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8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7)
충효대대 작전과는 언제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온 서류를 확인하거나, 사단에서 연락이 오고, 다음 훈련 상황을 대비해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 속에 장석태 중위도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김희진 소위가 슬쩍 장석태 중위를 불렀다.
“장 중위님.”
“네?”
장석태 중위가 고개를 들었다. 김희진 소위가 어느새 몰래 커피 캔을 들고 내밀었다.
“이거 드십시오.”
“어? 이게 뭡니까?”
장석태 중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김희진 소위가 환하게 웃었다.
“커피 드시면서 일하십시오.”
“아, 저 주려고 가져오신 겁니까?”
“에이,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네,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장석태 중위는 대답을 하고는 다시 일에 열중했다. 그런데 김희진 소위는 가지 않고, 옆에서 다른 커피 캔 하나를 따서 마셨다.
“혹시 장 중위님은 여자 친구 있으십니까?”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그럼 저하고 이번 주말에 영화 보시겠습니까?”
“아, 이번 주말 말입니까?”
장석태 중위는 잠깐 생각을 했다.
‘딱히 이번 주말에 약속은 없지만…….’
장석태 중위가 옆에 서 있는 김희진 소위를 봤다. 군인치고는 나름 예쁘장한 얼굴에 키도 컸다.
‘나쁘지는 않은데……. 내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먼저 고백까지 해줬는데, 받아? 말아?’
그때 불현듯 오상진이 박은지를 소개팅해 주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 맞다. 소개팅! 오 중위…….’
장석태 중위는 살짝 고민을 했다. 하지만 사진으로 봤던 박은지가 훨씬 맘에 들었다. 장석태 중위는 사진 속 그녀를 떠올리며 김희진 소위를 봤다.
“아, 미안합니다. 이번 주는 바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다음에 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김희진 소위는 쿨하게 대답을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고는 조금 전 환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표정을 잔뜩 구겼다. 잔뜩 인상을 쓰며 고개를 힐끔 돌려 작전과 문을 바라봤다.
“뭐야. 웃겨! 누구는 자기가 좋아서 그러나……. 아무튼 사단장 아들만 아니었어도……. 에이씨! 김희진 많이 죽었다.”
그리 중얼거리고는 복도를 걸어갔다.
김희진 소위가 나가고 장석태 중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인상을 썼다.
“그냥 영화 본다고 할 걸 그랬나.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기다려야지.”
장석태 중위는 휴대폰을 꺼냈다.
“아니, 왜 답을 안 줘?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에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내가 먼저 전화해 보지 뭐.”
장석태 중위가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오상진 중위입니다.
“오 중위. 나 장 중위입니다.”
-네, 장 중위님. 무슨 일입니까?
“엇? 내가 왜 전화한 줄 모릅니까?”
-네?
“아니, 소개팅, 소개팅!”
-아, 참! 그랬죠.
“아니, 사진 딸랑 하나 보내줘 놓고……. 그리고 내가 오케이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다 할 얘기도 없고! 혹시…… 나 별로랍니까?”
장석태 중위는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아닙니다. 상대방에서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합니까? 이제 와 소개시켜 주기 싫은 겁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내가 말씀은 안 드렸습니까? 제 친구가 기자라서…….
“그래서?”
-엄청 바쁩니다.
“와, 대한민국 특종을 혼자 다 잡는 모양입니다.”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나마나, 방금 새로 온 정훈장교 아시죠? 그 사람이 데이트 신청하는 것을 깠습니다. 그러니까, 책임지십시오.”
-오오오, 그러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이 사람이, 진짜! 뭔 축하입니까. 방금 깠다는 소리 못 들었습니까?”
-네네, 들었습니다. 그래도, 오오오오…….
“됐습니다. 끊습니다.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시죠. 오 중위를 믿은 내가 잘못입니다. 앞으로 저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장 중위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곧 좋은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이번 주에 만날 수 있게 약속 잡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또 이래놓고, 기다리게 하면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꼭 약속 잡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번 한 번만 참아 보겠습니다.”
-현명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겁니까?
장석태 중위가 찔끔했다. 설마 여자 때문에 전화했다는 것이 조금 맘에 걸렸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하하, 내가 그것 때문에 오 중위에게 전화했겠습니까?”
-그럼 어떤 이유로 전화 했습니까?
“오늘 뭐 하십니까?”
-오늘은 별일 없습니다.
“그럼 오늘 술 한잔하시죠.”
-술 말입니까? 둘이서?
“중대장님도 같이 불러서 한잔해도 좋고 말이죠.”
-오호, 전에 그 멤버가 만나서 한잔하는 겁니까?
“네, 좋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모임 생기는 거 아닙니까?
“모임은 또 무슨 모임입니까. 맘 맞는 사람끼리 술 한잔하고 그러는 것이죠. 시간 괜찮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중대장님도 아마 괜찮을 겁니다.
“오케이, 그럼 오늘 저녁에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장석태 중위가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이것 참, 생각지도 않게 술 약속이 생겨 버렸네.”
장석태 중위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상진도 전화를 끊고 나서 피식 웃었다. 그때 지나가던 4소대장이 힐끔 고개를 내밀었다.
“1소대장님.”
“네?”
“오늘 저녁 약속 있으신가 봅니다.”
4소대장은 역시 레이더 귀를 가진 모양이었다. 바로 오늘 약속 잡은 것을 물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아, 네에……. 들었습니까?”
“제가 좀 귀가 밝지 말입니다.”
4소대장은 자기가 엿들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어디 가십니까?”
“아는 사람이랑 술 한잔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1소대장님 좀 너무하십니다.”
“네?”
“아니, 저희하고는 술 한잔하자고 해도 그렇게 안 하시더니. 다른 사람하고 술 약속은 잘 잡으십니다. 우리하고도 술 한잔해주십시오. 지난번에 회식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희하고는 또 언제 한잔합니까?”
“아, 그랬죠. 미안합니다.”
오상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딴 사람만 챙기지 마시고, 저희도 좀 챙겨 주십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행정반을 나갔다. 그러자 3소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4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방금 1소대장님이 누구랑 통화한 줄 아십니까?”
“누굽니까?”
“작전과에 장석태 중위님입니다.”
“아, 사단장님 아드님?”
“네. 요새 그분과 잘 어울리는 거 아십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런 소문은 또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그거야, 지난번에 제가 술 한잔하고 지나가다가 같이 있는 것을 봤죠.”
“그렇구나.”
“이번에도 보나 마나 그 둘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아까 말하는 걸 보니 장 중위님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장 중위님?”
“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대대에 장 중위님이 몇몇 있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추리력이 코난 저리 가라입니다.”
“뭐, 이런 것 가지고 이럽니까?”
4소대장이 또 의기양양했다. 그러다가 3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아니, 저러다가 우리 또 버리고, 사단 올라가면 어떻게 합니까.”
“허참! 그게 걱정입니까?”
3소대장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한 세월이 얼마입니까. 우리도 좀 챙겨 주면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와 자기만 진급하겠다고 하면…… 솔직히 1소대장님 실망입니다.”
“에이, 설마 1소대장님께서 그러시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 막말로 지금도 보십시오. 우리랑은 술 한잔하자고 그렇게 말해도 안 하더니. 사단장님 아들이 술 한잔하자고 하니까. 바로 약속 잡는 거 보십시오. 애초에 우리랑은 상대하기 싫다는 겁니다.”
“무슨 또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니, 딱 봐도 그러지 않습니까.”
“네네. 그것이 다 우리 군인들의 애로사항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마셔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제가 술 마시자고 그러는 겁니까?”
“그러지 말고 한잔합시다.”
3소대장의 부탁에 4소대장이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그럼 뭐 그러시죠.”
4소대장이 대답을 하고 건너편 이미선 2소대장을 바라봤다.
“2소대장, 오늘 한잔 어떻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아뇨, 죄송해요. 오늘 바쁜 일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4소대장이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선 2소대장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업무를 보는 척했다. 그러다가 혼잣말로 살짝 중얼거렸다.
“1소대장님이 장석태 중위님과 친하다고? 왜? 언제부터?”
이미선 2소대장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상진은 중대장실 문 앞에 있었다.
똑똑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대장님.”
“어, 1소대장.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장석태 중위가 오늘 저녁에 술 한잔하자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나도 같이 마시재?”
“네.”
“에이, 너희들끼리 마시면서 나는 술값 내라는 거야?”
“그게 아닙니다. 지난번에 같이한 것도 있고 해서 같이하자고 장 중위가 말했습니다.”
“…….”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이 없었다. 오상진이 잠깐 기다렸다. 그러다가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홱 들며 물었다.
“혹시 이거 큰 그림인가?”
“네?”
“사단장님께서 아들 시켜서 이렇게, 저렇게 뭐, 알아보고 그런 건가?”
“아, 중대장님! 너무 가셨습니다. 사단장님께서 뭘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것도 아들을 시켜서 확인하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겠지?”
“네.”
“으음, 하긴 소주를 안 먹은 지 오래되긴 했어!”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형수님께는 허락 받으셔야죠.”
“에잇! 나를 뭐로 보고! 술 한잔하는데 네 형수에게 허락까지 받아야 해?”
김철환 1중대장이 강하게 나갔다. 그러자 오상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식, 넌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김철환 1중대장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기다려 봐.”
김철환 1중대장은 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그게 아니라 상진이랑 모처럼 술 한잔…… 뭐? 마셔도 된다고? 아, 대신 일찍 들어오라고? 으응, 알았어. 그래, 알았다고.”
김철환 1중대장은 곧바로 전화를 끊고 표정이 밝아졌다.
“이야, 너희 형수가 모처럼 술 마시란다. 역시 네 얘기만 하면 프리패스라니까.”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맞아. 맞다니까.”
“네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이따가 퇴근하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어, 그래.”
오상진이 중대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