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90화
45장 까라면 까야죠(59)
“네?”
“야, 멍청한 녀석아. 누가 말년 군장을 그렇게 싸! 가라로 싸야지. 누구 허리 나가는 꼴 보고 싶어?”
“아, 네에.”
손주영 일병은 재빨리 안에 내용물을 비우고 그곳에 침낭을 넣어 두툼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말이야.”
그때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김우진 병장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문 쪽으로 향했다. 손주영 일병은 재빨리 군장을 닫았다.
“추, 충성!”
김우진 병장이 오상진을 향해 경례를 했다. 오상진이 경례를 받아주고 나서 군장을 싸고 있는 것을 봤다.
“뭐냐?”
오상진이 차우식 병장과 김우진 병장을 바라봤다.
“너희 둘은 왜 군장을 싸고 있냐?”
차우식 병장이 바로 말했다.
“제 새끼고. 저희가 잘못 가르친 것이 커서 같이 돌려고 합니다.”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김우진 병장을 봤다.
“김 병장도 같은 생각이야?”
“네, 그렇습니다.”
“이야, 김우진이. 말년병장이 그러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러자 김우진 병장이 입을 뗐다.
“이놈의 견장이 문제입니다. 소대장님께서 빨리 떼서 인계를 해주셔야지, 말년이 아직 분대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인마, 누가 그랬어. ‘분대장 견장을 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런 말도 몰라?”
순간 김우진 병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순간 오상진이 움찔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무튼 김 병장 다시 봤다.”
“에이,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진짜 우리 소대원 아닙니까.”
“그래, 그런 맘 좋다. 그런데 이러다가 다 같이 군장 싸는 거 아니야?”
오상진의 한마디에 소대원 전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다들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다 같이 도는 거야?’
그러고 있는데 김우진 병장이 외쳤다.
“네, 저희 소대 다 같이 군장을 싸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김우진 병장이 사고를 쳤다. 대부분 소대원들의 따가운 시선이 김우진 병장에게 향했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하니까. 소대장이 또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안해진다.”
오상진의 시선이 강태산 이병에게 향했다. 강태산 이병은 진짜 죄지은 사람처럼 축 처져 있었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반성 많이 했나?”
“네. 그렇습니다.”
“자, 소대원들을 봐봐. 이렇게 널 챙겨주는 소대원들을 기억해!”
“네……. 알고 있습니다.”
“좋아. 오늘 소대원들 때문에 간단히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2바퀴만 돌고, 대신에 강태산 이병은 화장실 청소 한 달간 하는 것으로 한다.”
순간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은 흐뭇한 얼굴로 강태산 이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김우진 병장을 보며 말했다.
“김우진.”
“병장 김우진.”
“수고해라.”
“넵!”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내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1소대원들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뱀! 왜 그러십니까? 왜 가만히 있는 저희까지 끌어들입니까.”
“야, 시끄러워. 그냥 군장이나 싸!”
차우식 병장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야, 우리 김 뱀. 대단합니다.”
“후훗! 이게 바로 임기응변이야. 아무튼 분대장으로서 이렇게 나가니까 우리 소대장님께서 기분이 좋아져서 간단하게 끝난 거잖아. 연병장 두 바퀴? 솔직히 껌 아니냐.”
김우진 병장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풀이 죽었던 1소대 내무실에 약간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연병장에는 1소대가 완전군장 차림을 두 바퀴를 달리고 있었다. 솔직히 두 바퀴면 그냥 편안하게 뛰면 끝이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옆에서 뛰고 있는 차우식 병장이 그런 강태산 이병을 위로했다.
“강태산!”
“이병 강태산.”
“괜찮아, 인마. 이등병이라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다음에는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돼.”
“다시는, 정말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어깨 펴!”
“네, 알겠습니다.”
그때 중앙에서 인솔하는 김우진 병장이 소리쳤다.
“자, 마지막 한 바퀴는 전력 질주다. 뛰어!”
“우아아아아아!”
1소대원이 함성을 지르며 연병장을 크게 돌았다. 원래 두 바퀴이지만 세 바퀴를 더 돌아. 다섯 바퀴를 채운 후 1소대는 내무실로 들어왔다.
“와, 오랜만에 군장을 메고 뛰니까 좋네.”
김우진 병장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군장 안에는 가벼운 침낭이 들어 있었다. 다른 소대원들은 진짜 완전군장 차림이었다.
“야, 다들 군장 정리하고 세수하고 와.”
“네. 알겠습니다.”
차우식 병장이 수건을 들고, 강태산 이병에게 갔다.
“세면 가방 들어.”
“네?”
“씻으러 가야지. 땀 흘렸잖아.”
“아, 네.”
강태산 이병은 관물대에서 세면 가방과 수건을 챙겨서 세면장으로 갔다. 차우식 병장은 끝까지 강태산 이병을 챙겨주었다.
그날 저녁.
취침 점호를 하기 30분 전에 청소를 시작했다. 강태산 이병이 청소를 위해 일어났다. 그때 최강철 일병이 말했다.
“태산이 너 화장실 청소하러 가야지.”
“오, 오늘부터입니까?”
“소대장님 말씀 못 들었어? 오늘부터 청소잖아.”
“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 도착하자 강태산 이병은 막막했다.
“집에서도 청소 안 해봤는데…….”
강태산 이병이 멀뚱히 서서 난감해하고 있을 때 최강철 일병이 들어왔다.
“태산이 너 화장실 청소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자, 내가 하는 걸 봐라.”
최강철 일병이 화장실 청소 도구함으로 가서 호스와 빗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호스 끝을 수도꼭지에 연결한 후 화장실 바닥에 물을 뿌렸다.
쫘아아악!
“먼저 이렇게 바닥에 물을 쫙 뿌려. 그리고 각 화장실 사로마다 문을 열고 쓰레기를 한곳에 모으면 돼. 그걸 밖에 꺼내놓으면 쓰레기 버리는 담당 고참이 와서 수거해 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대답을 하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는 최강철 일병이 말했다.
“뭐해, 인마. 움직여!”
“아, 네에.”
강태산 이병이 7개 사로의 화장실 휴지통을 모두 빼내 한곳에 모았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야, 화장실 휴지통 안 꺼냈어?”
“지금 나갑니다.”
“빨리 빼내.”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휴지통을 곧바로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 최강철 일병에게 갔다.
“자, 휴지통 다 꺼냈으면 이제 각 사로마다 이렇게 물을 뿌려서 바닥을 깨끗하게 해. 그리고 빗자루로 물기를 말끔히 제거하면 되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잘 봐둬, 오늘 한 번만 도와주는 거야.”
“네, 최강철 일병님.”
최강철 일병은 그렇게 화장실 청소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바로 옆 세면장 청소도 알려 주었다.
“자, 세면장 청소도 마찬가지야. 물 뿌리고, 깨끗하게 닦아주면 돼. 그리고 걸레는 빨아서 저기 널고.”
“네.”
강태산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저 혼자 다 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로 처벌을 대신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한 달간 화장실 청소는 강태산 이병 혼자 해야 했다. 최강철 일병이 말했다.
“처음이 힘들 뿐이지. 익숙해지면 충분히 가능해.”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대답을 했다. 최강철 일병은 청소하는 법을 알려 준 후 나가려 했다.
“다 되면 날 불러.”
“네.”
최강칠 일병이 화장실을 나갔다. 이제 혼자 남은 강태산 이병은 바닥에 뿌려진 물을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그때 김우진 병장이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기, 김 병장님. 화장실 청소 중입니다.”
“미안, 나 지금 너무 급해서 말이야.”
김우진 병장은 휴지를 들고 1사로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을 본 강태산 이병이 울상이 되었다.
“또 청소해야 하지 않습니까.”
“미안, 인마. 급한 걸 어떻게 해.”
“그래도…….”
강태산 이병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면장 청소를 하고 있는 사이 김우진 병장이 깔끔하게 볼일을 보고 나왔다.
“태산아, 볼일 다 봤다. 마저 청소해라.”
“네.”
강태산 이병은 1사로를 다시 청소해야 했다. 그렇게 강태산 이병의 긴 하루가 지나갔다.
오상진은 언제나 주말이 기다려졌다. 왜냐하면 여자 친구인 한소희와의 데이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관사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한 후 옷을 입었다. 어느덧 봄 햇살이 따사로웠다. 청바지에 가벼운 면티 하나로도 충분했다.
“자, 그럼 가 볼까?”
오상진은 지갑과 차 키를 챙겨서 나갔다. 차량에 올라탄 후 곧바로 한소희를 만나러 갔다. 약 1시간 후 약속된 장소에 도착을 했다.
“어? 저기 있다.”
오상진은 한소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먼곳에서부터 한소희는 눈에 띄었다.
봄인 만큼 바람에 나부끼는 원피스 차림에 넓은 챙의 모자를 눌러쓴 아주 산뜻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 주위로 남성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덤이었다.
끼익.
“소희 씨.”
“상진 씨 왔어요?”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한소희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오상진은 한동안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는 움찔하며 자신의 옷 상태를 확인했다.
“왜요?”
“아뇨, 오늘도 여전히 예뻐서요.”
“뭐예요. 아직도 예뻐요?”
“그럼요. 제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 보여요.”
“설마 그게 나?”
한소희는 짐짓 모르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당연한 걸 물어봐요?”
“어쨌든 상진 씨 맘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봄이라 한번 입어 봤는데.”
“전 소희 씨가 어떤 것을 입어도 다 예뻐 보이니까. 걱정 마요.”
“어이구, 저 콩깍지 언제 벗겨지려나.”
“글쎄요. 아마 평생 안 벗겨질걸요.”
“어디 한번 두고 봐요.”
한소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차창 쪽으로 시선이 가며 가로수들을 바라봤다.
“아, 이제 진짜 봄이네. 우리 벚꽃 구경 언제 가요?”
“아, 맞다. 여의도 쪽에 벚꽃이 폈다고 그러던데.”
“거긴 사람 많겠죠?”
“아마도요.”
“우움…… 진해 군항제도 가고 싶은데.”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살짝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한소희가 투정을 부렸다.
“이잉, 이러다가 벚꽃 다 지겠네.”
오상진이 날짜로 확인해 보니 거의 끝물이긴 했다. 오상진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갈까요?”
“아니에요. 오늘 빌딩 둘러보기로 했잖아요.”
“그 일은 다음에 보면 되죠. 어차피 이모부가 계셔서 괜찮아요.”
한소희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빌딩 주인이 확인을 해야죠. 벚꽃이야 다음에 보면 되죠.”
“네, 알겠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지난 한 주에 있었던 일을 얘기 나누며 미리내 빌딩에 도착을 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곧바로 관리원이 뛰어왔다.
“어디에 오셨습니까?”
“아, 제가 여기 건물주입니다.”
오상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리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오상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