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80화
45장 까라면 까야죠(49)
“원래는 1년 정도 있다가 오신다고 해서 짧게 살 사람만 구했는데 얼마 전에 다시 통화해 보니 이제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서 여차하면 집을 내놓을 생각을 하신 모양이에요. 웬만하면 오래 깔끔하게 지냈으면 하는 사람을 구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럼 살다가 매입 의사가 있다면 파신다는 거죠?”
오상진의 물음에 한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사실 지금이라도 파실 생각은 있다고 합니다. 원한다면 말이죠.”
“그럼 이 집이 나쁘지는 않겠네요.”
오상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참 매매가는 9억에 거래되는데 전세는 6억5천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전세로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동산으로 가셔서 계약하시죠.”
한 사장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오상진은 그 길로 부동산으로 가서 바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부동산을 나왔다. 계약서는 한소희 따로 잘 챙겼다.
“아, 계약 잘한 것 같아요.”
한소희가 밝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상진 역시도 계약을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한소희를 슬쩍 보며 물었다.
“소희 씨, 계약도 다 했는데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집으로 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조금 전의 미안함도 있고 해서 물었다. 한소희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상진 씨, 나에게 미안한 것 맞죠?”
“아, 네에…….”
“그러면 나랑 쇼핑해요.”
“쇼핑요?”
“네, 오랜만에 쇼핑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요.”
오상진이 바로 승낙을 했다.
‘그래 이참에 소희 씨에게 선물 하나를 해주자. 악세사리가 좋으려나? 백이 좋으려나?’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을 했다. 오상진은 한소희를 차에 태워 강남의 유명 백화점으로 갔다. 한소희는 곧장 오상진을 데리고 유명 여성 전문매장으로 향했다.
“이야, 예쁜 것이 많네요. 봄 신상품이 많이 출시 되었나 봐요.”
한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여성 매장을 모두 스캔했다. 그 모습을 보는 오상진은 피식 웃었다.
‘저러고 보면 진짜 여대생인 것 같단 말이야.’
오상진이 환하게 웃고 있을 때 한소희가 어떤 여성 전문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은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의류매장은 아니었다.
“응?”
“소희 씨, 여긴…….”
“일단 들어와봐요.”
한소희가 오상진을 이끌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그때 의류 매장 직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한소희를 발견하고는 환한 얼굴이 되었다.
“어머나! 고객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 고객님 진짜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그렇죠?”
여직원은 한소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사실 오늘은 남자 친구랑 왔어요.”
한소희가 오상진을 끌어당기며 환하게 웃었다. 여직원은 곧바로 접대성 멘트를 날렸다.
“어머나. 남자친구분이 정말 잘생기셨네요.”
한소희는 그런 접대성 멘트가 싫지 않았다.
“그렇죠? 제가 또 보는 눈이 탁월해요.”
“그럼요. 고객님.”
여직원은 한소희의 비위를 정말 잘 맞춰주었다. 그러다가 슬쩍 다른 곳을 두리번거렸다.
“어?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랑 같이 오시지 않았나 봐요.”
“네.”
“그럼 남자 친구분이랑 어머니 선물 사러 오신 거구나.”
“엄마 것은 아니고, 저희 이모 생신이셔서요. 블라우스 좀 사러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어디 보자…….”
여직원은 곧바로 블라우스가 진열된 곳으로 갔다.
“이모분이 어떤 스타일세요?”
한소희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가게에서 봤던 신지애의 이미지를 떠올려보고, 앞치마도 빼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다.
“체형은 저보다 작으시고, 단아한 분이세요.”
“아, 그럼…….”
여직원이 블라우스를 쭉 확인하더니 약간 베이지색의 실크 블라우스를 꺼냈다.
“이건 어때요? 꽤 어울릴 것 같은데요.”
여직원이 골라 준 블라우스를 한소희가 확인했다.
“으음……. 이거 실크죠?”
“물론이죠. 아시잖아요. 저희는 실크 아니면 취급 안 하는 거.”
“알죠. 그래서 엄마가 이 가게를 무척이나 좋아하잖아요.”
“그럼요. 호호호!”
한소희가 찬찬히 실크 블라우스를 확인했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는데…….”
한소희는 백 퍼센트 맘에 들지는 않았다.
“다른 것은 없어요?”
“당연히 있죠. 잠시만요. 제가 이번에 나온 신상을 보여드릴게요.”
여직원은 다른 쪽으로 가서 그곳에 걸린 블라우스를 가져왔다.
“이건요? 전체적으로 마감 처리도 잘 되었고, 베이지색 보다는 진주색이랄까? 은은한 빛도 있고, 딱 좋을 것 같은데요. 고급스러워 보이고 말이에요.”
여직원이 추천해 주는 블라우스를 받아 든 한소희가 이것저것 확인을 했다. 그런 한소희 모습을 오상진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 내 여자 친구야. 예뻐!’
이모의 생일 선물을 고르러 왔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 해도 예뻐 보였다. 그때 한소희가 두 개의 블라우스를 들어 보였다.
“상진 씨? 두 개 중에 어떤 것이 좋아요?”
오상진이 그런 한소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봐요?”
“너무 예뻐서요.”
“아, 옷이요?”
“에이, 옷이 예쁘나. 소희 씨가 예쁘죠.”
“아이 참! 그건 맞긴 한데. 아무튼! 이 두 개 중에 뭐가 예쁘냐고요.”
한소희의 재촉에도 오상진은 답을 하지 않았다. 오직 한소희 눈에 들어왔다.
‘아니,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을까?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오상진은 한소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오상진은 입가를 씨익 올리며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가 입을 뾰로통해지며 말했다.
“진짜 뭐예요!”
“네?”
“아니, 제가 물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넋 놓고 있냐고요.”
“아, 미안해요. 두 개 중에 뭐가 예쁘냐고요?”
“네.”
한소희가 다시 두 개의 옷을 들었다. 오상진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으음……. 전 오른쪽이요.”
“오른쪽? 이거요?”
한소희가 든 것은 진주색 블라우스였다. 한소희기 씨익 웃었다.
“역시…….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한소희는 곧바로 진주색 블라우스를 여직원에게 건넸다.
“이거 포장해 주세요.”
한소희가 바로 결정을 하자, 오상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가격은 안 물어봐요?”
“선물인데 가격을 왜 물어봐요.”
“그,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선물해 드리는 것이니까. 신경 쓰지 마요.”
한소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한소희는 신나하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 속에서 카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오상진은 주변에 다른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네, 고객님.”
“혹시 저 진주색 블라우스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저거요. 이번에 나온 신상이라 가격이 좀 나가요.”
“그래서 얼마인데요?”
“68만4천 원입니다.”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허헉. 68만 원…….”
오상진은 여태껏 68만 원짜리 옷은 사 본 역사가 없었다. 그것을 한소희는 태연하게 사고 있었다.
“네, 고객님 68만4천 원입니다.”
“네, 여기요.”
“당연히 일시불이시죠.”
“당연하죠.”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한소희에게 귓속말을 했다.
“소희씨 너무 비싸요.”
“뭐가 비싸요. 이모님 선물인데. 그리고 우리 엄마가 훨씬 비싼 옷을 입어요.”
“아무리 그래도…….”
오상진이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이모 생일에 데려가는 것도 미안한데 큰돈까지 쓰게 해서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한소희가 말했다.
“상진 씨, 저 생각보다 용돈 많이 받아요. 그리고 나 상진 씨 덕분에 돈도 거의 못 쓰고 통장에만 쌓이고만 있어요. 이럴 때 쓰고 싶어서 그러니까. 그냥 모른 척해줘요.”
한소희가 부탁을 했다. 사실 오상진은 한소희와 데이트를 하면서 대부분 오상진이 계산을 했다. 그렇다고 한소희가 엄청 사치스러운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봤을 때는 쓸 때는 확실하게 쓰는 여자라는 것은 알았다.
“네. 알겠어요. 그럼 소희 씨 선물도 하나 사요.”
“에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사 주고 싶어요.”
“칫, 됐어요.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
오상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이모님 선물 사러 온 것인데, 상진 씨가 그런 말을 하면 제가 괜히 이상한 여자가 된 것 같잖아요.”
“그, 그건 아닙니다.”
“알아요. 그래도 제가 싫어요.”
“그래도…….”
“그럼 나중에 저한테 뭐가 잘 어울릴까, 상진 씨가 생각해 보고 사 줘요. 그럼 됐죠?”
“아, 그럴까요?”
“네.”
“알겠어요. 그럼 오늘은 제가 맛있는 것 사 줄게요.”
“히히, 좋아요.”
한소희가 웃으며 오상진의 팔짱을 꼈다. 오상진은 포장된 블라우스를 손에 들었다. 오상진은 한소희와 매장을 벗어나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다음 날 저녁, 신순애와 신지애는 평소보다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왔다. 신순애는 부엌에서 한 창 요리에 열중이었다.
“언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신지애가 미안한 얼굴로 부엌을 서성거렸다.
“아니야, 언니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괜찮은데……. 이 나이에 무슨 생일상이야.”
신지애는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신순애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지애야.”
“응?”
“넌 나가 있어. 오늘의 주인공이 무슨 부엌에 있어.”
“아니야. 언니! 내가 도와줄게.”
“됐어. 얼른 거실에 나가 있어.”
신지애는 신순애에게 등떠밀려 거실로 나갔다. 그곳에는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신지애는 괜히 민망했던지 오상진을 부며 투덜거렸다.
“너희 엄마 왜 저러니?”
“좋아서 그런다잖아요. 그냥 두세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딩동!
“응? 누가 오기로 했니?”
신지애의 물음에 오상진은 바로 그 주인공이 누군지 인터폰으로 확인했다.
“소희 씨가 왔어요.”
“어멋! 그래?”
오상진이 곧바로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 꽃을 든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서 와요.”
“네.”
한소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신지애는 한소희를 보며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나, 소희 양!”
“이모님, 저 왔어요.”
“어서 와요. 아니, 어떻게…….”
“이모님 생신이라면서요.”
“그걸 어떻게 알고…….”
그때 거실에 있던 이모부가 후다닥 달려나왔다.
“누가 왔다고?”
“상진이 여자 친구.”
이모부는 환한 얼굴로 한소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소희 양. 아이고, 또 보니까 엄청 반갑네.”
이모부는 입이 찢어질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신지애가 살짝 눈을 흘겼다.
“뭐예요, 당신. 왜 그렇게 환하게 웃어요?”
“내가? 나 원래 이렇게 웃잖아.”
“아니거든요? 누가보면 당신이 남자 친구인 줄 알겠네. 왜 저렇게 좋아해?”
이모부가 바로 답했다.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될 사람인데 당연히 좋아해야지.”
“그건 아직 모르는 거지.”
“뭘 몰라? 당연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