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69화
45장 까라면 까야죠(38)
“그런 겁니까?”
“그래! 기왕 군대 들어왔는데 병장으로 만기전역을 해야지.”
“네.”
“그러니까, 소대장이 며칠 더 쉬게 해줄 테니까. 보고, 다음 주에 부대 복귀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답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치료 잘 받고 있어. 소대장은 간다.”
“충성. 들어가십시오.”
“오냐.”
오상진이 손을 흔들어 주며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국군수도병원 위병소를 통과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버튼을 누른 후 귀에 가져갔다.
잠시 후 한소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진 씨.
“네, 소희 씨.”
-밖인 것 같은데요? 어디에요?
“병원입니다.”
-아, 그 친구 상태는 어때요?
“많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애가 워낙에 곱게 자라서 그런지 충격이 큰 것 같아요.”
-그래요. 안타깝네요. 그보다 우리 이번 주는 볼 수 있는 거예요?
“으음, 시간은 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소대에서 생긴 일이라 제 입장이 좀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소희 역시도 이해를 하는 듯 입을 뗐다.
-아무래도 부대에 있어야 되겠죠?
“네. 주변에 보는 눈도 있고요.”
-상진 씨 보고 싶어서 어떡해요?
“저도 많이 보고 싶어요. 이 일이 빨리 해결되고 실컷 봐요.”
-알겠어요.
한소희는 다소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소희 씨.”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보다 그 친구는 언제쯤 퇴원한데요?
“아마 다음 주 중으로 퇴원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다음 주에는 꼭 봐요.”
-알겠어요.
오상진은 한소희와 통화를 마치고, 살짝 아쉬운 얼굴로 위병소 입구로 걸어갔다. 그때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임 소령님이시네.”
오상진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임 소령님. 무슨 일입니까?”
-아, 오 중위. 어디인가? 부대에 전화했더니 외출했다고 해서 말이야.
“저기, 부대원 중에 하나가 다쳐서 국군수도병원에 있습니다.”
-혹시, 파상풍에 걸렸다는 그 친구?
순간 오상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걸 임 소령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후후, 그 얘기를 하려면 우선 만났으면 하는데.
“좋습니다. 오늘 보실까요?”
-저녁에 보지.
“네,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 오상진이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임 소령이 나타났다. 오상진은 손을 들고 말했다.
“여기입니다.”
임 소령이 환한 얼굴로 와서 자리 했다.
“여기 내 단골집인데 괜찮아?”
“물론입니다. 저는 또 임 소령님 덕분에 부대 근처 맛집을 한 군데 알게 됐습니다.”
“알았네. 일단 시키자고.”
임 소령이 말을 한 후 가게 아주머니에게 손을 들어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 두루치기 2인분이랑 소주 한 병 주십시오.”
“그래요. 소주는 뭐로 드릴까?”
“이슬로 주십시오.”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아주머니 아시죠?”
“뭘?”
아주머니가 돌아서서 물었다. 임 소령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3인분 같은 2인분!”
“알았어, 내가 또 단골은 잘 챙겨야지.”
“역시 아주머니십니다. 하하하.”
“말로만?”
“그래서 이렇듯 손님을 끌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알았어요. 서비스 잘 챙겨 줄게.”
“고맙습니다.”
오상진은 임 소령이 가게 아주머니랑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랐다. 예전에는 뭔가 근엄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면, 방금 모습은 무척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여기 두루치기가 꽤 맛있어.”
“네.”
오상진이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며 물었다.
“전화로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파상풍에 관련된 얘기인 것 같은데 말이죠.”
임 소령이 크게 웃었다.
“하하핫. 역시 오 중위는 눈치가 빨라. 맞아, 그 일 때문에 자네를 만나자고 했네.”
“지금 임 소령님께서는 기무사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임 소령님께서 파상풍에 관한 것을…….”
“그게 궁금하겠지. 사실 말이야. 사단에서 직접 내려왔어. 파상풍에 관해서 조사를 하라고 말이지.”
임 소령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달랐다.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랐다.
“사단에서 말입니까?”
“그래.”
“그럼 저희 대대장님께서 보고를 하신 겁니까?”
“아니. 대대장님께서 보고한 것은 아니고. 강태산 이병 아버지가 사단에 아는 사람이 있어나 보더라. 어쨌든 그 사람을 통해서 사단에서 아는 분을 통해서 들어온 거더라고.”
“아, 예에…….”
오상진은 강태산 이병 아버지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철환 1중대장을 보자마자 멱살을 잡았던 분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 김철환 1중대장은 아직까지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솔직히 강태산 이병 아버지 정도 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일 처리가 안 되어서 사단에 연통을 넣은 모양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오 중위 생각은 어때?”
“어떤 걸 말입니까?”
“강태산 이병의 아버지가 말해서 사단까지 연락이 갔는데……. 어떻게, 안 불편해?”
오상진은 술을 들어 빈 잔에 채웠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편하다기보다 죄송스럽죠. 이 문제를 제 선에서 해결하지 못해 답답하긴 했는데, 솔직히 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 소령이 피식 웃었다.
“왠지 오 중위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자, 한잔하지.”
“네.”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사이 두루치기가 나왔다.
“오오, 냄새도 좋고.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오상진이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임 소령이 슬쩍 보며 물었다.
“어때?”
“이야, 여기 맛있습니다. 임 소령님 단골집이 된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내가 또 여긴 아무나 데려오는 곳이 아니야. 오 중위니까, 특별히 데려온 거야.”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임 소령이 여기 두루치기 집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여기 고기 보이지? 이거 어느 부위 같아?”
“으음. 앞다리?”
“아니야. 뒷다릿살이야. 그런데 앞다릿살만큼 육질이 좋아.”
“오, 그렇습니까? 뭐가 되었든 맛이 있어 좋습니다.”
“그래, 그래. 많이 먹어.”
“네.”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실제로 오상진도 과거에서 많은 맛집을 다녀봤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여기는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맛집이었다.
“여기 자주 찾아와서 단골 해줘. 사실 여기 부모님 아들이 군 복무 중에 사망을 했어.”
“아, 그렇구나. 그래서 임 소령님이…….”
“뭐, 그런 것도 있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임 소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비웠다. 물론 1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아드님은 어떻게 죽은 겁니까?”
“사고사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대부분을 사고사로 말하잖아.”
“아…….”
오상진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 소령은 괜한 말을 꺼냈다는 듯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내가 괜한 말을……. 아무튼 여기 두루치기가 참 맛이 있어. 그러니 자주 찾아와.”
“네. 제 여친 데리고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래.”
임 소령이 환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 주었다. 오상진이 소주잔을 두 손을 받쳐서 받았다. 그때 아주머니가 쓰윽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나게 해?”
아주머니의 손에는 잔뜩 성을 내며 부풀어 올라와 있는 계란찜이 들려 있었다.
“어이구, 이거 뭐니까? 우리 안 시켰는데?”
“에이, 먹어. 먹어. 서비스야.”
“이렇게 막 주고 그러면 남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임 소령의 말에 아주머니가 돌아가며 말했다.
“그럼 자주 좀 오든가. 한 달에 한두 번 얼굴 비추면서 무슨 단골 타령이야.”
“후후, 네네.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이 친구도 자주 오겠답니다.”
곧바로 오상진이 인사를 했다.
“네. 이모! 제가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약속했어!”
“네!”
오상진과 임 소령 두 사람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입으로 가져갔다. 안주로 매콤한 두루치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자, 입가심도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좀 해볼까?”
“네, 하시죠.”
오상진도 준비가 되었다. 임 소령이 잠깐 머릿속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강태산 이병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줘봐. 뭐, 내일 상황 봐서 따로 불러 얘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기무과장으로서 오 중위를 대해야 하니까. 막말로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 괜히 소문이 이상하게 날 수도 있고 말이지.”
임 소령은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마치 오상진이 소대 관리를 잘못해서 기무사에 불러 갔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자, 일단 얘기해 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근차근 강태산 이병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았다.
“네, 제가 알고 있는 강태산 이병은…….”
오상진은 자신이 보고를 들은 그대로 설명을 해줬다. 낫에 베여서 손바닥에 상처가 났다. 곧바로 의무대로 갔고, 바늘로 꿰맸다. 그때까지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보도블록을 옮기다가 쓰러졌다. 다시 의무대로 데리고 갔다. 의무대에서 경과 관찰만 했다.
저녁 시간에 상태가 좋지 않아,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했다. 거기서 파상풍이라고 확진을 받았다.
오상진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다.
“어이구, 우리 오 중위가 사람 하나 살렸네.”
“아닙니다. 제가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니지. 오 중위처럼 병사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중에 크게 터지고 나서 난리 나는 거지. 그건 그렇고 파상풍이 확실한 거야?”
“네. 검사 결과 파상풍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신교대에서 파상풍 주사를 안 맞았나 봐.”
“아닙니다. 들어보니,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왜 파상풍에 걸렸지?”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뗐다.
“사실 저도 그것이 궁금해서 담당 군의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담당 군의관 말로는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파상풍 주사를 맞으면 예방 효과가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간이 오래된 약품을 투여받아 효과를 못 볼 경우도 있고, 파상풍 주사를 안 맞았는데 맞았다고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으음, 그래? 오 중위는 어떤 쪽에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강태산 이병이 좀 엄살도 심하고 하지만 거짓말할 친구는 아닙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사실 강태산 이병의 집안이 좀 좋습니다. 강훈실업이라고…….”
“강훈실업? 나 거기 아는데…….”
임 소령도 들어본 강훈실업이었다.
“가만, 그 정도라면 아들을 군대 잘 안 보낼 텐데…….”
임 소령 역시도 부잣집 자식들은 웬만하면 군대를 빼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것도 사실 부모님이 보냈다고 합니다.”
“어이구, 부모님 정신이 올바르시네. 자식 똑바로 키우시겠다는 마인드신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상태에서 군대에 왔는데, 일부러 거짓말하고 그럴 애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