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43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37)
-아들! 최강철 아버지가 누군지 잊었어? 그리고 어머니는? 무엇보다 최익현 의원,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단 말이야. 나중에 최익현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봐. 넌 대통령 아들이랑 친구가 되는 거야. 그런 기회가 없었지? 지금이 그 기회야! 아빠가 그 어려운 기회를 주는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잡으란 말이야.
“알았어요.”
강태산 이병이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그래, 우리 아들. 아들은 아빠 말 잘 듣지?
“네.”
-그보다 군대는 별일 없고?
“이번에 뭐 훈련하고 있었는데 적당히 했어요.”
-그렇지? 아빠가 말한 대로 ‘숨이 가쁩니다. 참기가 힘듭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적당히 빠질 수가 있어.
“응, 알았어요. 그런데 아빠.”
-응?
“면회 언제 와?”
-면회? 지금 못 갈 텐데.
“못 와? 아니, 왜?”
-안 그래도 면회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 너 아직 백일 휴가 안 나와서 안 된다고 말이야.
“아이씨, 정말?”
-그럼 이놈아. 아빠가 거짓말을 할까.
“그런 것이 어디 있어. 나 치킨 먹고 싶단 말이야.”
-자식아, 좀 참아봐. 아빠가 알아서 갈 테니까. 그때 너 좋아하는 치킨이랑, 피자, 김밥에 콜라까지 싹 다 싸 가지고 갈 테니까. 좀만 더 고생해. 힘내자.
“네, 알겠어요.”
-그래, 그래.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그럼 또 통화하자.
“네, 아빠.”
강태산 이병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최강철 일병이 다가왔다.
“전화 다 했냐?”
“네.”
“그런데 왜 시무룩해 있어.”
“아닙니다.”
“왜. 부모님이랑 통화하니, 마음이 많이 심란해?”
“네.”
강태산 이병은 솔직히 말했다.
최강철 일병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다 그런 거야. 누가 그러더라. 이 또한 지나가리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자.”
“어? 최강철 일병님은 전화 안 하십니까?”
“좀 전에 했어.”
“제가 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강태산 이병이 의아한 얼굴로 손에 쥔 카드를 들었다. 최강철 일병이 바로 말했다.
“콜렉트 콜!”
“아……. 그런데 누구에게 했습니까? 혹시 여자 친구?”
“…….”
“어? 진짜입니까?”
“그래. 왜 난 여자 친구 있으면 안 되냐?”
“그건 아니지만…… 혹시 예쁩니까?”
“이 자식이 뭘 그런 걸 고참에게 물어봐.”
“아니, 예쁘냐 말입니다.”
강태산 이병이 최강철 일병에게 엉겨 붙었다.
그렇게 강태산 이병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토요일 날이 밝았다.
원래 주말에는 쉬는 날이지만 간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늘은 1중대와 3중대의 축구 친선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1중대가 비장한 얼굴로 먼저 연병장에 들어섰다.
잠시 후 3중대도 연병장에 나왔다.
그런데 3중대가 붉은색 유니폼으로 싹 다 갈아입고 있었다.
“어? 쟤네들 유니폼 갈아입었네.”
“어라? 그렇습니다.”
“뭐야? 저 녀석들이 붉은 악마라도 되는 거야?”
“붉은 악마를 어디다가…….”
“유니폼 자체가 붉지 않습니까.”
“그래도 붉은 악마를 비유할 때 비유해야지.”
“그럼 코카콜라입니까?”
“풉!”
서로 얘기를 하면서 웃고 말았다.
진짜 코카콜라라고 생각하니 다들 그렇게 보였다.
얼굴은 또 어찌나 그렇게 새카맣게 탔는지…….
“진짜 코카콜라처럼 보입니다. 어쩝니까?”
“아, 몰라. 그러러니 해.”
“푸하하핫!”
타 중대원들이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이대우 3중대장은 지난 체육대회 때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1중대가 유니폼을 맞춰 입고 나와서 칭찬을 받았다. 그 기억 때문에 유니폼을 맞춘 것이다.
“우리 3중대도 유니폼이다. 대신 비싼 건 안 돼!”
아무튼 그 유니폼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번에 3중대도 유니폼을 싹 다 맞춘 모양이었다.
오상진은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네.’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박중근 중사는 바로 말했다.
“3중대가 벼르고 나온 것 같습니다. 원래 3중대장님 저런 걸로 돈 잘 안 쓰는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도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가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박중근 중사가 대답을 하고는 1중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오상진의 눈이 3중대장에게 향했다. 이대우 3중대장은 오상진과 눈빛이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눈빛으로 살짝 인사를 한 것이 다였다. 그 옆으로 김철환 1중대장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상진아.”
“네, 중대장님.”
“준비 잘했냐?”
“뭐, 나름 준비는 했지만 솔직히 연습이 좀 짧았습니다.”
“그래도 잘했을 것이라 믿는다.”
“네네. 참고로 지더라도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인마, 난 진다고 생각 안 해.”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느새 한종태 대대장이 탄 차량이 도착했다.
조수석 문이 열리며 한종태 대대장이 내렸다. 군복 차림이 아닌 편한 차림이었다.
“대대장님 오셨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뛰어 올라갔다. 뒤이어 이대우 3중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김철환 1중대장과 먼저 악수를 하고, 뒤이어 이대우 3중대장과 악수를 했다.
“우리 대대의 친선을 위해서 중대장끼리 결의를 다지고. 아주 좋아.”
한종태 대대장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내 자리는 어디인가?”
“이쪽입니다.”
어느새 장석태 중위가 다가와 말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준비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곽부용 작전과장에게 물었다.
“뭐? 판돈이 얼마나 돼?”
“다들 10만 원 안팎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쩨쩨하게……. 10만 원이 뭐야, 10만 원이…….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해? 1중대는 체육대회 챔피언이고, 3중대는 준우승 한 팀 아니야. 이런 경기는 거의 뭐, 국대로 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아니야?”
“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게 뭐야. 경기 격 떨어지게. 10만 원 가지고 성에 차겠어? 쯧쯧쯧!”
한종태 대대장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 말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한종태 대대장 본인이 먹을 것이 없다는 맥락과 같았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무슨 내기만 있으면 어떻게든 자기가 이기게 만들어서 판돈을 다 쓸어가면서……. 이번에도 축구 대회를 한다고 하면서…… 에효, 참지를 못하네.’
솔직히 곽부용 작전과장은 다른 간부들에게 미안했다.
막말로 지금 내기는 자신이 얘기를 꺼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곽부용 작전과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에 앉아 있는 한종태 대대장 뒤통수를 노려봤다.
‘내가 이러려고 작전과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종태 대대장의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많이들 걸었어?”
“지금은 3중대 쪽이 많습니다.”
“지난 체육대회 때 우승은 1중대가 했잖아. 그런데 왜 3중대지?”
“아, 그게 말입니다. 체육대회 때 뛰었던 핵심멤버들이 대부분 전역을 했다고 합니다.”
“오호라, 그래? 3중대는 남았고?”
“네. 3중대는 대부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난 어디에 걸어야 하나?”
한종태 대대장이 고민했다. 어느 쪽에 걸지.
그러다 힐끔 장석태 중위를 봤다.
“장 중위.”
“네.”
“나 어디에 걸어야 할까?”
“이기는 팀에 거셔야죠.”
“그게 무슨 소리지?”
장석태 중위가 씨익 웃었다.
“그냥 말 그대로입니다. 이기는 팀에 거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한종태 대대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오호, 그렇지. 당연히 이기는 팀에 걸어야지. 그렇게 간단한 것을 내가 몰랐군. 역시 장 중위. 브레인이야.”
“아닙니다.”
“그럼 어디 보자…….”
한종태 대대장이 지갑에서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3장을 꺼냈다. 그것을 곽부용 작전과장에게 주며 말했다.
“자, 난 이기는 팀에 건 거야.”
곽부용 작전과장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네, 알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대답을 한 후 장석태 중위를 바라봤다.
장석태 중위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혼자 싱글벙글거리고 있었다.
‘에효. 내 속이 시커멓게 탄다, 타!’
장석태 중위가 슬쩍 다가왔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지금이 기회다 생각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재주도 좋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아, 아버지에게 배운 겁니다.”
“뭐? 사단장님께서?”
“네. 옛날에 내기 축구를 좋아하시는 장군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때 그 장군님께서 만날 그러셨다고 합니다.”
“아무튼 내가 자네에게 한 수 배웠어.”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그건 그렇고 자네는 진짜로 누가 이길 것 같나?”
“으음, 전력상으로 보면 3중대가 괜찮긴 한데 말입니다. 저는 왠지 1중대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에 걸었습니다.”
“1중대? 1중대는 왜?”
“그냥 저는 오상진 중위랑 친해서 말입니다.”
장석태 중위가 실실 웃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그런 그에게 한마디했다.
“자넨 작전장교라는 사람이 분석은 안 하고 사람의 정으로 움직이면 쓰나.”
“저는 뭐, 즐기자는 위주라서 말입니다. 따면 좋고, 잃어도 상관없고 말입니다. 아, 잃으면 좋은 것도 있습니다.”
“뭐가 말인가?”
“제가 오상진 중위에게 술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뭐, 따면 제가 사줘야겠지만…….”
장석태 중위가 피식 웃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살짝 놀랐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 아주 그냥…….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제가 또 그런 쪽으로는 비상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장석태 중위가 1중대에 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장석태 중위가 따로 확인을 해보니, 지난 체육대회 때도 오상진이 팀을 만들어서 우승을 시켰다.
우승팀 멤버의 절반이 전역했다고 해도 오상진이라면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오상진의 역량을 믿고 있었다.
‘그래 3중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오 중위라면 뭔가 해낼 것 같은 믿음이 있어.’
장석태 중위의 시선이 연병장에 있는 오상진에게 향했다.
한편, 김철환 1중대장은 한종태 대대장과 인사를 마치고 다시 내려왔다.
“아무튼 저 양반은 이런 자리는 꼭 안 빠져요.”
오상진이 바로 맞받아쳤다.
“우리 대대장님께서 원래 그런 양반 아닙니까.”
“그렇지. 이번에도 우리 중대에 걸려나?”
“아, 내기 말입니까?”
“그래, 벌써 내기 판 돌기 시작했어.”
“워워워워. 이거 진짜 잘해야겠습니다.”
“그럼 진짜 잘해야지!”
“은근 압박을 주십니다.”
“원래 약간의 압박은 필요한 법이야.”
“약간이 아닌데 말입니다.”
“시끄럽고, 집중이나 해.”
“넵!”
오상진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몸 풀고 있는 1중대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