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3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2)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 한소희가 물었다. 오상진이 움찔하며 말했다.
“아, 영화요.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었다고요?”
“네.”
“칫, 아까 보니까. 영화에 집중 못 하고 있던데요.”
“아닙니다.”
“그럼 마지막에 누가 이겼어요?”
“…….”
오상진은 당황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최만식?”
“아니거든요. 칫! 영화에 집중도 못하고…….”
“미안해요, 소희 씨. 제가 좀 정신이…….”
오상진 한소희를 달래고 있는데 이미선 2소대장이 영화관에서 나오며 눈이 마주쳤다. 이미선 2소대장이 순간 움찔하며 당황했다.
“뭐해, 안 가?”
바로 5중대장이 나오며 말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오상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 오, 오 중위…….”
오상진은 많이 당황한 눈으로 5중대장에게 경례를 했다.
“충성…….”
그렇게 세 사람의 어색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5중대장은 당황한 모습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오 중위가 여긴 어쩐 일인지?”
“여자 친구와 영화 보러 왔습니다.”
“아, 옆에 계시는 분이 여자 친구?”
5중대장의 말에 한소희가 바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소희를 본 5중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워낙에 한소희가 예쁜 탓이기도 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아주 미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한소희는 상대가 누군지에 대해 솔직히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앞에 있는 사람이 중대장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중대장이라면 우리 1중대장님하고 계급이 같은데……. 그럼 다이아가 3개인데……. 왜 우리 상진 씨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 너무 늙어 보인다.’
만약 이 소리를 5중대장이 들었다면 발끈할 것이었다. 5중대장은 솔직히 김철환 1중대장보다 나이가 적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현재 와이프의 케어가 있고, 5중대장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한소희가 알지는 못했다.
‘으음…….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구?’
한소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시선을 이미선 2소대장에게 향했다. 한소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누구지? 딸인가? 아니야, 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있어 보이고……. 여자 친구인가? 아니야 여자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이고, 누구지? 딸인가?’
한소희의 궁금증은 깊어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오상진에게서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을 들을 시간적 여유가 없긴 했다.
그때 이미선 2소대장도 한소희의 시선을 느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한소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살짝 눈인사를 했다. 이미선 2소대장도 눈인사를 한 후 5중대장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가시죠.”
“어? 이대로?”
5중대장은 이미선 2소대장을 빤히 바라봤다. 이 상태에서 뭐라도 해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선 2소대장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중위님. 그럼 부대에서 뵙겠습니다.”
“아, 네에…….”
“어험, 그, 그래. 오 중위. 부대에서 보세.”
“살펴 가십시오.”
5중대장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저 멀리 사라지고 시야에서 없어졌을 때 한소희가 바로 물어봤다.
“뭐예요?”
오상진이 한소희를 바라봤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매우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뭐가 그리 궁금해요?”
“방금 저 사람요. 오 중위님? 방금 그 여자도 군인이에요?”
“아, 이번에 새로 온 소대장요.”
“아, 그때 말했던 여자 소대장이에요?”
“네.”
“그런데 왜……? 저 사람 1중대장님이 아니잖아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오우, 우리 소희 씨. 군대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데요. 방금 저분은 5중대장님이고, 그 옆 사람은 우리 1중대 소대장이죠.”
“그런데 왜 같이 영화를 봐요?”
순간 오상진이 말문이 막혔다.
“……글쎄요.”
“설마 두 사람 군인 부부?”
한소희가 슬쩍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상진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등 쪽으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5중대장과 이미선 2소대장이 서 있었다. 5중대장은 자꾸 힐끔힐끔 오상진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갔다. 이미선 2소대장이 5중대장 옆구리를 툭 쳤다.
“왜 그러십니까.”
“이대로 가도 돼?”
“그럼 뭐라고 말씀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저랑 사귄다고 말씀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아이 뭐……. 그렇긴 하지만 이대로 가면 오 중위가 의심하지 않을까?”
“오 중위 동네방네 소문내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5중대장은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에 대해서 좋게 말하자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이미선 2소대장도 5중대장의 시선이 자꾸 한소희에게 향해 있던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아무튼 남자들이란……. 예쁘고 어린 여자라고 하면, 으구.’
그런데 5중대장은 오상진 칭찬을 했다고, 또 삐져 있었다.
‘아, 진짜. 무슨 남자가 이리도 잘 삐져.’
이미선 2소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5중대장의 팔짱을 꼈다.
“가요.”
“부대로 들어갈 거야?”
5중대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대는 천천히 가도 되잖아요. 주말인데…….”
이미선 2소대장이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러면서 조용히 말했다.
“저 아까 많이 당황해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우리 어디 가서 쉬었다가 가요.”
5중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바뀌었다.
“어험, 그럴까?”
5중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어머? 정말요? 대박! 그러니까, 5중대장님이 와이프와 별거 중이고, 그런데 2소대장하고 영화를 보러 왔단 말이죠?”
“뭐, 정황상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희 씨 오해는 하지 마시고.”
“오해는 뭔 오해에요. 척 보면 척이지. 그래서 아까 나에게 감추려고 했구나.”
“네. 솔직히 같은 영화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요. 영화관을 바꾸는 건데.”
“저도 그러지 못한 걸 후회하는 중입니다.”
한소희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오상진에게 말했다.
“가만, 우리 상진 씨 괜찮은 거죠?”
“네?”
“아무 일도 없는 거겠죠?”
“무슨 일요?”
“아니, 오늘 두 사람 어쨌거나 들켰잖아요. 이걸 가지고 그 5중대장이라는 사람이 막 우리 상진 씨 괴롭히고 그러지는 않겠죠?”
“에이, 아닙니다. 5중대장님은 다른 중대에 있고, 큰 훈련 빼고는 거의 왕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선 2소대장은 엄밀히 따지면 제 후배입니다. 그러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혹시라도 상진 씨 괴롭히고 그러면 나에게 말해요.”
“어떻게 하게요?”
“우리 남친 당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죠.”
한소희가 사악하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상진은 한소희가 한 번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막말로 주희에 대한 일도 있지 않은가. 그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것을 본 오상진이었다.
“하하, 제가 그런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오상진이 한소희를 달랬다.
주말을 잘 보낸 오상진이 월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 행정반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 순간 오상진은 이미선 2소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이미선 2소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1소대장님.”
이미선 2소대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인사를 했다. 오상진은 솔직히 이미선 2소대장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던 참이었다.
‘그래. 내가 괜히 그 일을 가지고 떠들 것도 아니고.’
오상진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2소대장.”
오상진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4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뭐지? 2소대장이 왜 갑자기 환하게 인사를 하지? 절대 저렇게 인사를 한 적이 없는데.’
4소대장은 이미선 2소대장의 미묘한 차이를 금세 눈치를 챘다. 그리고 옆에 있던 3소대장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톡.
“네?”
3소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4소대장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3소대장님 저 좀 잠깐 보시죠.”
“네. 말씀하십시오.”
“여기서 말고 바깥으로…….”
4소대장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3소대장은 살짝 의아해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4소대장이 일어나 행정반을 나갔다. 3소대장도 뒤따라 나갔다.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 뽑아 3소대장에게 내밀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3소대장이 씨익 웃으며 한 모금을 마셨다. 4소대장도 커피를 뽑아 손에 들었다. 그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이상한 거 못 느꼈습니까?”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아까 행정반에서 2소대장 말입니다. 뭐죠?”
“네?”
“아니, 내가 아까 들었는데. 평소 1소대장에게 말을 거는 톤이 반 정도 올라가 있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진짜입니다. 반 톤 정도 올라갔습니다.”
“와, 그게 느껴지십니까?”
3소대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3소대장의 모습에 4소대장은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게 안 느껴지십니까? 와! 우리 행정반에 두세 명입니까?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우리 이미선 2소대장 말고 어디 있습니까?”
3소대장이 깜짝 놀라며 4소대장을 바라봤다.
‘아니, 꾀꼬리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4소대장 대단하다. 그동안 그렇게 까여놓고도……. 역시 집념의 사나이다.’
3소대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주말에 말입니다. 분명 두 사람 뭔 일이 있었습니다. 이건 제 촉이 말하고 있습니다.”
4소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3소대장은 그런 4소대장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뭐가 말이 안 됩니까?”
“1소대장님 아시지 않습니까. 주말마다 여자 친구 만나는 거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혹시 그 여자 친구가 이미선 2소대장 아닙니까?”
“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전에 중대장님께 얘기 듣기로는 여자 친구 엄청 예쁘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2소대장도 예쁘지 않습니까?”
“그 정도가 아니랍니다. 연예인 뺨친답니다.”
“뭐야. 나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야?”
3소대장이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4소대장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젠장, 2소대장하고 1소대장이라니……. 이건 아니야. 아니야.”
그 모습을 보는 3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이거 진짜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네.”
3소대장이 고개를 흔들며 4소대장에게 말했다.
“자자, 그만 고민하시고 들어갑시다.”
“진짜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아니,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에헤이, 그만하고 들어갑시다. 오전 일과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