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4)
“그래. 이 자식이 하는 말이 이번 주에 핑크가 컴백한다는데.”
“아, 네네. 맞습니다. 핑크가 컴백을 합니다.”
솔직히 김 부장도 핑크를 나름 좋아하고 있었다.
“어쨌든 TV가 고장 났으면 한 대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냥 보내주면 되는 건가?”
“아무래도 책임자인 오상진 중위랑 얘기를 나눠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 TV는 얼마나 좋은 거로 사서 보내줄까? 최신상으로 보내줄까?”
“에이, 그런 걸 보내주면 좀 그렇습니다.”
“뭐? 그래도 내가 잘 나가는 회사 대표인데, 구닥다리 보내주면 내 체면이 뭐가 돼!”
“그럼 다른 쪽을 한번 생각해 보시죠.”
“뭘?”
“중대장실에도 TV가 있을 것 아닙니까? 거기도 이참에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중대장? 아, 그 양반?”
강 대표는 국군수도병원에서 김철환 1중대장의 멱살을 잡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 어쨌든 제대로 사과도 못 했는데 이번 기회에 TV를 바꿔줘?”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강 대표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강 대표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소대장님. 강태산 애비 됩니다.”
-아, 네에.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아버님께서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라 소대에 TV가 고장 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TV가 말입니까? 아이고 이 녀석들 별소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제가 TV를 잘 수리해서…….
“아이고, 그런 소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TV 수리를 하려면 한참 걸리지 않습니까. 아예 고장이 났다고 하던데.”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고쳐서 쓰면은…….
“아니,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TV 바꾸시죠.”
-네?
“지난번에 그 일도 있고 해서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아들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TV 제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강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이 얘기를 들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강태산 이병이 없는 집 자식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뜻 ‘네, 그리 해주십시오’라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아,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그리고 혹시 중대장실 TV도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오래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아, 병원에서 실수한 것도 있고. 중대장님 TV도 바꿔드리고 싶은데 안 될까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강태산 이병 아버님이 생각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또 이렇게 터놓고 말해주니 오상진 스스로도 얘기하기가 편했다.
-뭐, 그렇게 해주신다면 중대장님과 얘기를 한번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그럼 그리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강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공짜로 해준다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어.”
그 시각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중대장실로 바로 갔다. 이 일은 질질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똑똑.
“들어와.”
오상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철환 1중대장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열심히 뭔가를 작업 중이었다.
“충성. 중대장님.”
“어어, 어서 와. 무슨 일이지?”
오상진이 꺼져 있는 작은 TV를 슬쩍 바라봤다.
“중대장님 지금 TV 보시기에 좀 불편하지 않습니까?”
“TV? 왜? 나 별로 안 보는데.”
“그게 아니라 TV 바꾸실 때가 안되었나 싶어서 물어봤습니다.”
“당연히 바꿀 때가 되었지. 이 TV가 내가 알기론 10년이나 된 건데. 전전 중대장 때 바꾸고 안 바꾼 건데. 봐봐, 딱 봐도 상태 안 좋잖아.”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TV 얘기는 꺼내고 그래? 왜 네가 바꿔주게?”
“강태산 이병이…….”
“야, 강태산 얘기 꺼내지도 마. 내가 그 자식 죽이려다가 말았는데.”
“오, 그럼 제가 말씀드릴 것이 없는데…….”
“뭔데 또!”
김철환 1중대장이 날카롭게 말했다.
“아니, 강태산 이병 아버님께서 중대장님 TV 바꾸어 주고 싶다고 하십니다.”
“뭐? 왜에?”
“아니, 지난번의 실수도 있고. 이번에 태산이가 사고 친 것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TV로 퉁 치재? 웃기네, 그 양반.”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오상진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바꿀 때가 되긴 했지만……. 그런데 받아도 돼? 독약 아니야?”
“뭐, 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강태산 이병 집이 못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작 TV 하나 바꿔주겠다는 건데 말입니다.”
“그렇지? 별 이상 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알았어, 그럼 바꿔달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다시 불러 세웠다.
“1소대장.”
“네.”
“알지, TV 잘 골라야 한다. 애매한 것을 사면 대대장님에게 빼앗긴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이즈는 제가 잘 조절하겠습니다.”
참 웃긴 것이 군대는 무조건 계급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대대장이 무슨 차를 사면 그 이상은 절대로 끌고 다니지 못한다. 이번 TV도 마찬가지다. 오상진도 그것을 알기에 요령껏 알아서 조절하기로 했다. 오상진이 TV사이즈를 확인했다.
“저것이 몇 인치죠?”
“아마 27인치 아니겠냐?”
“그렇겠습니다. 그래도 32인치가 훨씬 좋은데.”
“야, 대대장님 TV는 몇 인치였냐?”
“32인치였습니다.”
“아이씨, 그럼 안 되겠네. 27인치로 해야겠다.”
김철환 1중대장은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럼 27인치로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해라.”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김철환 1중대장은 실실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호라, 새 TV라.”
김철환 1중대장이 앞에 있는 낡은 TV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노트북으로 돌렸다.
중대장실을 나온 오상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님. 가능하면 중대장실에 들어갈 것은 27인치로 해주십시오.”
-27인치요? 그거 너무 작지 않아요?
“대대장님실에 들어가는 TV가 32인치어서 말입니다. 27인치가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강 대표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김 부장을 불렀다. 김 부장이 대표실 사무실로 들어왔다.
“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아, 김 부장. 27인치를 준비해 달라고 하는데. 이거 너무 작지 않냐? 아니면 날 우습게 생각하나?”
강 대표의 말에 김 부장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피식 웃었다.
“혹시 대대장실에 있는 TV를 얘기 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 얘기를 했지.”
“그럼 이해가 됩니다. 대대장실 TV보다 크게 하면 안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와, 뭐야. 왜 그런 눈치까지 봐야 해?”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대장실 TV까지 확 바꿔버리시죠.”
“대대장 그 양반이 나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에이, 그래도 이번에 해주면 좋아하겠죠. 그리고 어쩌면 태산 군도 잘 봐주고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그럼 대대장실은 얼마나 큰 걸로 해줘야 해?”
“제가 잠시 프린트를 뽑아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 부장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약 20분 후 김부장이 들어왔다. 손에는 프린트가 있었다.
“대표님 제가 요즘 신상품을 뽑아 와 봤습니다. 현재 가장 크게 나온 것이 40인치짜리 PDP TV입니다. 요즘 이게 가장 핫합니다. 대대장실에는 이걸로 하고, 중대장실에는 35인치 정도로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지?”
강 대표가 프린트해 온 것을 쭉 확인해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무실에는 32인치짜리 놔도 되겠네.”
“아이고 내무실에 32인치 넣으면 난리 납니다.”
“왜? 별로야?”
“아뇨, 너무 커서 말입니다.”
“크다고?”
“네. 목 빠집니다. 그냥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김 부장이 알아서 해.”
“네. 제가 잘 조절해서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네, 맡겨만 주십시오.”
김 부장이 선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오상진은 위병소에서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면회소 주차장에는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오상진 중위님?”
담당기사가 오상진을 보고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오상진 중위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기사는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부대로 배달을 해보기는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기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차량 뒤에 있는 3대의 TV를 보여줬다.
“이것입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확인을 마쳤다. 그러자 기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네.”
오상진은 사인을 한 후 자신의 차량에 옮겨 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오상진은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차량을 끌고 다시 부대로 복귀하려고 했다. 그전에 위병소에 반입 물품에 대해서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뭡니까?”
위병소장이 물었다.
“아, TV입니다.”
“TV 말입니까? 이야, 사단장님께 가는 겁니까?”
“네? 아뇨. 저희 부대 이병 아버님께서 대대에 기증하신 겁니다.”
“아, 기증……. 알겠습니다.”
위병소장은 살짝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오상진은 서류를 다 작성한 후 내밀었다.
“됐죠?”
위병소장이 확인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됐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오상진이 눈인사를 하고는 차를 타고 부대로 올라갔다. 그사이 위병소에 있던 부사관 한 명이 입을 뗐다.
“이야, 저 TV를 부대에 기증한다고? 돈 많은가 보네.”
“고작 3대야. 그걸로 무슨……. 그보다 사단장님에게 선물하는 줄 알았네.”
“사단장님께 선물하는 것이 아닙니까? 3대나 있던데 말입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전부 대대로 가는 것 같더라.”
“이야, 좀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3대 정도 받았으면 사단장님께 하나 주겠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놀러 온 부사관이 동조를 해줬다.
“오 중위 말이야. 전임 사단장님께서 챙겨 주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 사단장님에 대한 충성심이 영 별로야.”
위병소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제 자신이 확실한 라인을 잡았다 이거 아닙니까.”
“저러다가 언젠가 큰코다치지.”
“맞습니다.”
그렇게 위병소에서 부사관 둘이 괜히 오상진을 모함하고 있었다.
그 시각 오상진은 부대에 도착해 곧바로 TV 설치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대대장실부터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얘들아, 조심해. 조심!”
한종태 대대장의 얼굴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낡은 TV에서 요즘 핫한 TV로 교체되니 기분마저 좋았다.
“어이, 거기 조심하라니까.”
“네. 알겠습니다.”
본부중대 인원이 나와서 TV를 교체하고 있었다. 그 옆에 곽부용 작전과장과 오상진이 있었다.
“화면에 손때 타잖아. 거긴 되도록 만지지 마.”
“알겠습니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다가와 말했다.
“면으로 화면은 철저히 닦아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