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5)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스탠드 발판을 연결시킨 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제 안테나선만 연결시켜서 확인하면 끝이었다.
“으음 좋아.”
한종태 대대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옆으로 곽부용 작전과장이 다가왔다.
“대대장님 맘에 드십니까?”
“작전과장. 내가 뭐라고 했어. TV는 자고로 커야지 볼만하다고 했지. 한번 봐봐. 이게 몇 인치라고 했지?”
“41인치라고 합니다. 요즘 나온 TV 중에서는 가장 큰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이 TV를 1중대 1소대 강태산 이병 아버지가 보냈다고 했지.”
“네.”
“후후후, 1중대는 병사 복도 많아. 최강철 일병도 그렇고, 강태산 이병도 그렇고……. 우리가 일부러 배치를 하는 건가?”
순간 곽부용 작전과장이 뜨끔했다. 그도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었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전부 돌려서 신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무튼 그런 것도 조심해야 해. 잘못했다간 뇌물 어쩌고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TV를 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러자 한종태 대대장도 바로 동조를 했다.
“그럼, 분위기가 확 달라졌지. 그보다 여기서 TV를 보면 아주 잘 보이겠어. 인물들도 크게 나오고 말이야.”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대답을 했다.
“맞아. 맞아. 내가 말이야. 집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면 재미가 없어.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큰 TV를 봐야 좀 볼만하니 말이야.”
“…….”
곽부용 작전과장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TV를 보다가 슬쩍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새로 온 TV 기념으로 오늘 소주 한잔 어때?”
곽부용 작전과장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렇다고 싫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계급이 깡패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퇴근하고 술 가지고 와.”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가져와야지.”
한종태 대대장은 자기가 술을 마시자고 해놓고, 곽부용 작전과장에게 술을 사 오라고 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럼 그렇지.’
곽부용 작전과장이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TV를 바라보던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작전과장, 사단장실 TV는 몇 인치인가?”
곽부용 작전과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이것보다 작지는 않겠지?”
한종태 대대장은 왠지 사단장님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같은 시각, 김철환 1중대장의 사무실에도 TV가 설치되었다. 김철환 1중대장 역시 흐뭇한 얼굴로 설치되는 TV를 보고 있었다.
“역시 그전에 낡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던 TV를 보다가 새로운 TV를 보니 아주 좋아. 멋져!”
어느새 대대장실 TV를 다 설치하고 내려온 오상진이 있었다. 이미 1소대원들이 와서 TV 설치를 마무리 중이었다. 그 중심에 차우식 병장이 있었다.
“중대장님 설치 다 끝났습니다.”
“오, 차 병장. 고생했어.”
“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충성!”
“그래.”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우식 병장과 최강철 일병이 중대장실에서 나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김철환 1중대장이 곧장 TV 곁으로 다가가 TV를 매만지며 말했다.
“1소대장 이거 너무 큰 거 아니야?”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대장실과 똑같은 사이즈입니다.”
“뭐? 야! 대대장실과 똑같으면 어떻게 해. 한 사이즈 작은 거로 보내라고 하지.”
“그렇지 않아도, 한 사이즈 작은 거로 보내라고 했는데 어떻게 또 똑같은 것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대대장님이 보면 어떻게 해? 난리 나는 거 아냐?”
김철환 1중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대대장님이 중대장실에 오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래도 당분간 다른 중대장들도 여기 부르면 안 되겠네. 다들 입이 싸서 말이지.”
“그나저나, TV는 괜찮으십니까?”
“이야, 이렇게 턱 하니 놓고 보니, 품격있고 좋다, 야.”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상진아.”
“네.”
“너도 빨리 진급해서 여기 사무실 써!”
“왜 그러십니까? 저 중위 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대위를 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자식이 빼기는……. 내가 사단 인사과에 아는 사람 있는 걸 모르냐. 거기서 네 얘기하더라.”
“제 얘기를 말입니까?”
“널 아주 눈여겨보신다고 하더라.”
“에이, 제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그럽니까.”
“자식이……. 뭐, 아무튼 나도 네 덕분에 빨리 진급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왕이면 네가 여기 물려받는 것이 좋지 않겠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중위 계급 최소 2년 6개월은 달고 있어야 한다는 거 말입니다.”
“알지.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게 문제야. 일 잘하는 사람 빨리빨리 진급을 해줘야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도 오상진은 엄청 빠른 진급을 했다는 것이었다. 1년 후 중위로 올라가고, 중위에서 대위로 가려면 최소 2년 6개월 후에 가능했다.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려면 8년을 채워야 했다.(1차 중대장, 2차 중대장 후 참모)
소령에서 중령은 최소 4년이었다.(1차참모, 2차참모) 이 상태면 거의 40살이 되어야 중령에 진급한다는 것이었다. 오상진 역시도 45살에 회귀를 했다. 그때가 중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상진은 솔직히 일찍 진급할 생각은 없었다.
“중대장님. 저는 지금 이렇게 중대장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야, 그런 말 마라.”
“네?”
“나도 좋은 데 가야지. 계속 여기서 중대장 하라고?”
“와, 중대장님 서운하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와, 이 자식 봐라. 중위 달았다고 말이 막 편해지고 그러지.”
“아, 또 왜 그러십니까.”
“나도 인마. 빨리빨리 소령 달고 올라가야지. 너희 형수가 난리도 아니야. 좀 넓은 곳으로 이사 가자고.”
“지금 관사에 사시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아파트 관사가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주어진다고. 그리고 소은이도 곧 학교 들어가야 하는데 초등학교 근처 아파트로 갔으면 해.”
김철환 1중대장이 솔직하게 말을 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은이도 벌써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었죠. 그보다 소은이 유치원 잘 다닙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사실 말이야. 우리 소은이가 유치원 가기를 점점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지.”
“왜 그럽니까?”
“그걸 나도 몰라. 그냥 유치원 가기가 싫데.”
“으음, 무슨 일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에이, 유치원에 뭔 그런 일이 있겠어. 들어보니까, 그 나이 때는 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그러더라고. 게다가 엄마 품에서 너무 오냐오냐 자랐어.”
“그래도 소은이 참 착합니다.”
“착하지. 암, 누군 딸인데.”
“그래도 유치원을 가기 싫다면 이유라도 알아보시지 그러십니다.”
“유치원이 다 그렇지. 아까도 말했잖아. 그 나이 때는 다 가기 싫다고 한다고 말이야.”
“……네.”
“됐어. 신경 쓰지 마.”
김철환 1중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상진 역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번뜩 떠오른 생각으로 물었다.
“가만! 설마 내무실에도 이 사이즈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에이, 아닙니다. 내무실은 이것보다 좀 작습니다.”
오상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1소대 내무실에도 한창 TV가 설치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이즈가 작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큰 사이즈였다.
“와, 대박! 이게 뭡니까? 오오, 이게 진짜 저희 겁니까?”
구진모 상병이 난리를 쳤다. 김우진 병장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자고로 TV는 이 정도는 돼야지.”
그러자 박중근 중사가 내무실로 들어왔다.
“얘들아, TV 설치 다 했냐?”
“충성! 네, 지금 막 끝냈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박중근 중사도 설치된 TV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크네. 보기 좋다.”
“하하핫. 완전 멋있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박중근 중사가 입을 열었다.
“강태산 이병 어디 있나?”
“태산이 잠깐 심부름 보냈습니다.”
“야, 태산이 심부름시키면 어떻게 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우진 병장이 의아해했다. 당연히 막내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누구에게 시키냐는 듯 묻는 것 같았다. 그러자 박중근 중사가 입을 열었다.
“이 TV 강태산 이병 아버지가 보내주신 거야.”
“네에?”
1소대원들 전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강태산 이병 아버지가 지난 일 고맙다고 TV를 보낸 거야. 여기뿐만이 아니라, 대대장님실에도 보내고, 중대장님실에도 보냈더라. 알고 보니, 강태산 이병 잘사는 것 맞는 것 같더라.”
“아, 그렇습니까? 태산이 이 자식 구라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잘사는 집이었나 봅니다.”
박중근 중사가 설치된 TV 쪽으로 갔다.
“이야, 이것이 PDP라는 것이구나. 요즘 뜨고 있는 TV라던데.”
“네, 맞습니다. 뒤가 불룩 나오지도 않고, 완전 평면입니다.”
1소대원들 역시 새로운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중근 중사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 지난번 사격 사건 이후로 태산이 막 괴롭히고 그러고 있지 않지?”
김우진 병장이 바로 답했다.
“에이, 저희 안 그럽니다. 태산이에게 엄청 잘해줍니다. 그때 보셨지 않습니까. 태산이랑 같이 연병장도 돌아줬습니다.”
“나도 보긴 했지. 그래도 혹시 물어봤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뭘 잘못했다고 해도 이등병 심하게 갈구지 마라. 너희들도 이등병 시절이 있었지 않냐. 그러니 감싸줘.”
박중근 중사는 노파심에 잔소리를 했다. 1소대원들도 그것을 알기에 힘차게 대답을 했다.
“에이, 걱정 마십시오.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박중근 중사가 김우진 병장을 힐끔 봤다.
“인마, 난 네가 걱정이다. 네가!”
“저 안 그럽니다. 2주 후면 제대하는 말년입니다. 말년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래도 넌 괴롭힐 것 같은 아주 불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뭐냐?”
“쓸데없는 기분입니다. 이제 저 믿어주십시오.”
김우진 병장이 강하게 말했다. 사실 박중근 중사는 예전 강대철 사건 때 뒤통수를 한 번 맞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쉽사리 못 믿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다.
“알겠다. 어차피 제대하니까. 어쨌든 너만 믿는다.”
“네. 걱정 마십시오.”
김우진 병장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박중근 중사는 못 미더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무실을 나갔다.
“충성.”
“쉬어라.”
박중근 중사가 나가자마자 김우진 병장이 말했다.
“야야, 빨리 TV 틀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