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68화
45장 까라면 까야죠(37)
장기준 사단장은 수행원과 함께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사단장실로 들어왔다.
“요새 대대 사정들은 어때?”
나종덕 비서실장이 바로 말했다.
“크게 별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네.”
“믿을 수 있어야지.”
장기준 사단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보고를 받는 입장이라…….”
“됐어, 비서실장을 탓하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내가 한 번씩 대대를 돌아보자고 하는 것이야.”
“그래도 그렇게 돌아다니면 대대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워할 겁니다.”
“부담은 무슨…… 몰래 가는데.”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사단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고개를 돌렸다.
“누굽니까?”
“인사참모입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고개를 돌려 장기준 사단장을 봤다.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키가 작은 중령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정자세를 취하며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인사참모.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일로 사단장님께 보고를 드릴 것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일?”
장기준 사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나종덕 비서실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보게, 비서실장! 아무리 그래도 개인적인 일로 사단장님을…….”
“비서실장. 너무 그렇게 하지 마. 뭔가 급한 일이 있으니까, 날 찾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단장님. 아무리 간부라고 해도 개인적인 일을 왜 사단장님께서…….”
그러자 곧바로 인사참모가 말했다.
“제 개인적인 일이지만 사단장님께 보고를 올리는 것에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장기준 사단장과 나종덕 비서실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장기준 사단장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충성대대에 제가 아는 사람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 그런데 왜? 무슨 가혹 행위라도 당했대?”
“그건 아닙니다. 진지공사를 하다가 파상풍에 걸렸다고 합니다.”
“뭐? 파상풍? 요즘에도 파상풍에 걸리나? 아니면 신교대에서 진지공사를 했어?”
그러자 나종덕 비서실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충성대대라고…….”
“알아.”
장기준 사단장이 눈을 부라렸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바로 고개를 숙엿다.
“아, 네에…….”
장기준 사단장이 인사참모에게 시선이 갔다.
“그래서 파상풍 주사를 안 맞았던 거야?”
“아닙니다. 이미 파상풍 주사는 맞았다고 했습니다.”
“주사를 맞았는데 파상풍에 걸려? 그게 말이 돼?”
장기준 사단장이 힐끔 나종덕 비서실장을 봤다. 그러자 바로 나종덕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가끔 불량을 맞으면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기준 사단장의 표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건 예전 일 아냐? 우리시대 때야 파상풍 주사를 잘못 맞았을 때 일이고. 요즘은 진지공사하면서 얼마나 다쳤기에 파상풍까지 걸려.”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낫에 살짝 베였다고 합니다.”
“낫? 낫에 베여? 낫에 베인 거 가지고 파상풍?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현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종덕 비서실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조치는 어떻게 됐어?”
“대대장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거기서부터 끊겼다고 합니다.”
“끊겨? 그냥 덮는 분위기야?”
“그건 아직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으음……. 일단은 보고가 올라갔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거 아니야.”
“네. 그렇습니다.”
장기준 사단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종태 이 친구 좋게 봤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니야. 한번 확인은 해봐야지.”
“네. 그건 그렇지만…….”
나종덕 비서실장은 굳이 병사 한 명이 파상풍에 걸린 것으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을 했다. 그것을 대번에 눈치를 챈 장기준 사단장이었다.
“내가 병사 한 명이 파상풍에 걸린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등하는 것 같나?”
“네? 아, 네에…….”
“난 어째서 병사가 파상풍에 걸렸는지가 궁금한 거야. 요즘 기본적으로 신교대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는데 말이야.”
“네. 맞습니다.”
“그런데 내가 관리하는, 그것도 전투대대에서 파상풍이 나왔어. 그것도 낫질을 하다가 말이야. 충분히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엇보다 대대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는데도 그냥 조용히 덮는 분위기라면 말이야.”
그 뒷말은 하지 않아도 나종덕 비서실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자넬 탓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알아봐야 할 문제인 것은 맞는 거지?”
“네.”
“그럼 헌병 대대장 불러와.”
“헌병 대대장보다는 기무사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용히 알아보려면 말입니다.”
나종덕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기준 사단장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용히 알아보려면 기무사 쪽이 좋지. 그런데 믿을 만한 사람은 있어?”
“네. 이번에 헌병대에서 기무사로 보직이동 된 기무과장이 있습니다. 아마 그 친구에게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자네가 알아서 해.”
“네.”
나종덕 비서실장이 대답을 했다.
기무사는 말 그대로 군사에 관한 정보 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 기관을 말했다.
“하아, 요즘 프로야구 너무 재미가 없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디입니까?”
“저희는 당연히 엘쥐 아닙니까.”
“오오, 그렇죠.”
기무사 사무실에는 사복을 걸친 사람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가장 상석의 위치에 임 소령이 자리했다.
“과장님은 야구 좋아하십니까?”
“아니, 난 야구 별로야. 솔직히 난 축구 좋아하지.”
“에이, 대한민국에서는 야구죠. 축구 뭐 별거 있습니까?”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과장님.”
“왜?”
“부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날?”
“네.”
“알았어, 지금 바로 간다고 전해줘.”
“네.”
임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부대장님께서 찾으셔서…….”
임 소령이 나가자 남아 있던 인원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부대장님이 갑자기 왜 과장님을 찾으시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무슨 큰 사건이 있나?”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러는 사이 임 소령은 기무부대장 사무실에 앞에 섰다.
똑똑똑.
“들어와.”
임 소령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무부대장은 임 소령을 보고 표정을 밝게 했다.
“어서 오게 임 과장. 일단 자리에 앉지.”
“네.”
임 소령이 자리에 앉았다. 기무부대장도 자리에 앉은 후 말했다.
“커피 하겠나?”
“물 한 잔이면 됩니다.”
“알았네.”
“여기 녹차랑 물 한 잔.”
잠시 후 녹차랑 물 한 컵이 들어왔다.
“요즘 어떤가? 일에 적응을 거의 다 되었겠지?”
“네. 인수인계도 확실히 받았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그보다 절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녹차를 한 모금 마신 기무부대장이 찻잔을 내려 놨다.
“다름이 아니라, 사단장님께서 자네에게 시키신 일이 있어.”
“사단장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기무부대장이 손을 뒤로 해서 책상 위에 있는 서류 하나를 건넸다.
“자, 확인해 봐.”
“네.”
임 소령이 확인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파상풍에 관한 일입니까?”
“맞아. 그런데 파상풍에 관한 건데 뭔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 부분을 파보라고 준 것 같은데.”
“으음, 역학조사를 해보란 말씀입니까?”
“그래. 역학조사를 하다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자네를 꼭 지목해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임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곧장 사무실로 복귀를 했다.
“무슨 일로 부대장님께서 찾으셨습니까?”
“으응, 사단에서 사건이 하나 내려왔네.”
“보십시오. 내 말이 맞지 말입니다.”
“으윽, 피 같은 내 만 원.”
“빨리 주십시오.”
임 소령이 부대장실로 간 사이 남아 있던 인원들끼리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냥 찾았다.
-사단에서 사건이 하나 내려왔다.
-다른 곳에서 사건이 터졌다.
이렇게 세 가지를 두고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임 소령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사건입니까?”
“파상풍에 관해서 알아보라고 하시네.”
“파상풍? 누가 파상풍에 걸렸습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이야, 요즘 세상에 파상풍이 걸립니까?”
“걸렸으니까, 사건이 내려왔겠지. 그런데 크게 다쳤나?”
“아마도 크게 다쳤겠죠. 그렇지 않으면 무슨 파상풍에 걸리겠습니까?”
“그렇겠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끼리 추측성으로 얘기를 할 때 임 소령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기와 손발이 잘 맞는 한 사람을 지목했다.
“김 상사.”
“네.”
“자네는 나랑 어디 좀 나가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오늘도 국군수도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부대야 박중근 중사가 있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강태산 이병이었다.
“태산아, 괜찮냐?”
강태산 이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소대장님, 아직도 아픕니다. 진짜 죽겠습니다.”
“아직도 많이 아파?”
“네. 그렇습니다.”
“으음…….”
오상진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간호장교가 들어왔다. 오상진을 발견하고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어이쿠, 오늘도 오셨습니까?”
“네. 그런데 최 소위. 강 이병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까?”
최 소위 간호장교가 눈을 크게 뜨며 강태산 이병을 슬쩍 봤다. 강태산 이병이 어색하게 웃었다.
“멀쩡합니다. 밥도 잘 먹고, 어찌나 화장실도 잘 다니던지.”
“네?”
“군의관님 말씀은 언제든지 퇴원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강태산 이병을 바라봤다. 순간 강태산 이병이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저 아직 아픕니다. 낫에 베인 곳이 아직 쓰립니다.”
강태산 이병은 억지로 아픈 척을 했다. 오상진은 그런 강태산 이병을 넌지시 바라봤다. 그사이 최 소위가 바로 말했다.
“야, 엄살 피우지마. 너 아까도 병실을 발발 돌아다녔잖아. 그리고 여기 너보다 안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 그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다시 아픕니다.”
“엄살 그만 피우라고 했지.”
“…….”
최 소위 간호장교의 엄포에 강태산 이병이 시무룩해졌다. 오상진은 강태산 이병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강태산 이병이 다 나을 때까지는 퇴원시키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태산아.”
“이병 강태산.”
“너, 부대에 그렇게 복귀가 싫어?”
“보, 복귀가 싫다기보다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얼버무렸다. 오상진이 가볍게 강태산 이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긴, 너도 큰일을 겪고 했으니까. 며칠은 더 두고 볼 테니까. 대신에 치료 잘 받고, 계속 여기에 있을 순 없는 것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자식이 그렇다고 병상에서 제대하면, 나중에 나가서 군대 갔다 왔다고 했을 때 욕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