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0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74)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웃으며 입을 뗐다.
“항간에 군 내부에서 떠들썩했던 사건이죠.”
“그렇지. 그런데 어느 순간 쑥 들어갔잖아.”
“네. 맞습니다.”
“쯧쯧쯧, 이 사건 당사자였다니. 진짜 몹쓸 사람이었네.”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사실 최기혁 준장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진 전역을 한 사람이었다. 다르게 말을 하면 불명예스러운 전역이었다.
“그 양반이 쫓기듯 옷을 벗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현재 연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겠네.”
“공관병 사건이었죠.”
“그렇지. 전역한 공관병의 신고로 발칵 뒤집어졌지. 한마디로 공관병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는 거지.”
“네.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이 쏙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윗선에 연줄이 있었겠지.”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장기준 사단장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이 양반에게 뭐라고 해줘야 하나? 본인 딸 간수나 잘하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애매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장군으로 전역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알게 모르게 주변 인맥도 좀 있지 않겠습니까.”
“이 양반 인맥이라…….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비서실장.”
“네.”
“내가 여기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다른 인맥을 통해서 압박하지 않겠습니까?”
나종덕 비서실장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장기준 사단장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 나도 오랜만에 선배님들 호출해야 해?”
“에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때 사단장실 전화기가 울렸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사단장실입니다. 네? 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종덕 비서실장이 손으로 수화기를 입구를 막고 조용히 말했다.
“사단장님, 그분입니다.”
“누구?”
“최기혁 예비역 준장이요!”
순간 장기준 사단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 양반도 양반은 못 되네. 전화 이리 줘.”
장기준 사단장이 손을 내밀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수화기를 건넸다.
“네, 장기준 소장입니다.”
-오, 장 소장. 간밤에 잘 잤나.
“네, 선배님.”
순간 장기준 사단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기혁이 자연스럽게 말을 놓은 것이었다.
‘이 양반이 갑자기 말을 놔? 어제까지 존대를 하더만, 갑자기 허세를 부리고 싶어졌나? 일단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장기준 사단장은 일단 화를 잠시 누르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 어제 내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었나? 언제쯤 그 친구를 볼 수 있지?
“선배님 죄송하지만 어제 부탁은 못 들은 걸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님, 제가 따로 확인을 해봤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오해는 당사자들끼리 풀어야지, 제가 이걸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새 군대가 옛날 같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에헤이, 장 소장. 서운하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후우, 선배님. 이렇게 전화를 주시는 것도 실례인 것은 아시죠.”
-이봐, 장 소장. 나 최기혁이네. 자네 선배!
바로 장기준 사단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네, 알고 있습니다. 최기혁 예비역 준. 장. 님! 예비역 준장이신 분이 소장인 나에게 전화를 해서 따지는 것입니다. 이게 맞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기준 사단장은 말을 딱딱 끊어서 대답했다. 수화기 너머 당황하는 최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최기혁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튼 뭐, 내가 갑작스럽게 전화를 해서 미안합니다.
최기혁은 또 말을 바꿨다. 이게 아닌 것 같았는지, 존대를 했다.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는 아니고, 사단장이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기준 사단장이 피식 웃었다.
“이런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나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가정사에 사단장이 연루가 되어야 합니까? 그렇게 따지면 같은 군인 가족인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튼 이 일은 그냥 넘어가시죠. 이만 끊겠습니다.”
-이, 이보시게 장 소장…….
“네, 선배님.”
-나에게 이런 식이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내가 설마 아는 사람이 없어서, 자네에게 부탁한 줄 아는가? 일을 좋게 풀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자네 꼭 쓴맛을 봐야겠나?
장기준 사단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제가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선배님 예전에 불명예제대를 할 뻔했죠.”
-가,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하나?
“설마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신 겁니까? 그 사건이 제법 큰 사건이라 다 알고 있습니다. 다들 알려봤자 군 명예에 실추될 뿐이니 쉬쉬한 것뿐이죠. 그런데 이 일 때문에 그 사건을 또 들추고 싶으신 것입니까? 만약 그 일이 들춰지면 다음에는 좋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지금 받고 계시는 연금도 못 받으실 겁니다. 그래도 연금은 지키셔야죠, 선. 배. 님!”
장기준 사단장이 딱딱하게 말을 했다.
-자, 장 소장……. 자네…….
최기혁은 많이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장기준 사단장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장기준 사단장은 곧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옆에 있던 나종덕 비서실장이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단장님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까?”
“내가 뭐라고 했는데?”
“방금 연금이랑…….”
“저 양반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 날 옷 벗기겠다고 협박을 하지 뭐야. 그래서 뭐 한마디 해줬지.”
나종덕 비서실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 아니, 무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예비역 대장도 아닌 준장이 말입니다.”
“내말이 그 말이야. 남들이 들으면 자기가 무슨 육군참모총장인 줄 알겠어.”
장기준 사단장이 헛웃음을 날렸지만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쯧쯧쯧, 전역을 해도 아직까지 그런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야.”
장기준 사단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종덕 비서실장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다시는 전화 안 하겠죠?”
“전화 안 할 거야. 그 집안 자체가 그런 집안이야.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니. 아무튼 오 중위가 중간에서 난감할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또 전화 오면 다시 나에게 돌려. 이번에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대답은 한 후 흐뭇한 미소로 장기준 사단장을 바라봤다. 장기준 사단장이 흠칫했다.
“왜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있나?”
“우리 사단장님께서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걸 이제 알았나?”
“아뇨, 예전부터 알았지만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이십니다.”
“어험, 이 사람이 갑자기 무슨 그런 말을…….”
장기준 사단장이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에도 나종덕 비서실장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튼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자꾸 실없는 소리를 하고 말이야. 그런 말 할 거면 어서 나가 일이나 봐.”
“네, 그럴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장기준 사단장이 피식 웃었다.
“참…….”
그리고 장기준 사단장의 시선이 다시 신문으로 향했다.
한편, 같은 시각.
최기혁은 들고 있던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놨다.
“에이씨!”
그러자 옆에 있던 최미선이 곧바로 말했다.
“왜 아빠? 안 된대?”
“그게 아니라, 요새 군대가 예전 같지 않아서, 잘못하면 인권이 어쩌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네.”
최기혁은 하지도 않은 말을 딸 앞에서 했다. 최미선은 인상을 썼다.
“아, 뭐야. 아빠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손녀 문제로 국방부장관이랑 통화를 해야겠어?”
“그래도……. 아이씨, 아빠만 믿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최미선은 괜히 투정을 부렸다.
“아빠, 진짜로 내 체면은 뭐가 돼!”
그러자 옆에 있던 사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장인어른에게 왜 그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내가 그 자식한테 얼마나 쪽을 먹었는지 알아?”
사위 박민철은 알고 있었다.
‘흥! 네가 쪽을 주면 줬지. 먹을 사람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장인어른 앞에서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쪽을 줄 수는 없었다. 박민철이 최기혁을 봤다.
“장인어른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문 체면이 있지.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최기혁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철이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장인어른도 군인이고, 그 친구도 군인이다. 괜히 장인어른이 나서 봤자 모양새가 빠진다고 말이에요. 이런 것은 정치가 해결하면 됩니다.”
최기혁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시 의원인 자네가 할 수 있겠다는 거야? 상대는 사단장인데?”
“어이구, 장인어른. 시 의원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서울시가 시 의원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서울시가 어떤 시입니까. 대한민국 수도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면 그렇게 따지면 저 나라에서 엄청 큰일 하는 겁니다.”
“알지, 알지. 우리 사위 내가 무시하나. 알긴 하는데……. 그래도 쉽지 않을 텐데.”
“제가 또 국방위원 의원님들하고 잘 알고 지냅니다.”
“국방위원? 국방위원이면 최익현 의원 그 양반?”
순간 박철민의 얼굴에 슬쩍 인상이 짙어졌다가 사라졌다.
“네, 제가 최익현 의원하고도 자주 밥먹고 그럽니다.”
“오오, 그래? 최익현 의원 그 양반이 나서준다면야……. 그런데 그 양반이 나서줄까?”
“아, 장인어른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박민철이 큰소리를 떵떵 쳤다.
오상진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을 불렀다.
“1소대장님?”
“…….”
“저기 1소대장님!”
이미선 2소대장은 좀 더 큰 목소리로 오상진을 불렀다. 그제야 오상진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불렀습니까?”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은 괜히 찔리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5중대장과 영화 데이트를 들킨 것 때문이었다. 설마 그 일 때문에 저러나 싶어 괜히 불러보았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3소대장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아까부터 자꾸 멍때리시는 것 같기도 하고.”
3소대장이 씨익 웃었다.
“정말 무슨 일 없습니까?”
“아뇨, 일은요, 무슨. 정말 별일 없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김철환 1중대장에게서 온 문자였다.
-내 방으로 좀 와라.
문자를 확인한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중대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