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2화
45장 까라면 까야죠(61)
오상진과 한소희가 관리실을 나왔다. 그때 신문사 사장도 밖으로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건물주님. 반갑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잠깐 들러봤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신문사는 잘되고 있죠?”
“덕분에 잘되고 있습니다. 임대료도 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 그런데 혹시 신문사에 광고 하나 넣는 데 얼마 정도 듭니까?”
신문사 사장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어? 저희 신문사에 광고 넣으시게요?”
“아, 요 밑에 3, 4층 있잖아요. 거기에 어학원이 들어서거든요. 신문사가 위에 있긴 한데 광고비 좀 깎아줄 수 없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에이, 그 양반 참……. 그런 얘기는 나에게 직접 하지.”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광고 필요하면 넣고 그러려고요.”
“서로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혹시 광고 내시려면 말씀만 하세요. 저희가 인쇄비만 받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다 받으셔야죠.”
“네, 그럼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신문사 사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상진은 그렇게 신문사 사장과 얘기를 나눈 후 이번에는 한중만 사무실에 들렀다.
똑똑똑.
오상진이 문을 두드린 후 열었다. 그러자 김일도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 형님. 형수님 오셨습니까.”
김일도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 형님이라는 소리가 바로 나온다.”
“저 군인물 이제 다 빠졌습니다.”
“말투는 아닌데.”
“……요.”
“하하핫. 그냥 나오는 대로 해.”
오상진이 크게 웃었다. 김일도는 머쓱해지며 말했다.
“아니, 소대장님만 보면 이런 말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쿡, 방금도 소대장님이래.”
“앗! 제가 또 그랬습니까? 에이, 연습했는데…….”
“편하게 해. 편하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나오겠지.”
“네.”
“안에 형님 계시지?”
“네, 계십니다.”
김일도가 후다닥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사장님.”
“어, 왜?”
한중만이 고개를 들자 오상진과 한소희가 보였다.
“어, 우리 매제 왔어?”
“네. 커피 드십시오.”
오상진이 손에 든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한중만이 말했다.
“무슨 커피를 사 오고 그래. 그냥 오지.”
“빈손으로 어떻게 옵니까.”
“매제는 특별히 그냥 와도 돼.”
두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한소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빠, 난 안 보여?”
“어? 동생 왔어?”
“뭐야.”
한소희가 살짝 삐진 척을 했다. 한중만이 피식 웃으며 커피를 들었다.
“여기도 커피가 많은데…….”
“아뇨. 2층 커피도 들어섰는데 이제 팔아줘야죠.”
그러자 한중만이 표정을 굳혔다.
“거길 왜 팔아줘.”
“왜?”
한소희가 대뜸 물었다. 그러자 한중만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솔직히 나, 형수 맘에 안 들어.”
“언니가 왜?”
“그냥 따로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바로 위층에 내가 있는데도 사무실에 코빼기도 안 비쳐.”
한마디로 김소희가 카페에 잠깐씩 들르는데 자신을 보지 않고, 홱 가버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거였다. 한소희는 그런 한중만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고, 오빠. 언니 지금 배가 만삭이야. 다음 달이면 출산인데 그런 걸로 유세를 떨고 싶어?”
“이게 무슨 유세냐. 서로서로 얼굴을 보고 그러는 거지.”
“아니면 오빠가 내려가지.”
“언제 올 줄 알고 내려가냐?”
“그러면 물어봐, 큰 오빠에게. 어쨌든 같이 올 거 아니야.”
“어이구, 형한테 물어보면 또 그걸 물어보냐고, 난리도 아니다.”
한소희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큰 오빠고, 작은 오빠고 왜들 그러는지. 쯧쯧쯧…….”
그런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저런 것만 봐도 잘 지낸다고 봐야 했다.
“그보다 형님. 영화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한중만이 바로 답했다.
“아이고, 지금 우리 매제가 온 것이 아니라, 투자자님께서 온 거였네.”
“네.”
오상진이 바로 대답했다. 한중만이 바로 말투를 바꿨다.
“안 그래도 촬영 들어갔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중만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지금 30% 정도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어.”
“촬영은 언제쯤 끝납니까?”
한중만이 탁상 달력을 휙휙 넘기며 말했다.
“글쎄다. 석달 안으로 촬영 마무리 짓고, 편집하고 배급, 광고까지 생각하면……. 내년 여름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
“내년 여름이면 너무 늦지 않습니까?”
오상진이 기억하기론 추운 날 개봉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기억상 연말이나, 연초일 것이다. 사실 오상진은 불안했다. 개봉 시기에 따라 잘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게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래? 사실 이게 사극이라서 준비할 것도 많고. 급하게 당긴다고 해서 되겠어?”
한중만이 슬쩍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런 한중만이 불안했다. 사실 개봉일 때문에 망한 영화도 더러 있었다.
‘이거 분명 천만 영화인데, 개봉일을 잘못 맞추면…….’
오상진은 어떻게든 겨울에 개봉을 하고 싶었다.
“그러지 마시고, 12월쯤 개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12월쯤?”
“네. 원래 사극은 날씨가 추울 때 봐야 제맛 아닙니까.”
“그런가?”
한중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곧바로 한소희가 지원사격을 했다.
“오빠, 우리 상진 씨 말이 맞아. 12월에 개봉할 수 있게 해봐. 막말로 날 풀릴 때 누가 사극을 봐. 액션이나, 코미디물을 좋아하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논리인데. 계속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한중만은 팔랑귀처럼 행동했다.
“알았어. 그건 내가 한번 감독님께 말해볼게.”
“네, 알겠습니다. 형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중만이 두 사람을 봤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진짜 투자자로서 영화가 잘되고 있나 확인하러 온 거야?”
“아뇨. 그냥 겸사겸사 왔어요.”
“그렇군. 어디 보자, 시간이……. 어이쿠, 점심시간이 되었네. 그럼 우리 다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어? 형님이 쏘시는 겁니까?”
그러자 한중만이 바로 저자세로 나갔다.
“아이고, 투자자님 왜 그러십니까.”
한소희가 버럭 했다.
“아, 진짜…… 오빠! 창피하게 하지 마.”
“인마, 원래 돈 많은 사람이 대빵이야.”
한중만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사겠습니다. 요 밑에 낙지볶음 맛있게 하는 것 같던데.”
“오호, 낙지볶음 좋지요. 갑시다.”
오상진과 한소희, 한중만, 김일도는 낙지볶음집에서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한중만과 김일도는 다시 일하러 가고 두 사람이 남았다.
“우리 오랜만에 영화나 보러 갈까요?”
“영화 좋죠! 가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영화관에 들른 두 사람은 일단 영화부터 골랐다.
“어디보자, 콘스탄티드랑 주먹은 운다. 그리고 잠복근무들. 대충 볼만한 것은 이렇게 있네요.”
한소희도 영화를 살펴봤다.
“주먹은 운다? 류승용이랑, 최만식 배우가 나오는구나. 우리 이거 봐요.”
“이거 권투하는 것 같던데요.”
“네, 권투 스포츠 괜찮을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힐끔 한소희를 봤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이거 보기 싫으세요?”
“그게 아니라, 이런 액션 괜찮아요?”
“네. 괜찮을 것 같은데요. 최만식 배우님이잖아요. 개성파 배우 류승용도 있고요. 일단 믿고 보는 거죠.”
“알겠어요. 표 끊어 올게요.”
“그럼 전 팝콘이랑 음료수 준비할게요. 그쪽으로 와요.”
“알았어요.”
오상진은 매표소로 한소희는 팝콘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오상진이 표를 예매하고 다가왔다.
“저, 소희 씨.”
“네.”
“표는 예매했고, 저 좀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알겠어요. 다녀와요.”
오상진은 곧장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화장실 입구에서 낯익은 두 사람이 보였다. 바로 5중대장과 이미선 2소대장이었다.
“어?”
오상진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바로 몸을 숨겼다.
“내가 왜 몸을 숨기지?”
오상진은 그냥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것이었다.
“그래, 일단은 피하자.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영화관들 중에서 이곳에서 부딪히나.”
오상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5중대장의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긴 있었다.
“설마 둘이? 연애를?”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한소희가 팝콘과 음료수를 들고 나타났다.
“어? 상진 씨 여기서 뭐해요?”
“아, 지금 가려고 했어요.”
“빨리 갔다 와요.”
“네.”
오상진이 움직이려는데 한소희가 바로 말했다.
“어? 저 사람 군인이다.”
한소희가 바로 5중대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상진이 움찔했다.
“누구요?”
“저 사람요. 군인 맞죠? 그쵸?”
한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거짓말을 못했다.
“어, 어떻게 알아요?”
“딱 보면 알죠. 내 남친이 군인인데.”
한소희는 바로 맞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에요?”
“네.”
“어머나! 어쩜……. 예전에도 영화관에서 만났는데, 또 아는 사람을 보네요.”
한소희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최강철 일병과도 영화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하네. 영화관이 여기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상진 씨, 저 사람 누구예요? 또 소대원?”
“아니요. 이번에는 중대장님요.”
“어? 지난번에 봤던 중대장님이 아닌데요?”
“우리 중대장님이 아니라, 다른 중대 중대장님요.”
“그럼 인사드려야 하지 않아요?”
“아뇨, 지금 여자분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런데 그게 왜요?”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한소희의 입장에서는 누가 연애를 하든 상관없지 않냐는 것이었다.
“아, 그거는 나중에 제가 설명을 해줄게요.”
오상진은 5중대장이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놓고 불륜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아직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 지금 얼굴을 보이는 것이 좀 곤란한 입장이라는 거죠?”
“네.”
“알겠어요. 그럼 우리 저쪽으로 가요.”
한소희는 오상진의 팔짱을 꼭 끼며 구석으로 갔다.
“설마 우리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겠죠?”
“에이, 설마요.”
오상진은 이 많은 영화 중에 같은 제목과 시간대의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오상진은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오상진은 영화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아, 미치겠네. 두 사람이 신경 쓰여서 영화가 눈에 안 들어오네.’
오상진은 애써 영화를 집중하려고 해도 자꾸만 두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국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진 씨, 영화 어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