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603화
45장 까라면 까야죠(72)
그 말을 듣고 있던 최미선 역시도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
“이년이…….”
최미선의 손이 올라갔다. 바로 한소희의 뺨을 후려치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그 찰나 안희영 선생이 달려들었다.
“어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뭐야, 넌 또!”
최미선이 달려드는 안희영 선생을 밀쳤다. 안희영 선생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아악!”
그때 옆 책장을 건드렸는지 그곳에 있던 책들이 안희영 선생을 덮쳤다.
우당탕탕!
“안 선생!”
“선생님!”
주위에 있던 다른 선생들이 소리쳤다. 재빨리 책들을 치우고 안희영 선생을 일으켜 세웠다. 책들에 의해 안희영 선생의 이마에 상처가 생겨났다. 그 모습을 확인한 최미선이 당황했다.
“뭐, 뭐야? 왜 끼어들어서는…….”
최미선이 박지수를 쓰윽 안으며 중얼거렸다.
“왜, 선생이 끼어들고 난리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가자, 지수야.”
한소희가 최미선을 잡았다.
“이봐요. 아줌마. 지금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이거 안 놔?”
최미선이 한소희의 손을 뿌리치며 박지수를 안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 원장이 쩔쩔매며 뛰어나갔다.
“지수 어머니.”
그 모습을 보는 한소희는 황당했다.
“진짜, 뭐 이런 유치원이 다 있어.”
한소희는 정말 어이없어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안희영 선생을 봤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안희영 선생이 말했다. 한소희는 안희영 이마의 상처가 난 것을 보고 말했다.
“저 아줌마, 폭행죄로 고소해 버려요.”
그러자 안희영 선생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보다 그 상처……. 병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뇨,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이 상처는 연고 바르면 괜찮아요. 대신 이모님, 이번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
한소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담임 선생이 상처 난 얼굴로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줄 수도 없었다. 그보다 이 일에 대해서 확실히 확인이 필요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주세요. 우리 소은이가 잘못한 건가요?”
안희영 선생이 소은이를 바라봤다. 소은이는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뇨. 소은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소은이는 반에서 가장 인기도 많고, 얼마나 착한데요. 진짜 뭔가 문제가 있었다 해도 소은이 잘못은 아닐 거예요.”
안희영 선생이 그렇게 말을 해줬다. 한소희의 표정이 다소 풀어지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고마워요. 그럼 오늘은 그냥 돌아가 볼게요.”
오상진 뒤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지금 어머니들 싸움에 괜히 끼어들어봤자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한소희는 소은이를 안은 채 오상진을 봤다.
“상진 씨, 우리 그만 가요.”
“네.”
오상진은 소은이 상태를 확인하고 유치원을 나섰다. 한소희는 소은이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화가 무척 났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상진은 운전을 하고, 한소희는 소은이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소은아. 뭐 먹고 싶어?”
“아빠랑 짜장면 먹기로 했어요.”
“그래? 그럼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갈까?”
“네.”
한소희가 고개를 들어 오상진을 불렀다.
“상진 씨?”
“지금 중국집으로 가고 있어요.”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그때 소은이가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삼촌!”
“응?”
“왜 아빠가 안 오고, 삼촌이 왔어요?”
“아, 사실은…….”
오상진이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곧바로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으응, 사실은 말이야. 삼촌과 이모가 소은이가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빠 대신 왔는데……. 안 될까? 아니면 이모가 괜히 왔나?”
“아니에요, 저도 이모 너무 보고 싶었어요.”
소은이가 환하게 웃으며 한소희에게 안겼다. 한소희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소은이를 꽉 안았다.
“어머나, 우리 소은이 너무 예뻐. 이모도 우리 소은이 같은 딸 낳고 싶다.”
“정말요?”
“그럼.”
백미러 너머 오상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잠시 후 오상진이 중국집 앞에 도착을 했다 한소희가 차창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상진 씨 여기 말고요. 제가 아는 곳이 있거든요. 우리 거기로 가요.”
“아는 곳이 있어요?”
“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그냥 가까운 곳에서 먹죠.”
오상진이 말하자, 한소희가 얼굴은 굳히며 말했다.
“상진 씨, 오늘 저 정말 많이 참고 있는 거거든요. 맛있는 것을 먹어야 이 화가 누그러질 것 같아요.”
오상진이 움찔하며 바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오상진은 군말 없이 차를 돌렸다. 그리고 한소희가 알려 준 곳에 도착을 했다.
짜장면 가게 안으로 들어간 오상진과 한소희. 그 옆에 소은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은아 왜? 아직도 기분이 안 좋아?”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오상진이 물었다. 그러자 소은이가 오상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삼촌, 소은이는 거짓말쟁이예요?”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지수가 그랬어요. 자기 할아버지가 단군이라면서…… 막……. 우리 아버지보다 높다고 그랬어요.”
“단군? 단군이라니……. 혹시 장군?”
오상진의 물음에 소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단군.”
오상진은 잠깐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불현듯 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왜 원장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네.’
오상진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소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애가 장군의 손녀였어요?”
“어, 그건 저도 확실히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런 모양이네요.”
“상진 씨, 어떻게 해요? 내가 너무 실수한 거죠?”
한소희는 솔직히 예전 같으면 ‘그게 뭐 어때서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이 군인이고, 군인 와이프가 되겠다고 맘을 먹은 이상 걱정이 앞섰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 씨, 이제 그것도 다 알아요?”
“그럼요. 결혼할 남자가 군인인데. 그것도 몰라서 되겠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한소희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냥 내가 바로 사과할 걸 그랬어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할까요?”
그러나 오상진은 한소희의 성격을 알았다. 자존심도 엄청 세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 오상진 스스로가 그 꼴을 보지 못했다.
“아뇨. 그러지 말아요. 그리고 소희 씨가 잘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그리 소리를 지르는 부모는 말이 안 되는 거죠. 우리는 할 도리는 다한 겁니다. 제가 오히려 바보같이 가만히 있어서 더 미안할 뿐입니다.”
오상진은 짜장면을 먹고 있는 소은이를 바라봤다.
“소은아, 삼촌이 미안해. 같이 싸워줘야 했는데. 못 그래서 정말 미안해.”
소은이는 입 주변에 잔뜩 짜장을 묻혀 놓고, 히죽 웃었다.
“아니야, 삼촌. 괜찮아요. 엄마가 그러던데, 막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
오상진이 멋쩍게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형수님께서 교육 하나는 잘 시켰네. 라고 생각했다.
“짜장면 많이 먹어.”
“네.”
소은이가 다시 짜장면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소은이가 물었다.
“그런데 삼촌. 대대장이 높아? 아니면 단군이 높아?”
“소은아. 장군이 높아!”
“그래요?”
“그런데 대대장도 높아.”
“그럼 둘 중에 누가 높아?”
한소희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둘 다 높아.”
“그래요?”
“응, 그러니까 짜장면 맛나게 먹어.”
“알았어요. 이모.”
소은이는 한결 풀린 표정으로 짜장면 먹방을 찍었다. 오상진도 탕수육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입에서 씹는데 잘 넘어가지는 않았다. 게다가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얘기를 중대장님께 뭐라고 하지?’
오상진은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그날 밤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현관문 ‘띠디딕’ 소리가 들리며 김선아가 들어왔다. 약간 어둑한 거실로 갔는데 아무도 없자 김선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자나?”
김선아가 몸을 돌려 부엌을 봤다. 그곳엔 불빛 하나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이 보였다.
“어머나, 깜짝이야.”
김선아는 너무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물었다.
“당신 거실 불은 다 꺼놓고 뭐 해요?”
“으응, 당신 왔어?”
“소은이는요?”
“자!”
“그래요?”
김선아가 소은이 방을 몰래 열어 확인을 했다. 소은이가 잘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김철환 1중대장 곁으로 갔다.
“오늘 괜찮았어요?”
“으응……. 그런데…….”
김선아는 반쯤 먹은 소주병과 그 옆에 놓인 김치를 보며 말했다.
“안주가 이게 뭐예요?”
김선아는 안쓰러운 얼굴로 냉장고를 열었다.
“조금만 있어 봐요. 금방 안줏거리 해줄게요.”
김선아는 후딱 햄을 구워서 식탁에 놓았다. 그리고 빈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여보,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혼자 술이야?”
“무슨 일은…….”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김선아는 일단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때까지 김철환 1중대장은 채워진 술잔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아는 다른 때 같으면 곧장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의 분위기에 그 앞으로 갔다.
“왜 안 씻고?”
“당신이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씻어요.”
“나 괜찮아.”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인데요. 말해봐요. 아니면 부대에서 힘든 일 있었어요?”
“아니, 힘든 일은……. 그보다 내가 뭐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물어봐요.”
“우리 빚은 다 갚았지?”
“다 갚았죠.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그럼 혹시 모아놓은 돈은 있어?”
“에이, 빚 갚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사할 돈도 없는데요.”
“그렇지?”
“왜? 무슨 일인데요.”
“아니, 그게……. 어쩌면 전역을 해야 할지도 몰라.”
“전역? 아니, 왜?”
김선아는 뜬금없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지난번에 일이 잘 풀려서 진급할 것 같다며.”
“그건 그런데…….”
“혹시 당신 나 몰래 사고 쳤어요?”
“사고는 무슨…….”
“맞구나. 사고 쳤구나.”
“사고 안 쳤어!”
“그럼 뭔데요? 어서 말해봐요.”
김선아가 닦달했다.
“음, 내가 사고 친 것은 아니고.”
“그럼 뭔데요?”
“사실 말이야. 소은이가…….”
김철환 1중대장은 어차피 알게 될 거, 오늘 오상진에게 들었던 얘기를 전부 했다. 얘기를 다 듣고, 김선아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도 한 잔만 줘요.”
김철환 1중대장이 김선아에게 술을 따랐다. 그것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쓰다.”
김철환 1중대장이 구워 온 햄을 김선아에게 내밀었다
“어머, 뭐야. 안주도 직접 주고.”
“어? 원래 나 잘 먹여주지 않았나? 무슨 소리야. 가끔 해줬잖아.”
“뭐예요. 결혼한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는데.”
“정말? 어서 먹어, 팔 떨어져.”
김철환 1중대장은 괜히 무안했던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선아가 피식 웃으며 안주를 받아먹었다.
“그래도 당신이랑 이렇게 있으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