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08화
45장 까라면 까야죠(77)
순간 김응수 보좌관은 바로 깨달았다. 이 만남이 박민철 시의원 뒷조사란 사실을 말이다.
보통 시의원에게 충성을 다하는 보좌관이라면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의원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응수 보좌관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네, 좋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지금 시의원 사무실 근처에 있어요. 지금 내려오시면 될 듯하네요.
“근처에 계십니까?”
-네. 지금까지 일하고 계셨죠?
“어떻게 그걸…….”
-에이, 저도 저희 의원님 시의원 때부터 옆에 있었습니다. 은근히 바쁘고 그렇죠. 일단 급한 것 끝냈으면 내려오세요. 간단히 밥이라도 같이 먹죠.
“네, 알겠습니다.”
김응수 보좌관은 전화를 끊고 잠깐 고민을 했다.
“의원님에게 알려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또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박민철 시의원이었다.
“네. 의원님!”
-보좌관.
“네.”
-내 책상 서랍을 열어보면 작은 쥬얼리 빽이 하나 있어. 그거 오피스텔로 보내.
“제가 말입니까?”
-그럼 다시 내가 사무실 나가서 가져가?
“아, 아닙니다.”
-내가 깜빡하고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보좌관이 가져다주라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
-잊지 마.
“네.”
휴대폰을 끊은 김응수 보좌관이 인상을 썼다.
“젠장! 일도 바빠 죽겠는데……. 의원 애인 것까지 챙겨야 해.”
김응수 보좌관은 박민철 시의원 애인 뒤치다꺼리까지 챙겨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진짜 계속 이 사람 뒤에 있어야 하나? 에잇, 나도 모르겠다.”
김응수 보좌관은 큰 결심을 한 듯 곧바로 책상을 정리하고, 박민철 책상으로 가서 쥬얼리 백을 챙겼다. 그 길로 사무실을 나섰다.
다음 날 아침, 최익현 의원이 출근하자마자 조지태 보좌관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래요, 다 확인해 봤어요?”
최익현 의원의 물음에 조지태 보좌관이 바로 답했다.
“네. 알아보니 오 중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 중위? 혹시 오상진 중위를 말하는 겁니까?”
“네, 의원님.”
최익현 의원은 혹시나 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맞은 모양이었다.
‘어제 올라온 보고서에 보니까, 충성대대 이름이 있더니…….’
최익현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한번 말해 봐요.”
“네, 의원님.”
조지태 보좌관은 어제 만난 김응수 보좌관을 통해 알아낸 것들을 설명했다.
“박민철 시의원 보좌관 말에 따르면…….”
박민철 시의원 아내 최미선이 유치원에서 망신을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오상진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최익현 의원에게 보고서를 올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조지태 보좌관의 설명을 들은 최익현 의원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고작 오 중위 하나 괴롭히자고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 거란 말이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나 참…… 도대체 날 뭐로 보고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저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지태 보좌관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조지태 보좌관도 들은 것이 있었다.
박민철 시의원 스스로가 최익현 의원과 밥도 먹고, 친분을 과시하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그 사실을 감히 최익현 의원에게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유치해서 말이다.
“들어보니, 이 사람을 그냥 두면 안 되겠네요.”
최익현 의원의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조지태 보좌관을 보며 말했다.
“그 사람 올라오라고 해요.”
“네?”
“박민철 시의원 올라오라고 하세요.”
“지금 말입니까?”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조지태 보좌관이 바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김응수 보좌관은 출근하자마자 어제 끝내지 못한 일을 했다. 그때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네, 김응수입니다.”
-최익현 의원님실입니다.
“아, 네네. 어제…….”
김응수 보좌관이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박민철 의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래서 바로 입을 닫았다.
-혹시 박민철 시의원 출근하셨습니까?
“네, 하셨습니다.”
-그럼 박민철 시의원님께 최익현 의원님께서 만나자고 하신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말입니까?”
-네, 사무실로 좀 오라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응수 보좌관이 전화를 끊고 곧바로 박민철 시의원에게 갔다.
박민철 시의원은 아침부터 컴퓨터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며 ‘그라나다’ 같은 여자 수영복 사진을 보고 있었다.
“오오, 생각보다 몸매 좋은데.”
박민철 시의원은 눈빛을 반짝이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때 김응수 보좌관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의원님.”
“왜?”
“저기 최익현 의원님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 어디서?”
박민철 시의원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근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최익현 의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눈으로 다시 말했다.
“뭐? 어디라고!”
“최익현 의원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지금?”
“네.”
“아이씨, 그 얘기를 왜 지금하고 그래.”
“방금 연락이 와서…….”
“아무튼 도대체가 보좌관이 되어서 도움이 안 돼. 오늘 최익현 의원이 찾을 줄 알았으면 옷을 이렇게 입지 않았지!”
박민철 시의원은 괜히 김응수 보좌관을 탓했다. 김응수 보좌관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의원님, 제가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최 의원님실에서 방금 전화가…….”
“뭐야, 지금 나에게 따지는 거야!”
“아닙니다.”
김응수 보좌관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박민철 시의원은 ‘쯧쯧’ 혀를 차며 사무실을 나섰다.
“나 지금 집에 다녀올 테니까. 차 대기 시켜놔.”
“알겠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은 자신의 옷을 확인하며 투덜거렸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옷에 멋을 좀 부리고 오고 싶더라니. 옷이 이게 뭐야.”
박민철 시의원이 인상을 쓰며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 나야.”
-왜?
“나 지금 다시 집에 들어가니까, 좋은 옷으로 준비 좀 해 놔.”
-갑자기 왜?
“지금 귀한 분 만나러 가야 하니까. 진짜 좋은 옷으로 준비해야 해. 잘하면 나 시의원이 아닌 여의도에 입성할지도 몰라.”
-어머, 정말?
“그래! 그러니까,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산 정장 있지? 그거 준비해 놓고!”
-알았어.
“아, 그리고…….”
박민철 시의원이 사무실 직원들을 확인하며 조용히 말했다.
“은행 가서 오백? 아니, 천만 원 정도 찾아놔!”
-천만 원? 그걸로 되겠어요?
“처음부터 많이 주면 안 돼!”
-하긴 그렇다.
“아, 그리고 수표로 준비해.”
-에잇! 당신은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알았어. 그래.”
박민철 시의원이 전화를 끊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좋았어. 이번 기회에 최익현 의원 밧줄타고, 여의도에 입성한다.”
그때 김응수 보좌관이 들어왔다.
“의원님, 준비되었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박민철 시의원은 혼자 들뜬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최익현 의원은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며 조지태 보좌관이 들어왔다.
“의원님.”
“네.”
“박민철 시의원이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조지태 보좌관이 나가고, 잠시 후 박민철 시의원이 들어왔다. 그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아이고, 최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박민철 시의원입니다.”
최익현 의원이 먼저 나가서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박 의원님.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최익현 의원이 상석에 앉고, 오른편에 박민철 시의원이 앉았다.
“괜히 바쁜 사람 오라고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익현 의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박민철 시의원은 베스트셀러 책을 들고 있었다.
“아닙니다. 평소에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존경은 무슨……. 부끄럽습니다.”
최익현 의원은 끝까지 존대를 해줬다. 그리고 박민철 시의원을 보며 말했다.
“혹시 지난번에 같이 밥 먹지 않았나요? 시의원 다 같이 모인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순간 박민철 시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맞습니다. 그때 최 의원님 맞은 편 왼쪽에서 있었습니다.”
박민철 시의원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최익현 의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곳에 있었군요.”
“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 직원이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커피 괜찮죠?”
“물론입니다. 전 아무거나 다 잘 마십니다.”
“다행입니다.”
커피잔 두 개가 각자 앞에 놓여졌다.
“차 드세요.”
“네, 의원님.”
박민철 시의원은 감격해 하며 커피를 마셨다.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사무실에서 먹는 커피보다 여기서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커피가 참 맛있습니다.”
“아, 그래요? 참 다행입니다.”
“그보다 의원님.”
“네.”
“그때 식사할 때 말입니다. 제가 의원님 조언을 듣고 싶어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 바쁘신지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아, 그랬어요? 미안해요. 아무래도 그런 자리는 한 사람과 대화를 좀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럼요. 당연합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하죠.”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요.”
최익현 의원은 끝까지 존중하며 존대를 했다. 그런 최익현 의원의 모습에 박민철 시의원도 약간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최익현 의원의 시선이 박민철 시의원 손에 들린 책에 향했다.
“음, 그건 뭡니까?”
“아, 이거 말입니까? 최 의원님께서 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민철 시의원이 슬쩍 책을 내려놓았다. 최익현 의원은 책 중간에 뭔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최익현 의원이 피식 웃었다.
‘나참 이 사람이 날 뭐로 보고…….’
최익현 의원이 속으로 중얼거린 후 박민철 시의원을 봤다.
“박 의원이 보낸 보고서는 봤습니다.”
“네네.”
“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보고서를 올린 저의가 무엇이죠?”
“네?”
최익현 의원의 뜻밖의 질문에 박민철 시의원이 살짝 당황했다.
“그 보고서를 왜 올렸냐고 물었습니다.”
“아, 그것이 제가 군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저의 장인어른이 군 장성이셨습니다.”
“아, 그래요? 누구신데요?”
“최기혁 준장이라고…… 5년 전에 예편하셨는데. 혹시 아십니까?”
최기혁 준장을 최익현 의원은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최기혁 준장을 전역시킨 장본인도 최익현 의원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민철 시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당시 최익현 의원 역시도 잘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 공관병 사건의 주모자. 그 사람이었구만.’
최익현 의원의 쓴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5년 전 그때도 최익현 의원은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
그때 군 인권센터에서 보고서 하나가 올라왔다. 그 당시 최기혁 준장이 공관병 하나를 폭행해서 반죽음 상태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몰래몰래 덮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최기혁 준장은 시대를 역행하는 짓을 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반대당 쪽에서 물고 늘어지려고 해서 최익현 의원이 먼저 나섰다.
“이 사건은 덮지 말고,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