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50화
45장 까라면 까야죠(19)
오상진이 당황하며 한소희를 말렸다.
“소희 씨, 참아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요.”
“그래도 백화점 종업원이 저러면 안 되죠.”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않아요.”
오상진이 계속해서 말리자, 한소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상진 씨가 참으라면…….”
“그래요. 잘했어요.”
오상진이 한소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한소희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번졌다.
“왜, 그래요. 부끄럽게.”
“왜요. 예쁘기만 한데.”
“참, 상진 씨도…….”
그러다가 입고 있는 셔츠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셔츠는 아닌 것 같아요. 벗어요.”
“아니에요. 이 셔츠 꼭 사요. 무조건 살 겁니다.”
오상진이 다시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나와 계산대로 갔다.
“이거 계산해 주세요.”
“다 해서 44만 8천 원입니다.”
종업원이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가방을 열어 지갑을 꺼냈다. 그곳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아, 네에…….”
종업원이 카드를 받고, 이름을 확인했다.
‘응? 한소희? 자기 카드인가?’
종업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계산을 했다.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네. 일시불로 하겠습니다.”
종업원이 말을 하고는 카드로 계산을 했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희 씨, 잘 입을게요.”
“뭘요.”
“가요.”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짱을 쏙 꼈다. 그 모습을 보는 남자 종업원들이 뭔가 패배감이 느껴졌다.
“뭐지, 저 녀석……. 여자가 꽃뱀이 아닌가?”
그때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남자 종업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카드 봤지? 블랙카드! 봤어? 봤냐고.”
“어엉. 봤어.”
“와, 블랙카드를 가지고 다니네.”
“저 남자 개 부럽네.”
“저 남자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분명해!”
남자 종업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은 걸어가다가 슬쩍 한소희를 봤다.
“소희 씨, 아까 종업원들이 하는 얘기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뭘 신경 써요. 내 남친이 이렇게 잘났는데. 그리고 하도 들어서 이제 식상해요.”
“아, 그래요?”
“네. 그래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 쇼핑도 했고. 이제 뭐할까요?”
한소희가 시계를 바라봤다.
“으음, 영화 시간까지 아직 좀 남았네요. 커피숍 갈래요?”
한소희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두 사람이 커피숍으로 향하는데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소희 씨, 잠깐만요.”
오상진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지금 이 순간은 모르는 번호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상진 씨, 왜요?”
“모르는 번호로 자꾸 전화가 오네요.”
“한번 받아봐요. 부대에서 오는 전화 아니에요?”
“부대 번호는 아닌데…….”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폰을 받았다.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오상진 씨 휴대폰 입니까?
“네, 맞습니다만…….”
-안녕하세요. 여기 동강고등학교인데요. 저, 오정진 학생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네? 정진이요?”
김필주 선생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향했다.
“아후…….”
그사이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김필주 선생이 한소리 했다.
“이 녀석들아 뛰지 마라, 뛰지 마. 왜 이렇게 소란스럽게 그래.”
김필주 선생의 한마디에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렸다.
“야, 수학이다. 수학.”
그 소리를 들은 김필주 선생이 인상을 썼다.
‘저놈들이 선생님을 보고 수학이 뭐야. 수학이. 요즘 것들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 쯧쯧쯧.’
김필주 선생이 혀를 차며 걸어갔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바로 오정진이었다. 김필주 선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이구, 정진아.”
오정진이 고개를 돌려 김필주 선생을 봤다.
“안녕하세요.”
“교무실에는 무슨 일이야.”
“어, 그게…….”
오정진이 김필주 선생의 시선을 피했다. 김필주 선생이 찬찬히 오정진을 보며 말했다.
“어디 보자, 우리 정진이가 뭘 몰라서 왔을 리는 없고. 필요한 거라도 있어?”
김필주 선생의 물음에 오정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없습니다.”
“아, 잠깐만 있어 봐. 내 책상에 수학문제집이 많거든. 그거라도 줄 테니까. 가지고 가서 풀어라.”
“…….”
김필주 선생은 오정진의 집이 가난한 줄 알고 있었다. 물론 가난했‘었’다. 현재는 아니지만…….
“선생님 안 그러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 풀어 인마. 어차피 이런 걸 줘도 풀 애들도 없어. 물론 정진이 너는 풀겠지만. 어쨌든 선생님이 너 예뻐서 주는 거니까. 그냥 ‘네’ 하고 받는 거야.”
김필주 선생이 피식 웃었다.
“네, 선생님.”
“참 정진아.”
“네.”
“지난번 쪽지 시험 때 4번 문제 틀렸더라.”
“아, 네에. 그거 계산하다가 기호를 잘못 봐서…….”
오정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김필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럴 것 같더라. 우리 정진이가 실수를 다 하고……. 그래 쪽지 시험에서는 실수를 해도 되는데 수능 때는 이런 실수 하면 안 돼.”
“네. 선생님.”
“그래, 우리 학교에서 수능 만점자 나와 보자!”
김필주 선생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오정진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김필주 선생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 옆에 있던 국어 선생이 조용히 물었다.
“정진이가 수학 문제를 틀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매번 잘 풀다가 지난번에 한 번 틀렸습니다. 이번 초에 냈던 쪽지 시험 말이에요.”
“그래요? 그러고 보면 정진이도 사람이긴 합니다. 하하하.”
국어 선생이 웃었다. 사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오정진이 수학의 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웬만한 수학은 틀리지 않았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모의고사에서도 수학은 항상 만점이 나왔다.
오죽했으면 선생님들이 물어봤다. 어느 문제가 가장 어려웠는지 말이다. 또는 이 문제는 어떻게 풀었는지 물어보면 오정진이 말을 해줬다.
“이건 어느 참고서에서 비슷한 문제를 푼 기억이 있어서요.”
이렇듯 답변을 주니 어느 선생님이든 오정진을 좋아했다.
“그런데 정진이가 왜 저기에 앉아 있어요? 담임 만나러 왔대요?”
김필주 선생의 물음에 국어 선생이 바로 말했다.
“아, 사고를 쳤대요.”
“누, 누가요? 정진이가? 무슨 사고를 쳤대요?”
“아니, 여학생하고 트러블이 있엇나 봐요.”
“여학생하고요? 누가 좋아한대요?”
김필주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국어 선생이 교무실 입구를 보며 말했다.
“어? 저기 오네요.”
김필주 선생이 고개를 돌리자, 팔에 깁스를 한 여학생 한 명과 그 부모님과 셋이 들어왔다.
“어? 저 녀석 누구지?”
“걔 있잖아요. 7반에 박지혜.”
“박지혜? 아, 그 꼴통!”
김필주 선생의 목소리가 살짝 컸는지 지나가던 박지혜의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 순간 박지혜가 김필주 선생을 노려봤다. 그러자 김필주 선생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튼 저놈의 가스나, 귀는 밝아요. 그런데 옆에 저 두 사람은 누구랍니까?”
“딱 보니 부모 아니겠어요.”
김필주 선생은 박지혜 부모를 바라보다가 박지혜의 깁스한 팔을 봤다.
“어? 그럼 정진이가 저렇게 만들었다고?”
김필주 선생이 놀랐다. 국어 선생이 입을 열었다.
“저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나 봐요.”
박지혜는 교무실에 와서 인상을 ‘팍’ 썼다.
“아, 진짜 짜증이야.”
옆에 있던 엄마가 한소리 했다.
“또또, 이놈의 기집애가 틈만 나면 욕이야.”
“선생님들이 수군거리잖아.”
“네가 공부를 잘했어 봐. 이런 일이 생기겠어? 엄마도 여기 오는데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아이씨, 진짜……. 아빠!”
박지혜 아빠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어, 그래. 우리 딸.”
“엄마가…….”
그러자 아빠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아니, 당신은 왜 애를 기를 죽이고 그래.”
“말도 말아요. 뭔 짓을 했기에 팔이 삐고 그래요. 어휴, 창피해. 어휴, 창피해.”
박지혜가 버럭 했다.
“아, 진짜! 엄마 때문에 더 창피해, 아빠.”
“어허, 진짜 학교에서 그렇게 해야 해?”
“알았어요.”
아빠의 한마디에 엄마가 고개를 홱 돌리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씩씩거렸다.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며 담임선생인 안효주가 나타났다. 엄마는 곧바로 표정을 환하게 하며 인사를 했다.
“어머나, 담임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지혜 어머니 오셨어요.”
“네네. 그런데……. 혹시 얜가요?”
엄마가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아 있는 오정진을 가리켰다. 다부진 체격에 안경을 쓰고, 순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정진이 눈을 추켜 뜨며 자신을 바라보자 기분이 나빴다.
“뭐야, 눈을 그따위로…….”
엄마가 오정진의 이마를 손으로 툭 쳤다.
“야! 네가 내 딸 이렇게 만들었니?”
다시 툭 치며 말했다.
“말해봐. 네가 내 딸 이렇게 만들었냐고.”
그러자 안효주가 급히 말했다.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머, 어머.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너무 흥분했죠.”
금세 안색을 바꾸는 지혜 엄마였다. 그러곤 다시 오정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런데 너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니.”
오정진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오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는 했다.
“안녕하세요.”
그 모습을 보던 박지혜가 ‘칫’ 하며 코웃음을 쳤다. 지혜 엄마가 오정진을 보며 팔짱을 꼈다.
“그런데 너 부모님은 뭐 하시니?”
그러자 박지혜가 끼어들었다.
“엄마! 쟤네 집 국밥 하잖아.”
“어머, 국밥? 웬일이니. 국밥집?”
“어엉!”
지혜 아빠가 바로 끼어들었다.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 미안.”
지혜 아빠가 오정진이 아니라 담임선생인 안효주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집사람이 아이 때문에 충격을 받아가지고.”
안효주가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면서 안효주는 오정진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오정진은 동강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다. 그런데 ‘아버님 사과를 하시려면 정진이에게 하셔야죠’ 이렇게 말을 하지 못했다.
지혜 아빠가 품속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지혜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 명함입니다.”
명함을 받아 든 안효주가 확인을 했다.
“변호사시구나.”
“네. 작은 개인사무소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박지혜가 힐끔 오정진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 우리 아빠 왔으니까, 죽었어!”
지혜 아빠가 박지혜를 툭 치며 말했다.
“지혜야, 그만 까불고.”
지혜 아빠가 오정진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자네 이름이 뭔가?”
“오정진입니다.”
“그래, 정진 군. 뭐하나 물어보자. 우리 애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있나?”
“…….”
오정진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촌인 주희까지 얽혀 있어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