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61화
45장 까라면 까야죠(30)
“야! 거기 곡괭이로 큰 돌 좀 빼네.”
“네. 알겠습니다.”
작업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김우진 병장이 어슬렁 어슬렁 나타났다. 어느 타 부대 PX에 갔다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때 김우진 병장의 눈에 강태산 이병의 모습이 보였다.
“저 자식 뭐야?”
강태산 이병은 땅에 박힌 돌을 힘으로 빼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봐도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돌이었다.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너 지금 뭐 하냐?”
“도, 돌을 빼고 있습니다.”
“인마, 그게 힘들어?”
“아, 아닙니다.”
김우진 병장은 혹시나 싶어서 발로 돌을 툭 밀어봤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돌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어라?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이 돌을 빼는데 그렇게 힘을 줬어?”
강태산 이병은 억울한 얼굴로 빠져나온 돌을 바라봤다. 그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다. 사람 얼굴만 한 돌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힘을 쓴 거야?”
김우진 병장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에게는 정말 힘들었다. 생전 이런 돌을 움직인다거나, 땅을 파본 역사가 없었다.
“…….”
강태산 이병은 숨을 헐떡이며 바라봤다. 김우진 병장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태산아, 강태산아. 널 어쩌면 좋냐.”
강태산 이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실 김우진 병장은 강태산 이병을 갈구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좀 귀여웠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김우진 병장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차우식 병장이 어느새 다가와 무서운 얼굴로 서 있었다.
“야, 우식아.”
“잠깐만 있어 보십시오.”
차우식 병장은 김우진 병장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김우진 병장이 차우식 병장의 손을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에이, 그냥 봐줘. 이등병이잖아. 그리고 솔직히 좀 하는 짓이 귀엽잖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뒷방 늙은이 신세라고 하지만, 저런 식으로는 아니죠.”
김우진 병장의 눈이 반짝였다.
“어? 뭐야? 예전의 미친 개 나오는 거야?”
차우식 병장이 강태산 이병 옆으로 갔다.
“야, 강태산.”
“이병 강태산.”
“남자 새끼가 이거 하나 못해서 낑낑거리냐. 어서 들어!”
“네, 알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낑낑거리며 돌을 들었다. 그 모습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던 차우식 병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힘 줘! 똑바로 못해! 그것밖에 안 되나.”
차우식 병장은 강태산 이병을 일대일 마크 하며 소리쳤다. 강태산 이병은 거의 울상을 지으며 돌을 옮겼다. 강태산 이병은 힘겹게 돌을 옮긴 후 인상을 썼다.
‘아이씨. 차우식 병장은 왜 가만히 있다가 나서고 지랄이야.’
강태산 이병은 인상을 쓰며 최강철 일병에게 다가갔다.
“최 일병님.”
“왜? 힘들어?”
“저 죽겠습니다.”
강태산 이병이 앓는 소리를 했다. 최강철 일병이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파스를 꺼냈다.
“이리와, 파스 붙여줄게.”
최강철 일병은 강태산 이병이 안쓰러워서 이것저것 챙겨 주고 싶었다. 파스를 붙여주자 강태산 이병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와,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그래?”
최강철 일병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김우진 병장이 다가와 코를 킁킁 거렸다.
“뭐야? 이거 파스 냄새 아니야?”
“마, 맞습니다.”
“누가 붙였어?”
“이, 이병 강태산.”
강태산 이병이 손을 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김우진 병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등병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군대 많이 좋아졌네. 이제는 이등병이 파스까지 붙이고 말이야.”
강태산 이병은 그런 김우진 병장이 너무 얄미웠다. 오히려 파스를 붙여준 최강철 일병이 민망했다.
사실 김우진 병장은 괜히 강태산 이병을 놀리는 거였다. 최강철 일병도 그것을 알기에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강태산 이병은 달랐다. 괜히 서럽고, 서운하고 그랬다.
그런데 차우식 병장이 와서 한마디했다.
“김 뱀. 애 아파서 파스를 붙였는데 왜 그러십니까.”
순간 강태산 이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엥? 차 병장님이…… 왜?’
그러자 오히려 김우진 병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우식이. 넌 병 주고 약 주냐? 네가 옆에서 일하라고 갈구니까 이러는 거잖아.”
“그게 어떻게 제 잘못입니까? 요령 피운 이 녀석이 잘못한 거지.”
차우식 병장의 얘기를 듣고 강태산 이병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입을 삐죽삐죽거렸다. 그런 모습을 본 최강철 일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인마. 강태산, 하지 마.”
“그래도 말입니다.”
“하지 말래도. 아무리 그래도 인마. 이래 봐야, 너만 고달파져.”
그런 강태산 이병을 달래는 최강철 일병은 이제 어느 정도 군인이 되어 있었다.
차우식 병장의 모토는 FM이었다. 일할 때는 완벽하게, 또 풀어줄 때는 한없이 풀어주는 사람이었다. 김우진 병장은 김일도 병장이 없어서 자기 세상이었다.
어쨌거나 차우식 병장은 강태산 옆에 바짝 붙어서 일을 했다. 그러자 강태산 이병은 절대 농땡이를 부릴 수가 없었다.
“야, 똑바로 해라.”
“아,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그 모습을 보며 살짝 걱정을 했다.
“괜찮을까?”
“야,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
김우진 병장의 목소리에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김우진 병장이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왔다. 이해진 상병 옆으로 왔다.
“어? 김 병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한쪽에서 쉬지 말입니다.”
“야, 우식이가 저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쉬냐.”
“네?”
김우진 병장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이해진 상병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차우식 병장이 강태산 이병 옆에서 열심히 풀을 베고 있었다.
“야, 최강철.”
“일병 최강철.”
“네가 인마, 태산이 좀 열심히 가르쳤어야지.”
“하아, 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말을 안 듣습니다.”
“뭐, 인마?”
“우리 최강철이가 하는데 말을 안 들어? 저 자식 안 되겠네.”
갑자기 급 정색을 하는 김우진 병장이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나중에 잘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차 병장님 왜 저러십니까?”
김우진 병장이 힐끔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 네가 잘 모르나 본데. 사실 우식이 저런 걸 잘 못 봐. 약간 FM 기질이 있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는…….”
최강철 일병이 말을 하다가 닫았다. 김우진 병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거야 우식이만큼이나 FM 기질이 있었던 김일도 병장님이 있었잖아. 그래서 얌전히 있었던 거지.”
그 말은 김일도 병장이 있는데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김일도 병장이 없었다. 절대 농땡이 치는 꼴을 못 보는 차우식 병장이었다.
“그런데 우식이 말이야. 내가 맘에 안 드나 보다. 내가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봐. 봐봐, 대놓고 나 까잖아. 지가 나서서, 아주 무서워서 빨리 제대를 하든가 해야지.”
김우진 병장이 구시렁거렸다. 최강철 일병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김 병장님은 휴가가 없지 않습니까. 이미 다 써서.”
“이 자식이 아픈 구석을 찌르네. 에이씨! 말년 꼬장이나 계속 부려야겠다.”
김우진 병장이 투덜투덜거렸다.
최강철 일병은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어 슬쩍 차우식 병장과 강태산 이병의 모습을 봤다. 진짜 숨도 안 쉬고 일을 하는 강태산 이병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태산아. 정신 좀 차리자.’
최강철 일병은 그쪽으로의 신경을 쓰고, 다시 열심히 일했다. 그 옆에 있던 김우진 병장이 한마디 했다.
“강철아.”
“일병 최강철.”
“쉬엄쉬엄 해. 뭘 그리 열심히 하고 그래. 네가 군대에 왔지. 노가다 하러 온 것은 아니잖아.”
“네.”
그런 김우진 병장의 말에 최강철 일병이 쓰윽 웃음을 지었다.
계속해서 곡갱이와 삽으로 돌과 씨름을 하던 강태산 이병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굳은살이 잡혀 있었다.
“이씨…….”
그때 차우식 병장이 다가왔다.
“왜? 아파?”
그 소리에 강태산 이병이 황급히 자신의 손을 뒤로 감췄다.
“아닙니다.”
“봐봐.”
“괜찮습니다.”
“보자니까.”
강태산 이병이 손을 내밀었다. 손에 살짝 굳은살이 박인 정도였다. 그것을 확인한 차우식 병장이 인상을 썼다.
“야이씨! 이 정도 가지고 안 죽어.”
“네?”
“그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고. 봐봐, 나도 있지?”
차우식 병장이 자신의 손을 보여줬다.
“누구나 한 번씩 또는 매일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어. 그러니 너무 엄살 피우지 마.”
“네.”
그러면서 강태산 이병은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엄살 아닌데…….”
강태산 이병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왔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온 소대원들은 다들 지쳐 있었다.
“와, 풀만 베고 왔는데도 힘들어 죽겠네. 오후에도 또 베야 하잖아.”
구진모 상병이 투덜거렸다. 강태산 이병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땀을 많이 흘려서 찝찝했다. 최강철 일병이 다가와 말했다.
“세수라도 하러 가자.”
“네.”
강태산 이병이 자신의 관물대에서 수건을 꺼내 세면장으로 갔다. 흙이 묻은 손과 얼굴을 깨끗하게 씻은 후 점심을 먹으러 중대 식당으로 향했다.
최강철 일병은 뒷정리를 하느라 조금 늦게 식당에 도착을 했다. 서둘러 식판을 빼고 배식 대열에 합류했다. 반찬과 밥을 푸고, 국물을 받을 참이었다. 그리고 국물을 받는데 큰 국자의 국물이 그만 최강철 일병의 손에 부어졌다.
“아, 뜨거!”
큰 소리와 함께 식판이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장창!
그 소리에 식당에 있던 모든 장병들이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앞에 있던 타 중대 병장의 옷에 국물이 튀었다.
“아, 시발, 뭐야!”
“죄송합니다.”
최강철 일병이 어쩔 줄을 몰라했다. 타 중대 병장은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죄송하면 끝이야? 이거 어떻게 할거야. 엉!”
타 중대 병장의 큰 소리에 최강철 일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때 김우진 병장이 다가왔다.
“뭔데?”
순간 타 중대 병장이 김우진 병장을 보며 인상을 풀었다.
“이 새끼가, 저에게 국물을 튀었지 뭡니까.”
“국물? 어디 보자? 조금 튀었네. 이걸 가지고 그 난리를 피우냐?”
“조금이 아니지 않습니까.”
“딱 봐도 조금이네. 그걸 가지고,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국물 튀었다고 그 지랄이야. 그것도 이등병한테 말이야.”
“…….”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세탁해 줘?”
“아, 아닙니다.”
“시발, 여기서 바지 벗어. 내가 세탁해 줄게.”
“됐습니다.”
타 중대 병사는 잔뜩 인상을 구기며 서둘러 자기 소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모습을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소대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