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54화
45장 까라면 까야죠(23)
“하아, 진짜……. 얘네들 왜 이러는 거야?”
주희는 잠깐 심란했지만 이내 문제집을 펼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주희야 뭐해?”
“나 공부 중.”
“엄마가 간식 가져왔는데.”
그러면서 신지애가 들어왔다. 쟁반에는 음료수랑 과일이 올려져 있었다.
“어? 엄마 언제 퇴근했어?”
“방금 들어왔지.”
“이런 거 안 가지고 와도 된다니까.”
“그래도 우리 딸 얼굴 보고 가야지.”
“엄마, 오늘 자고 갈 거야?”
“아니, 오피스텔 가서 청소 좀 해놓고 해야지. 너희 아빠 아주 그냥 청소 세탁기 돌려놓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대로더라. 세탁기에 옷 넣을 줄만 알지 돌릴 줄을 몰라.”
“아빠들은 다 그렇지.”
“웃기다, 너. 아빠가 두세 명이나 되는 거니.”
신지애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 주희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신지애가 말했다.
“딸. 요새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아니.”
“혹시 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무 일도 없는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우리 딸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나중에 어떻게 시집 보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주희가 피식 웃었다.
“예쁘긴 소희 언니가 훨씬 예쁘지.”
“아, 상진이 여자 친구?”
“응.”
“하긴 소희는 너무 예쁘더라.”
“엄마 그 얘기 들었어?”
“어떤 얘기?”
“소희 언니 한국대 다닌대.”
“어머, 진짜? 세상에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해?”
“응.”
“그래서 우리 딸 질투나?”
“아니, 나도 소희 언니처럼 될 거야.”
“그래?”
신지애는 주희를 빤히 바라봤다. 솔직히 주희도 예쁜 얼굴이지만 한소희처럼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다. 신지애가 주희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우리 딸 소희처럼 되려면 엄마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그러자 주희가 엄마 손을 탁 치며 말했다.
“아, 뭐야!”
“호호호, 공부해. 엄마 나간다.”
신지애가 나가고 주희는 책상 위에 놓인 과일을 바라봤다. 사실 주희는 제주도에 있을 때 이런 소박한 행복을 꿈꿨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래 다른 것은 생각 말자. 공부만 열심히 하자.’
주희는 엄마가 가지고 온 과일을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그 시각 오상진은 오정진과 함께 2층 테라스에 나가 있었다. 그곳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오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정진, 너 진짜 말 안 할 거야?”
“…….”
“인마, 소희 씨가 변호사까지 불렀는데, 너 자꾸 이럴 거야? 변호사에게 뭐라고 얘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형. 내가 밀친 거 맞아. 그러니까, 피해보상 할 거면 내가 할게.”
“네가? 네가 무슨 수로? 너 돈 많아?”
“형이 좀 내줘.”
“뭐?”
“나중에 내가 갚을 테니까. 형이 좀 내줘.”
“와, 이런 미친놈이 다 있네. 너 지금 형 믿고 사고 친 거야?”
“왜? 그러면 좀 안 돼?”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래도 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싸우려면 남자랑 싸우지, 여자랑 싸우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
“형. 걔, 보통 여자 아니야. 여자 일진이야.”
“일진이라고?”
“응!”
“그런데 왜 걔랑 싸웠어. 설마 너에게 돈 뺏디?”
“아이씨, 진짜……. 나 여자에게 돈 안 뺏기거든. 나도 남자야.”
“오오오, 오정진! 너도 남자야? 합기도 좀 하시나 봐요.”
“왜 그래. 합기도 관장님이 함부로 힘쓰지 말라고 했거든.”
“그런데 넌 왜 힘썼어. 너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
오정진이 고개를 돌려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으음.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거네.’
오상진이 다시 오정진을 보며 물었다.
“너 계속 말 안 할 거야?”
“응, 안 해.”
“하아, 알았다. 이번 일은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줄게.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러면 안 된다.”
“알았어. 나도 안 할 거야. 반성하고 있어.”
“그래, 알았어. 들어가.”
오정진이 몸을 돌려 테라스를 나갔다. 오상진은 테라스에 서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으음, 정진이가 왜 그랬을까?”
그때 오상진의 머릿속에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설마 그 친구를 위해서?’
오상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여기 어딘가에 저장을 해놨을 텐데…….”
오상진이 중얼거리며 전화번호부를 확인했다.
“찾았다.”
전화번호부에 검색해서 찾은 인물은 바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오정진의 친구, 정수현이었다.
“설마 여자 친구 때문인가?”
오상진이 가만히 휴대폰을 바라봤다.
“전화를 할까?”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먼저 문자를 남겼다.
-수현 학생. 저 정진이 형인데. 잠깐 통화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아, 정진이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뭔데요?
-으음, 아니다. 통화로 하기는 좀 그렇고,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요? 아파트 앞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알겠어요.
문자를 마친 오상진이 곧바로 테라스를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에 엘리베이터에서 정수현을 만났다.
“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
오상진이 인사를 했다. 정수현이 수줍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밀폐된 공간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을 하고 두 사람은 내렸다.
“요 앞 벤치로 갈까?”
“네.”
“참, 음료수 마실래?”
“아,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잠깐만 있어.”
오상진은 아파트 앞 상가로 가서 음료수 캔 두 개를 사서 가지고 왔다. 그것을 건넨 후 오상진이 물었다.
“우리 정진이랑은 어때? 잘 지내지?”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이네. 앞으로도 잘 지내줘.”
“그럼요.”
정수현은 음료수를 두 손에 쥐고 고개를 숙였다. 오상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오늘 정진이 교무실에 다녀온 거 알고 있어?”
“네. 알고 있어요.”
“혹시 정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어어, 그게……. 정진이가 아무 말도 안 하나요?”
정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 말도 안 하네.”
“으음, 그럼 저도 잘 몰라요.”
정수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저 말뜻은 알고는 있지만 말 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뜻이었다.
“저기, 수현 학생. 그것이 아니라, 정진이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 나도 나름 대처를 하니까. 사실 상대 부모가 변호사야. 그래서 법적으로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내가 뭘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아냐. 그렇지?”
오상진은 천천히 말을 하며 정수현을 이해시켰다. 정수현이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만약에 잘못되면 정진이가 처벌을 받나요?”
물론 한소희가 내세운 변호사에 의해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오상진은 진실을 알아야 했다.
“잘못하면 정진이가 처벌을 받을 것 같아. 이번 일에 대해서 말이야. 심하면 학교를 옮겨야 될지도…….”
“어? 그건 안 되는데!”
“그렇지. 안 되는 거지. 나도 정진이 때문에 이사하고 싶지도 않아. 여기 사람들도 좋고, 처음으로 집을 샀는데 애착도 많이 들고.”
오상진은 정수현을 보며 얘기를 했다. 정수현은 자꾸 뭔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면 안 될 텐데…….”
“괜찮아. 수현 학생이 말했다고 안 할 테니까. 나만 알고 있을게.”
“그, 그럼요.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
“알았어요.”
정수현이 다짐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실은요. 주희 때문에…….”
“주희?”
오상진은 갑작스러운 얘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수현은 자신이 아는 것을 오상진에게 다 설명을 했다. 정수현의 얘기를 들은 오상진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주희와 주혁이를 불러놓고, 오빠, 형으로서 너무 무심했던 것.
두 번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오정진과 주희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지, 지금은 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오상진은 살짝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수현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주희가 지금까지 괴롭힘을 많이 당했단 이 말이지?”
“예, 사실 저도 같이 학원 다닌 동생이 있어서 물어봤는데요. 주희가 예쁘고, 공부도 잘하니까, 반에서 시샘이 많은 것 같아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박지혜가 주도해서 괴롭힌 것은 아닌 거네?”
“지혜는 제가 알기론 그냥 일진이에요. 주희 괴롭히는 애들은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혹시 이름 알 수 있니?”
“잠시만요.”
정수현은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한참을 뒤지던 그때 표정이 밝아졌다.
“아, 여기 있네요. 태희네요. 김태희.”
“김태희? 그러니까, 같은 반의 태희가 주희를 괴롭힌다는 거지?”
“예! 저는 그렇게 들었어요.”
“그래, 알았다. 고마워.”
“아니에요. 그보다 정진이……, 이제 학교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아도 돼요?”
정수현이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지. 아무튼 고마워, 그리고 우리 정진이랑 계속 친한 사이로 있어 줘.”
“네.”
정수현이 환한 얼굴로 몸을 돌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은 홀로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상진도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애들이 있었다.
심지어 주희는 제주도에서 전학을 오지 않았나. 아무래도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하아, 아무래도 타지에서 온 학생이 1등까지 해버리니, 시샘을 받았었나 보네.”
오상진이 씁쓸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한소희의 전화가 왔다.
“네, 소희 씨.”
-상진 씨 뭐해요?
“저, 잠깐 밖에 나와 있어요.”
-그런데 도련님이 뭐라고 해요?
“아뇨, 정진이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정진이 친구 중에 정수현이라고 있어요.”
-수현이?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어멋! 도련님 여자 친구도 있어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같은 반이라고 해서 한번 불러서 물어봤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들었어요.”
-뭔데요?
오상진은 별생각 없이 정수현이 한 말을 그대로 한소희에게 전했다. 한소희도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바로 공감을 해줬다.
-나, 진짜 완전히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왜요?”
-아, 저도 한번 지방으로 전학 간 적이 있거든요. 부산으로요.
“그랬어요?”
-네, 그때 저도 비슷한 일 당해봤어요. 와, 아직도 그런 애들이 있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도움을 청해야 할까요?”
-저라고 안 그랬겠어요? 그래 봐야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어요. 여자애들이 한번 괴롭히면 얼마나 뒤에서 집요하게 괴롭히는지 알아요? 장난 아니에요. 오히려 선생님께 알리는 그런 이미지로 찍혀 버리면 학교에서 밥 먹을 사람도 없어질 거예요.
“그럼 소희 씨는 어떻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