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75화
45장 까라면 까야죠(44)
“아…….”
강태산 이병이 멋쩍어했다.
“그리고 참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너 차 병장에게 고맙다고 했어?”
“네?”
“너 인마 쓰러졌을 때 너 업고 뛴 것이 차 병장이야.”
“어? 그, 그렇습니까?”
강태산 이병의 시선이 차우식 병장에게 향했다. 차우식 병장은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사실 강태산 이병은 기절을 해서 정확하게 잘 몰랐다.
“그때 차 병장이 발견 안 했으면 너 큰일 날 뻔했어, 인마. 고맙다고 해야지.”
“아, 네에.”
오상진은 김우진 병장에게 갔다. 오늘 오후 작업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이런저런 일들을 말했다. 그리고 다시 강태산 이병에게 말했다.
“태산이는 나 좀 잠깐 보고.”
“이병 강태산.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내무실을 나가고, 강태산 이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우식 병장을 향해 경례를 했다.
“충성, 감사했습니다.”
“됐어, 인마. 언제적 일을…….”
차우식 병장은 민망했던지 강태산 이병의 시선을 외면하며 손을 휙휙 저었다. 내무실을 나서니 오상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아버지에게는 연락 없었지?”
“네, 아빠가 안 그래도 죄송하다고 조만간 술 한잔하시자고 합니다.”
“어이구, 아버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면 술 한잔해야지. 소대장은 괜찮으니까, 아버님에게 편한 시간에 언제든지 전화하시라고 해.”
“정말입니까?”
“그럼.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네 관리를 제대로 못 해줘서 아버지 볼 면목이 없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아무튼 특별히 손 조심하고.”
“네.”
“그렇다고 작업 빼주는 것은 없다. 이번 주가 마지막이니까.”
“아, 작업은 좀…….”
강태산 이병이 곤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자식이 말이야. 너 뺀질거릴 거면 상병 달고 해. 너 아직 멀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강태산 이병의 머리를 한 번 휙휙 저어줬다.
오상진은 강태산 이병이 내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은지 씨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거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했는데…….”
오상진은 박은지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무 연락을 하지 않아 솔직히 조금 망설였다.
“에이, 미안한 것은 미안한 거고. 얘기할 것은 해야지.”
오상진은 맘을 먹고 박은지 전화목록을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이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 까랑까랑한 박은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멋! 상진 씨. 너무 오랜만이다.
“네, 은지 씨. 잘 지냈죠?”
-저야, 항상 똑같죠. 그런데 너무 오랜만의 연락이라 전 상진 씨가 휴대폰 바꾼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죠? 그냥 잊고 있었던 거죠?
“하핫, 미안합니다.”
-됐어요. 좋은 건수 하나 얘기해 주면 용서해 드릴게요.
“좋은 건수…… 말입니까?”
오상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어멋! 정말요?
“정말이죠.”
-얘기해 봐요. 지금 완전 경청하려고 준비 끝났어요.
“네, 그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예전에 조사했던 민용기 상사에 대해서입니다.”
오상진의 말에 박은지가 바로 말했다.
-사고 쳤어요?
“어? 아직 소식 못 들으셨구나. 민 상사 이번에 전역하게 생겼습니다.”
-아니 왜요?
오상진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아, 그 얘기를 왜 이제야 해요. 나한테 빨리 얘기를 해줬다면 기사를 썼을 텐데.
오상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말을 못했습니다.”
-아, 제가 기사를 잘 못 쓸 것 같아서요?
“이게 자치 잘못했다간 군 전체의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죠.
“그렇지 않아도 기무사에서 나와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개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아직 파악도 못한 상황에서 기사가 나버리면 윗선에서 일을 크게 벌려 버릴 것입니다. 그러는 것이니 조금 이해해 주십시오.”
-칫. 상진 씨도 이럴 때면 꼭 영락없는 군인이라니까요.
“제가 군인인 건 맞죠. 허허.”
-요즘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하도 연락이 없기에 연애하는라 절 까맣게 잊은 줄 알았죠.
박은지의 뼈 있는 말에 오상진은 움찔했다.
“하핫……. 죄송합니다. 그보다 은지 씨는 만나는 남자 없습니까?”
-어멋! 웃겨. 나한테 남자 소개시켜주고 그런 말 하든가. 혼자만 재미있으면 다예요? 그래도 친군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 얘기를 꺼낼 참이었다.
“그럼 말이에요. 소개팅 하실래요?”
-소개팅? 누구요? 혹시 군인?
“네. 우리 부대에 제가 아는 장교분이 있는데. 그분도 여자 친구를 애타게 구하고 계셔서 말이죠.”
-으흠, 나 아무나 안 만나는데……. 그 남자 괜찮아요?
“네. 좋은 분입니다.”
-뭐하는 분인데요?
“으음, 저랑 같은 군인이고……. 계급은 저랑 같지만 선배님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민용기 상사 건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으음……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한번 만나보시죠.”
-좋아요. 그럼 상진 씨가 한번 주선해 줘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일이 많아서 지쳐있던 상태였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은지 씨.”
-네?
“실례지만 예쁘게 찍은 사진 한 장만 보내주십시오.”
-왜요? 그 남자분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데요?
“에이, 남자라면 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죠. 하지만 은지 씨라면 어느 남자든지 다 좋아할 겁니다.”
-칫, 알았어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사이 휴대폰에서 ‘딩동’ 하고 문자가 왔다. 박은지가 보낸 문자였다.
“와, 벌써 보낸 거야?”
오상진이 사진을 확인하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와, 예쁘네.”
오상진이 감탄했다. 사진 속 박은지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포샵을 한 사진인가? 이런 모습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상진은 그 사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근무가 끝나고 곧바로 관사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을 하니 아무도 없었다. 오상진은 홀로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집으로 신순애와 신지애가 퇴근을 하며 집에 들어왔다. 신지애가 거실에 앉아 있는 오상진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나, 상진아.”
“이모 오셨어요.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그보다 어쩐 일이야?”
“아, 엄마랑 얘기할 것이 있었어요.”
“그러니? 알았어. 엄마랑 얘기해. 이모는 애들 간식 챙겨주고 갈 거야.”
“네, 이모.”
오상진의 시선이 신지애에게 향했다. 신지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옷 갈아입고 나올게.”
“네, 엄마.”
그 뒤로 다시 현관문이 열리며 이모부가 들어왔다.
“어? 상진이 왔네.”
“네. 이모부.”
“언제 왔냐?”
“퇴근하고 바로 왔어요.”
“그래? 그럼 미리 연락을 하지 같이 저녁이라도 먹게 말이야.”
“저 군인이잖아요. 군대는 제 시간에 딱딱 밥이 잘 나오잖아요”
“하긴 그렇지.”
“그런 이모부도 지금 퇴근하시는 길이에요?”
“으응, 이것저것 아직 확인할 것이 많아서 말이야.”
“제가 괜히 이모부 힘든 일시키는 거 아니에요?”
“뭔 소리야.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이모부는 손을 휙휙 저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보다 이 녀석들 잘 지내고 있나.”
이모부는 괜히 화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오상진은 그저 피식 웃고만 있었다. 이모가 나오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애들 걱정은…….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건너가요.”
“알았어. 애들 얼굴만 보고…….”
“만날 보는 얼굴 오늘 하루 안 본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요.”
“이 사람 참…… 난 애들 얼굴도 못 봐?”
“됐어요. 유난 떨지 말고 어서 가요. 가!”
신지애는 오상진이 왔다는 것에 더욱 더 유난을 떨었다. 이모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간다 가.”
이모부는 살짝 민망한 얼굴로 오상진을 봤다.
“나 갈게. 쉬어.”
“네. 이모부. 조만간에 사무실로 갈게요.”
“어, 그래.”
이모부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후 집을 나갔다. 신지애도 애들 간식을 다 주고 난 후 인사를 했다.
“언니 나도 가요. 내일 봐요.”
“어, 그래. 들어가.”
오상진도 인사를 했다.
“이모 쉬세요.”
“알았어. 너도…….”
신지애가 환하게 웃으며 집을 나섰다. 신순애가 옷을 다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네 방가서 얘기할까?”
“내 방요? 여기에 내 방이 있었나요?”
“어?”
신순애가 당황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농담입니다. 가시죠.”
오상진은 집에 올 때 자는 방이 따로 있었다. 창고로 사용했던 알파룸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막혀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완벽하게 숨겨진 방이었다. 그곳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엄마, 저에게 하실 말씀이 뭐예요?”
신순애는 말없이 조용히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엄마, 이거 뭐예요?”
오상진이 통장을 들어 물었다. 신순애는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어어, 이거…….”
오상진이 통장 속 잔고를 확인했다. 대략 3천만 원 좀 넘게 들어 있었다.
“엄마……. 저 결혼자금 미리 주시는 거예요?”
오상진이 김칫국을 먼저 마셨다. 그러자 신순애가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 사실 그러려고 모은 돈은 맞아. 그런데 이번에 다른 곳에 쓸 생각이야.”
“다른 곳이라면요?”
“이 돈으로 이모 집을 하나 마련해 줄 생각인데……. 넌 어떠니?”
“이모 집이요?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있잖아요.”
“그곳은 급하게 알아본 곳이라서 원룸형이잖니. 시설도 오래되어서 그다지 좋지 않고. 게다가 여기서 좀 멀기도 하고. 이모부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같이 서울에 있는데 애들이랑 같이 지내야 하지 않겠니.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
오상진이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이모부 역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있는 오피스텔이라고 하지만 매일 여기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긴 이모도 어찌보면 두 집 살림을 하는 꼴이 되어버렸네.’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신순애가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 않니. 이모네가 제주도를 정리하고 나서 너무 급하게 구한 거라……. 아무튼 결론은 집을 구해주고 싶어. 번듯한 아파트라도 있는 것이 좋지 않겠어. 이제는 가족끼리 같이 살아야지. 안 그러니?”
엄마의 말에 오상진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막말로 오상진은 이런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끼리 살아야 하지 않겠니 하고 묻는 엄마의 말에 왜 진즉 이 생각을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자책을 했다.
‘이 바보……. 그냥 아파트 한 채 얻어주고 같이 살면 좋은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