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49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43)
“여긴 괜찮아요. 그보다 커피 한 잔 부탁해요.”
“아, 네에.”
김일도가 믹스커피를 타러 움직였다. 한중만이 바로 불러 세웠다.
“일도야.”
“네.”
“믹스커피 말고 밑에 내려가서 아메리카노 사와라. 우리 엄마 입맛이 고급이거든.”
한중만이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이선주가 김일도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얘는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사실이잖아.”
서른이 넘은 한중만이지만 이선주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였다. 김일도는 피식 웃으며 커피 사러 나갔다. 한중만이 이선주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무슨 일이야? 내 사무실에 다 오고……. 왜? 선 자리 들어왔어?”
“선 자리 같은 소리 한다. 누가 너랑 선을 본다고 그래.”
“엄마! 나 한중만이야. 우리 아버지가 강남에서 유명한 한방병원 원장이야.”
“알지, 바로 내 남편인데.”
“그런데 왜 선 자리가 안 들어온대?”
한중만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선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만아 거울 좀 봐.”
“거울?”
한중만이 벽에 걸린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 산적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성이 있었다. 하지만 한중만은 그런 자신의 수염을 쓰윽 만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나 너무 남성적이고, 섹시하지 않아?”
“으구, 널 정말…….”
이선주가 손을 올리며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한중만이 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 왜! 요새 이런 모습이 대세야. 더티섹시 몰라? 더티섹시!”
“더티섹시 같은 소리 한다. 넌 그냥 더티야, 더티! 어디다가 섹시를 붙여!”
“아, 진짜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야?”
“내가 뭘 인마!”
“그러게 왜 날 이렇게 낳았어. 소희랑 형에게 유전자가 몰빵이냐고. 안 그래도 서러운데…….”
이선주가 피식 웃었다.
“이놈아, 그럼 좋은 유전자를 좀 가져가지. 왜 안 가져갔어. 너 때문에 소희만 예쁘게 나왔잖아.”
“와, 소희가 예쁜 게 내 탓이야?”
한중만은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 못생긴 것이 내 탓이니?”
“엄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들에게 못생겼다고 그럽니까.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하는데.”
“아들! 네가 먼저 시작했거든.”
그때 문이 열리며 김일도가 등장했다. 양손에 커피 하나씩을 들고 다가왔다.
“여기 커피 왔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카드도 내려놨다. 한중만이 커피 두 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것은?”
“저는 믹스커피가 좋습니다.”
김일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선주가 환하게 웃으며 김일도를 봤다.
“어머나, 고마워요. 이름이 뭐예요?”
“김일도입니다.”
“그래요, 일도 씨. 언제부터 일했어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장님께서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아,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그럼 얘기 나누세요.”
김일도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선주는 그런 김일도를 찬찬히 바라봤다.
한중만이 그런 엄마를 보며 물었다.
“왜?”
“아니, 저 친구 참 싹싹하니 좋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아는 아이니?”
“아니, 아는 사람은 아니고. 아는 사람 소개를 받았지.”
“아는 사람 누구?”
이선주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중만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 오 중위.”
“오 중위는 또 누구야?”
순간 한중만이 당황했다.
“엄마는 오 중위를 모르나? 내가 실수했나?”
이선주의 눈빛이 바뀌었다.
“실수? 무슨 실수?”
“아니, 오 중위가 소희 만나는 남자거든.”
“중위? 이름이 오 중위야?”
“아니, 군인이야. 직업군인.”
“군인? 돈 많다며.”
“맞아. 그런데 군인을 하더라고.”
“왜?”
“그건 나도 모르지.”
“오빠라는 사람이 세상에, 동생이 만나는 사람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넌 관심도 없어?”
한중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 우리 집안에서 나만 솔로 거든? 내가 지금 누굴 연애를 참견할 상황이야?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으구, 자랑이다. 자랑이야. 그보다 그 오 중위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해봐.”
한중만이 자세를 잡으며 얘기를 했다.
“일단 직업군인이고. 소희랑은 대만이 형 때문에 만났대.”
“대만이? 같이 군대 있었대?”
“응, 대만이 형이 소개시켜 줬다는대?”
“이놈의 자식이, 소개를 해줘도 군인을 소개시켜 줘.”
“엄마, 생각을 해봐. 대만이 형이 아무나 소개를 시켜줄 사람이야? 소희라면 끔뻑 죽으려고 난리를 치는 사람인데.”
“하긴 그렇긴 하지.”
이선주도 인정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대만이 형이 오 중위를 찬찬히 지켜봤대. 그러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소희에게 소개를 시켜준 거라고 하던데?”
물론 한대만은 소개받기 전 오상진과 김소희와의 썸씽은 모르고 있었다. 이선주가 고갯짓을 하며 슬쩍 물었다.
“그 남자 사진은 있어?”
“사진? 어어, 핸드폰에 있을 거야.”
한중만이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사진첩을 뒤졌다.
“어어, 여기 있네.”
한중만이 휴대폰을 건넸다. 이선주가 휴대폰을 받아 들고 찬찬히 오상진을 확인했다.
“이 가시나! 엄마에게 사진도 안 보내주면서…….”
이선주는 오상진을 보며 느낀 첫 인상은 듬직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오상진의 키였다. 물론 어깨도 넓고 그 외에도 맘에 들었다.
‘키가 커서 좋네.’
이선주의 입가로 미소가 걸렸다.
“확실히 잘생겼네.”
“에이, 엄마. 솔직히 나보다는 아니지 않아?”
순간 이선주가 정색했다.
“아들, 엄마도 이런 말하기 싫은데 그 입 다물고 있을래? 엄마 화나려고 하네.”
“와, 나만 미운오리새끼야. 나만 미운오리새끼.”
한중만이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들. 이 건물 오 중위 건 줄 알고 들어온 거야?”
“그럼! 소희가 소개시켜 준 건데.”
“소희가?”
“엄마 오면서 건물 이름 안 봤어?”
“봤지, 미리내.”
“그거 소희가 예전부터 자기 명의로 된 빌딩 미리내로 바꾸고 싶다고 난리를 쳤잖아. 그 이름 몰라?”
“알지.”
“그래, 그 이름이 왜 여기 달려 있겠어.”
“아, 소희가 달고 싶어서 단 거야?”
“어, 내가 듣기론 그래. 여기 건물 세도 오 중위가 거의 공짜다시피 해줘서 싸게 들어온 거야. 소희 소개로.”
“아, 그러니?”
“응!”
“소희가 너한테 잘해주니?”
“어? 그럼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네.”
“뭔데?”
이선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한중만은 살짝 불안했다.
“이거 말해도 되나?”
“뭔데? 빨리 말해봐.”
“여기 아래, 2층 커피숍 있잖아.”
“어!”
“그거 형수 이름으로 한 건데.”
“또? 지난번에 그것은?”
“아, 거긴 젊은 사람들이 안 오고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찾아서 전통찻집으로 바꿨지. 그리고 형수가 나이가 젊어서 전통찻집 하기가 그렇잖아.”
“그래 가지고, 여길 또 한 거야?”
“그렇지.”
“지난 번의 건물도 오 중위 건물이라고 하지 않았니.”
“맞지.”
한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주는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오 중위는 왜 그렇게 너희 형에게 잘하니?”
“아이고, 엄마! 딱 보면 모르겠어? 소희가 예쁘잖아.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고 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에헤이, 엄마! 나 같아도 소희 같은 예쁜애를 소개시켜주면 처갓집 말뚝에 절하겠다.”
한중만의 말에 이선주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오 중위가 우리 집을 벌써 처갓집이라 생각한다 이거지.”
“그럼 우린 벌써 호칭 텄어. 난 매제라고 부르는데.”
“얘들이, 아버지 알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씨, 뭐! 우리끼리 그런 건데. 아빠는 별것도 아닌 걸로 난리를 치더라. 그리고 형 결혼 허락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아빠 진짜 웃긴 거 아냐?”
“뭐가 웃겨!”
“난 진짜, 형이 형수랑 들어왔을 때 집안에 호적 하나는 파야겠구나. 생각했지.”
“너처럼?”
“그렇지.”
한중만이 씨익 웃었다. 이선주의 손이 또 올라갔다.
“이것이 웃기는……. 어쨌든 아빠가 왜 넘어갔는지 궁금하지?”
“이유가 있었어? 뭔데?”
한중만이 눈을 반짝였다. 이선주가 그런 한중만을 보며 말했다.
“너 때문에 그렇잖아. 너 때문에.”
“나 때문이라니?”
“너 호적에 판다고 난리쳤을 때. 너 그 이후로도 정신 차렸니?”
“엄마! 지금 봐봐. 얼마나 정신을 차렸는데.”
“이놈아, 아버지가 너 이렇게 살라고 내쫓은 줄 알아? 내 쫓으면 정신차리고 돌아올 줄 알았지. 그런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한다고 이러고 있으니. 아버지가 무서워서 내쫓겠니.”
“와, 또 내 잘못이야? 내 탓이야?”
한중만은 살짝 어이없어 했다. 이선주는 급히 말을 돌렸다.
“그것보다 영화사는 잘되고 있는 거야?”
이선주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엄마, 너무 빨리 물어보는 거 아니야?”
“이 녀석이…….”
한중만이 씨익 웃었다.
“영화야 잘되고 있지. 최근에 영화 하나 들어갔어.”
“최근에? 무슨영화?”
이선주가 관심을 보이자, 한중만이 얘기를 했다.
“솔직히 이번 영화 나는 아리송했거든. 그런데 매제가 이 시나리오 괜찮다고 추천을 해주더라고.”
“무슨 영화냐고.”
“어…… 그건 말하기 좀 그렇고. 아무튼 매제도 거기 투자한다고 그래서. 나도 겸사겸사 투자를 했지.”
“그 정도로 돈이 많아?”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 그래도 돈이 많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
한중만의 설명에 이선주의 호기심이 점점 더 짙어졌다.
한편, 오상진과 한소희는 오랜만에 백화점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쇼핑도 하고, 그곳에서 맛난 것도 먹었다.
남성의류매장에 들어간 한소희가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옷 하나를 빼네 오상진에게 건넸다.
“상진씨 이거 한번 입어봐요.”
“저는 셔츠는 좀…….”
“왜요?”
“전 카라 있는 건 안 입는 편이라서요.”
“그래도 입어봐요. 언제까지 만날 이렇듯 티만 입고 다닐 거예요. 전 셔츠 입은 남자 좋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이리 주세요.”
오상진이 마지못해 셔츠를 받고, 탈의실에 갈아입었다. 그런데 발달된 승모근 때문에 목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핏이 좀 예쁘지는 않았다. 오상진은 탈의실 거울을 보며 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상진씨 다 입었으면 나와봐요.”
“네, 나가요.”
오상진이 탈의실을 나갔다. 한소희가 환한 미소로 다가와 옷을 매만지며 콧노래를 불렀다.
“으음, 내 남친. 근육 멋져! 호호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종업원들이 힐끔거렸다.
“쟤 봐라. 쟤! 딱 봐도 꽃뱀 아니야?”
“맞아. 그런 거 같아. 완전 불 여시처럼 생겼네.”
“그래? 난 예쁘기만 하네.”
“야, 새끼야. 넌 여자만 보면…….”
“내가 뭘.”
“시끄럽고, 저 녀석 호구 아니야?”
“그러네. 딱 봐도 호구네. 아니면, 남자가 돈이 많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남자가 제비인가?”
“야, 넌 눈이 없냐? 저런 모습으로 어떻게 제비일 수가 있어.”
그렇게 남자 종업원들이 수군수군 거렸다. 그런데 그 얘기가 좀 컸다. 한소희의 귀에 그대로 들렸다. 한소희가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진짜, 이 백화점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