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534화
44장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28)
한편, 김철환 1중대장은 이번 보수공사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이대우 3중대장을 찾아 나선 참이었다.
그런데 3중대 앞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는 중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이대우 3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중대는 왜 그러냐?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3중대장 뭐? 너 방금 뭐라 했어!”
그 소리에 오상진을 비롯해 이대우 3중대장의 얼굴이 돌아갔다. 그 뒤에 김철환 1중대장이 냉기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주, 중대장님…….”
오상진 역시도 놀란 눈치였다. 김철환 1중대장은 이대우 3중대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뭐? 1중대가 뭐 어쨌다고?”
“…….”
이대우 3중대장은 당황했는지 시선을 외면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야, 은혜는 원수로 갚나?”
그 소리에 이대우 3중대장은 뭔 소리인가,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김철환 1중대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말입니까? 으, 은혜를 받았다니……. 우리 3중대가 말입니까?”
“이봐, 이봐.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거야? 저번 겨울에 대민지원!”
그 순간 이대우 3중대장이 ‘아차’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지금이 기회라며 몰아붙였다.
“대민지원 갔을 때 너희 중대 애 중 하나가 쓰러졌잖아. 그걸 누가 깔끔하게 처리해 줬어. 바로 여기 있는 오 중위가 해줬어. 네가 빌빌거릴 때, 너희 중대 간부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오상진 중위가 해결해 줬다고. 설마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걸 모르면 진짜 개새끼고!”
김철환 1중대장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이대우 3중대장은 마지막 말에 빈정이 상했다.
“왜 그러십니까? 마지막 말은 좀 심하셨습니다.”
“심해? 그럼 개새끼 안 하면 될 것 아냐.”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이대우 3중대장은 불쾌한 빛이 역력했다. 그때 소란스러움에 2중대장이 슬쩍 밖으로 나왔다. 김철환 1중대장과 이대우 3중대장의 대립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2중대장이 고개를 흔들며 사무실을 나와 김철환 1중대장에게 다가갔다.
“1중대장님, 그리고 3중대장. 그만합시다. 여기 장병들도 많이 있는 곳입니다.”
2중대장은 상황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 장병들을 팔았다. 그러나 이미 잔뜩 성이 난 김철환 1중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말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에 곰곰이 생각하던 2중대장이 번뜩 뭔가가 떠올랐다.
‘맞아. 그랬던 적이 있지?’
2중대장이 예전에 김철환 1중대장과 3중대장의 중재를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 있었다. 그때는 족구 시합으로 가리는 것이었고, 지금은…….
“지금 애들도 다 보고 있습니다. 이러지 말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축구 시합으로 결과를 만들도록 하죠.”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돌려 2중대장을 봤다.
“축구? 뜬금없이 무슨 축구 시합이야?”
“1중대장님 예전에도 족구 시합으로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기억 안 나십니까?”
“어어, 기억나지.”
“그러니까, 그때처럼 하잔 말입니다. 두 중대 다 족구면 족구, 축구면 축구. 다 잘하지 않습니까. 축구 한 판으로 다 끝내시죠. 그리고 서로 이제 앙금도 풀고, 중대끼리 교류도 하고 말입니다. 아니, 같은 대대에 있는데 계속해서 대립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막말로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2중대장의 마지막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이 번뜩했다. 그리고 주위를 잠시 살피더니 입을 다물었다.
“끄응.”
이대우 3중대장은 아무래도 이번이 기회라 생각했다. 지난번 축구 시합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중대 1소대에서 축구 잘하는 애는 이제 없었다.
‘그래 지금이 이길 기회야.’
이대우 3중대장이 맘을 먹었다.
“1중대장님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축구 시합하시죠.”
김철환 1중대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 우리도 상관없어!”
“그럼 이번 주말에 하시겠습니까?”
“콜!”
“지는 중대가 부식 쏘는 겁니다.”
“좋아, 대신에 중대장이 직접 내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오상진과 최강철 일병, 강태산 이병은 갑자기 왜 축구 시합으로 변모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태산 이병이 슬쩍 최강철 일병에게 말했다.
“최강철 일병님 제 팬티는…….”
“인마, 지금 상황에서 팬티 좀 찾겠다는 말이 나오겠냐.”
“그, 그건…….”
강태산 이병이 고개를 푹 숙였다. 최강철 일병이 입을 뗐다.
“기다려 봐. 무슨 방법이 있겠지.”
최강철 일병은 어쩌다 보니 갑자기 즉흥적인 축구 시합을 하게 된 것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시각, 1중대 2소대에서도 난리가 났다.
“와, 시발! 내 팬티!”
“제 속옷도 없습니다.”
“이런 쌍놈의 자식들이 감히 내 걸 훔쳐가!”
강인한 병장이 눈을 부릅떴다. 사실 강인한 병장은 꼭꼭 숨겨 뒀던 A급 속옷을 처음으로 입고, 빤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날름 가져가 버렸다.
“아니, 이름까지 적어 놨는데 어떤 새끼가…….”
강인한 병장이 펄펄 뛰었다. 그때 이미선 2소대장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강인한 병장이 바로 자세를 잡으며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충성. 강 병장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말입니다. 5중대에서 저희 속옷을 훔쳐 간 것 같습니다.”
“뭐? 속옷을 훔쳐?”
“네.”
“그런데 5중대가 확실해?”
그때 하영운 상병이 나섰다.
“네. 확실합니다. 이건 정확한 정보입니다. 5중대가 같이 걷을 때 슬쩍 우리 쪽 건조대로 와서 가져가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래?”
“네. 그렇습니다.”
“어떤 속옷이 없는데.”
“팬티 3장이 없습니다.”
“하아…….”
이미선 2소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무슨 5중대 애들은 팬티를 훔쳐 가고 그래. 5중대 몇 소대야?”
“2소대 애들입니다.”
“2소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 줄까? 직접 찾아가서 팬티 내놓으라고 해야 해?”
“네. 아무래도 저희보다는 소대장님께서 직접 가셔서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인한 병장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이미선 2소대장이 그 얘기를 듣고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진짜 나 보고 팬티를 돌려 달라고 말하란 말이야?”
“그게 아니면 저희가 가서 다시 훔쳐야 합니다.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소대장님께서 나서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그 얘기를 듣고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러면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이미선 2소대장의 걱정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미선 2소대장이 나서야 했다. 강인한 병장이, 그것도 분대장이 직접 나서서 부탁을 하는데 말이다.
“5중대가 맞지?”
“네.”
“2소대?”
“네. 그렇습니다.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박종현 상병이었습니다.”
“그래, 알겠어.”
이미선 2소대장이 내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참네. 별것을 다 시키네. 내가 괜히 소대장을 한다고 했나?”
이미선 2소대장은 마지못해 5중대로 갔다. 5중대 행정실로 간 이미선 2소대장이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저기 혹시 2소대 박종현 상병이라고…….”
“어? 우리 소대 앤데. 무슨 일이죠?”
5중대 2소대장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바로 환한 얼굴로 입을 뗐다.
“아니, 이번에 저희 소대가 빨래를 하고 널어놨는데 그 과정에서 팬티 몇 개가 섞여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어이구 세상에 지금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까? 이놈의 자식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대장이 여자라고 그런 장난을 치고 그래?”
5중대 2소대장이 심술궂게 말했다. 마치 이미선 2소대장을 놀린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에이, 속옷을 가져갔다고 했습니까? 별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이미선 소위가 소대원들에게 휘둘린 모양입니다.”
5중대 2소대장의 말에 이미선 2소대장의 얼굴이 빨개졌다.
“팬티라고 했습니까?”
“네.”
“뭐, 실수로 가져온 것 같은데 제가 나중에 확인해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위.”
“네.”
“이런 일은 애들 시키지 뭐 한다고 소대장이 직접 움직입니까?”
“아닙니다.”
“아무튼 이놈의 자식들. 여자 소대장이라고 장난치고 말이야. 이것들 이게 문제입니다. 이 소위가 이해하십시오. 여자라 그렇습니다.”
5중대 2소대장은 말끝마다 여자 소대장, 여자 소대장이라고 했다. 이미선 2소대장은 괜히 그 말이 신경이 쓰였다.
‘내가 여자라서? 자꾸 여자, 여자 하네.’
이미선 2소대장이 한마디 하려는데 뒤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순간 5중대 행정반이 적막이 흘렀다. 이미선 2소대장 뒤에 5중대장이 나타난 것이었다. 1소대장이 벌떡 일어나며 경례를 했다.
“충성.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5중대 소대장들이 살짝 당황했다. 이미선 2소대장 역시 몸을 돌려 깜짝 놀랐다. 5중대장이 이미선 2소대장을 보며 살짝 놀랐다.
“어? 1중대 이미선 소위 아닌가.”
“충성.”
“그래. 여긴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이미선 2소대장이 말하려다가 5중대 2소대장이 바로 나섰다.
“아니, 빨래를 하고 널어놨는데 걷는 과정에서 1중대 2소대 팬티가 몇 장 섞여 왔나 봅니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5중대장의 시선이 2소대장에게 향했다.
“그래서 확인은 했어?”
“그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을 합니까. 세탁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야, 2소대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선 소위가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대충 넘어간 거야? 내가 너희들 그렇게 가르쳤어!”
5중대장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소대장들은 순간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중에서 2소대장과 1소대장이 서로를 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어? 이 인간이 오늘 왜 그러지?’
‘그러게 말입니다.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두 소대장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눈알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도 일단 사과를 해야 했다.
“어,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그 생각은 못 했습니다.”
하지만 5중대장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놈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대에서 벌어진 일이고, 직접 그 소대장이 찾아왔으면 즉각즉각 처리를 해줘야 할 것 아니야. 그게 서로서로 도움도 주고, 교류를 통해 좀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야. 이런 사소한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어떻게 5중대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일로 5중대의 기강까지 무너지는 거야!”
5중대장이 목소리 높여 일장 연설을 했다. 그런데 소대장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지금 5중대장이 하는 말은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교류? 뭔 교류?’
‘이게 무슨 도움을 주고, 그런 거지? 그냥 팬티 몇 장만 찾아주면 되는 거 아냐?’
‘갑자기 중대장님이 오버를 하시고 그러지?’