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52화
45장 까라면 까야죠(21)
지혜 아빠는 곧바로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중년의 변호사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 혹시 말이야. 피해자 쪽 부모가 자네였나?”
“어, 이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선배님 정도 되시는 분이 어떻게 여길…….”
지혜 아빠가 눈을 끔뻑거리며 당황했다. 사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법무법인 ‘김앤박’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는데, 지혜 아빠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쪽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뭐, 뭐지?’
지혜 아빠는 놀라면서 한소희를 바라봤다.
‘저 여자가 뭔데…….’
그때 김앤박에서 나온 최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아, 자네 모르고 있었어? 강남에 있는 성심 한방병원 알지?”
“무, 물론이죠. 저도 자주 가는 편인데요.”
“거기 원장님 따님!”
“네에?!”
지혜 아빠가 아주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는 부끄러운지 최 변호사에게 말했다.
“에이, 최 변호사님은 왜 그런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그러자 최 변호사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가렸다.
“어? 말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제가 눈치가 없어서 말입니다.”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이렇게라도 최 변호사가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최 변호사는 주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누구를 변호하면 되는 겁니까?”
한소희가 바로 오정진을 가리켰다.
“여기 이쪽요. 저희 도련님!”
“도련님이요? 결혼하셨습니까?”
“아뇨, 할 거예요. 그러니 도련님 맞죠!”
“아, 그럼요. 그렇죠.”
최 변호사가 바로 말했다. 그리고 오정진 앞으로 가서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김앤장에서 나온 최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변호는 제가 맡을 것입니다. 모든 질문은 저를 통해서 해주시고, 그 외는 일체 답변하시면 안 됩니다.”
최 변호사는 바로 변호 모드로 들어갔다. 당황하는 쪽은 지혜 아빠였다. 그리고 최 변호사는 곧바로 안효주 선생과 이학군 선생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자, 받으세요.”
“아, 네에…….”
“감사…… 합니다.”
두 사람 다 당황했다.
“자! 그럼 이제 이 사건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 변호사가 슬쩍 지혜 아빠를 봤다.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이 ‘허허’ 웃기만 했다. 안효주 선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생주임 선생님 어떻게 해요?”
“저,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보다 상진이 많이 컸네.”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이 바로 오상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지혜 아빠가 난감한 얼굴로 최 변호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선배님.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그리고 애들 싸움에 우리끼리 나선 것이 웃기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좋게좋게 풀자고.”
“네네, 선배님!”
“그래, 그래! 내가 조만간에 연락함세.”
“네. 선배님.”
지혜 아빠는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교무실을 벗어나려는데 박지혜가 말했다.
“아빠,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해.”
지혜 엄마도 말했다.
“당신 지금 이게 뭐예요?”
그러자 지혜 아빠가 재촉하듯 말했다.
“가, 가! 일단 가자.”
지혜 아빠가 가족들의 등을 떠밀며 교무실을 벗어났다. 최 변호사가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한소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최 변호사님 감사해요. 바쁘신데 이렇게 와 주시고.”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리되셨습니까?”
“저희도 연락을 받고 바로 와서요. 잘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절 부를 생각을 하셨어요?”
“아, 저기……. 남편 될 사람이 군인이라서요.”
한소희는 살짝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현역 군인입니까?”
“직업 군인이에요. 그런데 군인이라도 이것저것 제약이 좀 많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나서서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서요.”
“네. 잘하셨어요. 이러라고 변호사가 있는 거죠. 그보다 아버님은 잘 계시죠?”
“그럼요. 종종 최 변호사님 얘기를 하세요. 언제 진료 한번 받으러 오세요.”
“아이고, 그래야죠.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네.”
최 변호사가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한소희는 최 변호사와 인사를 하고 밖을 봤다. 그곳에 오정진이 가만히 서 있었다.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오정진에게 갔다.
“도련님 괜찮아요?”
“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죠?”
“네.”
오정진은 단답형으로 대답을 했다. 한소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물었다.
“그런데요, 도련님. 왜 그러셨어요?”
“…….”
오정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하기 싫으시구나.”
“그게…….”
오정진이 입을 열다가 난감한지 다시 닫았다.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괜찮나요.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전에 제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한소희의 물음에 오정진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혹시나 나쁜 맘을 먹고 그런 것은 아니죠?”
“네.”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죠?”
“……네.”
“그럼 됐어요. 저는 도련님을 믿으니까요.”
오상진은 한소희를 똑바로 바라봤다. 한소희가 생긋 웃었다. 순간 오정진의 얼굴에 붉은빛이 맴돌았다. 한소희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그런데 형은 어디 있어요?”
“아, 조금 전에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신다고…….”
“담임선생님하고요?”
한소희는 담임선생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소희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니요. 학생주임 선생님요.”
“학생주임 선생님이요?”
“네.”
오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희는 고개를 돌려 상담실 쪽으로 시선이 갔다.
한편, 오상진과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은 상담실에 잠깐 앉았다.
“아이고, 상진아. 이렇게 보니까, 못 알아보겠다.”
“선생님 잘 계셨죠?”
“잘 있다마다. 어디 보자, 졸업한 지도 거의 5년이 넘었구나. 임관했니?”
“네네, 지금 작년 말에 중위 달았습니다.”
“중위? 어이구야. 빨리 달았네. 그보다 월급은 많이 주니?”
“에이, 군인 월급이 뻔하죠.”
“그보다 학교에 한 번씩 찾아오고 그러지. 동생들도 학교 다니는데.”
“죄송합니다. 찾아오려고 했는데 제가 군인이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근무지 이탈이 쉽지 않습니다.”
오상진이 핑계를 댔다 이학군 선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왔어?”
“예?”
“자식이, 올 수 있으면 오면서.”
“죄송합니다. 대신에 스승의 날 때 꼭 찾아뵙겠습니다.”
“인마, 누가 그날 오래? 그냥 생각날 때 한 번씩 들르라는 거지. 이렇듯 번듯한 제자 하나 키웠다고 자랑 좀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너 육사 보내고 나서 교감선생님에게 엄청 혼났어. 그거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오상진이 웃었다. 이학군 선생은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모두 쏟아냈다.
“인마, 너는 한국대 법대를 가야 한다면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너 거기 보내고 한동안 나 1학년만 맡았지 않냐.”
“좋으셨겠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이학군 선생이 씨익 웃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제가 왜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가 이학군 선생이 다시 물었다.
“어머님은 잘 계시고?”
“네.”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어머니 국밥 장사하셔?”
“모아놓은 돈으로 작은 가게 하나 차렸습니다.”
“그래? 어디서 하니?”
“네에. 저희 동네 아시죠? 거기 사거리에 보면 ‘순애국밥’이라고 있습니다.”
순간 이학군 선생이 박수를 쳤다.
“아, 거기! 안 그래도 새로 생겼다고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가게였어? 자주 가서 팔아드려야겠네.”
“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이학군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자식, 넉살도 좋아졌어.”
“그런데 선생님 정진이가 학교 다니는 데 문제가 있습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진이? 아니! 정진이 너보다 공부 잘해. 그리고 넌 가끔 전교 1등을 놓쳤지만 정진이는 여태껏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에이, 아직 멀었죠.”
“멀었긴, 정진이 이대로 계속 공부하면 한국대 법대는 떼 놓은 당상이더라. 아니지, 딱 놓고 맘에 드는 곳에 골라서 갈 수 있지. 그런데 문제는 왜 정진이가 지혜를 저리했을까?”
“저기 선생님.”
“왜?”
“지혜라는 친구는 어때요?”
“지혜?”
지혜라는 말에 이학군 선생은 인상부터 썼다.
“말도 마! 사실 선생으로서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그 친구 꼴통이야. 그 가스나 몰래 담배 피우다가 나에게 걸린 것만 여러 번이야. 게다가 다른 여학생들도 괴롭히고 그러나 봐. 아마 이번 일도 다른 여학생 괴롭히는 것을 본 정진이가 나섰을 수도 있어.”
“그런 겁니까?”
“모르지. 정진이가 말을 안 하는데…….”
“네…….”
오상진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학생이 담배 피워도 크게 터치를 안 하나 봅니다.”
“말도 마라. 요즘이 옛날 같지가 않다. 너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선생님들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는 거야. 참 안된 일이지.”
이학군 선생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지혜 엄마 봤지? 요즘 시대가 그렇다. 함부로 애들 훈육 줬다가 학부모들이 난리가 나요.”
“말로 잘 타일러 보지 그랬어요.”
“어이구, 말도 잘 되면 몽둥이가 왜 필요하겠냐.”
이학군 선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자주 자주 놀러와. 얼굴 좀 보자.”
“네, 그렇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정진에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겠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담실을 나가려다가 오상진이 멈췄다.
“아 참, 선생님. 1학년에 새로 저희 사촌 동생이 들어왔거든요. 혹시 아세요?”
“이름이 뭐야?”
“박주희라고…….”
“박주희? 주희?”
이학군 선생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박수를 쳤다.
“아, 박주희! 공부 잘하는 여학생. 이번에 제주도에서 전학 왔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아, 주희가 사촌 동생이었어?”
“네. 이모 딸이에요.”
“어쩐지. 너희 집 유전자는 대단해. 어떻게 다들 공부를 그리 잘해.”
“그냥 본인들이 열심히 한 거죠.”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학군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희 학생도 잘 보살펴 줄게.”
“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상진아. 잘 들어가라.”
“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밖에서 한소희와 오정진이 보였다. 한소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오랜만에 담임선생님 좀 만났어요.”
“아, 상진 씨 예전 담임선생님요?”
“네. 저 고3 때 담임선생님요.”
“그렇구나. 잘 만났어요?”
“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오정진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야, 오정진.”
“…….”
오정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자식이…… 너 대답 안 할 거야?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