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44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38)
“자자, 이제 시작한다. 다들 모여봐!”
1중대가 오상진 주위로 모였다.
오상진은 간단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사이 심판을 보기로 한 장석태 중위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축구공을 손에 쥐고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삐이이이익!
장석태 중위가 힘차게 불렀다.
그러자 연병장 중앙으로 1중대와 3중대가 모였다. 나란히 양 중대의 주장이 나왔다.
장석태가 동전을 들고 물었다.
“1중대 어디?”
“앞면 하겠습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3중대가 뒷면.”
“네.”
장석태 중위가 동전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이 앞면을 가리켰다.
“좋아, 1중대. 공 할 거야? 골대 위치 할 거야?”
김우진 병장이 공과 골대 위치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공 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장석태 중위가 공을 중앙에 놓았다.
장석태 중위가 시합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저 멀리서 검은색 세단이 나타났다.
“뭐야?”
그 번호판이 좀 익숙했다.
“가, 가만 저 번호판…….”
곽부용 작전과장이 바로 말했다.
“사, 사단장님 개인차입니다.”
“뭐? 사단장님이 왜 나와?”
한종태 대대장이 깜짝 놀라며 뛰쳐나갔다.
차량에서 사단장이 내리자 곧바로 한종태 대대장이 경례했다.
“충성.”
“어, 수고가 많아.”
“네, 그런데 사단장님께서 어떻게 직접 나오셨습니까?”
“충성대대에 재미난 볼거리가 있다고 해서 왔지.”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충성대대장.”
“네.”
“이 재미난 일이 있으면서 나에게 말도 안 하고 말이야.”
장기준 사단장이 짐짓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펄쩍 뛰었다.
“아이고, 제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하하하, 괜찮네. 내가 알아서 왔지 않나.”
“아, 네!”
한종태 대대장은 연신 굽신거렸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장기준 사단장이 주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그럼 난 어디서 구경하면 되나?”
“저기 단상 위에 자리를 마련해 뒀습니다.”
조금 전까지 한종태 대대장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 자리를 바로 장기준 사단장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그 뒤로 바로 자리 하나를 새롭게 가져왔다.
“자네도 앉게.”
“네.”
“그래. 누구랑 누구랑 하는 거지?”
장기준 사단장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했다.
“1중대랑 3중대가 친선경기를 합니다.”
“오오, 두 중대 다 유니폼을 맞춘 건가?”
“네, 그렇습니다.”
“아주 보기 좋아. 껄껄껄.”
장기준 사단장이 크게 웃었다.
그 옆에서 한종태 대대장이 쩔쩔매고 있었다.
“두 중대 다 축구를 잘하나?”
“네, 그렇습니다. 지난 체육대회 때 우승팀과 준우승팀입니다.”
“오오, 그런가?”
“네.”
“이거 참, 재미나겠군.”
“그렇습니다.”
장기준 사단장은 연신 얘기를 하고 한종태 대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철환 1중대장과 이대우 3중대장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해 있었다.
특히 이대우 3중대장은 이런 상황이 못내 맘에 들지 않았다.
‘아, 진짜. 자존심 싸움인데 왜 대대장님에 이어 사단장님까지 나타나는 거냐고.’
이대우 3중대장이 직접 내려가 3중대를 불렀다.
“야, 다들 모여봐.”
3중대가 모였다. 이대우 3중대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사단장님께서 오셨다. 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네!”
“정태야.”
“병장 박정태.”
“너 진짜 골 제대로 넣어라.”
“저 휴가…… 제대로 약속만 지켜주십시오.”
“알았어, 인마. 너 골 넣을 때마다 휴가 하루씩 늘려 줄게.”
“정말 약속하신 겁니다.”
박정태 병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10골은 기본으로 넣을 것 같았다.
“훗, 자식들…….”
한편, 1중대도 오상진이 애들을 불러 놓은 상태였다.
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알아서 해.’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1중대원들에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자, 편하게. 우리가 연습했던 것 있지? 그것만 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곽부용 작전과장이 두 중대장을 불렀다.
“1중대장.”
“네.”
“3중대장.”
“네.”
“이리 올라와!”
두 중대장이 곧바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뭔가 이야기를 듣더니 이대우 3중대장이 씨익 웃더니 군복 상의를 벗었다.
반면, 김철환 1중대장은 잔뜩 인상을 굳힌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이 급히 다가가 물었다.
“중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상진아, 어떡하냐? 우리보고 뛰란다.”
“네?”
“사단장님께서 중대장들은 축구를 얼마나 잘하나 보고 싶다면서 우리보고 뛰라고 하네. 미치겠네. 무슨 이 나이에 축구야.”
순간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경기 시작 전 이대우 3중대장이 중대원들 곁으로 왔다.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박정태 병장은 팀원들을 모아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넌 공을 빼앗으면 바로 나에게 넘겨. 알았지? 그리고 넌 수비를 타이트하게 해, 괜히 실점하지 말고. 알겠지?”
“네.”
“좋아, 이번에는 지난 체육대회의 설욕을 꼭 갚아주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때 박정태의 눈에 이대우 3중대장이 보였다.
“어?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표정이 밝으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있지.”
이대우 3중대장은 연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곤 3중대 팀원들을 향해 물었다.
“누가 공격이었지?”
그러자 박정태 병장이 나섰다.
“저하고, 이태국 상병입니다.”
“야, 태국이.”
“상병 이태국.”
“넌 잠시 나와 있어.”
“네? 왜 공격수를……. 그럼 골은 누가 넣습니까?”
박정태 병장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이대우 3중대장이 당당하게 말했다.
“골은 당연히 내가 넣는 거지.”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이라니. 내가 공격수라니까.”
박정태 병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중대장님. 장난하지 마십시오.”
“장난이라니. 중대장이 장난할 사람으로 보여?”
“그, 그건 아니지만…….”
“됐고, 내가 왜 들어가려고 하냐면 사단장님 보이시지?”
“네.”
“사단장님의 특별 지시다. 중대장들도 함께 축구를 하라고 하시네.”
그러자 박정태 병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 그럼 골은…….”
“뭐?”
이대우 3중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박정태 병장이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중대장님.”
“왜?”
“그러지 마시고, 그냥 수비 보시면 안 됩니까?”
“야, 박정태! 넌 인마 중대장을 믿지 못하는 거냐?”
“믿는 거와 축구 잘하는 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인마, 나 축구 잘해. 왕년에 마라도나로 불렸던 사람이야.”
“네? 누구 말입니까?”
“마라도나. 너희들 마라도나 몰라?”
이대우 3중대장이 액션을 취하면서 어필했다.
그러나 여기 모인 그 누구도 마라도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축구 잘하는 선수 있어. 그리고 중대장 가오가 있지, 수비를 보라고 하다니. 난 무조건 공격수야. 그리고 나 족구 잘해.”
“중대장님 그래도 축구랑 족구는 엄연히 다른 겁니다.”
“똑같은 축구공으로 하잖아. 그리고 골만 잘 넣으면 되지. 내가 축구도 못 할까 봐. 중대장은 공으로 하는 것은 다 잘한다. 알겠나, 박정태 병장!”
박정태 병장은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중대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중대장님께서는 골대 앞에 서 계십시오.”
“내가 골대 앞에 서 있으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확실히 골을 넣을 수 있는 루트인 것 같습니다.”
박정태 병장이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 머릿속에 있던 작전이 완전히 꼬여 버렸다.
‘하아, 미치겠네. 이러면 완전히 꼬여 버리는데…….’
원래 박정태 병장의 목적은 이태국 상병이 모든 공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박정태 병장 본인은 골게터로서 열심히 패스를 받아 골을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처진 스트라이크로서, 중대장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이대우 3중대장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골 앞에 딱 서 있을 테니까 내 앞으로 다 보내. 알겠지! 내가 다 넣어 버릴 테니까.”
이대우 3중대장은 모든 것이 자신만만했다.
박정태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박정태 병장이 대답하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애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네.”
팀원이 모였다. 그들도 갑작스러운 3중대장의 합류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뭡니까? 왜 중대장님께서 들어오십니까.”
“저도 놀랐습니다.”
“그보다 우리 축구 안 합니까?”
“야, 사단장님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중대장님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하자. 아니, 10명이 뛴다고 생각해.”
“박 병장님. 어떻게 10명이서 뜁니까.”
“야, 저쪽도 10명이야. 똑같은 숫자라고 생각해. 그러니 걱정 마. 그리고 공격수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나에게 공을 보내. 알았어?”
“중대장님께서 공 보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그냥 보내는 척하면서 나에게 보내. 내가 알아서 잘 뛰어다닐 테니까.”
박정태 병장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반면, 김철환 1중대장은 죽을상이었다.
오상진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중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나보고 뛰란다. 내가 축구에 대해서 뭘 아냐? 그냥 족구만 좀 찰 줄 알지.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상진 역시도 모든 것을 다 듣고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어쩔 수 없죠, 사단장님 일인데. 그래서 중대장님은 어느 포지션에 서고 싶습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잖아. 아, 내가 골키퍼 할까?”
“중대장님은 골키퍼 안 됩니다.”
“아니, 왜? 내가 차라리 안 뛰어다니고 날아오는 공 막아 내는 것이 낫지 않냐?”
“골키퍼 진짜 중요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지난번 체육대회 때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골키퍼가 잘해서 그런 겁니다.”
“그렇다고 공격을 할 수도 없잖아. 나 같은 개 발이 공격을 해봐. 우리 1중대 골은 다 넣었다.”
오상진도 애매했다.
머리를 싸매던 오상진이 입을 뗐다.
“그럼 중대장님 수비형 미드필더 어떻습니까?”
“수비형 미드필더?”
“네. 적당히 서 계시다가 공이 오면 수비만 해주시면 됩니다.”
“야, 그게 수비수랑 뭐가 달라!”
“엄연히 다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절대 중앙선을 넘지 않고 공을 막아 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드리블도 많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공이 오면 그냥 다른 곳으로 패스를 넣어 주면 됩니다.”
“그래? 많이 안 뛰어다녀?”
“네, 그렇습니다.”
“으음…….”
김철환 1중대장이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오상진이 한 말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내가 그 뭐냐. 수비형 미드필더? 그런 거 하고 있지.”
“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오상진의 입장에서 호흡을 맞춘 수비수를 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골을 넣는 공격수를 빼는 것도 그랬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미드필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