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3)
3소대장이 4소대장을 억지로 이끌고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행정반에서 이미선 2소대장이 나왔다.
“어? 2소대장 어디 갑니까?”
“화장실 갑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이 두 사람을 지나쳐 갔다. 4소대장이 이미선 2소대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3소대장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어? 그냥 본 건데 말입니다. 제 눈빛이 이상합니까?”
3소대장이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어이구, 매번 그러니까. 까이는 겁니다. 아니지, 이러니 2소대장이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거지. 쯧쯧쯧.’
3소대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4소대장의 등을 밀며 말했다.
“자자, 어서 행정반에 들어갑시다. 오전 일과 준비해야죠.”
“아, 네에.”
그럼에도 4소대장은 사라진 이미선 2소대장 쪽을 힐끔거렸다.
그날 저녁 1소대 내무실에는 소대원들이 대부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우진 병장은 베개를 베고 누워, TV를 시청 중이었다. 그런데 TV가 갑자기 노이즈가 생기며 치직거렸다.
“어? 뭐야?”
김우진 병장이 TV를 보며 강태산 이병을 불렀다.
“야, 막내.”
“이병 강태산.”
“TV 좀 봐봐.”
“…….”
그 뒤로 조용했다.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뒤로 홱 돌려 강태산 이병을 봤다. 강태산 이병은 TV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태산아, 너 뭐 하냐?”
“TV를 보라고 해서 말입니다.”
“이런 멍청한 놈아. 누가 TV를 그렇게 보라고 했냐. 지금 TV가 안 나오잖아. 확인을 하라고 말이야.”
김우진 병장이 벌떡 일어나며 버럭 했다. 강태산 이병은 멀뚱멀뚱 김우진 병장을 봤다.
“김 병장님. 저 TV 볼 줄 모릅니다.”
“뭐? 야, 새끼야. TV 볼 줄 모르면 군 생활 끝나냐?”
“아닙니다.”
“그럼 인생 끝나?”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TV를 나오게 해야 할 것 아니야. 말년인 내가 할까?”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해야 해?”
“제, 제가 해야 합니다.”
“어서 안 해?”
강태산 이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TV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행동을 취했다.
툭! 툭툭!
강태산 이병이 손으로 TV를 툭툭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김우진 병장이었다.
“야, 너 뭐 하냐?”
강태산 이병이 몸을 돌려 말했다.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TV가 안 나올 때 이렇듯 옆으로 툭툭 치면 나온다고 했습니다.”
“어떤 놈이?”
“그,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힘차게 말했다. 김우진 병장은 할 말이 없는 듯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와, 진짜 너는 말이야. 역대급이다. 역대급! 너 같은 이등병은 내 생전 처음이다. 대단하다. 대단해. 아니지, 역대급 신병이라 해야겠구나.”
그때 차우식 병장이 뒤늦게 들어오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야, 우진아. 봐라. TV 상태가 좋지 않아서 태산이 보고 상태 좀 확인하라 했거든. 그런데 저 자식이 어떻게 했는 줄 아냐?”
“어떻게 했는데 말입니까?”
“그런데 가서는 손으로 TV를 툭툭 때리고 있더라.”
차우식 병장도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강태산 이병은 순간 당황했는지 시선을 피했다. 차우식 병장이 웃음을 꾹 참고 말했다.
“에이, 말을 좋게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야, 내가 그럼 뭐라고 하냐?”
가만히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차우식 병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TV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차우식 병장이 강태산 이병을 불렀다.
“태산아.”
“이병 강태산.”
“이리 와봐. 내가 하는 거 잘 봐.”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다가왔다. 차우식 병장이 가만히 말했다.
“다른 것은 볼 필요 없고, TV 뒤에 보면 안테나 꽂이가 있어. 여기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아니면 여길 뺐다가 다시 꽂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본부중대 올라가서 얘기하면 돼.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차우식 병장이 피식 웃으며 TV 안테나 쪽을 손을 봤다.
“김 뱀, 어떻습니까?”
TV 상태가 살짝 지직거리기는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괜찮아. 역시 차우식이. 좋아, 좋아.”
김우진 병장이 차우식 병장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다가 주위에 있는 소대원들을 보며 한소리 했다.
“야, 이것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음 달이면 전역하는 말년 병장이 TV를 고쳐야겠냐? 반성들 좀 하자.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불쑥 나섰다.
“와, 저 진짜 방금, 진짜 방금 엉덩이 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못 보셨습니까?”
그러다가 한태수 상병을 봤다.
“야, 태수야. 나 봤지? 방금 엉덩이 들썩이는 거 봤지?”
“네, 봤던 것 같습니다.”
김우진 병장이 어이없어했다.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한태수 상병이 바로 말했다.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그러다가 한태수 상병이 다른 소대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야, 너희들 말이야. TV 하나 가지고 내일모레 제대하는 말년 병장에게 한소리 들어야 해.”
김우진 병장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야, 한태수. 너 지금 선 넘는다.”
그러자 손주영 일병이 바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김 병장님. 제가 갔어야 했는데. 제가 밑에 애들 교육을 잘못시켰습니다.”
이렇듯 TV 하나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던 것이 한순간에 화기애애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또 TV가 안 나왔다.
“에이, 시발! 진짜 TV 왜 이래!”
김우진 병장이 버럭 화를 냈다. 차우식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조영일 일병이 바로 일어났다.
“제가 하겠습니다.”
조영일 일병이 TV를 만졌다. 다시 안테나 쪽을 만지고, 툭툭 쳐도 소용이 없었다.
“으음, 이거 아무래도 고장인 것 같습니다.”
“뭐 고장?”
“네, 수리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수리를 맡겨?”
김우진 병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 이번 주에 수리 맡기면 우리 가요프로는 어떻게 보라고?”
“…….”
다들 말이 없었다. 김우진 병장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TV 당장 나오게 하란 말이야. 이번 주에 핑크 컴백하는 거 몰라?”
“에이, 언제 컴백하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야, 이번 주에 확실하게 컴백한다고 했어. 예고도 떴단 말이야. 아니면 내가 핑크 컴백을 옆 내무실에 가서 쪼그리고 봐야겠네.”
“그건 또 그렇지 말입니다. 우리 1소대 왕고가 그럴 수는 없지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좀 해봐.”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럼 TV를 새로운 거로 사오든지 어떻게 하란 말이야. 으아아아!”
김우진 병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괜히 짜증도 내기 시작했다. 말년 꼬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강태산 이병은 홀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만…… TV를 사와?’
그 시각 강태산 이병 아버지, 강 대표는 김 부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표님 태산 군 얘기는 잘 되었습니까?”
“어, 뭐. 어떻게 얘기는 잘 됐나 보더라.”
“어떻게 마무리되었습니까?”
“그냥 뭐 연병장 몇 바퀴 도는 걸로 끝났데.”
“이야, 다행입니다.”
“뭐, 우리 애 괜찮은가 봐. 다 같이 군장을 해서 돌았다고 하네.”
“와, 전우애 장난 아닙니다. 우리 태산 군이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그런데 대표님. 이럴 때 뭔가 좀 애들에게 보내주고 그러면 확실하게 점수를 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강 대표가 눈을 번쩍했다.
“그래?”
“혹시 거기 왕고 있지 않습니까. 왕고는 제대 얼마 남은 지 아십니까?”
“왕고? 왕고가 뭐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강 대표는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김 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기 소대 대빵 말입니다. 한마디로 제일 힘 있는 사람요.”
“아, 분대장이라고 했나?”
“네.”
“얼마 안 남았다고 들었는데.”
“아, 그러면 또 애매해지는데 말입니다.”
“왜?”
“태산 군이 하는 것으로 하면 분대장에게 예쁨받을 수 있는데, 만약에 분대장이 바뀌면 상황이 또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아무튼 애들이 좋아하는 걸로 보내주면 좋은데…….”
“애들이 뭘 좋아하나?”
그러자 김 부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애들이 좋아하는 것은 막심이죠.”
“막심? 막심이 뭐야?”
“성인 잡지인데.”
“그게 왜?”
“에이, 군대에는 남자밖에 없지 않습니까. 젊은 남자고, 끓어오르는 그거……. 불끈불끈!”
김 부장은 괜히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해 주는 것이 바로 막심이죠.”
강 대표가 조용히 말했다.
“설마 그 잡지를 보며 그런 것은 아니지?”
“비슷합니다.”
“김 부장도 그랬어?”
“아, 아닙니다. 저희 때는 막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뭘 그걸 가지고 그러나. 휴가 나오거나 면회 갔을 때 여자 친구랑 하면 될 것을 말이야. 안 그런가?”
강 대표는 군대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김 부장은 그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군대 안 다녀온 것이 티가 나는 겁니다.’
강 대표가 입을 뗐다.
“그건 그렇고, 진짜 뭐가 좋을지 모르겠네.”
“아니면 소대장 있지 않습니까.”
“오 중위?”
“네. 그 오 중위랑 얘기를 해보십시오.”
“그래 볼까?”
강 대표가 그 생각을 하는데 휴대폰이 지잉지잉 하고 울렸다. 바로 전화를 받으니 콜렉트콜이었다.
“어? 우리 아들이다.”
강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잠시 후 모든 얘기가 끝나고 강태산 이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들 무슨 일이야?”
-아빠, 나 TV 한 대만 사 줘.
“TV? 아니, 무슨 군대에 있는 녀석이 TV 타령이야.”
-아니, 우리 소대 TV가 고장 나서 다들 난리야.
“그래서 너 보고 사 오라고 해?”
-아니! 핑크가 나온다고. 핑크가 컴백한다고!
“그게 뭔 소리야. 핑크? 핑크가 뭔데?”
그러자 옆에 있던 김 부장이 말했다.
“대표님, 요즘 엄청 잘나가는 여자 아이돌그룹 있지 않습니까.”
“아이돌? 핑크가 왜?”
강 대표가 강태산 이병에게 물었다.
-우리 왕고가 핑크를 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그런데 TV가 고장 나서 이번 주에 핑크 컴백하는 것을 못 본다고 난리잖아.
강 대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핑크가 컴백한다는 거지?”
-응, 그러니까. TV 사 줘.
“TV 몇 대 보내줘? 열 대? 스무 대?”
-무슨 스무 대나 필요해. 우리 소대 하나만 필요하면 되지.
“한 대? 알았서.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성질은…….”
-그럼 사 주는 거지?
“그래, 인마.”
-고마워. 아빠! 사랑해! 내일까지 당장 보내줄 수 있는 거지?
“보내줄 수는 있는데……. 괜찮은 거야?”
-뭘?
“보내도 괜찮냐 말이야.”
-그건 아빠가 알아서 해야지.
“알았어.”
-그럼 끊는다.
강태산 이병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강 대표가 살짝 어이없어했다.
“이 자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그보다 김 부장.”
“네.”
“TV가 필요하다는데.”
“TV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