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606화 (606/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60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75)

“저 잠시 중대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투모를 챙겨서 행정반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4소대장이 불쑥 말했다.

“무슨 일이겠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급에 관한 것 같은데 말이죠.”

4소대장이 슬쩍 운을 뗐다. 3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급 말입니까?”

“네. 사단에 지원했다가 살짝 떨어진 느낌?”

“에이, 무슨 또 소설을 씁니까.”

“무슨 소설입니까. 그럴 수도 있죠.”

“설마 오 중위님이 그럴 분입니까.”

“왜 그러십니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죠. 얼마 전에 작전과 장 중위하고 어울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소대장만 하겠습니까? 내가 딱 보니 1소대장 야망도 있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으음…… 진짜 그런가?”

3소대장도 4소대장의 언변에 살짝 넘어간 것 같았다. 4소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만약에 우리 1소대장님이 그랬다면 전 솔직히 실망할 것 같습니다.”

3소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4소대장은 지난번 시체 찾았을 때 1소대장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한다는 둥 그렇게 말했으면서. 언제 또 바뀌었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런데 이미선 2소대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2소대장 할 말 있습니까?”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돌려 안도했다.

‘하긴 1소대장님은 그런 일로 떠벌리는 사람은 아니지. 그래. 진급에 문제가 있는 건가? 그러면 5중대장님에게 한번 슬쩍 말을 꺼내봐?’

이미선 2소대장은 완전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오상진이 중대장실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발견하고 말했다.

“어, 상진이 왔냐.”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중대장님 얼굴이 왜 그럽니까?”

“내 얼굴이 왜?”

“완전 해탈한 도인 같습니다.”

“어이구야. 그런 네 표정은 평소와 똑같은 줄 아냐?”

“티 납니까?”

“야, 너도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것 같아. 왜, 인마. 쫄리냐?”

“솔직히 안 쫄리면 거짓말이죠.”

“그래서 후회되냐?”

오상진이 곧바로 표정을 바로 잡았다.

“후회 안 됩니다. 그때 그 일이 또다시 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오, 자식. 멋진데.”

“그럼 중대장님은 어떻습니까?”

“젠장, 후회돼! 겁나 후회돼.”

“네?”

오상진이 당황한 눈빛이 되었다.

“그때 널 보낸 게 후회된다고. 나 혼자 갔다면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일이니까, 어떻게든 되었을 텐데……. 내가 진짜 어후……. 창창한 네 인생 망치는 것 같아 내가 진짜 너 볼 낯이 없다.”

“아, 진짜 왜 그러십니까. 중대장님.”

“우리 사이니까 이러는 거지. 생판 남이었어 봐. 네가 꼬이든 뭐하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너니까, 신경 쓰이는 거라고. 너 진짜 왜 그렇게 나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하는 거야. 착해 빠져가지고, 그냥 그때는 제수씨 손을 딱 잡고 ‘저 출세길 막힙니다’ 하고 인사를 한 후 나왔어야지.”

“정말 제가 그랬길 바랍니까?”

“말이 그렇다고, 말이!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러지.”

“미안하면 맛있는 거나 사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너희 형수가 나 나오는데 10만 원 주더라. 너 고기 사 주라고.”

“역시 형수님밖에 없습니다.”

“네가 뭐가 예뻐서 고기를 사 먹이는지……. 내 앞길이 구만리인데.”

김철환 1중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일 잘 풀릴 겁니다.”

“야! 넌 그 양반 성격을 몰라서 그래.”

오상진이 슬쩍 놀랐다.

“어? 아시는 분입니까?”

“알았겠니? 알아봤지, 인마!”

“네? 알아보셨단 말입니까?”

“그래, 인마.”

김철환 1중대장은 자신이 알아본 것을 오상진에게 얘기해 줬다.

“그 사람 이름이 최기혁이야. 예비역 준장인데 알고 보니 엄청 야심가였어. 장난 아니야. 줄 타기도 잘하고, 제법 빽도 있었나 봐. 그런데 왜 준장에서 예편을 했을까?”

“…….”

오상진의 눈이 깊어졌다. 김철환 1중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 양반이 왜 옷을 벗었냐면 그 딸이 장난 아니야.”

“딸 말입니까?”

“그래. 거기 사모가 일찍 돌아가셨대. 그런데 딸 하나가 버르장머리가 하나도 없었어. 아무래도 공관에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까. 딸 학교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고 그랬는가 봐.”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공관병을 사사로이 일을 시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어쨌든 딸을 엄청 애지중지 키웠는가 봐. 그러다가 둘이…….”

“아, 눈이 맞았습니까?”

“비슷해. 아무튼 최기혁 그 사람이 울컥하면 손부터 나가는 스타일이거든.”

“아, 그래서 때렸습니까?”

“그냥 때린 것이 아니라 어찌나 애를 잡았던지. 이가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까지 갔다나 봐. 그때 전치 몇 주가 나왔더라? 아마 7주 정도였을 거야. 아무튼 그 부모가 난리를 치면서 사건이 공론화 되고, 최기혁 예비역 준장의 횡포가 도마에 올라나봐. 그리고 처맞은 그 녀석이 하필이면 한국대생이란다.”

“한국대생입니까? 아이고 일이 커졌겠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그 친구는 의가사 제대를 시키고, 최기혁 예비역 준장은 전역을 하고, 일을 좋게 좋게 덮은 것 같더라.”

“그래서 준장에서 끝난 것이구나.”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소장까지 달고, 사단장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이구, 얘기만 들어도 어질어질 합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 양반이 투스타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 대한민국 군대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

오상진은 할 말이 없었다. 김철환 1중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런 양반에게 밉보였으니.”

“그래도 전역하셨는데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냥 조용히 있으면 다행인데. 그런 양반은 아직도 자기가 장군인 줄 알고 나선다는 거야.”

“혹시 대대장님께 바로 연락을 한 것은 아닙니까?”

“야, 그 양반 클래스가 있지. 바로 대대장에게 전화를 했겠냐? 사단장님이라면 모를까.”

“사단장님께서 그런 청탁 전화를 받으시겠습니까?”

“안 받으실 것 같기도 한데. 또 안 받으면 그 양반이 가만히 있겠어? 이리저리 곤란하실 거야. 괜히 나 때문에 사단장님 곤란해지신 것 같고…….”

김철환 1중대장은 이래저래 자책을 하고 있었다.

“에이,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니야, 내가 군 생활 한두 해 한 것도 아니고. 이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그래도 지금까지 사단장님께 별 얘기 없는 것을 보면 그냥 좋게 넘기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너야. 네가 직접 그랬으니까, 그건 그렇고 제수씨는 어때?”

김철환 1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희씨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혹시 제수씨가…….”

김철환 1중대장이 말끝을 흐렸다. 오상진이 바로 이해를 했다.

“아,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말입니까?”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고……. 그렇게 하면 좀 일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 하하하, 내가 이러면 좀 염치없는 건가?”

김철환 1중대장이 민망한 듯 웃었다. 오상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중대장님 생각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소희 씨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제가 말렸습니다.”

“네가?”

“막말로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저 군대 오래 있을 생각 없습니다. 제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젊은데 열심히…….”

그러자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을 끊었다.

“젊은 놈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해. 너만큼 열심히 하는 놈이 어디 있다고. 지금처럼 열심히 해서 쭉쭉 올라가야지. 무슨 옷을 벗을 생각부터 해.”

김철환 1중대장이 진심으로 얘기 했다.

“그러니까, 중대장님도 그런 걱정 하지 마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걱정 마. 나도 그런 걸로 흔들리지 않으니까. 아무튼 네 뜻이 그렇다면 알았다.”

“그럼 오늘 저녁에 중대장님께서 쏘시는 겁니까?”

“그래, 알았어. 일 끝나고 와. 내가 삼겹살에 소주 쏠 테니까.”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충성!”

오상진은 경례를 한 후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런 오상진의 뒷모습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서 그래, 이놈아.”

김철환 1중대장의 나직한 푸념이 중대장실을 휘감았다.

오후 일과가 끝나고, 오상진은 퇴근 전 1소대를 찾았다.

“얘들아.”

“충성!”

이해진 상병이 경례를 했다. 오상진도 마주 경례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일과 잘 보냈나?”

“네.”

“환자는?”

“없습니다.”

“그래, 오늘 하루도 고생이 많았다.”

오상진을 대답을 한 후 김우진 병장을 봤다.

“다음 주에 전역이지?”

김우진 병장이 실실 웃었다.

“넵!”

“좋겠다. 전역 전에 소대장이랑 한잔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그전에 견장 해진이에게 넘겨주고!”

“지금 당장에라도 넘겨주고 싶습니다.”

“그래 내일 시간을 내어보도록 하자. 요즘 이래저래 소대장이 정신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새 TV에 향했다.

“이야, TV 잘 나온다. 행정반에 있는 TV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행정반 거랑 바꾸자.”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바로 방어를 했다.

“안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양보할 수 없습니다.”

“왜 인마? 행정반 것도 잘 나와!”

“그렇지만…… 아무튼 안 됩니다. 저 전역할 때까지 죽어도 안 됩니다.”

“왜 안 바꿔?”

“저 이걸로 핑크 봐야 합니다.”

김우진 병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우진이 핑크 팬이냐?”

구진모 상병이 나섰다.

“김 뱀 장난 아닙니다. 핑크 춤까지 추고 그럽니다.”

오상진 표정이 살짝 찡그러졌다.

“야, 우진아.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남자가 여자 춤은 좀……. 아무리 핑크가 좋다고 해도 말이야.”

오상진이 좀 떨떠름하게 생각을 하자 김우진 병장이 당당하게 말했다.

“소대장님 핑크는 사랑입니다. 제가 소대장님을 존경하지만 그런 말씀은 나의 핑크에 대한 모욕입니다.”

“와, 대단하다. 대단해. 김우진. 어느 날 핑크가 찾아와서 말뚝 박으라면 박겠다. 그렇지?”

순간 김우진 병장이 정색했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아무리 핑크가 좋아도 군대에 말뚝을 박는 것은 싫은 김우진 병장이었다.

“그래, 알겠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강태산 이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장실 청소는 할 만하냐.”

“이병 강태산. 괜찮습니다.”

“이제 얼마 정도 남았냐?”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 열심히 하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요령 피우지 말고, 너 사실 큰 잘못인데 중대장님께서 좋게 넘어가 주신 거야. 알고 있지?”

“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그리고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려라.”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씨익 웃었다. 오상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1소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래, 오늘 다들 고생했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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