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51화
45장 까라면 까야죠(20)
“흐음……. 묵비권인가?”
그러자 지혜 엄마가 한마디 툭 했다.
“무슨 묵비권이에요.”
안효주가 다시 다가와 말했다.
“어머니 진정하시고요. 일단 이쪽으로 와서 좀 앉으세요.”
안효주가 자리를 권하자 지혜 엄마가 앉았다. 그 뒤로 지혜 아빠랑 박지혜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던 박지혜가 깁스한 팔을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
“아아아아…….”
바로 지혜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멋, 지혜야. 괜찮니?”
지혜 아빠가 바로 말했다.
“어이구, 엄살은…….”
그 소리에 지혜 엄마가 아빠를 노려봤다.
“무슨 엄살이에요. 딱 봐도 많이 아파 보이는데.”
그러면서 오정진을 노려봤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많이 낡아 보였다. 그렇게 귀티나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국밥집을 한다고 하니, 없이 사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싼티가 줄줄 흘렀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혜 엄마의 시선이 발 쪽으로 향했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는 왼쪽 엄지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지혜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쯧쯧쯧, 얼마나 못 살면 양말을…….’
지혜 엄마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며 오상진과 한소희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오상진의 인사에 교무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지혜 엄마도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봤다. 그곳에 스포츠형 머리를 한 덩치 큰 남자 뒤로 예쁘게 생긴 여자가 같이 들어왔다.
“누구지?”
지혜 엄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정진은 오상진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오상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오정진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앞에 섰다.
담임선생인 안효주가 당황하며 물었다.
“저기 혹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선생님. 제가 정진이 형 됩니다.”
“정진이 형님 되시는구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안효주가 놀라며 곧바로 자리를 권했다. 오상진과 한소희가 자리에 앉았다. 안효주가 오상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많이 익는데…….”
“예, 선생님. 저 여기 학교 출신입니다. 졸업할 때 계셨습니다.”
“그렇지? 어쩐지 낯이 익다고 했어. 그럼 그때 공부 잘했던 상진이?”
“공부 잘하기는요.”
“아니, 왜, 다들 그때 한국대 간다고 난리였는데……. 육사 가서 교감 선생님이 많이 아쉬워하셨는데.”
오상진은 그 말을 듣고, 그저 씨익 웃고 말았다. 반면, 오상진을 무시하고 있던 지혜 엄마와 아빠가 눈이 커졌다. 특히 지혜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육사? 자기야 육사가 어디에요?”
“무식한 여편네야. 육사도 몰라? 육군사관학교잖아.”
“에이, 육군사관학교? 난 또 뭐라고.”
그러자 지혜 아빠가 나직이 펄쩍 뛰었다.
“쉿!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 육사가 한국대보다 어려운 데야.”
“뭐? 진짜?”
지혜 엄마가 약간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 지혜 아빠는 놀란 눈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으음, 육사를 들어갔으면 지금 현직 장교인가?’
지혜 아빠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형이 공부를 잘했는데, 동생은 왜 이 모양이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뿌듯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우와, 우리 상진 씨 공부 잘했구나. 전교 1등 했어요?”
한소희는 천진난만하게 얘기를 꺼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아니에요. 저보다는 우리 정진이가 공부를 더 잘해요.”
안효주가 바로 끼어들며 한소희에게 말했다.
“저는 전교 1등 했던 거로 기억해요.”
한소희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오, 전교 1등! 상진 씨 공부 정말 잘했나 보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요.”
오상진이 살짝 부끄러워했다. 그러자 지혜네 식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혜 엄마는 곧바로 오정진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쟤가 공부를 잘한다고?’
그때 지혜 엄마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어? 가만! 오정진, 오정진, 오정진……. 그 오정진?”
옆에 있던 지혜 아빠가 물었다.
“왜? 당신 아는 애야?”
“당신 기억 안나요? 만날 학교에서 전교 1등 한다는…….”
그제야 지혜 아빠도 기억이 났다.
“아, 맞다. 오정진! 그 녀석이 얘라고?”
지혜 아빠와 엄마는 살짝 당황하며 오정진을 봤다. 오정진은 멋쩍게 웃으며 안경테를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박지혜가 입을 열었다.
“엄마! 공부 잘하는 것이 뭐가 중요해. 지금 내가 다쳤다니까.”
박지혜가 깁스를 한 팔을 들어 올렸다.
“어어, 미안하다.”
지혜 엄마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오상진이 오정진을 보며 물었다.
“설마 너 저 친구를 저렇게 한 거야?”
“……어.”
오상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를…….”
“…….”
오정진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오상진의 시선이 안효주 선생에게 향했다.
“선생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도 그렇지 않아도 물어봤는데, 정진이가 대답을 하지 않네요.”
그때 박지혜가 끼어들었다.
“선생님 제가 말했잖아요. 저희들끼리 놀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절 밀쳤다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오상진은 오정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행동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오상진의 시선이 다시 오정진에게 향했다.
“정진아, 정말 그랬어?”
“…….”
오정진은 또 입을 다물었다. 오상진을 비롯해, 안효주 선생도 답답해했다.
“뭔가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는데…….”
듣고 있던 지혜 엄마가 나섰다.
“아무튼 우리 지혜가 다친 것은 맞네요.”
“그러니까…….”
안효주 선생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지혜 엄마는 다시 오정진을 봤다.
“얘, 얘! 말해봐. 정말 네가 한 것이 맞지?”
“네.”
“그럼 네가 피해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네.”
지혜 엄마가 고개를 돌려 오상진과 안효주 선생을 봤다.
“그럼 얘기가 끝난 거네요.”
지혜 엄마 입장에서는 갑자기 오정진이 공부 잘하는 애로 분위기라 흘러가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서 바로 말을 바꿨다. 무엇보다 지혜 아빠가 변호사였다.
“그럼 이런 경우는 학교에서 어떤 처벌을 하나요?”
지혜 엄마가 강하게 나갔다. 안효주 선생이 살짝 당황했다.
“그건 학교폭력위원회에서 회의를 통해 결정을 내립니다.”
“그럼 쟤 퇴학이에요?”
그러자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오정진도 마찬가지였다. 안효주 선생이 살짝 땀을 흘리며 말했다.
“어머니, 퇴학까지는 아니고요.”
“그럼 뭐예요? 우리 애가 이렇게 다쳤는데요. 그냥 경고만 주고 말 거예요?”
“그것은 회의를 해봐야…….”
안효주 선생이 다시 말을 했다. 하지만 지혜 엄마는 이미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오정진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좋게 넘어갈 생각인 것 같았다.
“아무리 얘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그렇지. 공부를 떠나서 인성이 제대로 박혀야 할 것 아니에요. 안 그래요, 선생님!”
안효주 선생은 할 말이 없었다. 오정진은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학생주임이 나타났다.
“아이고, 지혜 어머니.”
지혜 엄마가 고개를 돌려 학생주임을 봤다.
“그런데 누구세요?”
“아, 저는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입니다. 가만히 듣다가 나서서 죄송한데요. 우리 정진이 인성도 바른 학생입니다.”
“허! 저희 지혜는 인성이 형편없나요?”
지혜 엄마의 물음에 학생주임인 이학군 선생이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어……, 지혜도 착하죠. 예쁘고, 그런데 이 사건 하나 가지고 한 학생의 인생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누구 편이세요?”
“여기서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지혜가 다쳤잖아요.”
지혜 엄마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 어머니. 이 소리까지는 안 하려고 그랬는데요. 지혜가 요새 불량한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그럽니다. 안 그래도 몇 번 제가 주의를 줬습…….”
지혜 엄마가 바로 말을 잘랐다.
“어멋! 어처구니가 없어. 선생님이 보셨어요?”
“네. 제가 몇 번 보고 주의를 줬는데. 그때마다 제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마 그런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나, 쉽네요.”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이 그래도 조금 돌려서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지혜 아빠가 등장했다.
“학생주임 선생님.”
“네?”
“듣고 보니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우리 얘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해서 이런 일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제 말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이 당황했다. 지혜 아빠는 바로 걸고넘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친 사람이 뻔히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안 되죠.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도 가만히 안 있겠습니다. 솔직히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고, 처음 실수한 것 같고. 그래서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식의 대우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지혜 아빠의 언성이 올라가며 일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였다. 학생주임 이학군 선생은 상황을 수습하려다가 일이 커지자. 정말 많이 당황했다.
“아버님. 진정하시고…….”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다. 우리 딸이, 다친 딸이 잘못했다고 몰아가는데.”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 됐습니다. 이거 그냥 안 넘어갑니다. 정식으로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혜 아빠가 강경하게 나갔다. 안효주 선생이 바로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 진정하세요.”
“…….”
지혜 아빠는 되레 큰소리를 치며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동생을 잘못 가르친 제 잘못입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혜 엄마가 바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고소한다니까, 그건 무서운가 봐요? 이제 와서 사과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 웃기다니까.”
지혜 엄마가 비아냥거렸다. 한소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한소희가 인상을 쓰며 교무실 문 쪽을 봤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중년의 남성이 정장을 입고,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한소희의 어두웠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아, 여기요.”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 향했다. 그 남자는 한소희를 발견하고 곧바로 인사를 했다.
“소희 양, 안녕하십니까.”
“네. 좀 늦었네요.”
“급히 온다고 왔습니다.”
그 남자는 정중하게 한소희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혜 아빠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밝아지며 말했다.
“어? 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중년의 변호사는 한소희와 인사를 나누다가 지혜 아빠를 봤다.
“어? 박 변이 여긴 웬일이야?”
“어, 어,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