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76화
45장 까라면 까야죠(45)
오상진은 시선을 살짝 뒤쪽으로 두었다. 주희랑 주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하네…….’
오상진은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앞에 앉은 신순애를 보며 통장을 내려놓았다.
“네. 엄마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 허락을 해주니 고맙네.”
“이 돈은 엄마가 버신 거잖아요. 그러니 엄마가 정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신순애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이 집안의 가장은 오상진이었다.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의논할 것은 의논해야 했다. 독단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신순애는 아들 오상진에게 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마냥 어린 애인 줄 알았는데…….’
신순애의 가슴속에 뿌듯함이 마구 피어났다. 하염없이 미소만 지으며 오상진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오상진은 통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엄마.”
“으응?”
신순애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걸로 집을 사는 것은 그렇고……. 전제라도 얻으시게요?”
“응! 솔직히 엄마가 해주고 싶은데……. 엄마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것뿐이네. 그래서 염치없지만 아들이 부족한 것은 보태줄 수 있을까?”
“엄마, 아들인데 부탁은…….”
“그래도…….”
신순애가 미안해했다. 오상진은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뭐,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전세를 얻는 것인데……. 전세금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오상진은 문득 이 아파트를 생각했다.
‘가만, 이 아파트 전세가 얼마나 하려나?’
오상진은 펜트하우스를 산 가격을 떠올렸다.
‘12억에 이 집을 샀으니까. 보통 평균 가격은 7억~9억 선이겠지? 그렇다면 전세 가격은 대략적으로 5억 원 선에서 나올 것 같은데…….’
오상진은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오상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이 아파트에 매물이 있는지 알아보고, 전세는 얼마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 제가 부동산 한 사장에게 물어볼게요.”
“그래, 고맙다. 아들!”
신순애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엄마. 제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해. 우리 아들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대신에 이모에게는 비밀로 해줘. 만약에 이모 알면 절대 안 받으려 할 거야.”
“걱정 마세요. 계약서 다 써놓고, 이사 날짜 받아놓고 이모에게 말해 놓을게요.”
“그래, 아들. 부탁 좀 할게.”
오상진은 신순애의 ‘부탁 좀 할게’ 이런 말이 자신을 믿고 기대는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한편.
“엄마, 엄마…….”
“이리 들어와 봐.”
한소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이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소희는 황당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
“아, 왜!”
“너 엄마에게 할 말 없어?”
“무슨 말?”
한소희는 엄마를 빤히 바라봤다. 엄마는 눈을 지그시 뜨며 물었다.
“너, 언제 소개시켜 줄 거야?”
“뭐, 뭘, 누굴?”
한소희는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부렸다. 엄마가 그런 한소희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아얏! 엄마 아파!”
“아프라고 때렸다. 이년아.”
“이씨. 아, 왜!”
“남자 친구가 뻔히 있으면서 소개를 왜 안 시켜줘.”
“왜 그래. 또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서.”
한소희가 물었다. 엄마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너, 남자 친구 사진을 봤는데 나쁘지는 않더라?”
한소희가 깜짝 놀랐다.
“어? 엄마, 사진 봤어? 어떻게?”
“작은 오빠가 보여주던데.”
“아이씨, 작은 오빠는 왜 말도 없이 보여주고 그래.”
한소희가 투덜거리자 엄마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왜 보여주면 안 돼? 딸 엄마 서운해지려고 한다.”
“아니, 엄마가 또 우리 상진 씨를 보고 이상한 말을 할까 봐서 그러지.”
“우리 상진 씨? 이게 아주 그냥…….”
엄마가 살짝 눈을 흘겼다.
“뭐…….”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 어디가 그렇게 좋냐?”
“우리 상진 씨? 말로 꼭 해야 하나.”
한소희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꼴불견이 엄마가 다시 손을 들었다.
“어, 엄마. 또 때리게?”
“그래! 그 얼굴이 보기 싫어서 그런다.”
“아아아, 때리지 마. 말할게.”
“…….”
엄마가 들었던 손을 내렸다. 한소희가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상진 씨는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고, 자상한 데다가, 상냥하고, 남자답고, 무엇보다 날 너무 사랑해 줘.”
“그리고 또?”
“또? 으음……. 그냥 다 좋은데.”
한소희는 상큼한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는 그런 한소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야? 그 얼굴은?”
“내 얼굴이 왜?”
“여태껏 남자를 만나도 그런 얼굴은 아니었잖아.”
“응? 뭐야. 내가 언제 남자를 만났어.”
“안 만났어?”
엄마는 눈을 새치름하게 떴다. 한소희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그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남자고. 우리 상진 씨는 나의 마지막 남자지.”
“네 나이가 몇 개인데 벌써 마지막 남자야.”
“아, 몰라. 아무튼 우리 상진 씨 이후로 어떤 남자도 내겐 없어.”
한소희는 확신을 가지며 말했다. 엄마는 그런 한소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끝까지 우리 상진 씨라고 하네.”
“헤헤, 그럼 너무 좋을 걸 어떻게 해.”
한소희가 엄마에게 달라 붙었다.
“떨어져 이년아.”
“엄마아아아.”
한소희가 엄마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런 한소희가 엄마는 싫지가 않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보다 언제 소개시켜 줄 거야? 엄마 오래 못 기다린다.”
“잠깐만, 잠깐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한소희의 아양에 엄마는 살짝 눈을 흘겼다.
“그건 그렇고, 네 남친 돈 많다며. 왜 그건 얘기 안 해?”
“어, 많아.”
한소희가 바로 말했다.
“그런데 왜?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지 않아?”
“글쎄!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을걸?”
“그래? 그건 왜 장점이 아니야?”
“엄마는 무슨 내가 돈 보고 만나는 줄 알아. 그렇게 따지면 아빠 일에 도움이 되는 남자를 만나지 뭐 한다고 내가 상진 씨를 만나겠어.”
“그럼 정말 그 남자가 진심으로 좋아서 만나는 거야?”
“당연하지. 엄마는 엄마 딸을 너무 모른다.”
“그래, 내가 딸을 너무 몰랐다. 그보다 빨리 말해, 언제 소개시켜 줄 거냐고.”
“소, 소개……?”
한소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소희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어, 엄마. 나 전화…….”
한소희가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어멋! 상진 씨다!”
한소희는 대번에 휴대폰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상진 씨. 지금 엄마랑 얘기 중이었어요. 네. 할 말이요? 잠깐만요.”
한소희는 대번에 휴대폰을 막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할 얘기 끝났지? 나 그럼 방에 간다.”
한소희는 손을 흔들며 안방에서 나갔다. 곧바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상진 씨. 무슨 할 말요?”
그런 딸의 뒷모습을 보는 엄마는 입가로 희미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이구, 딸자식 키워 봤자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엄마는 한소희가 오상진의 전화를 받았을 때 보여준 환한 미소가 잊히지가 않았다.
“그렇게 좋을까.”
엄마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나저나 그이가 좋아하려나.”
한소희는 전화를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왔다. 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저 방금 내 방에 왔어요.”
-아, 그래요?
“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소희 씨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죠. 제가 무슨 일은 있겠어요?
“헤헤, 그 말 듣기 좋다.”
-저야 항상 우리 소희 씨만 생각하니까요.
“에이, 그거야 맞는 말이죠. 그보다 빨리 말해봐요. 이 시간에 전화한 이유가 뭐예요? 물론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겠지만 말이에요. 호호.”
-역시 우리 소희 씨에게는 못 당하겠습니다. 맞아요. 목소리도 듣고 싶고, 할 말도 있습니다.
“뭔데요?”
-소희 씨, 저희 이모부와 이모가 올라왔다는 건 알고 있죠?
“알죠.”
-사실 이모부와 이모가 급하게 올라오시느라 오피스텔 원룸에서 생활하세요.
“어? 그래요? 하긴 주희랑 주혁이는 상진 씨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죠.”
-네. 이모부와 이모는 본인들이 돈을 모아서 이사하시겠다고 하는데 사실 서울 집값이 좀 높잖아요.
“그럼요. 그 돈을 언제 모아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주에 이모 생신인데 제가 이모부랑 이모 살 만한 곳을 마련해 드리고 싶어요.
그러자 한소희가 그 얘기를 듣더니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자기 돈을 가지고, 자기가 쓰겠다고 통보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언제나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그것도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점이 한소희는 너무 좋았다.
물론 한소희는 오상진이 이모의 가족에게 효도를 하겠다는 것에 왈가불가할 자격은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좋게 먼저 의견을 물어봐 주는 것이 너무 예뻤다. 한소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이모하고, 이모부님도 상진 씨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고마워요, 소희 씨. 그렇게 생각해 줘서. 그럼 혹시 같이 집 보러 갈 수 있어요?
“좋아요. 저 집 보러 가는 것도 구경하는 것도 엄청 좋아해요.”
-그럼 이번 토요일에 만나서 집 보러 갈까요?
“나는 상관없는데 하루 종일 집 보는 것은 아니죠?”
-당연하죠. 미리 한 사장님께 말해 놓고, 몇 군데 정해 놓은 상태에서 보러 갈 겁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데이트해요.
“알았어요.”
그렇게 한소희는 오상진과의 통화를 끊었다.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고 침대 위에 던져 놓은 한소희는 그대로 뒤로 발라당 누웠다.
“아, 좋다.”
한소희는 그 한마디를 하고 눈을 감았다.
한편, 오상진 역시도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소희 씨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별말을 안 하네.”
오상진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아랫배가 묵직해졌다.
“윽, 배, 배가 아프네.”
오상진은 갑작스러운 신호에 급히 방을 나섰다. 화장실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문 손잡이를 잡았는데 잠겨 있었다.
“어? 누가 있나?”
오상진이 똑똑 두드렸다.
“안에 있어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니?”
“저, 주, 주희예요.”
‘주희? 주희가 왜 1층 화장실을 왜 쓰지?’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주희가 조용히 말했다.
“오빠 죄송해요.”
“아니야. 어험, 오빠가 미안해. 그럼…….”
오상진이 방으로 돌아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주희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어엉.”
문이 열리며 주희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오빠 죄송해요.”
“아, 아니야. 죄송은 무슨……. 아, 그런데 2층 화장실은 두고 왜?”
“아, 2층에 상희가 쓰고 있어서요.”
“상희가? 그렇구나. 안방 것을 쓰지 그랬어.”
“거긴 좀……. 아무튼 오빠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