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560화 (560/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560화

45장 까라면 까야죠(29)

춘계진지공사가 시작하는 한 주가 되었다. 행정반에는 소대장들과 부 소대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탁자 위에는 진지공사 구역이 적힌 지도가 있었다. 회의 주관은 오상진이 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오늘부터 1주일간 춘계진지공사가 내정되어 있습니다.”

“애들 또 우는 소리 하겠네.”

4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부소대장들 역시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이번 춘계진지공사도 작년과 같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특별히 우리 1중대만 구역이 13구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네. 13구역 말입니까?”

3소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4소대장과 이미선 2소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13구역이 어디입니까?”

이미선 2소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은 펼쳐진 지도의 한곳을 가리켰다.

“바로 이곳입니다.”

오상진이 짚힌 곳은 탄약고 뒤쪽으로 난 옛날 길이었다. 그곳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은 지 몇 년이나 지난 곳이었다.

“어? 그곳은 길이 없지 않습니까?”

“아뇨, 있습니다. 이미 5년 전에 이미 폐쇄된 곳이기도 합니다.”

“네? 폐쇄된 곳이요?”

“네, 원래는 지반이 좀 약해 장마철 때 자주 길이 자주 무너지고 그랬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을 아예 통제하다가 필요가 없어서 폐쇄를 시킨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시 길을 만들라고 합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사단장님께서 새로 바뀌었고, 우리 대대장님은 어떻게든 업적을 내야 하고…….”

“아, 이래저래 잘하는 우리 1중대가 걸렸다. 이것입니까?”

“…… 네, 그렇다고 봐야겠죠.”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상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곳을 제가 잠시 탐사를 다녀왔는데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풀은 많이 자라 있고, 여기저기 무너져 있습니다. 일단 중대에 남은 벽돌과 모래주머니로 구멍을 메꾸고, 작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으음…….”

“애들이 많이 힘들겠습니다.”

“네. 다 같이 힘든 거죠.”

“혹시 13구역 전부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여기 13-7구역과 13-9구역만 그렇습니다.”

“거의 중앙입니다.”

“네.”

“그럼 거기로 가려면…….”

“네. 이쪽으로 해서…… 이렇게 맞습니다.”

“그럼 우선 작업의 시작은 풀부터 제거해야겠습니다.”

“네. 아무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곳은 어느 소대가 맞죠?”

3소대장의 물음에 각 소대장들과 부 소대장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솔직히 말해서 딱 봐도 힘든 구간인데 어느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오상진이 손을 들어 하려고 하겠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 역시도 1소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여기 있는 각 소대장 전부 마찬가지일 것이다.

“으음……. 그럼 다 꺼려하는데 누구 하나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이때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나 아니면 사다리 타기로 하시죠.”

4소대장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 좋습니다. 그럼 이 두 구역을 맡을 소대는 사다리 타기로 결정하겠습니다.”

4소대장은 말을 함과 동시에 빈 종이에 사다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 거기 하나 더 그리십시오.”

“네. 그리고 거기서 대각선 하나만…….”

“네네. 이제 못 봤으니까. 중앙을 접고, 번호를 정하도록 하시죠.”

그리고 결과는 이미선 2소대장이 당첨이 되었다.

“아…….”

“이런…….”

다들 기뻐하지 못했다. 그저 이미선 2소대장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오상진도 안타까움에 이미선 2소대장을 봤다. 그런데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2소대장.”

오상진이 불렀다.

“네?”

이미선 2소대장이 바로 표정을 바꾸며 대답했다.

“왜? 하기 싫습니까?”

“아,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으음, 하긴 이제 처음인 2소대장이 그곳을 맡기에는 부담이 좀 되긴 할 겁니다. 그냥 저희 소대랑 바꾸시죠.”

“네?”

이미선 2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오상진은 그저 호의로 어려운 구역을 맡을 생각이었다. 아니, 원래라면 그곳을 맡을려고 했었다. 하지만 소대원들의 생각도 있고, 여태껏 소대원들에게 부담만 줬던 것 같아서 망설였다. 그런데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을 보니 오상진이 맡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1소대와 2소대의 구역을 바꾸겠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4소대장은 살짝 인상을 쓰며 사다리를 탔던 종이를 와락 구겼다.

“아니, 그럴 거면 진즉에 말씀을 하시지……. 괜히 사다리를 탔지 않습니까.”

“아니, 그럴 거면 제가 했죠. 갑자기 1소대장님 멋있는 척을 하시네.”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렸다. 오상진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원래 저희 1소대가 맡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 소대원들의 의견도 들을 필요도 있고 해서 망설였던 겁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바꾸는 겁니까?”

“2소대장한테 그 험한 곳을 맡기는 것이 좀 불안해서 말입니다.”

“에이, 그러면 괜히 사다리를 탔지 않습니까.”

“미안합니다. 아무튼 그곳은 저희 1소대가 맡는 것으로 하고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죠.”

오상진은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상진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2소대장이 맡은 구역 잘해주길 바랍니다.”

오상진은 얘기를 한 후 몸을 돌려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미선 2소대장의 눈꼬리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뭐야? 내게 관심이 있다는 거야? 이제 와서?’

이미선 2소대장은 갑작스러운 이런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오상진은 이것저것 챙겨서 행정반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이미선 2소대장이 불렀다.

“1소대장님.”

“네?”

“나중에 제가 밥 한 끼 사 드릴게요.”

오상진은 여기서 거절을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오상진이 대답을 하고 행정반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이미선 2소대장이 중얼거렸다.

“뭐야? 예전에는 그렇게 싫다고 그러더니. 이제 와서 왜 저래? 갑자기 나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생겼나?”

이렇듯 이미선 2소대장은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다.

오상진은 행정반을 나와 1소대로 향했다. 1소대원들은 이미 진지공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전투모와 위에서 활동복, 밑에는 전투복과 전투화를 신은 상태였다. 오상진이 나타나자 김우진 바로 일어났다.

“충성, 작업 준비 끝.”

“쉬어.”

“쉬어.”

오상진이 소대원들을 쭉 훑어본 후 말했다.

“얘들아, 우리가 맡을 구역은 13-7구역에서 9구역까지다.”

“13-7구역? 거기가 어디지?”

“우리 부대에 13구역이 있었나?”

“13구역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1소대원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김우진 병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차우식 병장이 손을 들었다.

“소대장님, 13구역이라면 탄약고 뒤쪽 옛날 길 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맞다.”

“어? 그곳은 폐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다. 그런데 오늘부터 폐쇄가 풀렸다. 그래서 우리가 그곳에 새로 길을 열어야 한다.”

“와, 거기라면 풀이 장난 아니던데 말입니다.”

“맞다. 풀도 장난 아니고, 공사가 좀 빡셀 것이다.”

“헐……. 그런 곳을 왜 저희가 맡습니까?”

“왜냐고? 우리가 1소대니까.”

“…….”

오상진의 그 한마디면 되었다. 1소대니까. 어떤 일도 1소대라면 다 해결했으니까. 그래서 1소대였다. 물론 다들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앞에 선 오상진의 격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할 수 있어. 천천히 하면 될 거야. 안 그러냐. 우리 1소대 아니냐!”

“네, 맞습니다. 우린 1소대입니다.”

김우진 병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우진 병장을 봤다.

“창고에서 낫을 최대한 구하고, 삽이라 곡괭이도 챙겨라.”

“네. 알겠습니다.”

“우성 풀부터 걷어내야 길이 보이니까. 그 작업부터 하자.”

“넵!”

“그래. 소대장도 준비하고 갈 테니까. 우진이가 애들 인솔해서 먼저 작업에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애들을 데리고 창고로 갔다. 창고 안에 있던 낫이랑 삽, 곡괭이를 챙겨서 농구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1소대원들이 대기해 있었다.

“장갑은?”

“다 챙겨서 왔습니다.”

“좋아. 이동.”

김우진 병장의 인솔하에 1소대가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며 탄약고가 보였다. 탄약고 입구는 단단히 열쇠로 잠겨 있었다. 그 뒤로 탄약고 초소가 보였다. 두 명의 경계병이 지켜보고 있었다.

“와, 저는 말입니다. 오늘따라 저 경계병들이 부럽습니다.”

구진모 상병이 김우진 병장에게 말했다. 김우진 병장이 씨익 웃었다.

“하긴 그렇겠네. 나도 잠깐 그 생각했다.”

“그렇지 말입니다. 누구는 X뺑이 까는데, 누구는 한가하게 가만히 서 있고 말입니다.”

“그래, 내가 탄약고 경계근무를 부러워하는 날이 온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 13-7구역에 도착을 했다. 푯말도 오래되었고 기중은 나무인데 썩어 있었다. 그리고 작업해야 할 곳을 쳐다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와……. 여기입니까?”

구진모 상병은 우거진 수풀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약 2미터 높이의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아래는 얇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김우진 병장도 그것을 바라보자 막막했다. 뒤에 있던 이해진 상병이 나섰다.

“자자, 뭘 그리 멍하니 서 있어. 모두 낫을 들고 풀부터 잘라내자. 잘라낸 풀은 저 아래 개울가로 던지고. 어서 서두르자.”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의 지시에 소대원들이 즉각 움직였다. 김우진 병장은 그런 이해진 상병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오오, 이해진이. 상병 말호봉이라고 이제 막 나서는 거야? 아니지, 이제 우리 소대 실세네.”

“아닙니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제대 아닙니까. 여긴 제가 할 테니까. 어디가서 쉬고 계십시오.”

“그럴까?”

“네.”

“알았어. 그럼…….”

“제가 알아서 잘 둘러댈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알았어. 역시 이해진이.”

김우진 병장은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른 소대원들도 이해진 상병이 분대장이 되면 좀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진 상병님이 이제 다음 달이면 병장인데 분대장 된다면 더 고달프지 않을까?”

“이해진 상병님은 확실히 솔선수범하시니까.”

밑의 소대원까지 이해진 상병을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최강철 일병은 원래부터 이해진 상병을 좋아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괜히 자신이 더 기분이 좋았다.

‘나도 나중에 병장이 되면 저렇게 해야지.’

최강철 일병은 이해진 상병을 보며 목표를 세웠다.

1소대원들은 낫으로 풀부터 베기 시작했다.

“낫 조심해.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주변 잘 살피고 천천히 해.”

이해진 상병이 풀을 베다가 중간중간 몸을 일으켜서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약 1시간이 흘러갔다. 앞선 조가 풀을 베고 가면 나머지 팀이 길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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