아, 네에…….”
조지태 보좌관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
“거기 와이프가 보통이 아니야. 자네 혹시 최기혁 장군이라고 하나?”
최익현 의원이 물었다. 조지태 보좌관이 눈알을 굴리며 생각을 했다.
“어어,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5년 전 공관병 사건 말입니다.”
“아아,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보고서 검토해서 의원님께 드렸죠?”
“그 양반 딸이랍니다.”
최익현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은 조지태 보좌관은 깜짝 놀랐다.
“예에? 그 딸 성격이 보통이 아닐 텐데요.”
“그렇지. 박민철 그 사람이 포기한다고 해서, 그 딸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난리를 치겠죠.”
“아마도 최기혁 장군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그래서 말입니다.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조지태 보좌관이 궁금증을 가졌다. 최익현 의원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차라리 기사를 내서 꼼짝을 못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으음, 그럼 아는 기자에게 소스를 넘길까요?”
“그것도 좋은 것 같은데요. 아, 맞다. 그때 그 기자 누구죠? 오 중위 기사 잘 썼던 그 여기자요.”
“아, 한국일보의 박은지 기자 말씀입니까.”
“네. 그래요. 그 기자분에게 넣으세요.”
“저희 쪽 기자 말고요?”
“네, 박은지 기자가 아무래도 오 중위하고 친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날 저녁 퇴근 준비를 하던 오상진은 박은지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은지 씨.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그런데 수화기 너머 박은지의 서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진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네? 무슨…….”
오상진은 박은지의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지금 어떤 분에게 전화를 받았는 줄 알아요?
“누구요?”
-최익현 의원님 보좌관이요.
“최익현 의원 보좌관이요?”
오상진이 당황했다.
‘아니, 최익현 의원 보좌관하고 통화를 했는데 왜 내게 화를 낼까?’
오상진은 그것이 의문이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요새 안 좋은 일 있었다면서요.
“네?”
-유치원이요, 유치원!
“아, 소문이 거기까지 갔습니까?”
오상진이 살짝 민망해했다.
“아니, 중대장님도 연루되어 있고, 또 제 여자 친구도 현장에 있어서요. 이게 참…… 은지 씨에게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듣기에는 완전 그쪽에서 잘못했던데요. 이럴 때 언론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상진 씨는 기자 친구를 두고, 쓸데없이 맘고생만 해요.
순간 오상진은 박은지가 왜 화를 낸 건지에 대해 이해를 했다. 박은지는 순전히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은지 씨.”
-됐고요. 시간 좀 내줘요.
“네?”
-정확하게 취재는 해야죠. 당사자의 말을 듣고, 정확하게 기사를 내야죠. 어떻게 보좌관님의 말만 듣고 낼 수가 있겠어요.
“은지 씨, 안 그래도 돼요.”
-이미 최익현 의원님 쪽에서 기사를 내 달라고 부탁이 왔어요. 이거는 상진 씨가 안 된다고 해도, 나로서는 기사를 내야 할 상황이에요.
그러고 있는데 오상진은 불현듯 장석태 중위가 생각이 났다.
“아참! 은지 씨.”
-네?
“소개팅…….”
-지금 소개팅이 왜 나와요. 그게 문제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 만나기로 했던 장석태 중위 만나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상진 씨!
“제 말 들어보세요, 은지 씨. 그분이 이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요.”
-그분이요?
박은지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일을 내 입으로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합니다. 그래도 기자라면 제삼자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 장석태 중위 한 번 만나 보세요.”
-흐흠…… 상진 씨가 그리 말을 하니까. 알았어요. 한 번 만나 볼게요. 그럼 언제 만나면 되는데요?
“은지는 언제 시간 돼요?”
-오늘 저녁이라도 당장 괜찮아요.
항상 바쁘다던 박은지가 곧바로 시간을 냈다. 그 얘기를 들은 오상진은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바로 장석태 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중위, 무슨 일입니까.
“혹시 오늘 시간 되십니까?”
-오늘? 술 한잔하시려고 그럽니까?
“뭐, 겸사겸사…….”
-에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알아서 잘 대처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네? 사단장님께서 말입니까?”
-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 사단장님께도 연락이 갔구나…….”
오상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맞다. 그게 아니라 소개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