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79화
45장 까라면 까야죠(48)
오상진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사장도 자신의 실수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뭔데요?”
한소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한 사장이 난처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실은 말이죠.”
한 사장이 과거에 오상진과 박은지와 함께 아파트를 보러 왔던 것을 얘기했다.
“아, 그랬군요.”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오상진은 집주인과 대화를 끝내고 있었다.
“네, 아주머니. 집 잘 봤습니다.”
“네? 벌써 가시게요? 좀 더 둘러보시죠.”
“다 둘러봤습니다.”
“그럼 언제쯤 오실 거예요?”
아주머니가 설레발을 치며 말했다. 오상진이 살짝 당황했다.
“네?”
“빨리 들어오세요. 여기 집 좋아요?”
“네. 좀 더 상의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네. 사장님 빨리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한소희에게서 차가운 냉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오상진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데 한 사장만 땀을 뻘뻘 흘렸다.
“하하하, 저 집이 급하긴 급한 모양입니다.”
한 사장은 차가운 분위기를 애써 바꾸려고 입을 열었다.
“…….”
“2년 계약만 했으면 괜찮았는데……. 3년 계약을 해버려서 말이죠. 아직 반도 안 살았는데 집을 빼달라고 하니 난리도 아닙니다. 그리고 3년 계약하면서 도배랑 바닥이랑 싹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렇게 해놓고, 일 년 반도 안 돼서 나간다고 하니까. 집주인이 사람 구하고 나가라고 해서 저러는 것 같습니다.”
“어? 저 사람이 집주인 아니었어요?”
“네.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와, 아까 보니까 완전히 집주인처럼 말하던데요.”
한소희가 놀라며 말했다.
“아, 그랬습니까? 제, 제가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한 사장은 또 한 번 땀을 삐질 흘렸다.
“뭐, 그건 넘어가시죠.”
오상진이 바로 끼어들며 말했다. 그러면서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한소희에게 물었다.
“소희 씨는 어때요?”
한소희가 입을 삐죽거리며 답했다.
“몰라요.”
그 반응에 한 사장이 당황했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을 했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한소희가 쌩 하고 먼저 나갔다.
“소, 소희 씨.”
하지만 한소희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한 사장이 자신의 입을 툭 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놈의 입이 방정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상진의 눈에는 살짝 원망 가득한 기색이 들어 있었다.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 한소희에게 오상진이 다가갔다.
“소희 씨.”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한소희를 불렀다.
“…….”
한소희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오상진이 바로 옆에 앉았다.
“소희 씨.”
오상진은 따뜻한 음성으로 다시 한소희를 부르며 안았다. 한소희가 그 손을 툭 치며 말했다.
“됐거든요.”
“소희 씨 그러지 마세요. 내가 다 얘기해 줄게요.”
오상진의 그 한마디에 한소희가 몸을 홱 돌렸다.
“뭔데요? 이제 말해 봐요. 정말로 한 사장님 말씀처럼 전 여친이랑 집 보러 왔어요?”
한소희의 눈빛이 뾰족했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오상진은 순간 움찔했지만 곧바로 환한 미소로 말했다.
“여친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저 친한 친구일 뿐입니다.”
“친구? 어쨌든 다른 여자랑 왔던 건 맞는 거네요. 그리고 상진 씨 나에게 그런 친구 있다고 말 안 해줬거든요.”
“소희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말할 것도 없었어요. 정확하게 말을 하면 기자예요. 종종 소희 씨에게 제가 아는 기자가 있다고 말했던 거 알고 있죠?”
순간 한소희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네. 그랬죠. 아니지, 가만! 그 기자가 여자였어요?”
누그러졌던 눈빛이 바로 날카로워졌다. 오상진은 쩔쩔매며 말을 이어갔다.
“아이고, 소희 씨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요. 사실 중대장님이 통해서 소개받은 사람이에요.”
“중대장님?”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을 하자.’
오상진은 괜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되면 더 난리를 칠지도 모를 것 같았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지.’
그렇게 결심한 오상진은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사실 형수님께 소개받았습니다. 둘이 잘해보라고 했는데, 서로 공적으로 만나는 일이 많다 보니 남녀 간의 감정이 싹트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소희 씨를 만났고, 그 친구에게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요?”
“당연히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이렇게요.”
오상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한소희는 얼굴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건 잘한 것 같네요.”
“네, 제가 맺고 끊는 것은 확실합니다.”
“정말 친구 사이라는 거죠?”
“물론이죠.”
“그럼 그 친구분은 남자 친구 있어요?”
“아뇨. 아직은 없어요. 하지만 조만간 소개시켜 줄 작정입니다.”
한소희가 바로 궁금증을 가졌다.
“어떻게요?”
“아아, 지난번에 제가 소희 씨에게 말했죠? 괜찮은 친구 있으면 알아봐 달라고 했던 것 말이에요.”
“네. 장 중위님이었나?”
“맞아요. 장석태 중위. 그 사람이랑 연결시켜 줄 생각입니다. 날짜까지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정말요?”
“그럼요.”
“왜 그런 얘기를 저에게 안 했어요?”
오상진은 이런 일을 시시콜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괜히 삐질 것 같고, 오해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처럼…….
‘뭐, 지금은 사과가 답이지.’
오상진은 오랜 연륜(?)으로 사과가 빠른 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안해요, 소희 씨. 전 진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니까요. 아니, 미처 생각도 못 했어요. 저랑 그다지 중요한 관계가 아니라서 굳이 얘기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가끔씩 기사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밖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공적으로만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뭐, 이거 전부 변명이고! 아무튼 이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에 사과할게요. 제가 소희 씨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습니다.”
오상진이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자 한소희의 표정 역시 풀어졌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숨기는 일 없었으면 해요.”
“알겠어요.”
“그럼 한번 안아줘요.”
오상진이 두 팔을 벌렸다. 한소희가 새치름한 표정을 짓다가 살포시 안겼다.
“이번 한 번만이에요.”
“알았어요.”
그때 뒤에서 ‘어험, 어험!’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두 사람이 바로 떨어졌다. 한소희는 얼굴을 붉히며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오상진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 한 사장님…….”
한 사장이 어색한 얼굴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상진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한소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희 씨, 이제 화 풀린 거죠?”
“아직 다는 안 풀렸어요.”
“남은 화는 나중에 풀어 줄게요.”
“……뭐예요, 응큼하게.”
“아무튼 지금은 우리 빨리 집부터 봐요.”
“알았어요.”
오상진과 한소희가 나란히 한 사장에게 갔다. 한 사장은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어험, 저 그럼 일단 지금 본 아파트가 작다고 하시니까, 좀 더 큰 집을 보시겠습니까?”
“몇 평 정도요?”
“45평요.”
한소희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45평 말고요. 더 작은 것 없어요? 아까 38평짜리도 있다고 했잖아요.”
“몇 개 나온 것이 있긴 한데요.”
한 사장은 곧바로 다이어리를 펼쳐서 38평에 관한 집을 확인했다.
“한 사장님.”
“네.”
“가능하면은 우리 상진 씨랑 같은 동이면 좋겠는데요.”
“아, 사장님이 사시는 동 말씀이시죠.”
“네.”
“잠시만요.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한 사장이 몇 번 다이어리를 뒤지다가 바로 덮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 한 사장인데……. 어, 그래.”
한 사장은 좀 떨어진 곳에서 통화를 하고는 바로 오상진과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네, 마침 매물 하나가 나와 있다고 하네요. 제가 문자로 비빌번호를 받기로 했거든요.”
때마침 띵동 하고 문자가 왔다. 한 사장이 바로 확인을 했다.
“네, 왔습니다. 바로 가시죠.”
한 사장이 오상진과 한소희를 안내했다. 진짜 오상진이 살고 있는 동이었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한 사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여기 8층입니다.”
“네.”
한 사장이 비밀번호를 눌러 빈집으로 안내를 했다.
“어? 구조는 저희 집이랑 비슷하네요.”
“네. 똑같은 동이니까요. 편안하게 구경하세요.”
한 사장이 말을 한 후 거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오상진과 한소희가 집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오상진도 그렇고 한소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구조는 비슷비슷했다.
“확실히 그 집보다는 여기가 큰 것 같아요.”
“여기가 평수도 평수지만 구조가 잘 빠졌어요. 거실도 넓게 빠졌고, 특히 주방 쪽이라 거실이 연결되어서 개방감이 다른 곳보다는 훨씬 넓게 보이는 구조입니다.”
한 사장이 좋게 말했다.
“확실히 설명은 들으니까, 그런 것 같네요. 햇볕도 잘 들어오고…….”
쏴아아아아!
“확실히 수압도 좋네요.”
한소희는 부엌의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 보았다. 시원하게 쏟아졌다. 그리고 같은 동이다 보니, 왕래도 편할 것 같았다. 한소희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저는 여기가 괜찮은 것 같은데, 상진 씨는 어때요?”
“저는 소희 씨가 좋으면 상관없습니다. 여기로 하죠!”
오상진이 바로 승낙을 했다. 한 사장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다른 곳은 더 안 보시고요?”
“이미 마음에 든 곳을 찾았는데 굳이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있습니까?”
“그, 그렇죠.”
한 사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한소희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칫, 괜히 나에게 미안해서 그렇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가시방석이었던 한 사장도 두 사람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내 말실수 때문에 정말 VIP 손님을 놓칠 뻔했어. 진짜 말조심해야지.’
한 사장은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오상진이 한 사장에게 다가왔다.
“한 사장님.”
“네?”
한 사장이 움찔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상진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무슨 일로…….”
한 사장이 바로 말을 돌렸다. 오상진은 집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뗐다.
“여기는 집값이 얼마예요?”
“이 집이 시세가 똑같이 나왔는데 말만 잘하면 3천 정도는 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장이 바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런데 이 집이 비어 있던 것이 좀 된 것 같은데요.”
“원래 사모님이 계셨는데 자식들 모두 외국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모님이 급하게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